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42화 (142/163)

부자가 되는 방법(2)

타다닥.

조금 전만 하더라도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 찼던 사랑방 사무실은 타자 소리로 가득 찼다.

타다다다닥!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 자리에서 가공할 속도의 타자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들었다면, 비가 온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메딧 완료.”

“카페3 완료요.”

“해외 마트 체인에도 메일 발송 완료요.”

“헬로. 아이드 라잌투 스픽 윗 푸드 매니저.”

수화기를 들고 정직한 발음의 영어로 통화하는 이 대리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의 타자 소리가 멈추었다.

제 몫의 목표를 모두 이룬 팀원들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케이. 땡큐. 아윌 센쥬 샘플 순···. 으헉!”

전화통화를 마친 이 대리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 고개를 돌렸다, 제게 집중된 팀원들의 눈빛을 보고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결과는?”

이 대리의 덩치가 쪼그라들거나 말거나. 팀원들은 이 대리에게 통화 결과를 말해달라 재촉했다.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볼것 같은 팀원들의 모습에 이 대리는 놀라 쪼그라들었던 자세를 풀고 태연한 척 헛기침했다.

“커흠. 당연히 오케이지!”

그리고 턱을 위로 들며 당당히 말했다.

칭찬해달라는 듯 고개를 들었지만, 대답을 들은 팀원들은 고개를 돌려 자기네들끼리 다음 단계에 대한 의논을 시작했다.

“오케이. 그럼 이제 샘플만 만들어서 보내면 되겠네.”

“해외면 피덱스나 UDS, DSL이 좋겠죠? 바로 컨텍해서 계약하겠습니다.”

“전 그럼 한국 핸드캐리 업체에 연락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나는 박준혁 씨한테 갔다 올게.”

“넵! 다녀오십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택배 계약 끝나면, 선사에도 컨택해봐.”

“넵!”

서 대리는 한혜원과 김연우의 씩씩한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나 가디건을 챙겼다.

공장이 산 중턱에 있는 터라, 아직 사무실 밖으로 나가면 쌀쌀했다.

밖으로 나가는 문고리를 잡은 서 대리는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자신을 보고 있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1년. 1년 안에 우리는 간식을 찾아온다.”

**

“컁! 이제 부자가 되는 거냐?”

며칠 동안 나와 함께 사무실로 출근한 노을이 꼬리를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물었다.

“지금도 부잔데?”

“호에에? 정말이냐?”

“그럼.”

나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뜨는 노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꽈악?”

간식을 먹고 거실 창 앞에서 햇볕을 받으며 인절미처럼 녹아있던 찹쌀이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찹쌀이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이 방송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우리가 부자라고 했나, 꽉?”

“컁! 그렇다! 한울이가 부자라고 했다!”

“꽈악? 그게 정말이냐?”

“컁! 그렇다고 했다! 캬하항!”

진짜 부자가 맞냐는 찹쌀의 질문에 노을이 내 주변을 콩콩 뛰어다니며 즐겁게 말했다.

그런 노을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찹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날개를 퍼덕거리며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꽈악? 그럼 빌딩이 있는 거냐? 개인 비행기도 있는 거냐? 요트도 있는 거냐?”

“응···?”

뒤뚱, 뒤뚱.

평소라면 빵실한 엉덩이를 흔들며 한 발짝씩 걸어오는 찹쌀의 모습을 보며 두 팔을 벌렸을 것이다. 그리고 찹쌀이 좋아해 마지않는 쓰담쓰담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인지 오늘은 두 팔을 벌리기보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찹쌀의 부담스러운 눈빛 때문이었다.

“...아직 이 집에는 영화관이 없다! 수영장도 없다! 고로 아직 한울이는 부자가 아니다, 꽉!”

“...”

내 앞에 당도한 찹쌀은 새하얀 날개를 쫙 펴며 말했다.

“호에에?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것 같다 컁!”

찹쌀로부터 ‘부자’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성립한 노을이 입을 벌리고 눈을 반짝거렸다.

“한울! 아직 우리는 부자가 아니다! 내가 더 열심히 일하겠다! 컁!”

“아니, 잠깐···.”

“뭐하냐 찹쌀! 나를 따라와라! 컁!”

“꽈아악! 알았다!”

이미 충분히 부자이며, 노을이 원한다면 어떤 음식이라도 해줄 수 있다고 말하려 했지만, 노을과 찹쌀은 빨랐다.

-꼬꼬댁?

-꼬꼬고!

순식간에 마당으로 나가 대문을 통과하는 노을과 찹쌀을 본 닭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날개를 퍼덕덕거리며 그들을 따라갔다.

닭으로 장성한 병아리들은 요즘 찹쌀의 뒤를 따라다니며 밭에 있는 벌레들을 잡아먹곤 했다.

부자로 만들어주겠으니 자신들만 믿으라는 정령들의 뒷모습에 머리를 짚고 있을 때였다.

“어이쿠. 어? 형님, 나와계셨네요?”

열린 대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닭들의 모습을 보고 익숙하게 문을 활짝 열어준 박준혁이 저를 보고 인사했다.

“어. 무슨 일이야?”

사랑방 식품 공장이 지어지고, 사무실에 팀원들이 합류한 뒤, 신비농장을 맡은 박준혁의 일은 상당수 줄어들었다.

이동민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사랑방 카페에 소속된 것과 마찬가지라, 신비농장의 일은 대부분 박준혁과 지석호가 도맡았었다.

특히나 박준혁은 비료생산까지 맡고 있어 항상 퇴근 시간을 넘긴 6시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비료생산은 자신의 사업과도 같다며 박준혁은 초과근무를 자처하긴 했지만, 사장이 된 입장에서는 아무리 초과근무수당을 준다고 하더라도 매번 미안한 마음이었다. 신비농장의 공식적인 퇴근 시간은 4시였으니 말이다.

사랑방 사무실이 꾸려진 후, 팀원들은 가장 먼저 신비농장 홈페이지 제작 및 관리를 맡았다.

팀원들은 아직까지 신비농장과 사랑방의 공식 홈페이지가 없다는 것에 경악했고, 박준혁이 CS까지 맡았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하며 주문관리와 발송을 제외한 나머지 업무를 모두 가져갔다.

덕분에 박준혁은 비료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어 요즘엔 4시가 되면 퇴근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서 대리님이 왔다 가셔서요.”

“응? 서 대리가?”

“넵.”

박준혁의 대답에 나는 핸드폰을 내려 봤다. 오후 5시 13분.

“걔네 아직 퇴근 안 했데? 서 대리는 어디 가고?”

신비농장뿐만 아니라, 사랑방 카페든 공장이든, 모든 사업장의 퇴근 시간은 4시였다.

“바쁘신 것 같던데요? 어제도 저녁만 먹고 다시 사무실로 가야 한다고 하시던데···.”

“응?”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팀원들에게 요청한 일은 간단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체인과 계약을 맺는 것.

온라인만으로도 충분히 판매가 잘 되긴 하지만, 브랜드를 알리려면 무조건 오프라인이 동반되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식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 판매처 뚫는 건 기존에 했던 곳들에 연락만 해도 충분할 텐데···. 왜? 무슨 문제 있데?”

윗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그 밑에 사람들에게 일이 모두 가기 마련이다. 밑에 사람들은 일에 치여 허덕여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

그건 바로 사원급부터 그 윗사람의 업무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윗사람이 높은 직급을 가지면 가질수록, 부하 직원들의 업무 스킬과 처리하는 일들도 많아진다.

사장의 아들인 서 팀장 같은 윗사람 밑에 있었던 팀원들은?

사원인 김연우도 다른 팀이라면 과장급이 처리해야 할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해치우는 게 우리 팀이었다.

그러니, 오프라인 판매처를 뚫는 일 따위는 하루가 뭔가. 1시간도 안 되어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나도 아닌, 박준혁을 보고 갔다니.

어떤 일 때문에 그런지 도무지 상상 가지 않았다.

“아, 그게요···. 이걸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박준혁은 의문에 빠진 내 모습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든 서류를 건넸다.

“이게 뭔데···. 응?”

아리송한 표정으로 서류를 건네받던 나는, 서류 첫 페이지에 쓰인 제목을 보고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서리태 건강음료 개발 및 수출 계획···?”

팔랑.

심상치 않은 제목에 첫 장을 넘기자, 나는 단박에 서 대리가 나에게 바로 오지 않고 박준혁에게만 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뒷장에는 신비농장의 서리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계획이 서론부터 결론까지 체계적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무려 10페이지나 되는 기획서를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신비농장의 비밀병기 서리태를 전 세계에 알려 빌딩을 세우겠습니다!]

“이 대리···! 내가 분명히 서리태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저는 안 했습니다!”

힘을 주는 바람에 기획서가 구겨지자, 옆에 있던 박준혁이 자신은 아니라고 손을 번쩍 들었다.

무고하다는 표시였다.

“후. 이거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혹시 들었나?”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박준혁에게 물었다.

팀원들이라면, 이미 이 기획서에 적힌 일을 실행하고도 남았다.

“그게···. 제가 듣기로는, 그 기획서 안에 리스트 된 해외 체인들과는 전부 얘기가 다 끝났다고···.”

턱.

나는 박준혁의 말에 다시 한번 이마를 짚었다. 찹쌀의 기준보다 더 높은 곳을 보는 이들이 바로 지척에 있는걸 몰랐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바로 서 대리에게 전화를 연결해 보았지만, 예상한 바대로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하. 하하하. 준혁아, 우리 서리태 얼마나 있지?”

“어... 서리태는 지금 비닐하우스에 10그루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

10그루라.

박준혁의 대답을 들은 나는 생각에 빠졌다.

팀원들의 계획처럼 전 세계에 신비농장 서리태를 사용한 건강음료를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사실 10그루라 해도, 노을과 찹쌀이 있으니 앞으로 생산해 내는 건 걱정 없지만···.

서리태를 그렇게 하기엔 여러 문제가 많다.

“저기, 형님. 혹시 서리태만 판매 안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박준혁이 곰곰이 생각에 빠진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리태 판매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신비농장에 대해 알리면서, 성장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

그렇다.

초창기에 박준혁이 나를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신비농장 서리태에 대한 정보를 커뮤니티에 올린 것만 생각해봐도 맞는 말이다.

잠깐 사이였지만, 서리태 글에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었다.

하나같이 구매처를 알려달라는 댓글들.

댓글을 단 사람들 모두가 탈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다.

“하긴, 지금은 저희끼리 먹기에도 모자라니까요.”

지금도 신비농장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천장을 뚫을 기세로 성장 중이다.

신비농장 작물을 접한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홍보를 받은 사람들이 또다시 홍보하고···.

그야말로 어떠한 광고도 하지 않고, 입소문으로만 유명해졌다.

그래서 문제였다.

“아직은 좀 이른데···.”

서리태를 영원히 팔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부작용 없는 다이어트약이나 탈모약을 개발한 사람은 돈방석에 앉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왜 있겠는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두 정령과 같이 사는 만큼, 언젠가 서리태 판매를 할 생각이었다.

지금보다 규모가 더 커지고, 서리태밭을 지킬 힘을 가지게 될 때 말이다.

“일단, 알겠어. 가져다줘서 고마워.”

“넵.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형님! 저녁 맛있게 드십쇼!”

“어. 너도.”

박준혁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받은 나는, 우선 그를 보냈다.

아무리 형 아우 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퇴근 후에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최소화 하는 게 앞으로의 관계에도 좋으니 말이다.

“흠···.”

박준혁을 보낸 뒤, 팀원들이 벌인 일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평상에 좀 더 앉아있을 때였다.

-rock and roll!!

어디선가 록(rock) 음악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킁! 한울!”

포동이 대문을 후다닥 넘어 들어왔다.

“아. 우리도 저녁 먹어야지.”

매번 나무늘보처럼 여유롭게 다니던 포동의 급한 모습이 의문스럽긴 했지만, 오늘따라 배가 고픈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먼저 들어가 있겠다! 킁!”

포동이 나를 지나쳐 쌩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응···? 쌩?”

잽싼 포동의 모습을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을 때였다.

탁.

대문 쪽에서 누군가 발을 들이는 소리가 작게 들리나 싶더니.

“캬하하! 롹앤롤 베이비!”

롹앤롤을 외치는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