빛을 보다 (1)
"괜찮겠제"
응원 연습을 끝내고 자리에 앉으니, 옆자리에서 꽃분이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아니... 긴장을 너무 하던 것 같아서."
"긴장은 무슨 긴장이고. 여까지 왔으면 있던 긴장도 도망가겠다."
"...글나?"
"글타."
아무래도 장 이장님이 걱정되는 모양. 눈 아래가 거뭇하다 싶더니, 계속 걱정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괜찮으세요."
"어?"
"아까 통화했거든요."
"진짜? 그래.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고맙다."
다른 마을 사람들의 위로에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던 꽃분이 할머니가 반색했다.
"뭐꼬? 이 바쁜데 언제 전화했나? 여까지 운전까지 한다고 시간도 없었을 텐데."
통화를 마쳤다는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심 할아버지가 물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척하고 있었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나 보다.
"아까, 도착하자마자 잠깐 통화했습니다."
"그래? 아아. 아까 화장실 간 줄 알았는데 그때 통화했나 보네. 어떻드노? 진짜 괜찮은 거 맞나?"
꽃분이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을 거란 말을 하긴 했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인지, 심 할아버지의 눈동자는 불안으로 가득했다.
"네. 괜찮습니다. 아주요."
"아... 알았다."
내 대답이 무언가 석연치 않은 듯 심 할아버지가 말을 늘어뜨렸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살피는 심 할아버지를 향해 나는 한껏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때로는 새하얀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므로.
**
한울이 마을 사람들에게 한껏 미소 짓고 있는 그 시각.
"후... 하..."
무대 뒤, 마지막 경연 참가자들의 대기실에는 한 사람의 호흡소리로 가득 찼다.
"...이장님, 긴장을 많이 하신 거 같지?"
"어. 아무래도 그런 듯. 조용히 해 주자."
쉿쉿.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젊은 참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 이장님을 바라보며 연신 자신의 검지를 입 앞에 가져다 대었다.
"풉. 이번 참가자들 진짜 착하지 않아요? 진짜 누가 뽑았는지 몰라도 잘 뽑았다니까."
"누구긴 누구야. 우리지. 프로그램 잘 진행 시켜놓고 재 뿌릴까 봐 국장님이 학적부까지 다 뒤지라고 하셨잖아. 그때는 진짜 그만둘까 했는데... 지금 보니까 탁월한 선택이었네."
"아, 그건 저도 공감."
1차 오디션에서 최종 합격한 참가자들 모두의 SNS를 뒤지다 못해 학적부 조회까지 해 학폭같은 논란거리를 사전에 차단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골이 띵할 정도였다.
아무리 거르고 걸러 본선에 나갈 수 있는 참가자들이 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100명이었다. 10명이 아니라, 무려 100명.
하지만 자신은 일개 직원이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이 방송국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는 국장이었다.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사실 말단 직원에게는 딱 한 가지 초이스밖에 없는 셈이었다. 혹은 퇴사를 하던가.
퇴사하기 싫었던 직원들은 피땀 어린 노력으로 100명의 신상을 파악하였고, 그 결과가 현재 이 방송이었다.
참가자들끼리 싸우지 않고 이렇게 잘 지내는 건 그 많던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도 처음이라며,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팬덤이 생겨났다.
참가자 개인별 팬덤도 팬덤이지만, 프로그램 자체 팬덤이 생겨, 시청률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고공 행진, 방송국은 몰려드는 광고로 연일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촬영장은 웃음이 넘쳐났다. 제작진들은 프로그램 대박으로 인한 성과급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소식에 시종일관 웃음을 걸고 다녔고, 참가자들은 자신들에게 친절한 제작들에게 감동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프로그램을 띄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긍정의 시너지가 여기저기에서 피어올랐다.
"그런데, 이장님 저렇게 그냥 둬도 괜찮을까요?"
막내 피디 옆에 붙어있던 작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조금 전 한껏 끌어올려 졌던 입꼬리는 축 처진 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장님'이라고 불리는 장순택 참가자는 아주 막강한 참가자였다.
호감도 투표 연속 1위!
개인 팬덤 인원수 1위!
방송이 끝난 뒤 올라오는 기사개수도 압도적인 1위였다.
어릴 적 가수의 꿈이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다 환갑이 넘은 인제야 제 꿈을 찾아 조금씩 성장하는 그의 스토리는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연신 침을 삼켜대는 그의 첫 무대 영상은 최고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였다.
조명을 받아 번쩍거리는 의상과 대조되는 간절한 표정과, 애절한 목소리는 그의 영상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라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 경연까지 온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해당 영상에 출석하는 사람들로 댓글 창이 터지고 있으니, 그 인기를 설명하는 건 무의미했다.
"저게 이장님만의 긴장 푸는 법인지도 몰라."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요?"
"...결승전이니까,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 걸지도..."
"예?"
막내 피디가 막내 작가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애써 모르는 척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참가자들이다. 이런 경연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제공하는 것이라고 해봤자, 어설프게 엮어놓은 아웃라인 뿐이었다.
좋은 경연 프로그램은, 제작진들이 최소한으로 짜놓은 설계 안에서 참가자들이 마음껏 뛰어놀 때 나오는 법이므로.
물론 이 말은 메인 피디님의 의견이었다. 들리는 바로는, 저 윗선들의 의견은 좀 더 타이트하고, 촘촘히 설계된 걸 원했다고 했지만... 뭐. 지금 결과를 보면 메인 피디님의 말이 맞았다.
그러니, 자신들은 저쪽 구석에서 혼자 심호흡하는 강력한 우승후보가 어떤 상태에 처하더라도, 개입할 수 없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저 여느 때 처럼 얼른 저 긴장을 물리치길 바랄 수 밖에.
"후... 하..."
제작진과 다른 젊은 참가자들의 걱정을 한몸에 받은 장 이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아주 유명한,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의미를 모르고 쓰는.
"후..."
장순택은 눈을 감고 숨을 내뱉었다.
"하..."
호흡을 할 때마다 둥둥 거리며 널 뛰었던 심장 소리가 잦아 들었다.
'이장님, 혹시 떨리세요?'
조금 전, 전화를 귀에 댄 장 이장이 처음으로 들은 소리였다.
'무대에서 떨리시면, 1층 왼편을 보세요.'
저희가 있을 거에요.
마을 사람들과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도착했다는 한울의 전언이었다.
'떠셔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가사 틀리셔도... 뭐, 마을 분들은 전부 웃을 것 같은데요?'
모처럼 다 같이 응원하러 왔는데, 무대에서 달달 떨고, 가사를 틀리면 어찌하느냐는 자신의 질문에 한울이 망설이며 말했다.
이미 마을 사람들은 별천지 스튜디오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건 뭐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다고.
가사를 틀리면, 아마 깔깔거리고 웃으며 '장 이장님의 흑역사를 찍으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라는 말과 함께.
'이장님이 결승까지 올라왔다는 거에 다들 뿌듯해하세요. 말을 안 하셔도, 몇 분은 용기를 얻으신 것 같던데요? '장 이장도 하는데! 내도 할 수 있다!' 이러시는 분도 계시고...'
계속해서 한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여태까지 땅을 파던 마음이 빼꼼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아니! 내 응원하러 온 거 아이가? 가만 들어보니까 다들 놀러 온거제!'
응원을 위해 왔다고는 하지만.
LED 판이 가득한 촬영장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느냐느니, 흑역사를 위한 자료 수집이니, 장 이장이 할 수 있는 걸 내가 왜 못하냐느니.
하나같이 응원보다는 다른 목적을 가진듯했다.
'에이. 겸사겸사 아니겠습니까.'
'겸사겸사? 겨엄사 겨엄사사아-?'
누구는 이렇게 젊은이들의 꿈을 자신이 가로 막는 것을 아닐까?
제 피어나는 새싹들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은 아닐까?
나만 없었다면, 다들 더욱더 훨훨 날 수 있을 진데, 자신 탓에 그들의 날갯짓이 멈추는 건 아닐까? 등등으로 저 땅끝까지 파고들고 있었건만.
남의 속도 모르고.
'아무튼, 열심히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하고싶은대로, 하시고 오세요.'
장순택은 오랜만에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끼며 말끝을 늘렸지만, 한울은 그 의미를 모르는척 '화이팅!' 하며 전화를 끊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다소 일방적이었던 통화를 끝내자, 굴을 파느라 아래로 숙였던 고개가 완전히 밖으로 나와 발딱 들렸다.
"그래. 순리대로 가는 거지. 무슨."
이렇게 혼자 걱정하고, 염려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자신이 혼자 끙끙 앓으며 다른 젊은 참가자들에게 미안함을 느껴봤자, 그들은 모를 것이다.
"저기... 내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막 이겨서 억울하진 않나?"
그래도 물어보았다.
혹시 나와 같이 참가하게 되어 억울한 점이 없었느냐고.
"에? 무슨 소리세요? 전 이장님 유명세에 딱 붙어서 같이 수직 상승할 건데요? 이장님 옆에 있으니까, 이미지가 아주 좋아졌어요. 최고입니다!"
"허..."
억울은 커녕, 지금보다 좋을 수 없다며, 엄지를 척하니 든 양재성의 모습에 장순택은 허탈한 한숨을 뱉었다.
경연 하는 족족 승리를 뺏어가는 자신을 원망이나 경계하기는커녕, 딱 옆에 붙어 유명세에 합승하겠다니.
"허, 참 내."
"그렇게 보셔도 포기 못 합니다. 어차피 우승은 이장님! 어.우.이! 저는 처음 뵀던 그 순간부터 알아봤습니다. 무려 제작진이 알아차리는 유명함! 혀를 내두르는 노래실력! 그 안에 가득 녹아든 감정! 이장님의 노래를 듣는 순간 알았죠. '아. 이번 오디션의 우승은 이장님이다. 이장님이 아니면 말이 안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승할 사람이 나인 걸 알아차렸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 이인 것일까.
이 오디션에 목숨을 걸었다면서?
"물론, 제가 여기 목숨을 걸었다고 하긴했지만! 이장님 보고 배운 게 많달까요? 너무 조급했다는 생각도 들고... 제가 이장님보다는 40살이나 적다고 생각하니까, 아주 미래가 창창하더라고요. 저한테는 아직 40년이 더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즐기려고요. 트로트는 원래 나이가 들수록 그 맛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을 몰랐거든요? 이장님 보고 알았어요! 관객들과 소통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건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희로애락이라는 걸요. 그러니까... 전 이장님과 경연을 하게 되어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을걸요? 그러니, 오늘도 기대하겠습니다."
"..."
자신과 경연을 하여 억울해 하기는커녕, 좋은 점들만 가득했다며 활짝 웃는 양재성의 모습에 장순택은 멍해졌다.
"그럼 전 인터뷰하러! 화이팅입니다!"
그리고는 인터뷰를 한다고 대기실 밖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맞네."
가끔 인생은, 혼자 끙끙대며 생각하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물어볼 때 쉽게 해결될 수 있고.
나이가 어떠하든, 어떠한 생각을 하든.
모두가 추구하는 바는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