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는 방법(3)
“캬하하! 롹앤롤 베이비!”
나는 두 발로 서서 마당으로 들어와 롹앤롤을 외치는 털북숭이의 모습에 눈을 비볐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안내해 줘서 고맙다 캬하!”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눈앞의 까만 털북숭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뒤를 돌려 포동이를 찾았다.
“안내하지 않았다! 쟤가 나를 따라왔다! 킁!”
거실 통창에 발바닥을 딱 붙인 포동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맹렬히 고개를 저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
어디 보자.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포동에게서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두 발로 서 롹앤롤 포즈를 하는 까만 털 뭉치를 보았다.
아니.
그저 까만 털 뭉치라고 하기엔, 정수리부터 꼬리 선단까지 하얀 털로 빼곡했다.
위의 흰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까만색으로 뒤덮인 털 뭉치는 길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캬하하!”
롹앤롤을 외치며 기다란 발톱을 어설프게 접는 모습을 보니 어디서 TV를 좀 본 정령 같았다. 보통 동물이라면 말을 하지 못하니까.
“뭐지···?”
겉모습을 보면 확실히 마을 뒷산 출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예 처음 본 생김새라기엔 뭔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익숙했다.
“어디서 봤지···?”
족제비처럼 머리와 몸통 구분이 어려운 몸을 가지고 있는걸 보니 족제비나 오소리 같기도 했지만···.
“오소리?”
소리 내 ‘오소리’라고 말해보았지만, 아는 척도 하지 않는 털 뭉치를 보며 다시 생각에 빠졌다.
오소리라고 하기엔, 얼굴을 가로지르는 하얀 줄무늬가 없었다.
색이 다른 부분이라곤 오직 하얀 윗부분.
“어···?”
날카로운 발톱.
포동이를 쫓아 남의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안하무인 한 성격.
그리고 시종일관 캬캬캬 거리며 자신감에 가득한 태도까지.
“설마, 라텔?”
“캬하하! 이제야 이 몸을 알아보는 인간을 찾았다! 그렇다! 나는 Badass다! 캬하하!”
“...”
라텔. 다른 말로는 벌꿀오소리.
타고난 호전적인 성격 탓에 아프리카의 무법자라 불리는 동물.
독사도 벌꿀오소리 앞에선 한 입 거리 식사 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보다 몇십 배나 더 큰 포식자를 만나도 벌꿀오소리는 겁에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벌꿀오소리의 깡다구에 질려 포식자들이 슬슬 피해 다닌다고 하니···.
스스로 ‘Badass!’라고 한 것처럼, X나 센 미친X이라고 할 수 있다.
“크, 킁!”
롹앤롤을 연신 외치며 이족보행 하는 벌꿀오소리와 눈을 마주친 포동이 뒷걸음질 쳤다.
“참···.”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든 심드렁한 표정을 유지하던 포동이 저렇게 동요하는 걸 보니, 내 예상이 더 명확해졌다.
“캬하하! 배가 고프다! 사냥! 사냥! 사냥할 곳을 알려줘라!”
마당을 두리번거리던 벌꿀오소리는 돌연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크, 킁! 이상하다! 쫓아내 주라! 한울!”
창문에 바짝 붙어 이쪽을 주시하는 포동이 기겁했다.
어차피 정령들에게 창문은 그저 지나가면 되는 지름길일 뿐인데···. 창문이 방패라도 되는 양 바싹 붙어 있는걸 보니 적잖이 겁을 먹은 모양.
조금만 있으면 저녁을 먹을 시간.
곧 있으면 노을과 찹쌀도 돌아올 거다.
“저기, 벌꿀오소리야?”
평소에 조용한 포동이 이런데, 노을과 찹쌀이 벌꿀오소리와 마주친다면 오늘 저녁은 날아간다 해도 말이 되었다.
“캬하하?”
발톱을 허공에 휘둘러대며 호탕하게 웃어대는 벌꿀오소리의 고개가 돌려졌다.
“여긴 사냥할 게 없으니까 돌아가 주겠니?”
생각해보니, 찹쌀을 따라 닭들도 돌아올 것이다. 벌꿀오소리가 닭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터.
얼른 쫓아내야 한다.
하지만 벌꿀오소리의 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캬하하!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으응?”
우리 집에서 24시간 생활하는 것 같은 노을과 찹쌀도 내가 잠이 들면 산을 오간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보니, 벌꿀오소리가 배를 쭉 내밀며 당당하게 말했다.
“눈을 떠보니 여기였다! 캬하하!”
“...”
그거 자랑 아니다.
나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벌꿀오소리의 모습에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나가주겠니? 무단침입이란다.”
상냥한 내 말에 벌꿀오소리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카하, 하···?”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늘 위로 뻗었던 팔이 자연스레 내려와 배에 안착했다.
두 손을 배에 모은 벌꿀오소리는 내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 침···? 배고프다! 캬하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단침입’ 중 ‘무’, ‘침’ 두 글자만 얌전히 내뱉던 벌꿀오소리는 ‘무침’이라는 단어를 완성하고는 다시 두 팔을 하늘 위로 뻗고 소리쳤다.
“킁! 말이 안 통한다!”
창문과 물아일체의 경지를 탐하나 싶던 포동의 목소리가 내 발치에서 들렸다.
“킁. 내가 여러 번 도와주려고 물었다. 킁. 근데 자꾸 모른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킁!”
그저 계속 ‘캬하하!’만 외치는 벌꿀오소리의 행동에 안전함을 느꼈는지, 창문과 떨어진 포동은 내 바짓단을 꾸욱 쥐며 말했다.
“그래. 그런 거 같네.”
나도 찹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꽈가강!
어디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킁!”
“이게 무슨 소리야?”
깜짝 놀란 포동이와 나는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다.
그럼 도대체···.
“캬하하! 내 배다!”
하늘을 올려보던 고개를 천천히 내리자, 벌꿀오소리가 배를 탕탕 치며 말했다.
배에서 천둥이 치는 와중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벌꿀오소리를 보니, 문득 안쓰러움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할머니가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울아. 다른 건 몰라도, 누가 배고프다고 하면 꼭 챙겨줘야 한데이? 살면서 제일 서글픈데 배곯는 거다.’
어릴 적 나는 말간 얼굴로 할머니를 보며 ‘배고프면 집에 가면 되지 않아?’라고 했던 것도 같다.
그때보다 머리가 크고, 몸이 커진 지금에서야 할머니의 말을 이해한 나는, 이제는 천둥소리가 나는 자신의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벌꿀오소리를 보며 물었다.
“혹시, 좋아하는 음식이 있니?”
**
“캬하하! 맛있다!”
“컁?”
“꽈악?”
평상 위에 앉아, 제 앞에 있는 음식을 초토화하는 벌꿀오소리의 모습을 보는 노을과 찹쌀의 고개가 동시에 갸웃거렸다.
“킁!”
벌꿀오소리를 본의 아니게 이곳까지 안내한 안내자 역할을 맡은 포동은 제 몫의 음식을 끌어당기며 심기 불편한 소리를 냈다.
“한울, 쟤는 누구냐? 처음 본다 컁!”
“꽤액! 나도다! 처음 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벌꿀오소리를 쳐다보는 와중에도 음식을 야무지게 챙겨 먹던 가을과 찹쌀이 물었다.
“아. 쟤는 오소리랑 친척이야. 너구리랑도 친척···. 일걸?”
벌꿀오소리는 족제비과고, 한국 오소리도 족제비과. 그리고 너구리는 오소리가 파놓은 구멍에서 같이 살기도 한다.
같이 사는 것보다는, 깔끔쟁이 오소리가 제 자리를 양보하는 것에 가깝지만, 여튼.
이 정도면 둘 다 벌꿀오소리와 친척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컁? 포동이 친척인 거냐!”
노을이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며, 끝만 살짝 먹물에 담갔다 뺀 것 같은 귀를 쫑긋거렸다.
“아니다! 킁!”
물론 포동이는 극구 부인했다.
벌꿀오소리를 등지고 앉은 포동을 힐끗 쳐다본 노을은 벌꿀오소리 곁으로 도도도 다가갔다.
“컁! 그럼 이제 너도 우리랑 같이 한울을 돕는 거냐?”
“캬하하! 그렇···! 케겍?”
음식을 흡입하던 벌꿀오소리는 노을의 말에 이상한 소리를 냈다.
“호에? 돕지 않는 거냐?”
캑캑대는 벌꿀오소리의 모습에 노을이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케겍!”
“나는 위대한 정령 노을인데···. 너는 그냥 오소리로 사는 게 좋은 거냐, 컁?”
“켁, 노..을?”
“컁! 그게 내 이름이다! 나는 그냥 여우 정령이 아니고 ‘위대한 여우 정령 노을’이다! 한울이 지어줬다!”
“켁···?”
몇 번의 헛기침 끝에 목에 걸린 음식물을 넘기는 데 성공한 벌꿀오소리는 하늘을 뚫을 것처럼 콧대가 높아진 노을을 돌연 부러운 눈으로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인간! 나에게도 위대한 이름을 지어달라! 케!”
“...?”
오늘따라 전투적으로 음식을 먹는 포동이를 챙기느라 다른 곳을 못 보던 나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내게로 다가와 이름을 지어달라는 벌꿀오소리의 요청에 노을을 보았다.
“컁! 안된다! 위대한 이름은 한울과 친구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거다!”
뒤에서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벌꿀오소리를 따라온 노을이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케···? 친구? 그건 어떻게 되는 거냐?”
“한울을 도와주면 될 수 있다! 우리는 전부 한울을 도와준다! 한울도 우리를 도와준다! 그래서 친구다!”
“꽤액! 상부상조! 친구다! 나도 위대한 찹쌀이다!”
가슴을 쭉 내밀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노을의 설명에, 찹쌀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쳤다.
“케···. 상부상조···? 뭔지 모르겠지만 나도 하겠다!”
노을과 찹쌀의 이름을 곱씹던 벌꿀오소리가 손에 쥔 음식을 한입에 집어넣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호에? 그건 한울을 도와줘야 할 수 있는 거다! 잘하는 게 있냐?”
가슴 털을 부풀리며 자랑하던 노을은, 진지해진 벌꿀오소리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캬하하! 나는 뭐든 다 잘한다!”
“그런 정령은 없다. 킁.”
뒤돌아 있던 포동이 코웃음 쳤다.
“캬학!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 덤벼라!”
“크, 크흥! 한울!”
자신의 말을 증명하겠다며 벌꿀오소리가 몸을 틀자, 포동이 혼비백산하며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보았나? 나는 이 구역에서 가장 세다! 캬하하!”
내 품에서 오돌오돌 떠는 포동을 보며 벌꿀오소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켕! 친구를 괴롭히는 정령은 친구가 아니다!”
“꽈악···.”
포동의 모습을 본 노을과 찹쌀이 분기탱천했다.
“캬르르”
위협을 받은 벌꿀오소리가 낮게 경고 소리를 냈다.
하지만 분기탱천한 노을과 찹쌀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캬앙! 나쁜 정령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
“꽥!”
“한울을 안 도왔으면 밥도 먹으면 안 된다! 컁!”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다 꽈악!”
꼬리를 부풀리고, 날개를 커다랗게 펼쳐 벌꿀오소리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는 둘은 원래 덩치보다 배는 더 커 보였다.
“캬르르! 켁! 피이···.”
둘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벌꿀오소리가 나를 힐끔거리며 보더니, 피피거리며 구조신호를 보냈다.
“킁!”
양반다리한 무릎에 자리 잡은 포동이 국물도 없다며 턱을 휙 들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노을아, 찹쌀아 잠시만.”
“꽤액?”
“컁?”
노을과 찹쌀은 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압박을 멈추고 내 곁으로 왔다.
머리 위에 찹쌀, 어깨 위에 노을, 그리고 무릎 위에 포동을 앉힌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채 피피거리는 벌꿀오소리를 보며 물었다.
“혹시, 파수꾼이 뭔지 아니?”
“피···. 케행?”
세상에서 가장 겁 없는 동물로 기네스 1위를 차지한 라텔 정령이 신비농장 서리태 파수꾼으로 영입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