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56화 (156/163)

가을 운동회? 마을 운동회! (2)

미화리 산골마을의 모든 일과가 끝난 시각.

오후 4시.

“왜 그러나?”

간질간질한 귀를 손바닥으로 쓸었더니, 장 이장님이 아랫마을 차 이장과 얘기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나를 살폈다.

“아뇨.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서요.”

아닌게 아니라, 누군가 내 얘기를 하고 있는지 갑자기 귀가 가려웠다. 노을이 지금 내 모습을 봤다면 어느쪽 귀가 가려운거냐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을테지.

한번 알려준건 절대 까먹지 않는 똑똑한 노을이니 말이다.

지금은 찹쌀이와 함께 라텔에게 간식을 가져다 주겠다고 산으로 가 여기 없는게 아쉬울 뿐이다.

그때였다.

“참. 내도 여기로 이사를 와야하나... 다들 신수가 왜이렇게 훤하노?”

가만히 나와 장 이장님을 보던 차 이장님이 불퉁하게 말했다.

“뭐라노?”

장 이장님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같은 미화리에 사는데, 어디는 날이 가면갈수록 사람들 얼굴에서 광이나고, 어디는 맨날 주름 늘어가는 게 이상해서 그런다.”

으쓱.

아랫마을 차 이장의 부러움 가득한 목소리에 장 이장님의 어깨가 올라갔다.

“도대체 비법이 뭔데? 암만 물어봐도 어째 아무도 말을 안하노. 니가 협박했나?”

“협박은 무슨! 내가 협박한다고 들을 사람들이가? 우리 마을 사람들이. 강순자를 생각해봐라.”

“아... 글네.”

“‘아, 글네.’는 무슨 글네고. 퍼뜩 이거나 봐봐라.”

“아따 마. 딴짓도 못하게 하네. 이거 비밀 있는데 알려주기 싫어서 그런 거 아이가? 그래! 일단이거나 얼른 끝내보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얼른 끝내고 밥 묵자! 한울아, 이거 좀 봐봐라 어떻게 생각하노?”

산골마을 장 이장님과 아랫마을 차 이장님. 그리고 나는 현재 당산나무 밑 평상에 앉아 평상 위에 놓은 커다란 종이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음... 일단 전부 몇 명이 참가한다고 했죠?”

“우리 마을에서만 32명. 저짝 마을에서는 20명.”

커다란 종이 제일 위에는 [미화리 가을 운동회 회의 0801]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니 근데 니네 반칙 아니가? 왜 그 짝 마을 사람들 명단에 어? 젊은 아들이 와이리 많은데? 너무 많은 거 아니가? 니 다른 데서 용병 데리고 온거 아니가? 용병 데리고 와서 니 마을 사람이라고 하면은... 가만 안 둔다!”

“용병은 무슨 놈의 용병이고! 내가 닌줄 아나. 야들은 전부 다 우리 마을 사람이다. 안 그러나, 한울아?”

아직 여름이 지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왜 벌써 보통 10월이나 하는 가을 운동회 논의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미화리의 슈퍼스타, 장 이장님의 스케줄에 맞춰서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다.

“니는 뭐 불리하면 한울이 부르노! 한울아, 대답 안 해도 괜찮다! 니! 이장이면 이장끼리 얘기해야지, 와 자꾸 아를 끌어들이는 건데!”

“애라니? 한울이 쟈가 서른 넘은 지가 언젠데! 올해로... 몇 살이고?”

차 이장에게 삿대질하던 장 이장님이 돌연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저 서른 중반입니다. 차 이장님이 말씀하신 젊은이들은 이번에 우리 마을로 이사 온 저희 공장 직원들입니다.”

나이는... 이미 잊은 지 오래.

서른까지만 친구들이 달걀 한판을 사서 주는 바람에 기억에 남아있고, 그 이후에는 그냥 살려고 아등바등, 어쩌다 보니 나이를 세지 않게 되었다.

“니도 그런 나이가 됐나. 참... 세월 빠르제. 니 어릴 때 나이 더 먹을 거라고 떡국 10그릇 먹겠다고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원래 젊을 때만 나이 먹는 걸 센다. 어른 되겠다고. 어른은 시간만 지나면 되는 건데... 왜 그리들 빨리 크고 싶어하는지 원.”

나이를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한 나의 답변이 장 이장님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듯했다.

“원래 남에아가 제일 빨리 큰다 안카나! 우리 나이 먹는 건 생각 못 하고, 다른 아들 보면서 놀라는 게 웃기긴 하제... 근데, 한울이 아직 장가 안 갔나? 나이가 서른 중반인데? 야, 내 때는 말이다, 어? 니 나이에 벌써 아가 셋이었다! 우리 때는 결혼 안 하면 어른들 축에도 안껴줬다! 집안 대소사 얘기할 때도...”

반면 차 이장님에겐 잔소리를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차 이장님의 잔소리에 나는 우리 마을 젊은이들의 정체를 설명하다 말고 그저 빙긋 웃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랫마을 이장님이라고 해도, 어릴 때부터 봐 온 터라 잔소리가 그리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차 이장님의 잔소리가 괜찮은 건 나뿐이었는지 옆에서 노성이 튀어나왔다.

“아, 쫌!”

“아이고! 기차 화통 삶아 먹었나? 귀 떨어질 뻔했다!”

장 이장님이 고함을 바로 옆에서 들은 차 이장님이 앉은자리에서 펄쩍 뛰며 귀를 막았다.

“지금 니 잔소리 들을 시간 없거든? 오늘 할 게 얼마나 많은데 한울이 보고 어린이 아직 됐다 안됐다 잔소리고!”

“하이고마. 알았다. 내도 한울이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 누가 욕했나? 아, 알았다! 니가 무슨 동물이가 이를 드러내구로.”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항상 내 마을이 더 낫니 네 마을이 낫니 싸우던 과거가 있어서일까. 장 이장님은 차 이장님과 있을 때 제일 유치해진다.

“크흠. 지금부터 딴말하지 말고 끝내는기다. 자꾸 방해하면 니 밥 안 준다?”

“아이고. 제일 나쁜 사람이 밥으로 뭐라카는 사람이랬다! 됐다! 니가 안주면 제수씨한테 얻어먹으면 된다.”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

“형수는 뭔 형수고! 태어난 연도도 같으면서!”

“뭐라꼬? 니는 11월생! 내는 4월생! 내가 밥을 니보다 1,000그릇은 더 먹었을끼다!”

“뭬?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내 태어난 연도는 틀렸다! 우리 어무이가 출생신고를 늦게 해가 1년이 밀렸다니까? 내가 니보다 1살 더 많다고!”

“하이고. 출생신고를 얼마나 늦게 하면 11월생이 되는데? 출생신고 늦게 한 거로 나이 따질 것 같으면 4월생인 내가 더 말이 되지! 안 그러나, 한울아?”

“...”

나는 이 회의를 빨리 끝내자는 말을 내뱉자마자 또다시 차 이장님과 싸우는 장 이장님이 모습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참을 미소를 유지한 채로 두 이장님을 번갈아 쳐다보던 나는, 작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장님들, 자꾸 싸우시면 제 마음대로 정하겠습니다. 운동회니까 술 빼고, 노래방 기기도 빼고. 저희 사랑방에서 협찬하기로 했던 간식들도 빼겠습니다.”

““으응?””

두 이장님이 공통적으로 이것만을 꼭! 있어야 한다는 것들을 배제 시킨다고 하는 내 말이 끝나자, 두 분의 고개가 순식간에 나에게로 돌려졌다.

“안된다! 술 없으면 그게 어찌 잔치고!”

“잔치가 아니라, 운동회입니다. 술 마시고 뛰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아니! 한울아! 술은 각자 맡은 종목 다 끝내고 마시게 하면 되지 않나? 니도 동의하제, 차 이장?”

“하모! 그리고 노래방 기기도 안 된다! 노래 부르는 것도 운동 되는 거 모르나?”

“노래가, 운동이.. 돼? 아아아! 되지! 당연히 되지! 노래 부르고 나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건강해진다는 증거다!”

제지를 가한 순간, 공통의 적이 생기는 순간 아군도 적군도 모두 한 편이 된다는 걸 두 이장님이 몸소 증명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지금 저희가 계획하고 있는 건 잔치가 아니라, 운동회...”

“운동회니까 더 협찬이 있어야제! 어? 사람도 많이 모이는데 장사하는 사람이 홍보해야지. 안 그러나?”

“맞다! 사랑방에서 협찬한다고 해서 지금 우리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 줄 아나? 한 이장! 내는 니말에 다 찬성! 어! 젊은 아들이 회사 다닌다고 이 산골짝에 들어와 가 사는데, 당연히 마을 사람이지! 암!”

“내도 니 말에 동의한다! 너무 젊은 사람들이 많으면 한쪽이 불리해지니까, 내가 우리 마을 젊은 아들 중에 제비뽑기해서 그날만 니네 마을 편 되라고 할게!”

그리고는 환상의 짝꿍처럼 장 이장님이 쿵! 하면, 차 이장님이 짝! 하기 시작했다

“어? 어! 늘어가는 게 내는 너무 늘어가는 게. 그라믄 천막이랑 의자 잡다한 건 우리 마을에서 다 준비해서 갈게!”

“그래? 그럼 우리가 음식 만드는 건 다 가지고 갈게!”

“장소는 장성 초등학교 운동장 맞제?”

“어! 맞다! 날짜는 9월 3일 토요일 맞제?”

“어! 맞다!”

“아이고 그럼 정할 거 다 정했네! 자자, 다들 밥 무러 가자!”

순식간에 합의를 본 이장님들은 절친한 친구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는 같은 곳을 가리켰다.

“이장님들, 진짜 다 정하신 거 맞습니까? 나중에 가서 마음 변하시면 안 됩니다.”

“하모! 하모! 사람이 말을 한번 꺼냈으면 지켜야지! 바꾸는 거 아니다.”

“맞제. 남아일언 중천 일금! 걱정 마라.”

“아! 상품은... 마을 기금들 모아가, 사기로 했다. 걱정 마라!”

마을 발전기금은, 보통 나라에서 나온 지원금을 아낀 것과 개인의 기부금을 관리한 걸 말한다. 이번에는 장 이장님의 통 큰 기부로 우리 마을 자금 사정이 아주 넉넉해졌다고.

“그럼 저희 사랑방과 신비 농장에서도 선물 지원하겠습니다.”

“니 협찬도 하는데 괘안나?”

“네. 어차피 이장님들 말씀대로 홍보하는 건데요 뭐. 오히려 좋습니다. 적은 투자로 많은 홍보 효과 내는 거니까요. 소문 많이 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허, 참! 나. 니 가게는 벌써 유명한데 뭘 더 소문내 줄 수 있겠나 우리가.”

“유명해도, 더 유명해 지고 싶은 게 사장 마음이더라고요.”

요즘에는 마을 사람들도 구하기 쉽지 않은 신비 농장과 사랑방의 제품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알았다! 그럼 내가 책임지고! 내 사돈의 팔촌까지 다 얘기 하께!”

“내는 알제? 벌써 우리 꽃분이랑 온 사방팔방 다 소문내고 다니는 거.”

“아무렴요. 다 알죠. 그럼, 다 끝난 거 같으니, 식사하러 가실까요?”

“어? 어! 그래! 언능가자. 우리 꽃분이가 오늘 게장 담근 거 꺼낸다고 했다. 간장게장. 밥 도둑. 알제?”

간장게장이라니.

꽃분이 할머니의 간장게장은 한 번도 먹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었다.

. 얼른 가자! 내 밥 3그릇도 먹을 수 있다! 아, 왜?”

차 이장님도 이미 간장게장의 맛을 알기에,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장 이장님과 맞잡은 손을 휘둘러 앞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움직이지 않는 장 이장님의 의해 멈추었다.

"흠. 니는, 바로 들어가지 말고. 저 뒤에 닭장 있는 거 알제? 들어가서 달걀 좀 꺼내 가지고 온나.”

차 이장님을 멈춰세운 장 이장님은 무시무시한 며느리발톱을 가진 수탉을 피해 달걀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내렸다.

“으잉? 싫다! 거기 아직 그 수탉 있지? 내 무섭다!”

“쓰읍. 갔다 오라니까? 내도 무섭다!”

“그럼 같이 가자!”

“...그럴까?”

“그래!”

“오케이! 가자! 한울아, 그럼 니 먼저 집에 들어가 있어라.”

“네.”

서로 무섭다고 미루던 두 이장님은 맞잡은 두 손을 다시금 꽉 잡고, 보무도 당당하게, 대문을 지나 뒷마당으로 향했다.

“어어? 다리 빼나? 느려지제?”

“뭐라카노! 잘 걷고 있구먼! 니야 말로 걸음이 느리다!”

하지만 결연에 찬 꽉 잡은 손과는 달리,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 서로를 의지하며 닭장으로 향하는 두 분의 걸음은 느렸다.

“할 수 있다!”

“아자 아자!”

하지만, 서로 투닥거리던 것도 잠시. 닭장 앞에 도착한 두 이장님은 몇십 년 우정을 자랑하듯, 서로를 북돋았다.

“자, 내가 먼저 양보한다. 가라!”

“아이고. 이런 건 형님 먼저제...”

“아까는 니가 더 빠르담서!”

“그거는...”

컹컹.

닭장앞에서 투철한 정신을 보여주는 두 이장님을 물끄러미 보던 누렁이가 한번 짖고는, 이내 귀찮은 듯, 콧방귀를 뀌더니 겹친 앞발에 제 머리를 내렸다.

“개똥이가 비웃는다! 얼른 가라!”

“누렁이거든?”

투닥 거리는 할아버지들의 대화를 배경 삼아 뒤를 돌았더니, 뜨겁게 빛나던 태양이 산 아래로 넘실거리며 넘어 가 지평선을 자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노을, 예쁘네.”

매일 보아도 노을이 주는 자연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오늘도 수고한 사람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과도 같았기에.

“어? 진짜 예쁘네.”

“한울아, 내가 진짜 노을 기가 막힌 데 아는데, 다음에 가자!”

“내가 더 좋은데 안다...!”

뒷편에선 아직까지 어린아이들처럼 투닥거리는 할아버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마저 기꺼웠다.

따뜻해진 바람과, 경이로운 노을.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오늘도 평화로운 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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