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근원(4)
이게 무슨 일인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내게로 달려든 두 대리의 모습에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팀장님! 미국 바이어가 최대한 빠르게 저희 제품을 판매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한 발짝 물러선 만큼, 한 발짝 더 다가온 서 대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미국? 미국이면 일단 제품 샘플들 준비해서 검사 보내야지.”
“네! 알겠습니다!”
거의 코앞까지 들이 밀어진 서 대리의 얼굴이 사라지고,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바로 하려 할 때였다.
“팀장님! 저희 베트남 바이어는 마진 최대로 해서 계약하자고 합니다! ”
서 대리가 사라진 곳에 이 대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 잠깐.”
앞뒤 가리지 않고 얼굴을 들이미는 이 대리의 행동에 우선 나는 손을 뻗어 더 가까워지는걸 막을 때였다.
턱.
앞으로 뻗어진 손에 프린트된 종이가 쥐어지나 싶더니, 흥분한 이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최대 마진! 최대 마진 말한 베트남 바이어가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여기! Invitation letter(초청장) 요청한 메일입니다!”
“어? 어.”
희번덕이는 이 대리의 안광과 마주친 나는 서둘러 그가 내 손에 들이민 프린트를 보았다.
[Dear. Mr. Lee.
Well received the sample.
Thanks for sending.
After reviewing we found your products are good enough to show in our market.
For more discussion, we’d like to visit your office in Korea...]
샘플을 잘 받았고, 제품이 마음에 드니 한국으로 와 계약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
별다른 말 없이 바로 계약 의사를 표하는 걸 보아하니 우리 제품이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
이메일 말미에 빠른 시일 내에 보길 원한다는 말까지 써놨다.
대놓고 우리 제품을 원한다고 몇 번을 강조한 사람의 이름까지 확인한 나는, 눈을 빛내며 내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대리에게 물었다.
“음···. 지금 이메일 상으로는 안달 난 것 같은데···. 통화는 해 봤나?”
“넵! 깜(Kham)이 먼저 전화 와서 통화 해봤습니다.”
“어투는?”
“침착한척했지만, 제 귀는 속일 수 없죠! 샘플 중에서도 서리태로 만든 헤어붐을 콕 찍어서 더 받을 수 없냐는데, 바로 NO! 때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
“에이. 당연하죠. 아주 둘러, 둘러, 둘러서! 미안한데 샘플을 요청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샘플 수량이 딸린다. 지금 가능한 건 판매용밖에 없으니, 정 급하다면 PO(Purchase Order; 주문) 넣으라고 말했습죠.”
“오케이. 잘했어. 근데, Big-D에서 시장에 깐다 그러면 수량이 어마어마할 텐데···. 우리 캐파(capacity; 생산능력) 말 해줬나?”
샘플만 보내 계약까지 끌어낸 건 굉장히 고무적인 성과였지만, 문제는 우리 공장 규모가 해외 빅 체인들까지 커버하기에는 아직까지 작다는 데 있다.
“그, 그건···.”
내 질문에 서 대리가 당황해하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한 모양.
“계약 하는 건 좋은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계약 후 계약 이행을 어떻게 하느냐야.”
“그건, 그···. 렇죠.”
“그럼 일단 베트남 건은 수량 얼마나 원하는지 물어보고, 우리 캐파보다 더 많이 부르면 우리가 아직 공장 증설 중이라 지금 당장은 힘들다고 얘기해.”
“아···. 넵.”
요청 수량이 많으면, 계약을 미루라는 내 말에 이 대리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동시에, 저 멀리. 서 대리의 자리에서 들리던 신들린 타자 소리가 뚝 멈췄다.
스르륵.
귀신처럼 제 자리에서 일어난 서 대리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미국도요? 사실 제 바이어는 아주 작습니다. 체인이긴 한데, 체인이 아닙니다! 굉장히 고가 제품들만 취급하는 곳이어서···.”
주절, 주절. 사실은 자신이 컨택한 미국 바이어가 큰 땅덩어리에 있는 체인이긴 하지만, 규모는 새똥만 하다며 필사적으로 바이어를 축소화하였다.
“예상 주문 수량은?”
“어···. 50박스?”
50박스면, 1 팔레트가 조금 안 되는 수량.
“한 달 요청 수량이 그 정도면 괜찮네. 어차피 검사하려면 시간 걸리니까, 미국은···. 잠깐만.”
팀원들이 사랑방 공장으로 모두 오겠다는 의사를 밝힌 날, 나는 공장 생산 파트를 수제 한과와 제품으로 나누었다.
그리고는 비어 있던 공장 건물 중 하나를 ‘제2공장’이라 명명하고 제품 파트에 필요한 기계를 잔뜩 사다 넣었다.
덕분에 지금은 노는 건물 하나 없이 모두 상용 중이다.
사무실과 한과를 만드는 공장이 자리한 메인공장과 제품 개발과 샘플을 만드는 –아직은 이렇게 부르기도 민망한- R&D 센터, 그리고 생산 대부분 공정을 기계로 할 제2공장.
마지막으로 텅 비어 있던 3번째 건물의 1/2은 냉장창고로, 나머지 반은 일반 창고 만들어 사랑방 공장의 창고로 쓰는 중이다.
냉장창고를 만드는데 꽤나 큰 비용이 들었지만, 식품을 취급하는 만큼 꼭 필요했던 시설이라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함께하는 식구들이 많아진 만큼, 투자는 필수 불가결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2공장의 경우, 기계 투입 후 한 번도 제대로 된 벌크(bulk) 생산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현재 제2공장에서 출고될 가장 빠른 첫 번째 벌크 오더의 생산 스케줄은 빨라도 다음 주다.
해외에서 이렇게 빠른 응답을 받을 거라 예상치 못해 인맥이 있던 한국 다이어트 건강식품 플랫폼, ‘더비건’에서 주문을 받아놓았었다.
“혜원 씨, 더비건 사이트 주문 현황 좀 부탁해.”
“넵!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혜원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리로 가더니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지잉.
마우스 클릭 소리가 멈추나 싶더니, 옆구리에서 진동이 울렸다.
신비농장과 사랑방 카페 및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업무를 보기 위해 노트북을 대신해 항상 들고 다니는 태블릿이었다.
“땡큐. 어디 보자···.”
한혜원이 보낸 자료는 깔끔했다. 피벗으로 스케줄별 수량을 정리해, 월별 수량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표 제일 아랫부분에는 전체수량까지 표시되어있어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2공장 캐파가 헤어붐 기준으로 일주일에 100박스···. 인데, 이 중에 20박스는 더 비건에 보내야 하니까, 남는 건 80박스. 근데 미국에서 얼마나 원한다고.?”
“50박스···. 입니다.”
“월 50이랬나?”
“아뇨, 주마다···.”
“매주? 매주 미국에 준다고 하면, 남는 건 30박스 밖에 없는데···. 몇 군데에서 계약 콜 왔다고 했지?”
“저는 일단 계약 의사 밝힌 곳은 베트남을 포함해서 3곳입니다.”
“저도 미국 포함 3곳입니다.”
6곳이라니. 생각보다 계약 의사를 밝힌 요구한 나라들이 많았다.
물론, 우리 제품을 한번 접했다면, 계약하지 않고서야 못 배기는 게 당연하긴 하다.
하지만 지금 공장 규모로는 모든 계약을 승낙 하기엔 모자람이 컸다.
나중에 시설을 증설한다 치더라도, 한국을 포함해서 제품을 보내야 하는 곳이 7곳이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지금부터 최소 6개월까지는 나라별로 최대 30박스가 한계다.
차트를 통해 공장 분석을 끝낸 나는 고개를 들어, 내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두 대리와 눈을 마주치며 얘기했다.
“어쩔 수 없네. 둘 다 지금부터 컨택한 바이어들이 원하는 수량 다시 파악하고, 한 달에 1 팔레트 이상 원하는 곳들은···.”
“...?”
꿀꺽.
결론을 앞두고 말끝을 흐리니, 바로 앞에서 이 대리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바이어 선택부터, 컨택, 그리고 계약제의까지 막힘없이 달려와 계약까지 바로 코앞인 만큼 긴장감이 더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울이 어떻게 결정하냐에 따라 계약 가능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제발.
이 대리만큼은 아니지만, 서 대리도 꼴깍 침을 삼키며 한울의 입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다른 곳들은 몰라도, 미국 바이어와 계약하면 제품 가격을 뻥튀기해 팔 수 있다.
어서 공장과 가까운 곳에 36층짜리 빌딩을 세워, 언제! 어디서든! 여사님들의 간식을 마음껏 즐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만큼, 한울의 선택은 중요했다.
꿀꺽.
이 대리가 한 번 더 침을 삼키자, 한울이 미소지었다.
씨익.
한껏 입꼬리를 올린 한울이 말했다.
“1 팔레트 이상을 원하는 곳들은, 애간장 좀 태워야겠네. 답장은 이렇게 보내. 안된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말고···. 다만 급격한 주문 수량 증가로 인해 시설을 증설 중이며, 6개월 정도 지나면 캐파가 느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귀한 건 어디서나 찾을 수 없어 귀하다고 한다.
그리고 신비농장 작물을 베이스로 하여 생산된 제품들을 귀하다.
귀한 것을 찾는 사람들은 많고,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게 할 생각은 없었다.
좋은 게 있으면 가까운 사람과 먼저 나눈다고 했나. 국내에 우선적으로 뿌린 후, 먼 곳에도 손을 뻗을 계획이었다.
“일단, 한국부터 공급 완료한 다음에, 수출해보자고. 그동안은 수출에 필요한 잡다한 서류나 검사 다 완료하면서 공장 증설하는 거로. 오케이?”
최대한 빨리 먼 곳까지 손을 뻗기 위해선, 많은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제품 품질에 대한 인정은 받았으니, 지금이 바로 앞으로 점점 더 유명해 질 것을 대비해 내실을 쌓을 타이밍이라 할 수 있다.
“넵! 오늘 당장 공사 가능한 업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수출할 나라 세관과 식품청 자료 좀 더 모아 보겠습니다!”
내 생각을 이해한 두 대리도 앞다퉈 제가 할 일들을 외쳤다.
“좋았어. 그럼 해 보자고!”
분명, 같은 일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즐겁고 재밌을 줄이야. 나는 열정에 불타오르는 팀원들을 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넵!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아직은 덜 여문, 작은 사무실에 있는 큰 사람들의 즐거운 외침이 울려 퍼지는 아침이었다.
**
베트남. 하노이. 오전 8시.
한국보다 2시간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 베트남 도로가 오토바이로 꽉 찰 시간.
“룰루루~”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한 Big-D의 수입식품 매니저, 깜은 콧노래를 부르며 부드러운 수건으로 책상 위 먼지를 걷어냈다.
스스스-.
자리가 창문과 가까이 있는 탓에, 밖에서 들어와 뽀얗게 쌓였던 먼지가 수건의 움직임에 따라 폴폴 날렸다.
“에취! 큼. 요즘 날씨가 좋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빌어먹을 먼지를 저주하며 화냈겠지만, 지금의 깜은 먼지가 아무리 구름을 만들어 자신을 공격하든 상관없었다.
“룰루루~”
요즘 들어 풍성한 머리 덕분에 매일 아침이 즐거운 탓이었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매일 찌뿌드드하고 피곤하던 몸이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가뿐했다.
지금의 몸 상태를 만들어 준 건 바로 한국의 어느 조그마한 식품 업체로부터 받은 음료와 간식 덕분이었다.
개중에도 헤어붐이라고 적힌 ‘그것’은 너무도 귀해 깜은 그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이 그걸 가지고 있는걸 알까 두려워서였다.
“흐흐. 곧 있으면, ‘그걸’ 더 얻을 수 있겠지.”
헤어붐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깜은, 매니저라는 직책을 이용해 테스트용으로 랩실에 준 1팩을 제외하곤 모든 헤어붐을 보관하고있‘었’다.
어제 저녁 부로 깜이 가진 헤어붐은 모두 깜의 뱃속으로 사라졌지만, 괜찮았다.
조만간 한국으로 직접 가 그것을 가져오면 되니까.
이미 깜은 윗선에 출장 승인을 모두 받아놓았다. 이제 오늘 중으로 한국에서 보낸 초청장을 가지고 비자 신청만 하면 된다.
한국을 가면, 살 것도 많았다. 우선, 아내가 말한 화장품도 사야 하고, 딸이 부탁한 B 뭐시기의 굿즈도 사와야 한다.
스윽.
먼지를 모두 닦은 깜은 생각난 김에 사야 할 것을 적으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띠링.
“오? 왔나? 왔다!”
의자에 앉자마자 울리는 알림에 깜은 반색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한국 업체로부터의 답장이 왔기 때문이다.
“이, 이게 뭐야? 안돼!!”
하지만 싱글거리던 깜의 얼굴은 삽시간에 와락, 구겨졌다.
“왜, 왜! 왜?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안돼!!”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헤어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깜은 머리를 쥐어뜯으려다 말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떻게 얻은 머리카락인데! 큰일 날 뻔했다.
주먹을 말아쥔 채 흥분을 가라앉히던 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선포했다.
“안되면, 되게 해야지! 기다려라! 한국!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