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53화 (153/163)

미화리 산골 마을의 비밀 (2)

박경배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할머니, 그러니까, 여기 다니고 나서 힘이 팔팔 난다고요?”

“고롬! 매일 여 왔다 갔다 하면서 몸도 움직이고, 사람들이랑 얘기도 하니까 없던 활력이 돌아오더라니까? 참. 여기 밥은 또 얼마나 맛있는 줄 아나? 고기도 매일 나오고! 우리 사장 밭에서 나온 나물로다가 찬을 해주는데, 향긋한 게 밥도둑이라!”

“아···. 점심.”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점심시간과는 한참 멀어진 시각이었다.

“점심 뭐 먹었길래 젊은 사람이 목소리가 그렇게 힘이 없노?”

점심때 뭘 먹었더라.

분명 막내인 이승훈이 김밥을 입안에 우겨놓고 현장을 뛰어다니던 기억은 난다.

“저, 점심 안 먹었을 수도···.”

지방으로 촬영을 오게 되면 한 끼 정도 굶는 건 예삿일이었다.

새벽부터 출발하는 게 보통이라, 밥보다 커피를 먼저 마시며 정신을 깨웠다.

졸면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고, 배가 부르면 졸린다.

그러다 보니 이것만 처리하고 먹어야지, 현장에 가면 먹어야지, 하다 끼니를 건너뛰는 거다. 이번에도 그렇게 놓친 것 같다.

“뭐라꼬?”

하지만 박경배 앞에 있는 이숙자라 자신을 소개한 할머니는 점심을 먹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마치 큰 바위가 떨어져 밭을 덮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대경 질색했다.

“아침은?”

“아침은, 먹었습니다.”

“뭐랑 같이?”

“커피랑, 에너지 바를···.”

“아이고! 미칬다 미칬어!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데! 지금은 젊어서 괜찮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가 고생하면 우얄라꼬! 있어봐라. 여기! 오늘 밥을 한 끼도 못 먹었다는데, 식당에 아직 밥이 있을라나?”

할머니의 놀람은 박경배가 아침으로 고작 커피와 에너지 바를 먹었다는 말에 더욱 심해지더니, 주변에 있는 동료 직원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뭐라꼬? 누가 밥을 못 먹었다고?”

“그게 무슨 소리고? 밥을 못 먹어?”

“쫄쫄 굶었다고?”

“없어도 만들어서 맥여야지!”

이숙자 할머니의 말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점점 퍼지기 시작하더니, 웅성거리던 말은 급기야 박경배를 향해 마당에 있던 모두가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배 안 고픕니다!”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을 받은 박경배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디리링~ 따란!

하지만 이미 마당을 가득 채우던 노랫소리는 멈춘 지 오래. 노랫소리가 멈춘 마당에는 노래방 기기에서 나오는 반주 소리만 가득했다.

“크흠. 밥을 안 먹으면 쓰나.”

프로그램의 메인인 장 이장님도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혀를 찼다.

그러더니 이 피디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피디님은 자셨나?”

노래방 마이크에 울려 산신령이 말하는 것처럼 사방을 울리는 장 이장님의 목소리에, 이 피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 먹은 것 같은데요···?”

*

“우리 마을이 요즘에 카페다 한과다 뭐다 유명해졌는데, 원래 우리 마을은 음식솜씨 좋기로 유명했다! 다들 손맛이 좋아가, 모네기 배 팔씨름 할 때면, 다들 막 어? 우리 마을이랑 같이 할라꼬 어이구. 말도 마라. 특히나 저 밑에 마을 이장이 이번에 지고 얼마나 배를 잡고 뒹굴었는지 아나? 어? 그 반찬은 우리 꽃분이가 만든 게 틀림없다! 맛있제?”

회의가 길어진 탓에, 배고픔을 호소하는 바이어들을 데리고 식당에 왔더니, 세상 빛을 다 반사하는 자켓을 입은 장 이장님이 사람들로 빼곡히 찬 테이블을 순회 공연하듯 돌았다.

“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그, 방송 주제가 시골 마을 사람들이랑 한데 모여서 노래 부르는 거 아니었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앞장서 식당 문을 열던 이 대리와 서 대리가 멍하니 안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가 전해 들은 바도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았다. 간단히 사랑방 카페를 배경으로 사람들과 노래하는 걸 찍고, 지역 일자리 홍보를 해줄 겸 공장 사람들과도 잠깐 찍고 갈 거라는.

“뭐, 촬영이 일찍 끝나서 밥 먹는 걸 수도 있지. 들어가자고. Please.”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대리들을 진정시키고, 그들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홱홱 돌리고 있는 바이어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팀장님! 이쪽이요!”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미리 식당으로 보내 준비를 부탁한 한혜원과 김연우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와우. 이게 우리 저녁입니까? 대단한데요?]

[한국음식을 처음 먹어보시나 봅니다? 흥. 젓가락은 쓸 줄 알려나 몰라.]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리처드를 보고 깜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 공장에서 누가 먼저 제품을 납품받는가로 눈에 불을 튀기던 둘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떤 나라에서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까로 신경전으로 펼치고 있었다.

[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요즘 미국에 한국 음식이 유행해서 젓가락질을 못 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죠. 아, 물론 저는 그 전부터 저희 동네에 있는 단골 한국 바비큐 집이 있어서 능숙하다고 할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가죠. 아, 깜 씨야 말로 나무젓가락이 아니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와···.”

신사적이고 예의 바르게 말하면서 깜을 보내버리는 리처드의 스킬에 서 대리가 감탄했다.

서 대리의 모습을 힐끔 본 깜은 요란스럽게 헛기침하며 테이블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크흐흠! 나야말로 제가 사는 동네는 나무젓가락이 아닌, 쇠젓가락을 사용한다는 말을 안 했었나···? 아무튼. 이 음식이 뭔지 아시나?]

아무래도 젓가락으로는 이기지 못할 것을 파악해서인지, 순식간에 주제를 바꿨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잡채? 김치? 오. 이건 무김치군요. 오우! 파김치도 있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인데!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방과 저는 운명인 것 같네요.]

[허. 허허.]

한국 음식에 대한 우위를 점하려다, 자신도 그저 뭉뚱그려 김치라고 알고 있던 것들의 종류도 정확하게 맞추는 리처드의 모습에 깜은 저도 모르게 어이없는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Big-D 내부 시찰을 할 때, 김치 코너를 더 유심히 볼 걸 그랬다.

항복.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한국 음식에 대한 지식이 더 많은 것 같은 리처드를 향해 깜은 두 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애써 추진력을 위해 한 발짝 뒤로 가는 거라고 위안했지만, 이미 테이블의 주도권은 리처드에게 쥐어졌다.

깜의 항복선언에 리처드는 신사다운 미소를 더욱 깊게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자! 모자라면 더 있으니까 또 먹고!”

“어? 그럼 저 떡갈비 하나만 더···.”

“그럼 전 해물동그랑땡 두 개만 더···.”

“저는 머위 된장 무침···.”

“아! 다들 어르신들 귀찮게 하지 말고 알아서 갖다먹어!”

“옙!”

걸신들린 듯 식판에 얼굴을 박고 밥을 먹는 방송국 직원들과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어르신들.

뭐라도 더 챙겨 주려는 장 이장님과 어르신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도우라는 이 피디.

그들의 주변으로 설치되어있는 카메라들···.

어수선하면서도 웃음이 넘치는 광경을 본 리처드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역시. 사랑방은 유명하군요. 더 유명해지는 건가요? 이거, 참. 축하해 드려야 하는데,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사랑방의 발전을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는 잊으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Big-D도! 저도! 잊지 말아 주십쇼!]

유명해진 후, 자신들을 뒷전으로 두지 말라는 부탁.

얼핏 간절함도 보이는 그들의 부탁에 나는 말 없이 숟가락을 들어 시락국을 한술 뜨며 웃었다.

[우선 드시죠.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을 한국에선 식구라고 합니다. 그리고, 식구는 버리지 않죠.]

반찬을 나누고, 밥을 같이 먹는 사이인 식구. 할머니는 항상 내게 말씀하셨다.

식구는, 꼭 가족만이 식구가 아니라고.

같이 모여 앉아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식구라고.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도, 함께 모여 간식을 나누어 먹는 친구들도, 모두 식구라 부를 수 있다 하셨다.

[아···.]

그리고, 나는 한번 온 인연은 잘 놓치지 않는 편이다. 상대방이 놓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러니, 식사부터 맛있게 하시죠, 저기 사람들 반응 보면 알겠지만, 저희 식당 음식이 맛있는 편입니다. 여기 올라온 채소들은 모두 저희 신비농장 작물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아, 혹시 비건이시다면, 이쪽은 고기가 들었으니 피해서 드시면 될 것 같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멀리서 날 찾아온 손님이라면, 그게 누구든 근사하게 대접하라고.

[오. 미국에 가면 제 단골집을 못 갈지도 모르겠는데요? 오, 신이시여. 왜 이런 멋진 음식을 지금에서야 맛보게 하셨나이까. 미스터 킴, 이걸 가지고 식단을 만들어 출판해 보실 의향은 없습니까? 물론, 미국에서요. 출판 관련된 업무는 당연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랑 일하던 편집자가 아주 일을 잘하거든요···.]

[베트남으로 한번 초대하겠습니다.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베트남으로 오시면 제가 아주 근사하게 대접하겠습니다. 바다 앞에 갑각류를 아주 잘하는 집이 있는데···.]

멀리서 우리 제품만 보고 발걸음한 손님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를 한다.

[언제든지요. 앞으로 이 두 명이 베트남과 미국을 총괄할 예정입니다. 우선, 그럼 일정을···.]

인연이 이어지고, 그 인연들이 쌓이면 할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어? 저 그럼 베트남 출장 가는 겁니까?”

“미국? 전 미국인가요? 해외여행 간 적 한 번도 없는데···.”

“대리님, 출장이요. 여행이 아니라.”

“선물 사 올게! 미국 특산품 뭐가 있지?”

“적극적으로 대리님의 미국 여행을 지지합니다.”

“이 대리님···? 베트남은 다람쥐 똥 커피가 유명하대요.”

“으응?”

“돈은 드릴 테니까 3개만요.”

“어? 어. 오케이!”

뭐, 일단은 첫 출장에 팀원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이렇게 또 할머니의 말이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제는 바이어들과 각 도시의 특산물이 뭔지에 대해 다 같이 토론하는 팀원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자니, 이번에는 내 뒤에 또 다른 인연이 나를 불렀다.

“어? 오! 김 사장! 언제 왔어? 내가 밥 먹느라 이제 알았네. 내가 차린 건 아니지만, 맛있게 먹고!”

“피디님, 여기 김 사장님 공장에 있는 식당인데요?”

“아, 맞다. 내가 깜빡했네. 여기 김 사장 회사지! 너무 맛있게 먹다 보니 내가 참···. 아! 이렇게 맛있는 저녁을···. 아니지. 점심? 이것도 아닌데···.”

이박복 피디와 그의 직원인 박경배.

엄지를 척하고 들며 동시에 쭉 내민 배는 그들이 얼마나 음식이 만족스럽게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점심인지 저녁인지에 대한 주제로 토론하고 있는 피디들을 향해 말했다.

“간식이라고 하죠.”

“간식이요?”

“간식이라기엔 너무 많이, 잘 먹었는데?”

점심은 몇 시간 전에 끝났으니, 먹었던 거라곤 원래 있던 음식에 몇 가지를 더한 게 다 일 테다. 남은 음식을 데워 주는 건 근사한 대접이 아닐 터.

배가 불러 내일 아침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하는 이 피디와 사무실에서 계약 건으로 신경전 했던 게 언제였다는 듯, 각국의 핫팀을 공유 중인 팀원과 바이어들.

모두가 멀리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

귀한 인연임이 틀림없다.

“다들 먼 걸음 하셨으니, 잔치해야죠. 장 이장님, 오늘 소 잡은 데 있을까요?”

“소? 당연히 있지! 있어봐라. 내가 입에서 살살 녹는 거로다가 가지고 오라고 할 테니까. 어! 내다. 장순택이. 니 오늘 소 잡는 날이제? 아니라고? 그럼 옆에 있는 축사 중에 오늘 소 잡은 데 있으면 한 마리 여기로 갖고 오라고 해라! 어? 니가 지금 잡겠다고? 됐다. 질겨서 우째 먹으라고. 어? 숙성된 것도 서비스로 주겠다고? 그래서, 얼마에 줄 건데?”

그리고 나는 그 인연들에 내가 할머니로부터 배운 걸 이행하려 한다.

입꼬리를 귀에 건 채 아는 축사와 협상을 하느라 바쁜 장 이장님을 일별한 나는, 뽈록 솟아오른 배를 퉁퉁 두드리다 말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이 피디에게 말했다.

“다들, 소고기 좋아하시죠? 투 뿔 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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