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46화 (146/163)

소문의 근원(2)

“당연히, 됩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팬덤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유명가수를 데리고 사랑방을 홍보해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왜?

방방곡곡의 취지가 조용한 시골로 가 그곳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매일이 같은 마을에 새로움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이 피디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 이해했다.

내가 이해한 바대로라면, 우리 미화리 산골 마을은 해당하지 않는다.

사랑방 카페가 생긴 뒤로 마을은 자연과 맛있는 한과를 찾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니 말이다.

장 이장님도 같은 생각인지, 머리를 긁적이며 이유를 설명했다.

“왜 내가 맨날 방송국 갈 때마다 우리 꽃분이가 챙겨준 약과 들고 다녔잖녀···.”

“네.”

“원래는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만 줬었는데, 언제 한번 이 피디가 대기실로 오더라고? 밖에서 무대 챙긴다고 생전 출연자 대기실은 오지도 않던 양반이 오더니 약과를 달라 하더라꼬.”

아.

알겠다.

장 이장님의 말을 토대로 종합해보자면, 이렇게 된 것이다.

대기실을 같이 쓰는 참가자들과 스태프들과만 나눠 먹던 약과의 맛을 누군가가 외부에 알렸고, 결국엔 소문이 흘러 흘러 이 피디의 귀에까지 들어갔겠지.

“이 피디님이 그 뒤로도 계속 오지 않았어요?”

“어! 어떻게 알았노?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대기실로 출근해서 내한테 인사하고 가더라꼬.”

“약과를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봤을 테고요?”

“어! 맞다! 약과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길래, 우리 꽃분이가 만들어준 거고, 살려면 우리 꽃분이가 일하는 사랑방 카페에서 사야 한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가더라고.”

“혹시, 구매 방법을 알려주고 나서도 매일 대기실로 출근했나요?”

“어! 맞다. 니 우예 알았노?”

장 이장님은 어떻게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이 피디의 행동을 딱딱 맞추어 내냐고 신기해하며 손뼉을 짝, 하고 마주쳤다.

“뭐, 이 피디가 왜 우리 마을을 첫 촬영지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아서요.”

“그렇나? 하기사. 오디션에서 1등 한 나를 배출한 마을이 여기니까, 여기를 제일 먼저 오는 게 맞지.”

자신이 주(主)인 방송이라 가장 먼저 미화리에 오는 거라고 확신한 장 이장님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네. 맞습니다.”

나는 노을과 비슷한 포즈를 하고있는 장 이장님을 보며 동의했다.

이장님의 말도 맞다. 1등을 한 출연자의 마을이 시골이었고, 하필이면 그곳에 방송 촬영의 메인 피디가 좋아하는 약과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라믄 이 피디한테 사랑방 공장 방문하는 거 사장이 동의했다고 해도 되제?”

제법 이 피디에게 시달렸는지, 아니면 우리 미화리 마을이 다시금 지상파에 출연하는 게 기꺼운지, 장 이장님은 긍정적인 내 반응에 반색하며 물었다.

“네. 일정 알려주시면 준비해놓겠습니다.”

“알았다! 나중에 혹시라도 뭔 일 생기면 꼭 말해라이? 안 되면 내가 폭포 데꼬 가면 된다! 알았제?”

“네.”

내 생각이 바뀔세라, 장 이장님은 핸드폰을 바삐 켰다.

“좋다. 내가 지금 바로 이 피디한테 연락하고, 일정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꾸마.”

이 피디의 전화번호를 찾았는지, 몇 번의 터치를 한 장 이장님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나머지 한쪽 손을 들며 인사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야. 니도 늦게까지 일하지 말고. 어여 들어가서 저녁 챙겨 무라···. 어! 이 피디! 내 장순택인데···.”

이 피디와 전화 연결이 된 장 이장님은 입 모양으로만 ‘난중에 보자’라고 말하며 나에게 재차 손을 흔들었다.

나 또한 마을 쪽으로 몸을 돌려 향하는 이장님의 뒤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조만간, 사랑방 공장의 규모를 더 늘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

서리태를 사용한 건강음료 개발 승인이 떨어진 2주 뒤.

사랑방 사무실에는 크고 작은 박스들이 간이 회의실 테이블 위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오늘 피덱스 픽업 몇 시에 한다고 했지?”

“4시요. UDS랑 DSL은 3시에서 4시 사이요.”

“지금 몇 시지?”

“2시!”

“으악! 얼마 안 남았네! 송장은? 인보이스 챙겼지? 패킹리스트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한쪽 손에 프린트물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박스 개수를 세던 이 대리는, 1시간밖에 남지 않은 픽업 시간에 비명을 질렀다.

때마침 파티션을 넘어 회의실로 들어오던 한혜원이 손에 쥔 프린트를 흔들며 이 대리를 안심시켰다.

“대리님, 배송 사별 송장은 박스에 이미 다 붙어있고, 세관용 인보이스랑 패킹리스트는 여기요. 3장씩 프린트해서 준비됐으니 진정하세요.”

“어? 어. 고마워, 혜원 씨. 서 대리. 서 대리는?”

한혜원의 말에 조금씩 진정하던 이 대리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서 대리로 인해 다시금 소리를 높일 때였다.

“헉, 헉. 나, 여기 있어!”

'쾅' 하고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공장과 이어진 문 앞에서 커다란 박스와 가방을 주렁주렁 든 서 대리가 헉헉대며 말했다.

“대리님, 가방은 제가 들게요. 주세요.”

“후. 고마워.”

서 대리에게 각 국제 배송 사의 픽업 시간을 알려준 후부터 계속 문을 주시하고 있던 김연우 덕분에, 서 대리는 손목과 팔을 조이던 가방에서 해방할 수 있었다.

“오. 나이스 타이밍! 얼른 포장 시작하자고.”

김연우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서 대리가 들고 있던 박스를 옮겨 들은 이 대리는 덩치에 맞지 않게 날렵한 속도로 박스를 상자가 즐비한 테이블 옆에 옮겼다.

“연우, 내가 집어넣을 테니까 리스트 좀 불러줘.”

“오케이. 일단 베트남 Big-D에 보낼 제품 목록부터 부를게. 달콤한 호박 주스 5팩, 한과 세트 3박스, 헤어붐 서리태 드링크 20팩···.”

박스와 가방에서 제품을 꺼내 비워놨던 테이블 공간에 품목별로 진열한 한혜원은, 김연우의 지시에 따라 해당 제품을 송장이 붙은 박스에 넣었다.

태어난 연도는 다르지만, 빠른 생일을 내세워 서 대리와 친구먹은 이 대리도 이에 질세라 몸을 움직였다.

“서 대리, 우리도 얼른 시작하자고!”

“홍콩. 한과 세트 1박스···.”

착착착.

두 그룹으로 나눠진 팀원들의 팀워크에 입을 벌리고 있던 박스들은 빠른 속도로 속을 채우고, 입을 닫아 픽업 준비를 마쳤다.

“후. 이게 마지막! 몇 시지?”

빠르게, 하지만 안전한 포장을 위해 뽁뽁이가 빵빵하게 든 상자 테이핑을 마친 이 대리가 땀을 닦으며 물었다.

“2시 55분. 수고하셨습니다!”

모두가 한 몸으로 움직인 덕분에 픽업 시간 전, 모든 포장을 마친 이들은 김연우의 대답에 모두 제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면서 택배 포장하는 게 얼마 만이냐.”

“그러게요. 저번 회사 유일한 장점 하나 발견했네요. 택배 포장 아르바이트 있는 거.”

“그렇네.”

“풉. 유일한 장점이 택배 포장이라니···. 저희 도대체 어떤 회사에 다녔던 걸까요?”

푸하하.

김연우의 웃음에 전염된 팀원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 유일한 장점마저도 머지않아 빼앗긴다고 본다. 그런데, 이거 남은 건 뭐지? 다들 수량 잘 맞게 넣어서 포장한 거 맞지?”

가장 먼저 웃음을 그친 이 대리는 손을 뻗어 아직 테이블 위에 남아있는 샘플들을 가리켰다.

“넵. 그렇지 않아도 샘플 다 넣고 나서 더블 체크했는데, 누락된거 없었어요.”

“그래?”

“네. 아마 저건 저희가 먹어봐도 되지 않을까요? 샘플 개발하면서 시식해 보긴 했지만, 그래도 완제품으로 포장한 건 못 먹어 봤으니까···.”

김연우는 말끝을 흐리며 서 대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샘플을 공장에서 가져온 게 바로 그이니, 남은 샘플들의 용도도 그에게 물어보는 게 확실했다.

“...응. 우리꺼야. 먹어도 돼.”

오랜만에 격하게 몸을 움직인 탓에 의자에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던 서 대리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오오! 그럼 전 한과부터! 당이 필요해!”

“나는 호박 주스! 이게 먹고 나니까 바로 부은 게 없어지더라고.”

서 대리가 승낙함과 동시에, 한혜원과 김연우는 박스를 포장할 때부터 눈독 들이고 있던 제품으로 손을 뻗었다.

“크흠. 큼.”

“...”

이 대리와 서 대리도 손을 뻗었다.

남은 제품들의 수가 모두 한 번씩 맛볼 수 있도록 넉넉했지만, 팀원들에게 첫 선택을 받은 제품은 모두 달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그룹은 다르고, 나머지 한 그룹은 같은 걸 선택했다.

“잉? 또 서리태에요?”

“크, 크흠!”

그건 바로 서리태 건강음료.

대리 두 명의 한쪽 손에 하나씩 들린 서리태 음료는 까맸다.

블랙앤화이트 무드의 깔끔한 포장은, 간단하지만, 고급스러워 보였다.

레이스가 달린 한과 세트와 노란색으로 눈에 띄는 호박 주스보다는 이쪽이 더 대리들에겐 나아 보이긴 했다.

“이거 출시되면, 주문량 어마어마하겠죠?”

서리태 음료, 헤어붐 한 팩을 클리어하고, 또다시 헤어붐에 손을 뻗는 대리들의 손을 무시한 한혜원은 오직 100% 호박으로만 만들었지만,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여태껏 마셨던 호박즙보다 더 진한 맛을 자랑하는 호박 주스의 자연적인 단맛을 음미하며 말했다.

“당연.”

“무조건.”

헤어붐을 2팩째 뜯어 볼이 홀쭉하도록 마시던 대리들이 단호하게 말했다.

주문량은 무조건 많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하긴. 물도 하루에 한 모금 겨우 마시던 서 대리님이 매일 꼬박꼬박 챙겨 드시는 걸 보면, 그럴만하겠어요. 대리님, 그게 그렇게 효과가 좋아요?”

쓱.

서 대리는 한혜원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핸드폰을 내밀었다.

켜진 화면에는 서 대리의 정수리로 보이는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오른쪽부터, 왼쪽 순으로.”

간단히 사진 보는 순서를 알려준 서 대리는 다시 헤어붐을 마시는 데 집중했다.

“헐? 이 사진 진짜예요?”

끄덕끄덕.

“와. 대박. 이게 사실이면, 우리 회사 부자 되는 건 금방이겠는데요? 대리님 샴푸를 바꿨다거나 영양제를 따로 챙겨 드시는 건 아니죠?”

절레절레.

“이야. 그럼 진짜 대박인데. 한 달도 안 돼서 이렇게 눈에 띄게 개선 되는 거면···. 정식으로 출시되면 바로 한 박스 사서 아빠한테 보내줘야겠어요···. 아, 대리님, 또 드세요? 배 안 불러요?”

도리도리.

서 대리는 한혜원이 뭐라고 하든, 두 번째 헤어붐 팩을 펼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 뒤, 세 번째 헤어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옆에서 이 대리 손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헤어붐을 향해 뻗어지는 게 보인다.

톡.

톡.

쪼오옥!

쪼오옥!

이 대리와 동시에 세 번째 헤어붐을 마시며 서진태는 직감했다.

헤어붐이 정식으로 출시되는 순간, 아무리 직원이더라도 한혜원의 말처럼 한 박스씩 사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

사랑방 직원들이 늦게 나온 최종샘플을 부랴부랴 포장해 국제 특송택배사에 건네준 지 꼭 3일째 되는 날.

베트남 최대 슈퍼마켓 체인 Big-D의 수입식품 부서 매니저, 깜의 앞으로 커다란 박스가 하나 도착했다.

“깜, 한국에서 온 택배 책상 위에 올려놨어. 무겁던데, 뭘 받은 거야?”

깜은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무심코 받은 제품들이 어떠한 반향을 일으킬지.

“글쎄. 그냥 무작정 자기네 제품 공짜로 보내준다고 해서 받았지. 왜, 요즘 한국 제품 매출이 좋잖아.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뭘 보냈는지 한번 볼까?”

박스를 오픈하려 고개를 숙인 깜의 정수리는 겨울이 되면 시릴 것처럼 외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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