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44화 (144/163)

부자가 되는 방법(4)

달달달.

“대리님, 괜찮으신가요?”

한혜원은 아침부터 다리를 모터 달린 것마냥 떨어대는 서 대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어? 어. 괜찮아.”

하필이면 낙하산 중 낙하산인 서 팀장과 성이 같다는 이유로 친척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던 서 대리, 서진태는 가‘족’같은 회사에서 나와 파라다이스 같은 미화리에 있는 사랑방 공장으로 이직한 일이 올해 들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는 것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사장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부하 직원들의 공을 제 공으로 둔갑시키는 서 팀장을 보지 않게 된 것만 해도 십 년 묵은 스트레스가 쑥 내려간 것만 같았다.

그래.

어제까지는 말이다..

“괜찮겠지? 화났으려나? 화내실까? 화내시면 어쩌지?!”

서진태는 간식에 눈이 멀어 실수하고 만 어제의 자신을 원망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대리님?”

“어. 난 괜찮아. 고마워.”

싱긋.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서진태는 책상을 박던 머리를 들어 웃어 보였다.

“대리님, 혹시 어디 아프시면 말씀하세요.”

“어. 고마워.”

걱정하는 한혜원에게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그럴듯한 미소를 선보인 서진태는 그녀의 고개가 모니터로 돌아가자마자, 입꼬리를 내렸다.

쿵.

그리고 다시 책상에 이마를 박기 시작했다.

콩. 콩. 콩.

이번에는 한혜원에게 들키지 않도록 힘을 최대한으로 빼고, 시간차를 두며.

하지만 서진태의 노력은 1분도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덜덜덜덜덜!

경운기라도 지나가는지, 바닥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기 때문이다.

“대리님?”

한참 집중하던 한혜원이 고개를 발딱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서진태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잠깐 눈을 붙인다고 붙였는데, 알고 보니 코를 드르렁 골며 딥슬립에 빠진 바람에 저를 눈빛으로만 깨운 옆자리 학생의 것과 똑 닮아있었다.

“어? 나 아니야!”

옛 흑역사를 불러일으키는 한혜원의 눈빛에 서진태는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덜덜덜덜!

그리고는 아직까지 끊이지 않는 덜덜거리는 소리의 정체를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응?”

서 대리가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 한혜원은 남향이라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사무실에서 어째서인지 홀로 우중충한 느낌이 드는 곳을 발견했다.

“으으. 틀림없이 가만 안 둘 거야. 어쩌지? 도망가야 하나? 하지만 어디로? 아직 계약은 안 했으니까 괜찮으려나? 아니야. 그래도 샘플 보내준다고 약속했는데···. 약속 지키지 않았다고 다음 제품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잘리는 건가? 하지만 다른 회사는 이제 못 갈 것 같은데? 거긴 간식도 없고! 서리태도 없는데! 내 머리카락···!”

홀로 먹구름을 생성한 채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이의 정체는 이 대리였다.

“...”

조용히 불안에 떠는 이 대리의 모습을 본 한혜원은 한숨을 폭 내쉰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연우, 오늘 팀장님 언제 오신다고 하셨지?”

“오늘 금요일이라 발송 수량 많아서 온라인 주문 건 도와주고 오신다고 했어. 늦어도 4시 전까지는 오실 거야.”

“아 맞다. 그랬지. 땡큐.”

자신보다 1년 늦게 입사한 김연우의 답에 한혜원을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같은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전 회사에서는 무조건 극존칭으로 불린 탓에 불편하기 그지없었는데, 이곳으로 이직하면서 김연우와 조금 더 편한 사이가 되었다.

동갑인 친구가 한 명 더 생긴 느낌이랄까.

“그럼 팀장님 오시기 전까지 대리님들이 왜 저러시는지 알아볼까?”

타임리밋을 알게 된 한혜원은 작성하던 파일을 저장하고, 아웃룩을 켜 대리님들이 보낸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케이. 나는 이 대리님 메일 확인해 볼게.”

힐끗, 곁눈질로 본 것만으로 한혜원이 무엇을 할 건지를 알아차린 김연우가 서포트를 자처했다.

“땡큐! 얼른 정리해서 해결하자고!”

타다닥.

힘찬 한혜원의 외침을 시작으로 사무실에 경쾌한 타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 물론 다리를 떨다 이마를 박는 서 대리와 경운기가 지나갔나 할 만큼 다리를 미친 듯이 떠는 이 대리의 곡소리도 함께였다.

**

사랑방 사무실이 타임어택에 들어갔을 무렵.

한울은 배송 업무를 빨리 끝내고, 복댕이와 고라니가 지키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매실 밭도 가야 한다! 컁!”

한울의 어깨에선 노을은 개선장군처럼 ‘앞으로’를 외쳤다.

“그래. 들렀다 가자.”

“캬항!”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는 한울의 손길에 노을은 눈을 초승달로 만들었다.

“찹쌀이는 먼저 가 있지?”

“컁! 그렇다! 아침 먹자마자 바로 갔다!”

“오케이. 좋았어.”

노을의 답을 들은 한울은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아침 먹고 바로 라면 이미 시간이 꽤 지난 상태.

복댕이를 어엿한 문지기로 키운 찹쌀의 능력을 믿긴 하지만, 찹쌀에게 교육을 받는 이를 아직까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꽤애액!”

멀리서 찹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꾸잉!

뒤이어 복댕이의 소리도 들렸다.

산 중턱부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노을이 한울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사뿐하게 땅에 착지한 노을은, 풍성한 꼬리를 휘두르며 달리기 전, 고개를 돌려 말했다.

“컁! 찹쌀이 화났다! 멧돼지도 화났다! 내가 먼저가 있겠다! 천천히 와라!”

*

“후. 드디어 도착했네.”

앞서간 노을을 따라 뛰다시피 걸어 비닐하우스 앞에 도착한 나는, 손을 부채 삼아 얼굴에 바람을 일으켰다.

-사라락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봐야 얼마나 하겠냐는 듯 봄바람이 살랑, 타이밍 좋게 스쳐 지나갔다.

“이제 바람에 찬기가 없네.”

봄을 지나, 성큼 다가올 여름을 알리듯, 따뜻함을 품은 바람을 느끼며 중얼거릴 때였다.

“컁! 다시! 이렇게 하는 거다!”

“꽤액···.”

-꾸잉···.

비닐하우스 안에서 정령들과 복댕이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지?”

어딘가 조금 열이 받은듯한 노을의 희귀한 목소리에 나는 땀을 식히는 걸 그만두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았다.

“헐.”

천하의 벌꿀오소리가 자신의 반만 한 노을에게 깨갱거리고 있는 모습을.

**

“한울! 작물 맡기는 건 절대 안 된다! 컁!”

“꽉! 물 주는 것도 시키면 안 된다!”

-꾸잉! 꾸잉!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정령들과 복댕이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달려들어 아우성쳤다.

“천천히. 한 명씩 말해보자.”

나는 우선 노을과 찹쌀을 양팔에 안아 들며 말했다. 눈치껏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 복댕이에게는 미리 준비해온 쿠키를 입에 물렸다.

-꾸잉!

쿠키를 입에 문 복댕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확인한 나는, 한쪽 팔에서 꼬리를 바닥으로 탁탁 내려치며 심기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 노을을 먼저 보았다.

조금 전 도착했으니,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곳에 머문 찹쌀보다 할 말이 더 적다 판단해서였다.

“컁! 안 된다! 한울! 절대! 작물을 맡기면 안 된다!”

나와 눈을 마주친 노을은, 기다렸다는 듯이 컁컁 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뾱뾱뾱 씨를 넣을 구멍을 파라고 했는데 구덩이를 팠다 컁!”

“내가 어제 심은 새싹들이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컁!”

“계속 구덩이만 파서 열매 따는 걸 알려줬더니 작물들의 키가 작아졌다! 컁!”

노을이 작은 발로 가슴을 턱턱 두드리며 답답함을 토로할 때마다 풍성한 꼬리가 내 팔을 탕탕 두드렸다.

“어이구. 그랬어?”

“컁! 그랬다!”

“고생했네.”

“아니다. 찹쌀이 더 고생했다. 컁.”

열이 씩씩 나는 것 같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쓰다듬어주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던 노을의 몸이 녹아내리더니 이내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땠어, 찹쌀아?”

노을을 진정시킨 반대편 팔에 배를 보이고 발라당 누워버린 찹쌀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노래 부를 힘이 없다···. 꽈악”

“헐?”

노래 부를 힘이 없다니.

아픈 사람들이 없어도 무조건 회복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 냅다 일단 부르고 보던 게 찹쌀 아닌가.

그런 찹쌀이 노래 부를 힘이 없다고 하다니.

이는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눈을 크게 뜨고 찹쌀의 고개를 들어 올리자, 힘없이 감았던 눈을 뜬 찹쌀이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나 싶더니-

“나는, 나는, 롹앤롤이 싫다 꽥.”

말을 마치자마자 찹쌀의 고개가 꽥하고 넘어갔다.

“응···?”

힘을 모두 소비한 사람이 대자로 뻗는 것처럼 몸의 힘을 모두 이완시킨 채 늘어진 찹쌀을 고쳐 안은 나는, 마지막으로 복댕이를 쳐다보았다.

-꾸잉?

32번째 쿠키를 맛있게 먹던 멧돼지, 복댕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가, 그 시선의 주인이 한울임을 알아차리곤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꾸이잉. 꾸잉. 꾸에엑!

“...?”

열심히 뭐라고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멧돼지의 말은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른팔에서 골골대던 노을의 통역하기 시작했다.

“복댕이도 내 말에 동의한다고 한다. 컁···.”

-꾸잉! 꾸이잉!

“밭을 만드는 게 아니라, 땅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고 한다. 컁!”

-꾸이이. 꾸잉!

“하지만, 지키는 건 나보다 잘한다고 한다. 컁? 진짜냐?”

마지막 말을 통역하던 노을이 벌떡 일어나 다시 물었다.

-꾸잉! 꾸이잉! 꾸!

불신이 가득 담긴 노을의 눈동자를 보며 복댕이가 고개를 절도 있게 끄덕였다.

“컁. 정말이라고 한다···.”

마지막 복댕이의 말은 노을의 통역이 없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나는 이만 쉬라며 노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린 뒤, 두 정령과 산만한 등치의 멧돼지 모두 질리게 한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벌꿀오소리 정령 한 마리로 인해 초토화된 밭을 마주했다.

땅은 뒤집히고, 뒤집힌 땅 옆에는 어제까지만 하도 분명 파릇한 초록빛을 뽐내던 작물들 모두가, 흙먼지를 뚫고 온 것마냥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사삭!

“캬하하! 나는 이 도시의 무법자! 롹앤롤! 피쓰-!”

작물을 심기 위한 골을 파는 게 아니라, 노을과 복댕이의 말대로 구덩이를 파는 주인공은, 구덩이인지 굴인지 모를 곳 앞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출처 미상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꽤액!”

흙냄새에 눈을 반짝 뜬 찹쌀은, 벌꿀오소리의 손아래 망가진 밭을 마주하곤 견딜 수가 없다는 듯, 단말마를 남긴 채 다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컁!”

노을의 눈동자도 사정없이 떨리나 싶더니, 까만 양말을 신은 두 앞발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꾸잉···.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안을 살피던 복댕이도 사람으로 치자면 ‘쯧쯧.’ 같은 소리를 남기고 비닐하우스에서 멀어졌다.

“캬하하! 강하다! 왜냐? 나는 Badass니까!”

모두가 벌꿀오소리에게 질렸지만, 내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 산에서 가장 강한 동물인 멧돼지를 날갯짓 한 방에 제압하고, 멧돼지 정도는 턱 끝으로 부리는 찹쌀에게 일을 시키는 노을까지 두손 두발 다 들게 한 벌꿀오소리를 향해서였다.

온 밭을 다 헤쳐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열매를 달고 있거나 수확하기 직전의 작물들은 멀쩡했다.

강함을 추구하는 어느 유술에서는 도복 마크에 라텔을 넣는다. 자신보다 훨씬 큰 동물에게도 기죽지 않고 매섭게 달려들어 끝끝내 이기는 강함을 닮기 위해서였다.

“...캬하?”

나는 헤드뱅잉을 멈추고, 다시 땅굴을 파려는 벌꿀오소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 신비농장의 파수꾼이 되어준다면, 나는 널 라텔이라고 부를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서리태를 지켜줄 파수꾼의 이름을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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