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54화 (154/163)

미화리 산골 마을의 비밀 (3)

해가 진 깊은 산골 마을에 노란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팅. 팅.

컹컹

가로등이 들어오는 작은 소리에, 동네 개들이 짖으며 다가오는 저녁을 맞이했다.

그리고 여기.

아궁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마을회관 마당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마당 한쪽에서 연기를 피어올리는 아궁이에는, 뒤집힌 솥뚜껑이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나무좀 더 줄까?”

“아니. 오늘 불이 진짜 좋네. 고기 가지고 온나!”

“오케이!”

첫 번째 아궁이에 있는 강 할머니의 명령이 내리지자, 불을 지피고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심 할아버지가 얼른 몸을 돌려 고기를 내리고 있는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트럭 위에서 계속해서 고기를 꺼내 건네는 트럭 주인을 보고 말했다.

“고기 내놔라! 고기! 제일 맛있는 거 내놔라!”

“좀만 기다리라. 내 아직도 내리고 있다 아이가. 뭘 내렸는지도 모르겠네.”

“비키봐라! 내가 내리게! 니 내리는 거 기다리다가 다 굶어 죽겠다!”

“오. 그럴래? 그럼 내야 고맙지.”

“...싫다. 갑자기 싫어졌다. 얼른 마저 내리라.”

“고기는?”

“내도 어느 정도 볼 줄 안다. 눈 내린 것처럼 보이는 고기가 맛있다 아이가.”

“야! 내 도와주면 천엽 줄게!”

“천엽···?”

“그래!”

“내는 육회가 더 좋다.”

트럭 안쪽에 아직까지 쌓여있는 고기를 본 심 할아버지는 천엽을 주겠다는 말에도 흥, 했다.

하지만 트럭 주인은 그의 말에 오히려 샐쭉 웃었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황급히 내리고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육회···? 아! 그래! 육회도 당연히 있제! 근데···. 그게 저 안쪽에 있어가···.”

“안쪽에 있다고?”

“어. 그게 신선해야 하니까네, 내가 제일 안쪽에 딱! 잘 놔뒀제!”

“그래? 딱 기다리라. 내가 꺼내러 간다!”

“진짜? 이 앞에 거 다 꺼내야 돼서 힘들 텐데···.”

“괘안타! 있어봐라!”

“어···. 어!”

트럭 주인은 심 할아버지가 올라가자 싱글벙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크흠!”

심 할아버지에게 제 표정을 들키기 않기 위해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지만···.

“뭐하노? 퍼뜩 안 가꼬 가나? 퍼뜩 온나!”

다행히 트럭 위에 올라가자마자 온 마을 사람을 부르며 고기를 던지기 시작하는 심 할아버지는 손 뒤에 가려진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

*

심 할아버지의 패스와 강 할머니의 진두지휘로 테이블에 음식이 그득그득해질 무렵.

고수레한 고기를 한 점씩 입에 문 정령들은 신나게 마을 주민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꽤개객! 꽉! 꽉! 꽈가가각!]

[디기디기디기디기 딩! 캬하핫! 롹액롤이다!]

우리 집의 공식 가수인 찹쌀이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농장의 파수꾼, 라텔도 그 뒤를 헤드뱅잉을 하며 따라다녔다.

[컁!]

노을도 기분이 좋은지 오늘만큼은 두 음치의 노래에도 귀를 막지 않고 가만히 내 어깨에 앉아 기분 좋은 콧소리를 냈다.

[크, 킁!]

포동은 전에 없을 만큼 눈을 휘둥그레, 크게 뜨며 음식이 푸짐하게 올라와 있는 상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음식을 발견하면 나에게로 뛰어와 쿡쿡 찌르는 거다.

[킁!]

“여기.”

[고맙다! 킁!]

몰래 음식을 쥐여주면, 두 손으로 받아들고 내 무릎 위로 올라와 냠냠거리며 행복해했다.

그때였다.

“우리 김 사장! 그래서, 진짜 얼굴 안 비출 거야?”

장 이장님의 담근 술로 마을 어르신들과 대작하다 벌써 얼굴이 벌게진 이 피디가 내 어깨에 제 팔을 걸쳤다.

“네. 아직은요.”

“도대체 왜? 다른 사람들은 TV에 얼굴 한번 비추려고 난린데···. 아니, 일반 사람들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내 프로그램이 출연하려고 줄을 섰다니까?”

이 피디는 출연 제의를 거절한 나를 보며 제가 얼마나 유명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에 대해 설파했다.

“알죠. 그래서 더 그렇습니다.”

“으잉?”

어르신들과 한참을 같이 있어서인가. 이 피디의 입에서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당황할 때 내는 소리와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피디님 예능에 출연하면 연예인이건, 일반인이건 유명해지잖아요?”

“그렇지.”

“그래서요.”

“으응?”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이 피디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아니, 남들은 다 유명해지려고 난린데 왜? 나한테 촬영비까지 다 대줄 테니까 1분 만이라도 자기 회사 로고 띄워달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참. 여긴 찍어준다고 해도 싫다네.”

몇 번을 설득해도 넘어오지 않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 이 피디는, 이제는 저도 더 말하지 않겠다며 등을 돌려 앉았다.

취하면 본심이 나온다더니. 아무래도 이 피디는 마음속에 어린아이가 자리 잡은 것 같았다. 하기사. 그런 마음이 들어있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예능은 없었을 테지.

나는 초등학생같이 서운함을 밖으로 표출하는 이 피디의 빈 잔을 채우며 말했다.

“네. 제안은 감사하지만, 여기서 더 유명해지면 곤란해서요.”

“왜지?”

“너무 급하게 성장하면, 부작용이 있는 법이죠.”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온 지 이제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너무 빠른 변화는 필연적으로 낙오자들을 만드는 법.

나는 우리 미화리 산골 마을 주민들이 언제나 오늘과 같은 미소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기를 바랬다.

다 같이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해하며, 건강하게···.

“야! 내 육회!!!”

“먼저 먹은 사람이 임자지. 니 육회가 어딨노?”

“내가 처음부터 찜꽁했거든?”

“찜꽁은 무슨 찜꽁? 이게 니끼가?”

“어! 내끼다! 내가 이거 먹을라꼬 트럭에서 고기를 얼마나 날랐는 줄 아나! 다시 내놔라!”

“벌써 목구멍으로 넘어갔는데 어쩌누?”

“우짜기는! 내놔라! 내꺼다!”

뭐, 가끔은 다투는 일들도 있겠지만···.

“네가 산 것도 아니면서 무신···. 한울아 육회 무봤나? 억수로 맛있다! 내가 니가 사는 거라고 해서 특별히 입에서 살살 녹는 걸로다가 골라 왔다 아이가! 함 무봐라! 진짜 녹는다!”

“이익···!”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들처럼 싸우는 모습은 조금 부끄럽긴 하다.

“할아버지, 저희 육회 안 먹으니까 가져가서 드세요.”

한국 음식에 감동해 눈물을 글썽이는 외국인들의 사이에서 싸움을 준비하는 할아버지들을 말리기 위해 나는 우리 테이블에 아직까지도 처음 모양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육회를 건넸다.

“맞아요. 저희 육회 먹는 사람 없어요!”

“으잉? 진짜가?”

“넵! 어서 드세요!”

이어지는 우리 테이블의 재촉에 서로의 머리를 움켜 지려던 할아버지들이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진짜?”

“네! 안 그래도 저희 테이블에는 손대는 사람이 없어서 다른 테이블로 넘길까 생각 중이었어요.”

“으잉? 왜 그 맛있는 걸 왜 안 먹는데?”

“음···. 익숙하지 않아서요?”

“익숙하지가···. 않다고?”

육회를 준다는 말에 싸움을 멈춘 할아버지들을 한달음에 우리 테이블로 달려와 육회가 익숙하지 않다고 한 김연우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저희가 서울 토박이들이라···.”

“그런 게 어딨노? 한울이 자는 어릴 때부터 안 익힌 건 안 먹는다 캐서 그렇다 쳐도···. 설마···. 서울에는 육회가 없나?”

“뭐라카노. 전부 다 서울로 올려보내는데 없을 리가 있나. 전국에서 제일 좋은 거로만 골라서 서울에 보낼끼다.”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인 줄 아나? 진상품 올리는 것도 아니고. 없을 수도 있지! 내 말이 맞제?”

“어···. 그게···.”

자신에게 몰린 시선에 김연우의 낯이 파리해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서울에도 육회 파는 집 많아요. 다만, 너무 비싸기도 하고···.”

정말 비싸긴 했다. 농장직영이라는 곳에서도 1접시에 5만 원 남짓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 특유의 식감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일단 생고기잖아요.”

마을 잔치에서는 항상 육회가 등장하고, 나를 제외한 모두는 잘 먹었기에, 대학교에 와서야 나는 육회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컹거리는 게 싫다는 사람도 많고···.”

왜 서울에 육회 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있는 팀원들처럼 못 먹는 사람들이 많은지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뭐? 아! 알았다. 생소한데, 식감도 물컹거려서 안 먹는다는 거제? 자! 나와봐라. 내가 어떻게 먹는지 알려줄 테니까!”

내 설명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심 할아버지는 걸터앉아있던 몸을 움직여 육회가 있는 우리 상위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자! 이게 다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다! 이것 봐라. 육회는 말이다! 모름지기···. 에잇 달걀노른자가 얼마나 안 먹었으면 굳었노! 거기! 절로 가서 노른자 새것 좀 갖고 와봐라.!”

그러더니 육회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던 노른자를 걷어 빈 접시로 놓고는 내 옆에서 눈을 끔뻑거리고 있던 이 피디를 향해 말했다.

“예? 저 말씀입니까···?”

“그럼 또 누가 있는데?”

“아···. 옙! 어른 가지고 오겠습니다! 야! 경배야!”

알콜로 빨개진 볼을 하고서 휘청대며 자신을 가리키던 이 피디는 심 할아버지의 말에 신속하게 고개를 돌려 다른 테이블에서 고기를 먹고 있던 박 피디를 불렀다.

“눼?”

입이 터지라 고기를 욱여넣고 있던 박경배는 빵빵한 볼을 한 채 대답했다.

“거! 노른자 좀 가져 와봐!”

이 피디는 당연하다는 듯이 박경배를 시켰고···.

“눼···.”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부하직원, 박경배는 이미 터질 것 같은 볼에 고기를 한 점 더 욱여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자네.”

가만히 이 피디가 하는 모습을 보던 심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향해 날아갈 것 같은 목소리와는 대조적이었다.

“네, 어르신.”

“원래 어린 사람들이랑 있으면 나이 든 사람이 하는 거라.”

육회에 조금 남아있는 노른자를 제거하던 젓가락을 칼처럼 든 할아버지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이 피디를 보았다.

“예? 그럼 어르신이···.”

“떽! 나는 지금 육회의 참맛도 모르는 이 불쌍한 젊은이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잖아. 나는 일을 하고 있고. 그짝은 안 하고 있고. 안그나?”

“네···. 경배야, 내가 간다. 앉아있어라.”

이 테이블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건 심 할아버지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던 이 피디는, 결국 혼난 강아지처럼 어깨를 축 내리고 힘없이 오른팔을 올려 박경배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렇지! 거기 젊은 방송국 사람은 앉아서 많이 먹어요. 그래그래.”

심 할아버지는 어느새 볼이 터지라 넣었던 고기를 다 삼키고 감동 어린 눈빛으로 저를 보는 박경배에게 자비로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그 표정 그대로, 젓가락을 든 채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지금부터 육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잘 봐봐요?”

싱긋.

이 피디를 한방에 KO 시킨 심 할아버지가 눈을 접어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팀원들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빠르게 상위에 올려놓고는 무릎을 꿇었다.

“네, 넵!”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무릎에 주먹 쥔 두 손을 올리고 절도있게 말하는 팀원들은 어쩐지 불쌍해 보였다.

[컁! 나도 열심히 배울 준비가 다 됐다! 얼른 보여줘라!]

[지금도 맛있는데 더 맛있어진다는 말이냐? 얼른 가르쳐달라! 꽉! 내가 힘이 나는 노래를 특별히 불러주겠다! 꽤애애액! 꽤객! 꽤개객!]

[훗. 아무리 노래를 불러봤자, 이 몸의 락앤롤에는 이기지 못하지. 캬하핫! 피쓰!]

그리고 육회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신난 정령들까지.

[킁!]

포동이는 벌써 엉덩이를 심 할아버지 옆에 딱 붙인 채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왜인지 머리가 아파져 오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온 마을을 비추는 태양을 몰아낸 하늘은 까맣게 물들어 하나둘, 엷은 빛의 점을 찍고 있었다.

“...”

지금은 미약한 빛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위가 더 어두워질 때면, 저 별들은 더욱 빛날 것이다.

별들이 하나둘 모이고 모여, 하늘에 수를 놓으면 커다란 은하수가 된다.

뭇 사람들이 그것을 보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오! 노른자 갖고 왔나? 아이고 수고했다. 자! 니도 앉아서 잘 봐라. 육회는 말이다. 이 노른자랑 양념이 생명이다.! 이 노른자로 말할 것 같으면, 장 이장이 그 싸나운! 수탉에 맞서 싸워서 얻은 귀한 유정란이고! 이 양념으로 말할 것 같으면! 힘만 센 강 씨가 만든! 양념장인데! 힘이 세서 그런지 손맛이 좋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서울에서 온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육회 맛있게 먹는 법’을 강의하는 심 할아버지의 주름진 눈 안에는 더없이 찬란한 별이 떠 있었다.

여기 모인 모두의 눈에 뜬 별들.

은하수가 될 별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었다.

즐거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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