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38화 (138/163)

어벤저스 (1)

[장하다! 장순택! 자랑스러운 미화리의 아들! 트로트의 전설이 되다!]

“으하하하!”

“으히히히!”

“마셔라!”

마을 어귀.

당산나무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장 이장님의 집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사실 평소에도 열려있었지만, 오늘은 활짝 열렸달까.

“어? 한울! 이제 왔냐? 여기 앉아!”

장 이장님 댁 마당에서 부터 시작된 축제 분위기는 당산나무 밑, 평상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어. 이장님은···?”

나는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치며 앉기를 종용하는 지민의 말을 슬쩍 넘겨 들으며 물었다.

잔칫집에 왔으면, 잔치를 연 주인공에게 인사를 하는 게 먼저다.

“어···. 이장님···. 어디 계시더라? 저-쪽에 계셨는데···.”

“됐다. 계속 마셔라. 계속.”

“어! 안 그래도 계속 마시려고! 이 술 지인짜 맛있다? 그치? 준혁아?”

“...예? 네! 맛있습니다!”

가까이서 본 지민과 준혁은 가관이었다.

지민은 여러 종류의 꽃으로 담근 화주(花酒)를 두 팔로 끌어안고 있었고, 맞은편에 있는 준혁은 표주박을 술잔 삼아 화주를 퍼마시고 있었다.

“...간다.”

분명 장 이장님의 담금주가 맞는 것 같은데···.

저거 저렇게 마셔도 되는 건가?

맛은 좋지만, 높은 도수 때문에 어르신들도 좋은 날에만 1, 2잔 먹던 걸 분명히 기억한다.

뭐, 젊음이 무기라고. 괜찮겠지.

해가 아직 중천인데 고주망태가 된 둘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당산나무 밑에서 벗어나 이장님 댁으로 향했다.

“와아아!”

“우리 마을의 자랑 납셨다!”

대문을 넘자, 저 안쪽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야. 분명히 똑같은 얼굴인데 광이 나는 거 같네!”

“나도 손 한번 만져보자! 대박 기운 좀 받게!”

“그 손 만지면 로또 되는기가?”

“암만! 로또 1등은 따놓은 당상이지!”

집에서 마당으로 나오는 장 이장님을 발견한 어르신들이 승냥이처럼 몰려가 손을 뻗어댔다.

“으익! 뭐 하는 거고! 내는 꽃분이 거다!”

좀비처럼 달려드는 친우들의 모습에 기겁한 장 이장님은 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퇴로는 막힌 상태였다.

“장순택이! 한마디 해봐라!”

장 이장님을 낚아채는 데 성공한 어르신들은 낄낄거리며 이장님을 마당 한가운데로 내몰았다.

“뭘 말하는데?”

“뭐든!”

“왜 있잖아! 그때 수상 소감도 좋고!”

“그 돈을 어디다 쓸 것인지 소상히 말해도 좋고!”

“다시 눈물을 찔끔 흘려도 좋고!”

“맞다 맞다!”

낄낄낄.

장 이장님을 둘러싼 어르신들은 짓궂은 표정으로 이장님을 축하했다.

아니, 놀린다는 게 더 맞은 표정이리라.

“이노마들이 와이라노?”

“왜긴 왜야! 좋으니까 그렇지!”

“처음에 비 맞은 강아지처럼 꼬리 말고 덜덜 떨던 게 1등 했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딨노?”

“맞지! 홍복이다! 풍악을 울려라!”

“풍악은 무신! 저저 늙은 거 티 내나? 요즘엔 이런 거제! 읏차! 읏차! 읏차!”

“이게 뭔 노래고? 좋네!”

“좋은 건 같이 들어야제! 이거를 이렇게 하면···.”

-읏쨔! 읏쨔! 읏쨔!

핸드폰을 조작하니, 음악이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으잉? 이거 어떻게 한기고?”

“어떻게 한 거긴. 우리 다 배운 거다. 뮤직 쉐어 모르나?”

“아아-! 생각났다. 그럼 내도···.”

하나둘 핸드폰을 꺼내 조작을 마치니, 장 이 장님댁 마당에는 ‘읏쨔! 읏쨔!’가 만연하는 음악이 크게 울려 퍼졌다.

“아이고 좋다!”

“어깨춤이 절로 춰지네!”

“오늘 기분 최고다!”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커흐흠.”

장 이장님이 헛기침했지만, 그를 둥그렇게 둘러싼 채 질문을 쏟아내던 사람들은 이미 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장님.”

뻘쭘함을 숨기지 못한 채 뒷짐을 지고 어깨를 살짝 들썩거리던 장 이장님이 나를 발견했다.

“어? 한울이! 왔나!”

눈에 띄게 반색한 장 이장님은 자연스럽게 내 등을 밀어 마당에 자리한 평상으로 안내했다.

“아따 좀 비키봐라! 한울이 왔다!”

장 이장님의 손짓에 평상 위가 딱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자리가 생겼다.

“어? 아이고. 우리 사장님 오셨네. 얼른 앉아라. 자자, 수저 여기 있고···. 뭐 먹을래? 수육 좋아하제? 여깄다. 푹 고아서 입에 넣기만 하면 아주 살살 녹을 거다. 참, 산적도 좋아하제? 여기 있다.”

엉겁결에 자리에 앉자, 어디선가 꽃분이 할머니가 나와 공깃밥을 건네주며 음식을 이것저것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뭐꼬? 사람 차별하나!”

산적을 먹으려 젓가락을 뻗던 심 할아버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접시에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으델! 니 많이 먹었다 아이가. 한울이는 지금 왔으니까 당연히 챙겨줘야지! 얼른 먹어라. 얼른.”

“아, 네.”

자리에 앉으니 밀어진 음식들에서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분명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는데 침이 꿀꺽 삼켜졌다.

[컁! 맛있는 냄새다!]

[꽈아악? 먹어도 되냐?]

[킁!]

내 어깨와 머리 위에서 맛있는 냄새라면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정령들 또한 나와 같은지 난리가 났다.

“갑자기 어디서 바람이 부노? 쪼매 더웠는데 시원하네!”

“그러게.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씨네! 자! 뭣들 혀? 다들 잔 들어! 자자, 주인공도 왔으니 건배!”

“건배-!”

기분 좋은 바람을 느낀 어르신들은 한 데 모여 건배했다.

한 손으로는 건배를 하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 쪽으로 음식을 밀어주며 눈을 찡긋거린다.

겉으로는 불만을 토했지만, 속은 챙겨주느라 바쁜, 전형적인 츤데레 성격이 우리 마을의 어르신들이었다.

[캬항!]

[꽈아악! 맛있다-!]

[...킁!]

덕분에 정령들은 신났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

“자자! 노래 한 곡 뽑아야지! 우리 챔피언인데! 내가 마을 회관에서 노래방 기계도 가지고 왔다!”

옆에서 건배를 반복하던 어르신들은 벌써 마당 한복판으로 나가, 지금 막 대문을 통과하고 있는 노래방 기계를 보며 장 이장님께 노래를 종용하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뭐든 제대로 한다.

장 이장님 노래를 듣겠다고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회관까지 가 노래방 기계를 끌고 왔다니.

노래방 기계를 마당 한가운데 가져다 놓은 김 할아버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팔로 대충 닦으며 씩 웃었다.

“자! 놀자!”

“이게 진정한 잔치지!”

“장 이장, 니 안 부를끼가? 그럼 내가 먼저 부른다?”

어느새 대문 밖 당산나무 밑 평상에 있던 사람들도 들어와 합세했다.

두 개 있는 마이크를 잡겠다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걸 보니, 한동안 이쪽으로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음. 역시. 산적은 꽃분이 할머니가 최고지.”

돌아가신 친할머니도 손맛이 아주 좋으셨지만, 산적만큼은 마을에서 꽃분이 할머니를 따라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뭐냐? 쫀득한데 몰캉하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테이블을 떠나자, 조금 멀리 떨어진 음식에 손을 뻗어 찹찹 거리며 음미하던 노을이 고개를 발딱 들며 물었다.

고개와 동시에 같이 올라온 노을에 앞발에는 갈색빛의 음식이 들려있었다.

“어디 보자···. 군소네.”

[군소?]

까만 발에 잡힌 군소는 참기름을 먹어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노을은 내 대답에 알 수 없는 생물을 탐구하듯, 제 앞발에 움켜쥔 군소를 고개를 숙이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컁? 그게 뭐냐?]

고개를 갸웃거리던 노을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바다 달팽이. 민달팽이라 집이 없어.”

군소는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겐 생소한 해산물 중 하나였다.

바닷속에서 갓 꺼낸 군소는 포동포동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 대부분 그 크기가 크다. 어릴 적 바닷가서 놀 때면, 나는 내 팔뚝만 한 군소를 잡아 집에 가져오곤 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할머니에게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할머니! 내가 맛있는 거 잡아 왔어!’

그러면 할머니는 방긋 웃으며 내 손에서 군소를 가지고 가셨다.

할머니가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게 그렇게 좋았다.

‘우리 똥강아지. 들어가서 씻고 있으면 할머니가 맛있는 거 얼른 해줄게.’

칭찬을 받으며 씽긋 웃고 있노라면, 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요리를 시작하셨다.

‘잉? 할머니! 내 군소 어디 있어?’

‘거기 있네.’

‘어디?’

‘바로 니 앞에 있네.’

‘에에엥?’

할머니가 가리킨 솥 안쪽에는 내 팔뚝만 하던 군소 대신 검지만 한 검은 물체가 있었다. 쪼글쪼글한.

‘이, 이게 내가 가져온 거야? 나 분명히···. 엄청 큰 거 가져 왔는데···!’

팔뚝에서 검지만 한 크기로 작아진 군소는 포동포동하게 살쪄 있던 게 언제였냐는 듯, 쪼글쪼글 한 모양새가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게 군소다. 아이고. 우리 손주 놀랬나?’

내가 솥단지에 있는 쪼글쪼글한 군소를 보고 나라 잃은 표정을 지으면 할머니는 내 머리를 톡톡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으셨다. 아마 실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손주 앞에서 웃음을 보이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신 모양.

“봐봐. 이게 군소라는 거야.”

[호엥? 다르게 생겼다! 저 안에 있는 건 엄청 강해 보인다! 다른거다!]

핸드폰으로 군소를 검색해 보여주니, 노을이 어릴 적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저걸 삶으면 이렇게 작아져. 쟤 덩치가 전부 물이거든.”

[호에에에?]

[꽤액?]

어느새 노을의 옆으로 와 함께 화면을 보던 찹쌀도 요상스러운 소리를 냈다.

“크흡.”

화면과 접시에 있는 군소를 번갈아 가며 홱홱 도는 고개가 우스워 웃음을 삼켰다.

왜인지 그 어릴 적 할머니가 왜 그렇게 웃음을 참아 주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왜 그러냐? 감기냐? 감기다! 찹쌀아!]

웃음을 참은 내 소리를 사레가 들린 줄 알고 노을이 찹쌀의 등을 챱챱 때렸다.

[꽈악?]

군소를 보다 그 옆에 나란히 놓인 빨간고기를 노란 부리로 먹던 찹쌀이 놀래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프냐? 내 노래가 필요한 거냐?]

고개를 들어 노을의 황급한 몸짓을 본 찹쌀이 목을 쭉 빼더니 꽁지깃을 흔들며 몸을 풀었다.

“아니! 아니. 괜찮아. 찹쌀아 안 해줘도-”

나는 재빨리 괜찮다고 양손을 흔들어 보였지만, 찹쌀을 말리기엔 부족했다.

[꽥! 꽥! 꽤개객! 꽤애애액! 꽈아아액!]

“-되는데···. 그래. 고맙다.”

아무리 봐도···.

우리 찹쌀이는 록 밴드를 하면 잘할 것 같은데, 왜 정령을 하지?

아파지는 귀와 달리, 점점 피곤함이 가시는 몸 상태에 나는 빙긋 웃었다.

그래. 우리 찹쌀이가 건강해지라고 부르는 노래인데, 웃어야지.

“이야! 노래를 부르니까 힘이 나네! 힘이!”

덩달아 마당도 신이 났다.

가만히 서서 손뼉만 짝짝 치던 강 할머니도 흥이 나시는지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더 불러!”

“아이고 신난다! 야 봐봐라 이게 디스코다!”

이미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추던 어르신들은 더 신명 나게 몸을 흔들어댔다.

“와. 할아버지 춤 좀 추시는데요?”

“하! 하! 하!”

그 옆에서 지민과 박준혁도 아주 신나게 놀고 있다.

참···.

둘 다 얼굴은 빨간 게 닮았네. 닮았어.

조만간 둘이 사이가 좋아질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아 팔을 쓸어내릴 때였다.

“어? 벌써 시작했나? 이장님! 저 왔습니다!”

대문 밖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아주, 화려한 모습을 하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