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보다 (3)
“야야. 드디어 나온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또 다르네!”
장 이장님의 등장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자. 다들 이제 진정하고···.”
“이야, 저거 화장한 거 맞제? 분도 칠하고, 립스틱도 바른 거 같은데?”
“맞다 맞다. 테레비로 볼 때는 화장한 거 하나도 모르겠던데, 진짜로 진하게 했네.”
강 할머니가 손을 휘저으며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장 이장님을 기다리느라 오랫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사람들을 통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작해.”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옆에 앉은 지민에게 눈짓했다.
“오케이!”
신명 나게 대답한 지민은, 옆 사람을 쿡쿡 찔러댔다.
“어이. 정신 차려.”
찌르는 모양새가 불량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그 덕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대 쪽을 향해 상체를 쭉 뻗어 소리 지르던 박준혁을 한 번에 바른 자세로 앉힐 수 있었다.
“...?”
“응원 안 할 거야?”
“아 맞다! 응원! 해야죠! 응원! 할아버지! 응원이요!”
지민이 고개를 모로 비틀며 무릎 위를 가리키자, 준혁이 화들짝 놀라며 옆에 있던 심 할아버지를 콕콕 찔렀다.
“으잉? 아아. 맞다.”
준혁에게 찔린 심 할아버지는 영문모를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왼쪽에 있는 마을 사람을 콕콕 찔렀다.
콕콕.
콕콕.
콕콕.
그렇게 한 명씩 옆 사람을 찌르길 반복.
모두의 시선을 한군데로 모을 수 있었다.
“다들 카드 들어주시고···.”
“어! 들었다!”
“어? 내 카드 어디 갔지?”
“밑에 찾아봤나? 얼른 찾아라!”
“왜 내한테 카드가 5장이나 있노? 카드 없는 사람?”
하하.
다시금 부산스러워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었다.
“...카드를, 잊어버려?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서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어···.”
겨울도 아닌데, 갑자기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에 눈을 돌리던 마을 사람 중 한 명은 세모꼴이 된 강 할머니의 눈을 마주하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꼭 독사 앞에 놓인 다람쥐 같은 모양새였다.
“왜 그러는데···?”
같이 고개를 숙이고 카드를 찾던 옆 사람의 부재에 고개를 들던 마을 사람 또한 굳어버렸다.
“어···?”
“옴마야!”
그렇게 하나둘 고개를 들어 강 할머니와 마주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굳자.
“다들 제 정신이가? 얼른 못 찾나!!”
뾰족하게 눈을 뜬 강 할머니가 불호령을 내렸다.
강 할머니의 명령에 마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발밑을 뒤졌고
“얼른 찾아라!”
“내 찾았다!”
“어어! 우리 다 있다! 카드! 여기!”
삽시간에 모두가 제 몫의 카드를 찾아 드는 기염을 토해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것이지···. 이제 똑바로 들고 기다리라.”
차르륵.
강 할머니의 말에 모두가 바른 자세로 앉아 카드를 정리했다.
“후. 안 틀리겠제?”
카드를 주워든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긴장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당연하지!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 틀리면 이상한 거제!”
“하긴. 내는 꿈에서도 막 흔들어댔다. 뭐, 이 정도 했는데 틀리면 이상한 게 맞제!”
작은 소리였지만, 긴장 어린 소리를 들은 나머지 마을 사람들이 앞다투어 말했다.
“준혁이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사람들의 주장을 듣고 있던 꽃분이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번 응원 컨셉을 정하고, 연습 총괄을 맡은 박준혁에게서 긍정의 말이 나온다면, 마을 사람들이 그저 긴장을 풀기 위해 외치는 말보다 훨씬 효과가 있을 터였다.
“어···. 음···. 제가 생각하기엔···.”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된 걸 깨달은 박준혁은 쭈뼛댔다.
하나같이 눈빛이 빛나는 게, 잘못 말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킬 때였다.
“...그럼, 장순택 참가자의 무대를 경청해보겠습니다!”
전광판에 상영되던 장 이장님과 관련된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MC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악. 이제 시작한다. 준비!”
“잘할 겁니다! 연습한 대로만! 아니, 그냥 막 하셔도 손이 알아서 바꿀 겁니다!”
“다들 잘 들어라!”
“어! 걱정 마라!”
“장순택 화이팅!!”
마을 사람들의 급박한 대화가 오가고.
-퉁
무대가 암전되었다.
**
-퉁.
조명이 꺼지고.
장순택은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겨 표시된 곳에 섰다.
“후···.”
제자리에 선 장순택은 차분히 숨을 내뱉었다.
툭툭.
괜스레 무대를 발끝으로 치는 건, 장순택의 습관이었다.
처음 이 무대에 오르고, 바닥까지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모습에 얼마나 놀랐었던가.
그 빛이 너무나 선명해 혹여나 제가 서 있는 이 바닥이 깨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톡톡 발을 굴려 확인하던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
이제는 루틴이 되어버린 발 구르기를 끝낸 장순택은, 가만히 바닥을 향했던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연주 되기 전 짧은 시간은, 조명이 강한 무대에서 유일하게 관객석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왼편을 보세요.’
왼편은 무슨.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장순택은 한울이 말한 곳을 볼 수 있었다.
“장순택! 잘생겼다!”
“으잉? 그게 보이나?”
방청석만 희미한 조명이 어슴푸레 비칠 뿐, 암흑과 다름없는 무대를 어떻게 보았냐고 묻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분명 다른 방청객들도 기대를 품은 몇 마디를 던지고 있었지만, 장순택에겐 오직 그 목소리들만 귀에 꽂히듯 선명히 들렸다.
매일같이, 몇십 년을 들어온 익숙한 목소리. 이제는 평생을 같이 함께할 친우의 목소리였다.
응원할 거라고 그 깡시골에서 이곳까지 온 친우들의 목소리에 울컥할 때였다.
‘신나셨던데요?’
한울의 음성이 다시 한번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설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울의 음성에 장순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열심히 떠드는 인물들을 보려 했다.
하지만 노안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친우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려줄 뿐이었다.
“...카메라가 있어야 했는데! 그래야 놀려먹을 건데!”
“녹화하면 된다. 녹화. 내가 여태까지 점마 떠는 거 다 찍어놨다.”
“진짜가?”
“진짜지!”
“이여-!”
“기본이지!”
귀를 쫑긋 세워 친우들의 목소리를 잡아낸 장순택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아주···.
쿵짝이 잘 맞다.
이건 뭐 응원을 하러 온 건지.
놀리러 온 건지.
구별조차 되질 않는다.
아니지. 당연히 놀리러 온 거겠지.
“하하···.”
왠지 보지 않아도 거의 평생을 같이해온 친우들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 장순택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오늘 떨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개!
“후.”
만면에 웃음을 가득 피운 장순택은 다시 한번 호흡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내뱉었던 호흡과는 결이 다른 호흡이었다.
긴장감.
그래. 긴장감이 사라졌다.
항상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어깨를 눌러대고 종국에는 폐까지 쪼그라트리던 긴장감이 사라지니, 무대가 달리 보였다.
“와아아-.”
우선은 방청객들.
긴장을 떨쳐낸 몸은 자신을 향해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의 소리를 잡아내었다.
반짝.
귀가 열린 뒤에는 시야였다.
방송국에서 나눠준 야광봉을 흔드는 방청객들 사이로 보이는 반짝거림.
어두운 조명에도 반사되어 만들어진 번쩍거림은 왼편에서 튀어나왔다.
“딱 바로 잡아라!”
“잘 봐라. 장순택!”
철딱서니 없는 목소리와 함께.
“...”
장순택은 다시금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이지···.
어디서 봐도 부끄러웠다. 자신의 친우들은.
“보여줘라! 노장의 힘!”
“노장은 무슨 그냥 늙은이지!”
“아. 글네. 그냥 늙은이도 할 수 있다! 보여줘!”
늙은이라고 하질 않나.
“떨어져도 괜찮다!”
“진짜 괜찮다! 흐흐흐.”
떨어져도 괜찮다고 하질 않나.
하지만 장순택은 알았다.
자신의 친우들은 그가 떨어짐과 동시에 평생을 놀려먹을 것이란 걸.
분명 괜찮다고 하는 말끝에 이어진 야비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내가 보여준다.”
턱 근육이 보일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문 장순택은 이를 갈았다.
평생 놀림을 받느냐.
혹은 평생 부러움을 받느냐가 이 한 무대에 달려있다.
-빠밤!
반주가 시작되고.
꺼졌던 조명이 하나둘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읍.”
숨을 들이쉰 장순택은 맞잡았던 손을 떨어뜨리고 마이크를 든 손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장순택은 눈을 감았다.
“으음-”
눈을 감으면, 시야가 차단된다.
시야가 차단되면 깜깜해진다고 하지만, 무대에서는 달랐다.
눈을 감아도 앞은 빛났다.
얇으면 얇고, 두껍다면 두꺼운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빛은 따뜻했다.
“아아아-”
낮은 허밍이 조금 높아진 음이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무대를 위해 선택한 노래에는 꽤 긴 허밍이 자리해 있다.
“어둠에 묻혀 흘러간 지난날···.”
허밍이 끝나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생명을 위로한다.
“아아아-”
칼같이 부는 바람을 피해 나뭇가지 어딘가에 움츠려 있던 생명들.
“찬란한 햇살 아래 피어나는 꿈-”
찬바람을 이겨내야만 다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새싹들.
하지만 그 찬 겨울을 이겨내고 얼굴을 내민 생명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오히려 여리디여리다.
“아아아-”
목소리에 울림이 실렸다.
장순택의 몸이 봄바람에 살랑이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자칫 화려하다고 생각했던 자켓은, 위에서 내리쬐는 빛과 만나 더없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꽃같이 빛나는 마음-”
어색하게 올렸던 입꼬리는 어느새 부드럽게 풀려 자연스러운 미소를 자아냈다.
꿈은, 그저 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꿀 수는 있지만, 이룰 수는 없는 것.
어린 시절을 풍성하게 해 주지만, 어른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는.
어린 날에는 소중했지만, 나이가 듦과 동시에 잊혀지는.
아니, 잊으려 노력했던.
“...저 깊은 곳에서-”
현실을 알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잠시 미뤄 두었던 꿈.
너무도 소중했기에, 마음속 한구석에 벽을 쌓아 두었던 꿈.
‘니가 어떻게 가수가 되노! 됐다! 일이나 좀 도와라.’
누군가가 꿈을 끄집어내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칠까 벽을 쌓아 소중하게 시켰던 꿈은, 결국엔 제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다시 날개를 펴고-”
꿈이 드러나는 순간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꿈을 빨리 꺼낼 것이고.
어떤 이는 그런 꿈이 있었는지도 잊은 채 세월을 살다, 느지막이 그 존재를 다시 알아챌 수도 있다.
“무엇보다 찬란한···.”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 시기가 빠르건, 느리건.
찬란할 것이란 것.
조금 늦어도 괜찮다.
마지막에 피는 꽃의 생명력은, 그 어떠한 꽃보다 길다.
긴 시간 동안 기다리고, 준비해 온 만큼.
꽃은 오래도록 세상에 제 모습을 보여준다.
“...이루리라-.”
그리고 사람들은 그 끈질긴 생명력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와아아아!!”
그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개화한 경이로운 생명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