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먼저! (1)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과 마주할 때면···.
그날의 기온이 어떻든, 사람들은 그날을 특별한 날로 기억한다.
실낱같은 티끌도 하나 없이 활짝 문을 열어 우주의 한 자락을 보여줄 것만 같아서일까.
오늘이 그러한 날이었다.
뭇 사람들은 감히 흉내도 못 낼 황홀한 쪽빛의 하늘이 미화리 산골 마을 위로 바다처럼 펼쳐졌다.
새들도 잠시 나는 걸 멈추고, 나뭇가지에 앉아 하늘을 보며 지지배배 노래를 불렀다.
-피루루
-짹짹
산새들이 모두 모인 듯, 여러 새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였다.
-다랏, 다랏-.
어딘가에서 화창한 날씨와 걸맞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라다라-
미지의 환경을 탐험하듯, 조심스럽던 음악 소리는, 트럼펫과 호른이 등장하며 당당함을 발산했다.
-다라라란
미지의 환경이 자신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개척자의 마음은 평화로워졌다.
-빰! 빰! 빰! 빰! 빠-밤!
이곳은 내가 지배할 수 있는 곳!
새로운 세계를 찾은 나를 찬양하라!
개척자의 함성을 닮은 팀파니가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달칵.
공장과 사무실 문이 동시에 열리더니, 사람들을 쏟아냈다.
“벌씨로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러게. 오늘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딱! 집중해서 했다 아이가.”
“아따마 저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막힘이 불끈불끈 나는 거 같어?”
“빰-! 빰! 빰! 빰! 빠 빰! 어떻노? 내 좀 비슷하지 않나?”
“뭐랑? 악기랑? 뭔소리 하는 거고. 하나도 안 비슷하다.”
“이야. 하늘 봐라. 쥑이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으로 무장한 직원들은 공장 밖을 나오자마자 왁자지껄 떠들며 깨끗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어으으.”
“아으으.”
반면, 사무실 쪽 문에서는 공장 직원들이 모두 나오고 나서야 큰 덩치를 가진 두 명이 좀비처럼 비실거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뭐꼬? 웬 좀비가 여있노?”
“좀비가 뭔데? 저 환자 같은데?”
“환자? 119 부를까?”
파란 하늘도 보고, 시원한 공기도 들이마시며 싱그러움을 만끽하던 공장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나와 그늘로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이들을 보며 호들갑 떨었다.
“...아, 대리님들, 햇빛! 광합성! 그늘로 가지 말아요!”
고작 며칠 사이 좀비에 빙의한 두 대리를 따라 나온 한혜원이 제 얼굴을 가리며 타박했다.
“아으으”
“어흐흐”
공장 직원들의 웅성거림에 창피함을 온몸으로 표현해 보았지만, 이미 좀비화가 99% 진행 된 것 같은 두 대리는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말을 잘했는데···. 할머니! 괜찮아요! 119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혜원이 좀비들을 인간으로 돌리려 노력한다면, 김연우는 그들을 마지막으로 따라가며 사람이 아닌 무언가의 등장에 놀라 핸드폰을 꺼낸 공장 직원들을 진정시켰다.
“영상은 찍으셔도 돼요! 사진도 찍으셔도 됩니다!”
“어잉?”
신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사진과 영상은 마음껏 찍어도 된다는 김연우의 말에, 직원 중 한 명이 맹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 이 양반들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제”
“어엉?”
“이상하게 찍힌 사진이나, 못생기게 찍은 영상 주면 좋아한다.”
못생긴 사진을 좋아하다니.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들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못생긴 표정으로 찍힌 거나 흐느적거리는 영상! 언제든 환영입니다! 잘생기게 나오거나 멋진 건 안 돼요!”
“어. 알았다. 이따가 교환하자.”
“넵!”
익숙하게 교환을 말하는 이숙자 할머니에게 크게 대답한 김연우는, 고개를 돌려 한혜원의 손에 이끌려 그늘에서 나와 광합성 중인 반 좀비 인간들에게 다가갔다.
“...대리님들,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으어?”
한혜진은 햇빛을 받고 노곤하게 늘어진 좀비들을 열심히 깨우는 중이었다.
“좀 있으면 방송국에서 올 거라고요. 정신 차리세요!”
“으어.”
이렇게 화창한 날에! 방송국이 곧 있으면 이곳으로 온다는데! 무려 지상파 방송국 촬영팀이 이곳을 촬영한다는데! 사무실에서 팀장님 다음으로 높은 직책을 가진 대리들의 상태에 한헤원은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악! 정신 차리라고! 대리들아!”
절대 이런 좀비 같은 모습의 대리들을 지상파 방송에 내 보낼 수 없다는 사명감에서 나온 사자후였다.
무림 고수들이 이곳에 있다면 다 같이 일어서 박수 세례를 보낼 것 같은, 완벽한 사자후는 좀비와 인간 중간 그 어디에 있던 대리들을 단박에 인간 쪽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무서워.”
“괴물.”
아직 이성이 덜 돌아온 대리들은 절대 입에 담으면 안 될 소리를 나불댔다.
“...흐흐흐흐. 잡히면 가만 안 둬.”
한혜원은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을 불퉁한 시선으로 보는 대리들을 보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래. 계급장 떼고 붙자!
“으아아악! 사람 살려!”
“내가 이렇게 해야 사람이 되지? 어? 일루 안 와?!”
“할머니! 저 빨리 숨겨주세요! 빨리요! 쟤 지금 정상 아니에요! 히익!”
“으응?”
(구)좀비들은 인간으로 돌아온 자신들과 달리, 눈이 두 바퀴 돌고 다시 한 바퀴 돌아 제 자리로 온, 그럼에도 아직 한 바퀴를 덜 돌아 정상이 아닌 눈을 빛내며 쫓아오는 한혜진을 피해 흰 무리 뒤로 몸을 숨겼다.
평소에도 눈을 희게 뜰 때면 몸을 떨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쫓아오다니. 이건 반칙이다. 반칙이 틀림없다.
“곰탱이! 무고한 할머니 인질로 잡지 말고 일루 안 나와?!”
득달같이 자신을 쫓아온 한혜원은 어르신에게 묵례로 양해를 구한 뒤, 목청 높여 곰탱이를 불렀다.
움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 대리의 몸이 떨렸지만, 그는 알았다. 한혜원은 할머니가 앞에 있는 이상, 자신에게 마수를 뻗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조금만 더 버티자.
지금은 이 앞에서 왁왁거리지만, 계속해서 버티면 또 다른 사냥감인, 서 대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
그때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며, 꿩처럼 머리를 푹 숙여 할머니의 뒤에 숨길 때였다.
“...총각, 젊은 처자가 부르는데?”
쓰윽.
한혜원과 이 대리의 사이에서 고개를 홱홱 돌리던 이명옥은, 순식간에 우위를 파악하고 제 뒤에 매달린 곰탱이를 젊은 처자에게 넘겼다.
“으악! 할머니! 안됩니다···. 컥.”
“잡았다.”
흐흐흐.
목덜미를 잡힌 이 대리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그대로 목을 움츠린 채 눈동자만 굴려 위를 올려다보았다.
야차가 자신을 잡고 있었다.
“하, 항복.”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파리하게 질린 이 대리의 항복에 한혜원은 바로 그의 목덜미를 놓았다.
“정신 딱 차리고 계세요?”
“어. 당연하지. 로션도 바르면 되지?”
방송촬영 일정이 결정된 직후부터 이어진 잔소리. ‘TV에 출연하는데 그 꼴로 출연할 거냐, 로션이라도 발라라.’ 이왕 지상파를 타는 거, 일 드럽게 못하지만 관종인 서 팀장의 배를 아프게 할 절호의 기회라며, 한혜원과 김연우는 간이 회의실에 로션과 선크림을 두었다.
메마른 사막 같은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고, 뿌리 깊은 주름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방지하는 용이라고 했다.
끈적거리는 게 싫다며 바르지 않겠다고 죽어라 버티던 이 대리의 항복에 하늘 높이 삐죽 솟아올랐던 한혜원의 눈이 유순해졌다.
“진짜요? 그럼 선크림도 좀 바르고 계세요. 어디 있는지 아시죠? 그럼 전 서 대리님 잡으러···.”
“아니, 힘들게 안 찾아도 돼. 나 여기 있어. 이 대리, 뭐해? 우리 로션이랑 선크림 바르러 가야지!”
“어? 어! 그렇지! 가자! 친구!”
“하하하! 나만 당하는 게 아니라 위로가 되네!”
가까운 곳에서 이 대리가 한혜원에게 잡혀 짤짤 흔들리는 걸 본 서 대리는, 그녀가 자신을 찾기 전에 자진 납세하더니, 이 대리를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빰! 빰! 빰!
재빠르게 사무실로 사라지는 두 대리의 발걸음에 맞춰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
같은 시각.
“어머! 여기 촬영 하나 봐!”
“촬영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출연에 동의하시는 분들께서는, 이 서류에 사인해 주시면 저희가 문화상품권 드리겠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모자이크처리 확실히 해 드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화리 산골 마을의 명소가 된 카페 사랑방에는 커다란 촬영 장비와 제작진들로 북적거렸다.
“저는 찬성이요!”
막내 피디, 임승훈의 설명에 여기저기서 사인을 하겠다며 손이 들렸다.
물론, 긍정적인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우리는 여기 오려고 새로 고침을 몇백 번을 눌렀는데···. 날을 잘못 받았네.”
대놓고 노골적으로 제작진들에게 심기 불편을 표하는 인원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공지를 더 미리 했었어야 했는데요. 대신, 저희가 오늘 오신 분들만을 위한 특별한 간식을 준비했는데, 어떠세요?”
누군가 촬영팀에 불만을 가할 때면, 이동민이 어디선가 바람같이 나와 논란을 잠재웠다.
“카페가 상상 이상으로 괜찮은데? 김 사장, 직원 잘 뽑는 비법 좀 알려줄 수 있겠나?”
여유롭게 불만을 잠재우는 이동민의 모습을 본 이박복 피디가 나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뽑은 게 아니라,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격이라서, 딱히 알려드릴 수 있는 비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보면 볼수록 참 진국이야. 어이고! 우리 이장님 오셨네! 그럼 우리 촬영 시작하자고!”
나는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진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장소가 변경 됨에 따라 집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온 장 이장님을 발견한 이 피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손을 크게 흔들었다.
“네! 조명 준비 완료됐습니다.”
“카메라 세팅 다 끝났습니다!”
“마이크 확인.”
“이장님 준비되셨어요.”
그저 손만 크게 흔들었을 뿐인데, 이 피디의 신호를 캐치한 여기저기서 촬영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케이! 그럼 드론 띄워서 이장님이 카페에 들어서는 것 찍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큐!”
저벅저벅.
인트로를 찍느라 마을 사당 나무 아래에서 우승 무대에서 입었던 스팽클이 빽빽이 달려 자체발광하는 옷을 갈아입은 장 이장님은, 차분하게 피디의 디랙에 따라 발을 움직였다.
오랜 세월 동안 버텨 열 때마다 끼익 소리를 내는 대문이 열리고, 카메라는 장 이장님의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를 움직였다.
간격을 넓게 해 하얀색 파라솔을 씌워 놓은 넓은 마당이 가장먼저 보였다.
작은 대문과 달리 널찍한 마당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물소리가 졸졸 흐르는 연못이 보인다.
살랑.
투명한 물 사이로 지느러미를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물고기들.
아마 아이들이라면, 이곳에서 하루종일도 보낼 수 있는 공간.
카페 마당의 전경을 얼추 담은 카메라는 다시 고개를 180도 돌렸다.
장 이장의 리액션을 찍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려진 카메라에 비친 건 장 이장님뿐만이 아니었다.
“어?”
FD는 영상을 찍다 말고, 렌즈에서 눈을 떼어내고 자신이 본 게 맞는지 확인했다.
“어라?”
아무리 쓱쓱 눈을 닦아보아도 보이는 건 같을 때였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낯선 이와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던 낯선 이는, 피디인지 카메라 렌즈인지 둘 중 하나와 눈을 마주치고 독특한 억양의 영어로 말했다.
“Give me the Hair-boom!!”
반짝.
시청률 상승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장면을 발견한 이 피디는 까만 별 하늘에 뜬 별처럼 눈을 빛내며 소리 나게 고개를 돌렸다.
“상관있는 사람 맞지?”
“...”
“역시 난놈난이네! 좋다! 출격!”
한울에게 물어본 건 예의상이었다는 듯, 이 피디는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카메라를 돌려 낯선 이와 한울, 그리고 장 이장을 동시에 비추며 말했다.
“스탠바이-!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