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3)
사랑방 공장.
본 공장 옆에 작게 붙어 있는 사무실은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다.
“와! 이 모니터! 가지고 싶었던 건데!”
“키보드 좀 보세요! 키보드에서 빛이 나요!”
물론 아예 반대인 사람도 있었다.
“우욱···. 살려, 줘···.”
심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의기투합한 어르신들의 술을 다 받아 마신 죄로 이 대리는 자신의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세상이 돈다···. 우욱!”
하지만 중증 숙취에 시달리는 이 대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 책상도 모션 데스크네요? 전 회사 다닐 때 제가 아무리 요청해도 안 해주더니···. 나중에 그 모질이한테만 해주는 거 있죠? 모질이가 일을 얼마나 한다고.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이기 가‘족’같은 회사에서는 일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싱긋.
가‘족’ 발음을 강조한 한혜원은 입꼬리를 올려 화사하게 웃으며 모션 데스크에서 눈을 떼었다.
그리고는 맞은편에서 좀비처럼 ‘우어어. 죽겠다. 으윽.’ 따위의 신음을 내뱉는 이 대리를 쳐다보았다.
“으으···. 갑자기 왜 추워지지···? 히익!”
생존본능은 남아 있는지,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오싹함을 감지한 이 대리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맞은편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발견하고 제 자리에서 몸을 펄쩍 띄웠다.
“어머. 아직 제정신이신가 보네요. 아까워라. 계속 그러고 계셨으면 제가 친히 깨워드렸을 텐데.”
“어. 어? 어후. 당연히 일어났지! 괜찮아. 안 깨워줘도 돼. 진짜 괜찮아. 암 오케!”
입꼬리만 올린 한혜원의 모습은 마치 조커가 환생한 것 같았다.
조커 같은 그녀의 모습을 정면으로 본 이 대리는 허둥지둥 제 가방에서 짐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후. 바쁘다, 바빠. 열심히 일해야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상 위에 머리를박고 곡소리 내던 사람이 삐걱거리며 짐을 정리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과자를 왜 모니터 앞에 는 것일까?
모니터를 다 가릴 생각인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한혜원의 눈이 번쩍 빛났다.
“대리님, 일 안 하실 건가요?”
“어? 어! 당연히 하지!”
“그렇게 모니터를 다 가려서 어떻게 하시게요?”
“어? 어이쿠. 과자들이 왜 여기 있지? 나도 몰랐네. 참”
희번득거리는 한혜원의 눈과 마주친 이 대리는 애써 웃으며 모니터 앞에 잔뜩 쌓아둔 과자를 손으로 쓸어내며 서랍으로 넣었다.
내가 퇴사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마치 치와와 앞에서 기를 못 펴고 귀를 축 늘어뜨린 대형견 같았다.
덩치는 어르신들이 깜짝 놀랄 만큼 큰 주제에 깨갱거리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대리님! 저희가 어떤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오신 걸 잊으셨습니까-!”
한혜원이 우렁찬 소리로 말했다.
한쪽 손은 주먹 쥔 채 위로 뻗는다.
저기에 빨간 모자만 씌우면 딱 그건데···.
거기에 가서도 위아래 상관없이 휘어잡고 다닐 것 같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우, 우리가 진짜 힘들게 오긴 했지.”
이 대리가 과자를 서랍에 넣던 포즈 그대로 엉거주춤 서서 말했다.
꾸엉?
세상 불편한 자세로 선 채 대답하는 이 대리 모습 위로 곰의 형상이 겹쳤다.
무시무시한 야생이 곰이 아닌, 사람들의 사랑과 밥을 많이 받아 야생성이라곤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야생성을 잃고, 덩치만 큰 곰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들은 한혜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곰에게 명령했다.
“그럼 얼른 치우고 업무 시작합니다! 실시!”
“실시!”
-꾸엉!
명령을 받은 곰은 덩치에 맞지 않는 속도로 데스크와 주변을 정리하고는,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까지 켜고 칭찬을 기다리는 것처럼 한혜원을 보는 이 대리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도대체 어떤 전쟁을 뚫고 온 거냐 다들.
**
“그럼, 회의를 시작해 볼···.”
넓은 사무실 구석에 파티션을 쳐 만든 회의실에 둘러앉은 팀원들을 보며 말할 때였다.
“넵! 뭐든 준비되었습니다!”
“시켜만 주십쇼!”
“뭐부터 해야 하나요?”
한혜원을 필두로 팀원들은 전에 없을 의욕을 내뿜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며 빤히 쳐다보는모습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그래. 다들 씩씩해서 좋네.”
생각보다 더 일에 진심인 팀원들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분명 전 회사에서는 울상을 짓거나,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서 팀장이 있는 사무실을 째려보며 죽을 사(死)자를 그렸던 모습들만 봐와서인지, 이렇게 의욕 넘치는 모습은 당최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도 죽을상을 지었던 그때보다는 지금 표정이 훨씬 좋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아아. 지금이라도 여기 오게 돼서 얼마나 좋은지. 사실, 이 대리님이 혼자 과장님 뵙고 왔다고 해서 다들 열 받아 했었거든요.”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이 나부끼는 소리를 들은 한혜원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이 대리가 혼자 와서 다들 열 받았다니.
영문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자, 한혜원이 다시금 매서운 눈초리로 이 대리를 보며 말했다.
“아시겠지만, 과장님 가시고 저희 완전 지옥이었거든요. 서 팀장은 하루가 멀다고 지랄-, 어머, 죄송해요. 발광하지. 그렇다고 회사에서는 과장님 자리를 채워 주지도 않지. 사실 사장님이 다른 팀에서 채워 준다고 하시긴 했는데, 다른 팀에서도 죄다 거부해서 퇴사하기 직전까지 저희끼리 서 팀장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서 했었답니다.”
싱긋.
보모가 넷이나 되는데도 버릇없는 서 팀장은 감당이 되지 않았다며 한혜원이 입꼬리를 바싹 끌어올렸다.
“히끅.”
분명 웃는 모습인데도 야차 같은 한혜원의 모습에 이 대리가 조용히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희가 아주아주 힐링이 필요했던 시기였어요. 다 같이 퇴사하자는 얘기도 나왔었고, 매일같이 과장님 있을 때가 그립다고도 말했고···. 그러다가 과장님은 어디서 어떻게 잘 살고 계실까, 우리도 그곳에 가면 어떻겠나. 시골이라고 하던데, 주말에 시간 내서 다 같이 연락하고 놀러 가 보는 건 어떻겠냐···. 이런 소리를 매일같이 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일정 맞춰보자고 한 주말에 급한 일 있다고 하더니, 이 대리님이 우리는 빼고 혼자만 쏙 과장님을 보고 왔다네요? 하하하!”
“아니, 그땐···. 내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사내대장부처럼 호쾌하게 웃는 한혜원의 모습에 이 대리가 서둘러 변명했지만, 그녀에게 그의 말은 들리지 않은듯했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요? 전 과장님 퇴사하시고, 계속 야근하는 바람에 일주일 만에 헤어졌는걸요? 그때 대리님이 뭐라고 하셨죠? 세상에 반은 남자니까 그런 것쯤은 씩씩하게 이겨내라고 하셨었나?”
“그, 그건···.”
이제야 한혜원이 이 대리를 왜 저런 눈빛으로 보는지 알 수 있었다.
한껏 몸을 움츠린 그가 불쌍한 눈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커버를 쳐 주려고 해도, 이건 선 넘었지.
왜 그랬니. 이 대리야.
“그래도 과장님이랑 계속 연락하시고, 저희 이직까지 도와주셔서 봐 드리는 거예요.”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한혜원이 봐준다는 듯,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했다.
“어? 어. 그렇지! 내가 다 같이 퇴사하려고 인사팀이랑 싸워서 이겼지!”
한혜원의 말에 이 대리는 언제 움츠러들었다는 듯, 가슴을 쫙 폈다.
하기사. 모두 한꺼번에 퇴사하는 건 어느 회사에서나 힘들다.
인수인계 대상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특히나 거진 실무의 99%를 맡던 직원들이 업무의 1%라도 하나 싶은 팀장만 두고 모두 퇴사한다면 더더욱.
“고생했네.”
“어휴. 고생은요. 퇴사하면서 얼마나 사이다였는데요. 저희가 과장님처럼 멋있게 퇴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쌓였던 앙금은 거의 다 풀고 왔다는 이 말씀!”
“오?”
앙금을 어떻게 풀었을까.
팀장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치를 떨던 직원들의 입가에 살풋 미소가 지어졌다.
사냥감을 잡아 배불리 먹은 푸근한 미소랄까.
궁금한 표정을 짓자, 한혜원의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연우가 입을 열었다.
한혜원과 동갑이지만, 1년 늦게 입사한 사원이었다.
“과장님이 보셨어야 했는데···. 아, 맞다! 제가 몇 개는 영상으로 찍었는데 보실래요?”
“나도 있어!”
“제 것도!”
“...”
연우가 영상을 보여주겠다며 핸드폰을 내 쪽으로 건네자, 여기저기서 자신이 찍은 영상도 보라며 핸드폰을 건넸다.
심지어 조용함으로는 사내 1위였던 서 대리도 슬쩍 자신의 핸드폰을 말없이 건넸다.
“이게 다···.”
“뭐긴요. 영상이죠!”
“과장님 퇴사하실 때 보고 배웠습니다!”
“그때 얼마나 사이다였는지···! 저는 그날부터 녹음기도 항상 켜고 다녔습니다.”
하.
하하.
나는 첫 사냥에 성공한 여우처럼 뿌듯하게 상체를 부풀리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노을이 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그저 귀여웠지만, 팀원들이 이러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이상한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아! 그리고 그때 알려주신 변호사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과장님 친구분이라고 하셨던. 진짜 제 일처럼 처리해 주시는데···. 반할 뻔했습니다!”
반할 뻔했다니.
이 대리야, 네가 그러면 안 되지.
민준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를 한다.
퇴사하며 혹시나 몰라 직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한다면 연락하라고 민준의 연락처를 준 것이 잘못일까.
지금 보니 팀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민준과 닮아있었다.
“그래. 잘했네. 일단, 다들 와줘서 고마워.”
앞에 쌓인 핸드폰을 돌려주며 나는 말을 돌렸다.
핸드폰에 있는 영상을 재생함과 동시에 앞에서 초롱초롱한 눈을 한 팀원들은 물론이고, 말 많은 장민준까지 상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팀원들은 어떻게 진정시킨다고 해도, 장민준은 나도 어렵다. 퇴사 과정에서 내가 겪은 일들을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게 된 민준은 전 회사라면 기겁을 하며 펄쩍 뛰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하겠다 말할 때는, 회사를 아예 갈아 마실 정도로 분노했었다.
그러고 보니 민준에게 연락한다고 한지 꽤 오래되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민준에게 문자라도 하나 넣을까 생각할 때였다.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맞아요. 사실 시골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어르신들도 너무 좋으시고, 자연도 너무 예뻐서 괜히 걱정했다 싶다니까요?”
“전 사랑방 카페만 있으면 됩니다! 마을 주민들은 예약 안 해도 된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부러워 죽으려고 하더라고요.”
“편의시설이 지척에 없긴 하지만, 그건 저희가 열심히 해서 회사를 키우면 저절로 생길 겁니다!”
서 대리를 시작으로 팀원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편의시설이 저절로 생기게 만든다라···.
어렴풋이 생각했던 목표를 말하는 이 대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시골의 산골 마을은 조용하다.
뭇 사람들은 그 조용함이 시골의 매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감상은 바깥사람들의 생각이다.
한 시간마다 한 대씩 다니던 버스가 하루에 2번으로 줄어들고, 그마저 없어지는 걸 보는 산골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금은 나이가 들어 운전면허를 반납한 어르신은,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닦은 차에 가족들을 태우셨을 것이다.
운전면허를 반납하고는 마을버스를 타고 예전처럼 멀리는 아니지만, 소소한 나들이를 즐겼을 것이다.
장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버스를 타고 읍내를 갔을 것이고···.
조금 늦으면 어떤가.
한 시간 뒤에 오는 버스를 타도 되는 것을.
“그래. 우리 열심히 같이 키워보자고.”
하지만 버스 운행이 줄어든 후에는, 사람들의 운신 폭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조용했던 마을은 더 조용해진다.
세상과는 점점 단절된 채, 매일을 반복한다. 그러다 고요에 집어 삼켜져, 삶의 끝을 물끄러미 맞이하게 되겠지.
하지만, 모든 걸 집어삼키는 고요를 깨뜨리면 어떨까?
“어? 그럼 저희가 창립 멤버인가요?”
“어머, 대리님. 저희가 창립 멤버는 아니죠. 어제 박준혁 씨랑 이동민 씨 못 보셨어요?”
바람 소리만 가득한 나무숲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새들처럼.
“아. 그렇네. 그럼 우리는 중립멤버?”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팀원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조용한 산골에 울려 퍼지는 걸 들으며 나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꽃들이 와르르 개화하는 봄의 시작을 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