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36화 (136/163)

빛을 보다 (2)

봄임에도 불구하고,

새싹을 틔우지 못한 나무가 있다.

사방이 초록빛으로 태동할 때에도.

홀로 겨울을 이어가는 나무.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가지를 가진 나무는, 비가 올 때마다 그 생명력을 더 해가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애처롭게 흔들리기만 한다.

-두둑

심술 궂은 바람을 만나면, 몇 남지 않은 가지를 땅으로 내려 주기도 한다.

‘어머. 예뻐라. 역시 봄은 이래야지. 음. 이 푸르름. 보기만 해도 좋네. 근데···.’

푸르름을 온 세상에 떨치는 나무들 사이에서 삐쩍 마른 나뭇가지만 애처롭게 흔들고 있노라면, 지나가던 이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나무는 죽은 건가?’

뿌리만 박혀 있지, 죽은 나무가 아니냐고.

나무들이 모두 새파란 새싹을 틔우고 있을 때, 홀로 아무것도 틔우지 못했으니까

‘이거 뽑아야 하는 거 아니야?’

혹자는 미관을 해치거나, 혹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어떠한 병에 걸려 주변에 있는 다른 나무들에까지 피해를 줄까, 홀로 나뭇가지만 가진 나무를 그 무리에서 뽑아내자고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그 나무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나무일지도 모른다.

먼저 핀 새싹들이 푸르러 지고.

여리던 잎이 단단해질 때쯤.

‘이거 새싹 아니야?’

다른 나무보다 더 따뜻한 걸 좋아해 늦게 싹을 틔우는 나무일 수도 있다.

‘아아. 이 나무는 물을 많이 줬어야 했네.’

혹은 어떠한 조건이 맞지 않아, 그 조건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나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의 시간에 맞춰 싹을 틔워도.

보통의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싹을 틔운다고 해도.

‘이야. 이것도 이것대로 좋네.’

싹을 틔운 나무는, 모두 푸르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나무는 뭔데 여태까지 잎이 안 떨어지고 있데? 신기하네.’

일찍 싹을 틔운 나무들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

“후하후하.”

장순택은 양손을 탈탈 털며 제자리 뛰기를 했다.

“뭐 하시는 거임?”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양재성이 대기실 중앙에서 숨을 가쁘게 내쉬는 장 이장의 모습을 보며 옆에 있는 참가자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갑자기 저러시네.”

“으라차차! 으랏차차!”

참가자가 어깨를 으쓱이자, 자세를 바로 하더니, 갑자기 팔로 허공에 노를 젓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네엣! 다써! 여써! 일고옵! 여덟!”

인터뷰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울적한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분이···. 갑자기?

“무슨 일 있었냐?”

“아니?”

“그럼 왜?”

“나도 몰라?”

이 자식.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하는 스킬을 쓴다.

속이 답답하다.

당장에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버릇은 누구에게 배웠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양재성은 버릇을 논하기 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참을 인(忍)' 자를 3번 세기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뜬 거로 '참을 인' 자를 3번 세긴 양재성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모퉁이마다 2개, 모션 3개, 담당까지···.’

현재 대기실에 있는 카메라의 개수였다.

결승전이라 그런지 이곳저곳에 있던 카메라를 한곳에 몰빵한 느낌.

카메라의 개수와 위치를 확인한 양재성은 성을 내는 대신 양 입꼬리를 싸악 끌어올렸다.

“그래? 그럼 내가 알아보지 뭐.”

“어? 어. 그러던가.”

“그래. 답해줘서 고마워.”

상대방은 양재성의 질문 중 하나에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감사함을 표했다.

왜냐고?

방송의 힘은 위대하니까!

지상파 방송 광고가 얼마인지 아는가?

15초당 적게는 백에서 많게는 몇천까지 한다.

15초 광고를 한 달 동안 돌리려면?

억! 소리 나는 건 당연!

그렇다면 기업에서 왜 몇억씩 쏟아가며 광고를 할까?

유명해지니까!

돈이 벌리니까!

광고가 아닌, 그저 예능 프로그램에 스치듯 나온 것만으로도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주문이 들어온 곳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럼 이곳은?

방송국에서 제대로 마음먹고 밀어주는 프로그램이라 방영시간만 장장 2시간이다.

아무리 방영시간이 길다고 하더라도 초반에는 참가자 수가 많아 잘리는 장면들이 많았었더라도, 지금은 열 손가락 안. 아무리 못해도 한 명당 10분은 TV에 얼굴을 비출 수 있다.

거기다 이제는 팬들까지 생겼다.

모름지기 가수란, 팬들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는 법!

양재성은 올렸던 입꼬리를 살짝 내리며 장 이장님 주변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장 이장님, 괜찮으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땅을 파다 못해, 눈썹까지 팔자로 축 처져 있으시던 분이, 단시간에 이렇게까지 기분이 변한다는 건 조금 이상하다.

“헛차! 하나! 둘! 셋! 넷!”

물론, 조금 전 축 쳐져 있던 그 모습보다 낫긴 하지만···.

“이장님···?”

자신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무아지경으로 몸을 움직이는 걸 보면 필시 정상인 게 아니다.

움직임이 눈에 익긴 하지만, 당최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허잇짜!”

스팽클로 가득한 자켓을 입고 온몸을 크게 움직이는데, 여간 화려한 게 아니었다. 동물로 친다면···.

“공작···?”

“어! 맞아!”

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 조금 전 대화를 나누던 참가자의 입에서 양재성이 떠올리던 동물의 이름이 나왔다.

“아자자! 아자자!”

이제는 양팔을 벌리더니 펄쩍거리고 뛰기 시작한다.

“저기···.”

장재성은 다시 한번 장 이장님을 부르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가 안광이라도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나는! 나다!”

촥! 촥!

외침에 맞추어 초록색과 파란색 스팽클이 잔뜩 달린 자켓이 장 이장의 움직임에 따라 접혔다 펼쳐졌다.

공작이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는 것처럼.

**

“참가자들 실력이 좋네요?”

이번 결승을 위해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작곡가, 신당동 호랑이가 말했다.

“보정 안 하고 이렇게 잘하기 쉽지 않은데···.”

“어딜! 그런 곳에 어중이떠중이에 비교를 해! 오디션이 말이야! 있는 그대로로 평가를 받아야지! 어디서 시청률 올리겠다고 시청자들을 우롱해! 에잉.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선배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꼰대 소리 들으세요.”

“듣거나 말거나! 실력으로 보는 게 오디션인데! 실력을 보정 하면 누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겠어? 어잉? 내 말이 안 맞아?”

“네. 맞긴 하는데···.”

“괜찮아! 괜찮아! 내가 여기 참여한 이유가 바로 이 피디가 그런 얍삽시러운 짓을 안 하겠다고 해서야! 그렇지 이 피디?”

작곡가 신당동 호랑이의 말에 여긴 그런 곳이 아니라며 전성이 손사래 쳤다.

“그럼요. 보정이 뭡니까? 저희는 오리지널만 송출합니다.”

이 피디가 뿌듯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신 없는 놈들만 보정 잔뜩 칠해서 보내지, 진짜배기가 있는데 보정할 필요가 뭐 있나. 봐봐! 지금 시청률이 그걸 증명해 주지 않나!”

이 피디는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내는 전성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서부터 결심했던 것.

절대 이 오디션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을 일회성으로 만들지 않을 거라는 다짐.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란 여러 가지로 판단될 수 있다.

가장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분명 시청률이다. 동 시간대에 얼마나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잡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는 척도.

시청률에 따라 해당 시간의 광고비도 천정부지로 올라가기도 한다.

드라마가 대박 날 경우, 출연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포상휴가를 줘도 남을 정도로 큰 금액이 오간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드라마와 같을 수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해당 오디션 출신의 참가자가 그 후에 얼마나 잘 되는지에 달렸다.

“맞습니다. 선생님.”

오디션이 끝남과 동시에 사그라질 참가자를 배출해 내느냐, 혹은 오디션이 끝난 이후에도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을 스타를 배출해 내느냐의 유무가 그 오디션 프로그램을 맡은 제작진들의 능력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왜냐고?

그건 바로 오디션이라는 특수성에 있다.

“한두 번 할 것도 아닌데, 속이면 안 되죠.”

오디션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진흙 속에 진주 찾기’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언더독의 반란을 좋아한다.

절대 안 될 것이라 생각했던 언더독의 반란이 성공했을 때 오는 통쾌함과 짜릿함 때문.

그런 연유로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서사.

참가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가졌는지에 따라 초반에 잡을 수 있는 시청자 수가 갈리게 된다.

오디션 참가자들은 낯이 익은 연예인들이 아니다. 아주 낯선,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에 집중하게 된다.

저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점이 안타까운지.

얼마나 삶을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리고 자신이 가진 꿈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

‘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나도 저런 꿈이 있었어.’

낯선 이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 끝에는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정말 열심히 살았네. 잘되었으면 좋겠다.’

‘저런 사람이라면···.’

그리고 결국에는 팬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였다.

보정을 하지 않은 이유는.

참가자들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노래 실력이 까발려져 방송에서 점점 사라지는 모습은 보기 싫었을뿐더러, 더욱이 팬이 된 시청자들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번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시청자들을 다시 돌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그렇기에.

이 피디는 자신 있었다.

“두고 보십쇼. 아마 참가자들은 이 오디션이 끝나면 더 날아오를 겁니다.”

이번 오디션은, 끝난 후에 더 회자 될 것이란 걸.

**

결승전 무대 뒤.

[...홍경우 참가자를 응원하시는 분들은 문자 #001번으로 2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희미하게 무대 밖 MC의 진행 소리가 들려왔다.

“후.”

아니, 자신에게만 적게 들릴 수도 있다.

짧게 숨을 내뱉은 장순택은 손을 탈탈 털어댔다.

국민체조를 했음에도 거머리처럼 남은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였다.

“이장님, 호명하면 바로 올라가실게요. 준비되셨죠?”

끄덕끄덕.

평소 같았으면 작게나마 대답했겠지만, 긴장감이 턱 끝까지 차오른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물 좀 드세요.”

헤드폰을 머리에 끼고, 한 손에는 무전기, 한 손에는 프린트된 종이를 잔뜩 들고 있던 스탭은, 요령 좋게 물 뚜껑을 따 장순택에게 건넸다.

얼굴이 파리해 보이는 탓이었다.

찰랑.

가득 차 있는 병을 건넨 탓에, 병에 담겨있던 물이 조금 흘러내렸다.

“...”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시한 장순택은 물끄러미 손을 적신 물을 보았다.

닦지 않고 조금 있으니, 차갑던 물이 손 온도와 같아졌다.

동시에,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장님, 그냥 자연스럽게 하시고 오세요. 하고 싶으신 대로. 원하시는 대로요.’

“하고 싶은 대로···.”

그리고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이의 말도 생각났다.

‘...같이 경연을 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행운···.”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니던 제 의문과 불안을 없애주는 말들.

저도 모르게 제 안에 크게 자리 잡은 부담과 영문모를 미안함을 단번에 상쇄시켜주는 말들이었다.

“참. 여태 뭘 그렇게 걱정하고 있던 거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긴장은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미안함은···. 오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렇지 않은가?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을 수 있다는 걱정은, 자신이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지 않고서야, 생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와아아아!]

“...누가 누굴 걱정하노.”

무대 밖, 우레와 같은 함성을 들은 장순택이 허탈하게 웃었다.

방청객들에게 저런 환호성을 끌어내는 사람들을 감히 걱정한 저에게 보내는 웃음이었다.

“이장님, 이제 나가실게요. 파이팅!”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부질없는 걱정을 끌어안고 있었음을 깨달은 장순택은 쥐고만 있던 물병을 다시 스태프에게 넘겨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요. 덕분에 긴장이 싹 풀렸네.”

스태프에게 인사를 마친 장순택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와아아아-!”

그의 얼굴을 본 방청객들의 환호성 뒤로 보이는 장순택의 뒷모습은 더없이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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