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50화 (150/163)

나부터 먼저! (2)

Big-D의 수입식품 매니저, 깜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한국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여정이었다.

제일 첫 번째는 초청장이 없어 비자발급을 차일피일 미룬 대사관을 푸쉬하는 일이었다.

'아, 한국에 계약하러 가야 된다고!!'

초청장은 없었지만, 서로 주고받은 메일은 있으니, 프린트한 메일을 들이밀었다.

그다음은 윗선들을 설득해야 했다.

'자, 비자 나왔으니까 갑니다. 항공권은 취소 기한 지나서 취소 못 해! 예? 우리 회사랑 계약맺은 곳이라 상관없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계약을 맺은 곳이라곤 하지만, 일주일 두고 티켓을 취소하면 두고두고 욕할걸요? 예? 안 한다고요? 뒤에서 할 겁니다! 무조건!'

욕을 먹을 바엔 어차피 회삿돈으로 산 티켓! 시원하게 출장 가 뭐라도 얻어오면 그게 이득 아니냐고! 깜은 자신의 출장을 취소시키려는 매니저의 방에서 드러누웠다.

배 째! 난 가야겠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매니저한테만이라도 헤어붐을 하나 먹일 걸 후회했지만, 이미 제 뱃속에 들어가 사랑스러운 머리카락으로 치환된 마당에 어찌할 건가.

사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매니저에게 양보하진 않았을 것이다.

"뭐,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거지. 매니저가 내 깊은 마음을 알라나."

초청장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고생하며 오지 않았겠지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헤쳐 와서일까.

돌돌돌.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 밖으로 나온 깜의 만면엔 미소가 가득했다.

*

하지만 그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으헉. 헉.]

분명, 공항 밖을 나올 때만 해도 쌀쌀함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Nóng quá! (더워!)”

더위를 참지 못하는 이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회사를 이런 오지에다···!]

한국에 오기까지 많은 허를 넘었다. 비자승인을 미루는 대사관도 푸쉬하고, 자신의 출장을 취소하려고 하는 매니저 앞에서는 드러누워 농성까지 벌였다.

바이어가 간다는데도 한사코 사양하는 업체 탓에 바이어라면 마땅히 받을 혜택도 받지 못했다.

픽업해 주러 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아니 왜!!]

인천공항을 나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 기존 한국 거래처 직원을 통해 받은 지도대로 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안내판에는 영어가 기재되어 있었을뿐더러, 한국인들 대부분이 영어를 할 줄 알았다.

무사히 한국 거래처 직원이 대신 티켓팅해준(물론 돈은 줬다.) 고속버스를 타면서는 다음 한국 방문 때는 거래처 직원들에게 픽업 요청을 하지 않고 스스로 다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을 할 정도였다.

[여긴 버스도 없냐고!]

하지만 문제는 고속버스에서 내리고부터였다.

휘황찬란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서울과 달리, 고속버스가 내려준 목적지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서울이 고도로 발달한 도시라면, 이곳은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같이 보일 정도였다.

제대로 된 곳으로 찾아왔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버스 운전기사를 찾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저와 같이 버스를 탄 승객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번역앱, 피피코를 들이밀었지만, 머리에 구름을 얹은 어르신들은 눈을 비비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을 살래살래 저었다.

하는 수 없이 깜은 반신반의한 채로 지도를 켜 한국 업체 직원이 미리 표시해 준 곳을 향해 더듬더듬, 걸었다.

2차 목적지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그가 땀을 닦을 때였다.

‘일하러 가나?’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말로.

‘이거 안타나?’

‘한국말 할 줄 모르나···?’

‘이거 마지막 버스인데, 타야 할낀데? 고? 유고? 노?’

빠르게 지나가는 말에 깜은 서둘러 피피고를 켰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정류장에 도착한 2번 버스를 타고 사라졌다.

다들 버스를 타면서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보았지만, 괜찮았다.

자신이 탈 버스는 5번이었으니까!

[맙소사. 왜 가도 가도 끝이 없지?]

하지만 깜이 기다리는 5번 버스는 3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 5번 버스가 올까 봐 눈도 마음대로 깜빡이지 못하여진 지 2시간째.

‘어? 오늘 버스 끊겼을 텐데···.’

긴 팔의 얇은 셔츠를 입은 깜과 동년배로 보이는 남자가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 오토바이를 세웠다.

‘여길 간다꼬? 거기로 가는 버스는 오늘 애저녁에 끊겼제! 다른 방법은 없냐고? 택시를 잡아서 가던가, 아니면 나도 잘은 모르는데, 저짝에 가면 사랑방으로 가는 셔틀이 있다 카긴 카던데...’

느릿한 말투를 가진 남자 덕분에 아직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랑방 회사가 있는 곳으로 가는 버스가 끊겼다는 걸 알았다.

남자가 가리킨 셔틀이 있다는 방향이 지도상에서 확인했던 회사로 가는 방향과 같았기에, 깜은 망설임 없이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금.

돌돌돌돌.

“으악!”

깜은 젖먹던 힘을 내 제 몸만 한 천 캐리어 하나와 큼지막한 하드캐리어 하나, 총 두 개의 캐리어를 끌며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

남자가 말한 장소에서도 30분을 기다려봤지만,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만 찌르륵거렸을 뿐이었다.

멍하게 기다리는 동안에도 퇴근 시간은 다가왔고, 오지 않는 셔틀을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어 깜은 등반을 시작하지 1시간.

“에라이!”

이렇게 오랫동안 걸어본 적이 언제인가.

어릴 때부터 이동은 항상 오토바이로 해 걸어 다닐 일이 없었고, 머리카락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땀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이러다 죽겠다!”

깜은 들고 있던 캐리어를 패대기쳤다.

“여기서 기다리면 누구라도 오겠지!”

사랑방 회사로 가는 길은 이 길이 유일했다.

2차선도 아닌, 1차선.

분명 초입은 아스팔트였는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스팔트보다 흙이 더 많아지는 매-직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죽치고 있으면 오겠지.

털퍼덕.

깜은 도로 한옆, 그늘이 드리워진 곳으로 가 가방을 베개 삼아 몸을 뉘었다.

그늘 밑에 사지를 드리우고 가만히 있자,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끼고 있으려니, 눈이 점점 감겼다.

‘그래. 조금 자는 건 괜찮겠지.’

1시간 동안 걸었음에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거니와, 아직 6시가 되려면 멀었다. 조금은 자도 될 거라 생각한 깜이 그렇게 눈을 감고 단잠에 빠졌을 때였다.

“...Hello?”

물속에서 밖의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할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게 느껴져 눈을 슬그머니 떴다.

“...?”

눈을 뜬 자신의 앞에 보이는 건, 사람.

사람이었다.

드디어 사랑방을 가는 외길에서 사람을 발견한 깜은 외쳤다.

“Oh!!! HELP ME”

아주 크게.

**

흥분한 이 피디가 카메라를 휙휙 돌리는 가운데.

나는 차분히 사태 파악에 나섰다.

“...Hair-boom!”

연신 서리태로 만든 건강음료, 헤어붐을 영어로 외치는 걸 보니 팀원들이 샘플을 보낸 해외 업체에서 보낸 직원일 테다.

외모나 억양을 보아하니, 동남아 쪽의 직원인 것 같아 머릿속으로 목록을 추릴 때였다.

외국인의 뒤를 따라온 지민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한울···! 오? 지금 촬영 중인 거예요? 아, 잠시만요! 저 거울 좀 보고.”

거침없이 나를 부르던 지민이 카메라를 발견하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 아. 크흠. 어머, 촬영 중이신가 봐요? 호호호. 제가 방해를 한 건 아닌지···. 다름이 아니라, 한울아? 여기 오는 길에 세상에, 내가 이 외국인분을 발견했지 뭐니? 어쩜. 마을 입구까지 걸어왔는지, 널브러져···. 아니, 쓰러져 계시더라고. 사랑방을 미친 듯···. 아니, 열렬히 외치셔서 데리고 왔어. 호호호.”

오도도.

입을 한 손으로 가린 채 여성스럽게 말하며 앞으로 다가오는 지민의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와르르 돋았다.

몸은 왜 베베 꼬오는 것인지?

“술 마셨냐?”

“어머. 얘가 무슨 말을. 술을 마시고 어떻게 운전해. 내가 저분을 데려왔다니까? 호. 호. 호.”

제가 원하는 대로 내가 반응해주지 않자, 소름 끼치는 하이톤으로 웃은 지민이 내 옆에 서더니, 아무도 모르게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리고는 낮은 소리로 내게 협박했다.

“협조흐르그.”

가소로운 지민의 협박에 코웃음을 치며 반응하려고 할 때였다.

“어어어? 안됩니다!”

뒤에서 누군가 두두두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박준혁이 불쑥 나타났다.

덥석.

“안됩니다! 아니, 구름 사장님 기다렸습니다! 어서 가시죠!”

황소처럼 지민과 내 사이로 나타난 박준혁은, 옆구리를 찌르던 지민의 손을 잡고 이상한 말을 하더니 지민을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손목도 아닌, 손을 잡고.

“...”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방이 아닌 쌍방통행이었다니.

눈앞에서 불알친구의 연애를 목격했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내 얼굴이 구겨졌다.

으윽.

느끼한 것을 보았을 때처럼 니글거리는 속에 배를 슥슥 문질 때였다.

“Excuse me, Do you know Sarangbang company?”

우리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느라 가빴던 숨을 고른 외국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

“그러니까, 헤어붐 계약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혼자?”

“예쓰! 예쓰! 나는 헤어붐을 강력하게 원하는 바이다.”

“음···. 제가 이메일로 말씀드렸다시피, 생산시설을 아직 증설 중이라, 당장은 국내가 아닌 해외 유통 계약이 어렵습니다.”

“노우! 왜? 나는 원한다! 아니, 우리 베트남 최대 슈퍼체인, Big-C는 아주 강력하게 원한다! 헤어붐!”

“저희 헤어붐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신건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만, 아직까지는 저희 사랑방···.”

“나는, 우리는, 원한다! 헤어붐!”

창과 방패의 싸움을 본다면 이런 것일까.

“둘 다 대단하네요.”

“그렇네.”

나는 베트남에서 헤어붐을 계약하기 위해 왔다며 자신을 깜이라고 소개하는 바이어를 담당자인 이 대리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사랑방 사무실로 데려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상태다.

“언제 끝날까요?”

“글쎄.”

창과 방패의 싸움은 둥 중 하나가 없어져야 결론이 난다.

하지만 이 대리는 침착했고, 깜은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열정적이다.

“장 이장님 노래 하시는 거나 볼까?”

“그러죠.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나가고 싶었거든요. 좀 신나게 들려야 말이죠.”

“나랑 생각이 똑같네. 그럼 베트남 바이어가 목이 좀 마를 것 같은데, 마실 것 좀 챙겨주겠어?”

“어휴. 당연한 말씀을. 이미 제가 물부터 커피까지 다! 챙겨 드렸습니다.”

“오.”

과연. 한혜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음료가 종류별로 트레이에 담겨있었다.

“그럼 가볼까?”

“옙!”

안심한 나는, 촬영을 위해 먼저 나간 서 대리와 김연우와 합류하기 위해 한혜원과 같이 몸을 돌릴 때였다.

쾅!

밖으로 향하는 사무실 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황급한 표정을 지은 서 대리를 뱉어냈다.

“무슨 일이야?”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는 서 대리의 다급한 표정에, 나는 팔짱 꼈던 팔을 풀며 물었다.

긴급한 일이 일어났다면, 서둘러 처리할 요량이었다.

“그, 그, 그!!”

하지만 서 대리는 회의실에 있는 깜보다 더 빨개진 얼굴을 하곤 말을 더듬었다.

“...?”

스스로도 답답한 듯, 가슴을 쾅쾅 때리는 서 대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걸음 다가갈 때였다.

“Hello? I’m Richard from Heathlux..”

헬스럭스에서 왔다는 외국인이 서 대리 뒤에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

서 대리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그 외국인은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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