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방법(1)
[굿모닝- 빠빠빠-빠빠-빠빠빠빠빠!]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새벽.
암막커튼이 쳐진 방안에 작게 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음-.”
이불 더미가 꾸물거리더니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투둑.
침대 옆, 협탁을 더듬거리던 손은 목표물을 거머쥐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빠!]
뚝.
대중없이 화면을 두드리던 손이 알람 해제 버튼을 누르는 데 성공했다.
작은 알람 소리가 없어지자, 암막 커튼으로 인해 칠흑 같은 어둠을 유지 중인 방안은 다시금 수면에 완벽한 공간이 되었다.
“...”
한 손만 덜렁 꺼낸 채 알람을 끈 주인이 있는 이불 더미도 뒤척이던 걸 멈추고 일정한 속도로 위로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의 숨소리만 방안을 가득 메울 때였다.
[굿-모-닝! 빠빠빠! 빠빠-!]
조금 전보다 더 커진 알람 소리가 작은 방에 울려 퍼졌다.
[빠!빠!빠!]
왜인지 전투력까지 느껴지는 알람 소리를 들었는지, 이불 더미가 크게 들썩이더니, 어느새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갔던 손이 다시 불쑥 튀어나왔다.
“으으음-!”
다시금 튀어나온 손은 조금 전보다 힘있게 핸드폰 화면을 두드렸다.
[굿-!]
재빠른 해제에 칭찬하듯, ‘굿’이란 단어를 남긴 채 알람은 꺼졌다.
“어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하암.”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감고 있던 알람의 주인이 힘겹게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하품을 쩍했다.
새벽 5시 5분.
희미하게 불이 켜진 핸드폰 화면이 현재 시각을 알려주었다.
짝짝-!
“정신 차리자! 아자아자!”
손바닥으로 뺨을 소리 나게 친 한혜원은, 몸을 끌어당기는 이불을 떨쳐내고 침대에서 일어나 암막 커튼을 쳤다.
촤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자리를 비킨 암막 커튼 뒤에는, 침대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이중창이 자리했다.
“날씨 좋-고.”
창밖으로 날씨를 확인한 한혜원은 두 팔을 위로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그럼 가볼까?”
침대에서 내려온 한혜원은 손을 뻗어 핸드폰 바로 옆에 있는 선크림을 발랐다.
그리고는 어젯밤 미리 준비해둔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캡모자를 눌러쓰며 방문을 나섰다.
“후. 공기 좋다.”
현관을 나서자, 차가움을 지닌 새벽 공기가 아직까지 조금 남아있던 잠기운을 몰아냈다.
쓰읍. 하.
한혜원은 본격적으로 집을 나서기 전, 청명한 공기를 마시며 스트레칭을 준비했다.
“아이고···.”
허리를 숙인 채 손을 발에 닿게 하는 한혜원의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발끝과 손끝이 만난 걸 확인함과 동시에, 그녀는 상체를 세우고 팔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우두둑.
“어윽.”
밤새 굳었던 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한혜원은 다시금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조깅을 하지만, 매일 이렇게 아픈데···.
“이게 맞는 거겠지? 맞는 것일까···?”
아프지 않기 위해 아파야 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운동.
멍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이렇게 매일같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을 때였다.
“뭐가 맞다는 거고?”
활짝 열린 대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
“오야. 내사 잘 잤지. 오늘도 운동할라꼬?”
한혜원이 밝게 인사하자, 머리 위에 하얀 보자기로 싼 무언가를 지고 온 강 할머니가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넵! 할머니, 그거 저 주세요.”
“됐다. 밥은?”
자신을 발견함과 동시에 달려와 머리 위에 있는 보자기로 손을 뻗는 한혜원을 가볍게 일별한 강 할머니는, 능숙하게 머리에 진 보자기를 내려 축담 위에 올렸다.
“운동하고 먹으려고요. 와-. 이게 뭐예요?”
보자기에서 나오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린 한혜원이 스트레칭을 하다말고 강 할머니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긴 뭐야. 니네 반찬이지. 이거는 니 꺼. 맨날 밥도 안 먹고 뛰댕기는데, 너무 빈속에 뛰면 안 좋다. 간단하게 이거라도 마시면서 해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한혜원의 모습을 보며 미소지은 강 할머니는, 네모난 반찬통 옆에 홀로 서 있는 통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우와···.”
파란 뚜껑의 플라스틱 통을 받아든 한혜원은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시원함에 감탄을 내뱉었다.
“여기서 키운 잡곡들로 만든 선식이다. 뛰어댕기다가 목마르면 한 번씩 무라. 일부러 물 좀 많이 넣고 탔다. 걸쭉한 게 더 맛있긴 한데, 목막히면 안된다 아이가.”
“우와. 감사해요! 할머니.”
묽게 탄 선식이 담긴 통을 소중히 끌어안은 한혜원이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얼. 우리 회사 직원들인데. 내가 챙겨야지.”
한혜원의 시선을 받은 강 할머니는 별거 아니라며 손을 휘휘 내둘렀다.
무심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강 할머니의 통제를 벗어난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확인한 한혜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했다.
“저 평생 할머니 직원으로 충성하겠습니다! 충성!”
“충성은 무슨. 하하. 그래. 나도 충성이다.”
절도 넘치는 한혜원의 모습에 됐다며 손을 내젓던 강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 할머니! 약속하신 거예요?”
“알았다. 약속.”
“앗싸! 그럼 이 반찬들도 평생···!”
“뭔 소리고. 내는 뭐 니들 반찬 해준다고 천년만년 사나? 됐다. 얼른 달음박질이나 하고 온나.”
“아아아. 할머니-.”
“아이고. 됐다. 니 안가면 내가 간다.”
“어? 할머니! 같이 가요! 아, 반찬! 잠시만요! 저 반찬만 냉장고에 넣고 올게요! 딱 1분만요! 가시면 안 돼요?”
“뭐라카노. 내는 간다.”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강 할머니가 갈세라 부리나케 반찬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한혜원.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보는 강 할머니.
말로는 먼저 간다고 하였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한혜원이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헐레벌떡 돌아올 때까지 마당에 머물러 있었다.
**
봄 햇살이 절정에 달은 어느 오후.
“모두 주목!”
[컁! 모두 주목!]
사랑방 사무실 안, 간이 회의실에는 무얼 먹었는지 열정이 가득한 팀원 한 명과 그의 옆에서 그보다 더한 열정을 보이는 정령 하나가 회의를 지배하고 있었다.
“큽.”
나는 풍성한 꼬리를 살랑거리며 한혜원의 모습을 따라 하는 노을을 보며 웃음을 집어삼켰다.
제 딴에는 진지한 눈빛을 따라 한다고 하지만, 동그란 눈과, 짧은 팔다리는 노을이 어떤 자세를 취해도 귀여움을 극대화할 뿐이었다.
“어머. 팀장님,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귀신같이 내 목소리를 집어낸 한혜원이 고개를 내 쪽으로 휙 돌렸다.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팀원들은 내 호칭을 과장에서 팀장으로 바꾸었다.
사실은 팀원들은 팀장이 아닌 사장으로 호칭을 바꾸려 했지만, 사장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어색해진 내 모습에 다시 팀장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직원들에게 듣는 사장이라는 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전 팀원들이어서 그런지···. 아직은 어색했다.
“크흠. 아, 갑자기 사레가 걸려서.”
제자리를 찾은 호칭에 나는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며 쿨럭거렸다.
[캬앙?]
내 기침 소리에 한혜원 옆에 있던 노을이 귀를 쫑긋 세우더니, 도도도 뛰어왔다.
[어디 아프냐? 찹쌀이를 내가 부르겠다! 컁!]
까만 양말을 신은 앞발을 내게 대고 걱정하는 노을을 보며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는 아프지 않아 노을아.
[안 아픈 거냐? 그럴 줄 알았다! 아픈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컁!]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유심히 보던 노을은, 내 고갯짓을 알아듣고는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꼬리를 바닥에 탕탕 쳤다.
동그란 까만코를 하늘 끝까지 올리는 노을의 모습은 온 세상의 귀여움을 끌어모아 만든 피조물 같았다.
쓰다듬지 않고는 못 배길 귀여움에 노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을 때였다.
“헐! 안됩니다! 여기 물!”
사레가 걸렸다는 내 말에 삽시간에 회의실을 뛰쳐나갔던 이 대리가 희게 질린 얼굴을 하고선 돌아와 내게 물을 건넸다.
“어. 고맙다.”
사레가 걸린 건 아니었지만, 목이 살짝 마르던 참이라 뚜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팀장님, 아프시면 안 됩니다! 저희 평생 끌어주셔야죠!”
내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물을 넘기는 걸 확인한 이 대리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팀장님이 건강하셔야 우리 회사도 잘 되고! 우리 회사가 잘 돼야 저희도 여기 계속 있고! 어르신들도 있고! 그래야 매일 맛있는 것도 먹고!”
“내일은 또 무슨 간식을 주실까! 무슨 반찬을 주실까!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짜릿하고 행복합니다! 팀장님 항상 건강하셔야 합니다! 건강 하십쇼!”
“옳소!”
이 대리를 시작으로 한마디씩 하는 팀원들을 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너네들은 내가 더 중요해? 어르신들이 해주시는 음식이 더 중요해?”
과연 이들은 나를 믿고, 우리 사랑방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내 건강을 챙기는지.
아니면 내가 아니라 사랑방 어르신들이 매일같이 고생한다며 챙겨주는 음식을 챙기는 것인지에 대한.
“에이, 팀장님도.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음식이죠!”
“-팀장님···. 대리님, 미치셨어요?”
내 질문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라고 대답하려던 한혜원은, 자신보다 먼저 질문에 대한 답을 ‘음식’이라고 한 이 대리를 경악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 건 저희끼리 있을 때만 하셨어야죠!”
속삭이며 말하긴 하였지만, 이곳에 온 뒤부터 신체 능력이 월등히 좋아진 나에겐 아주 똑똑히 잘 들렸다.
싱긋.
나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팀원의 표정을 확인했다.
나보다 음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저들과 표정이 같았다.
씨익.
입꼬리를 좀 더 끌어올린 나는, 아직도 ‘음식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팀장님이 중요하다고 해야지!’ 따위의 대화를 나누는 팀원들을 보며 전에 없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나가.”
이곳에서 믿을 건, 노을이 밖에 없었다.
[컁?]
**
1시간 뒤.
“이익. 이게 다 이 대리님 때문이잖아요!”
부처가 환생한 것만 같은 미소를 지은 한울로부터 받은 미션을 처리하기 위해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모니터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한혜원이 돌연 발작했다.
한울이 미션만 내려주곤 사무실을 나갔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내 간식···.”
업무량도 업무량이었지만, 한혜원은 간식을 빼앗긴 아픔에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책상에 털썩, 머리를 박았다.
“...얼른 끝내고 탕비실에서 먹으면 되지···.”
입을 잘못 놀린, 아니. 굉장히 솔직했다는 이유로 역적이 된 이 대리가 우물거렸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한혜원과 눈을 마주치고 큰 덩치를 모니터 뒤로 꾸겼다.
“어휴. 뭐, 팀장님 말씀이 맞긴 하죠. 여기는 식품공장이고···. 바로 옆에 생산공장이 있으니···. 간식은 탕비실에서만 먹는 게 맞죠.”
엄연히 말하자면, 한울은 간식을 빼앗아 가지 않았다. 다만,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먹던걸 탕비실로만 제한을 걸었을 뿐이다.
“우어어.”
하지만 이미 사랑방 다과를 입에 물고 작업하는데 익숙해진 팀원들은, 좀비처럼 흐느적거렸다.
개중 가장 고요히 흘러내리던 팀원, 서 대리가 조용히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안 되겠다.”
“...?”
“방법을 찾아야지.”
“무슨 방법요?”
“간식을 먹으면서 일할 수 있는 사무실을 짓는 방법.”
“예?”
사무실을 짓는다니.
멀쩡한 사무실을 두고 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서 대리의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다시금 안경을 고쳐 쓴 서 대리가 조용히 말했다.
“플랜B를 시작하지.”
“헐?”
“예?”
팀원들의 반응은 전에 없을 만큼 격렬했다.
그런 팀원들을 본 서 대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곤 모니터로 다시 눈을 돌렸다.
파칭-!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서 대리의 안경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