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다! (1)
“안 돼요!”
널따란 운동장 가득 자신의 억울함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럴 순 없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동의!!!”
덩달아 걸걸한 목소리들도 뭉크의 절규처럼 얼굴을 움켜쥐며 절대 반대를 외쳤다. 그들의 정체는 아라의 2천만 팬 중 이곳에 있는 삼인방이었다.
“저 여기서 이겨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왜 저 팀으로···. 설마, 버리시는 거?”
삼인방의 지지를 받은 아라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에게 물었다.
이긴 횟수만큼의 정기배송을 약속한 만큼, 당연히 산골 마을 편에서 경기를 치를 거라 예상한 모양.
“아라씨가 가셔야 나이대가 얼추 맞습니다. 인원수도 그렇고요. 제가 말씀드렸던 조건은 동일합니다. 저쪽에서 이기셔도 약속한 달만큼 정기배송해 드리겠습니다.”
“예? 하지만···. 전 여기 어르신들이랑 더 친한데···.”
세상 억울해 보이는 아라의 얼굴.
눈썹을 팔자로 모으고 눈을 크게 뜬 채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녀의 표정에 다시 3인방이 다시 나섰다.
“사장님, 다시 생각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 연예인이랑 운동회 해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형님, 아시잖아요. 제발···.”
차례대로 서 대리, 이 대리, 그리고 박준혁.
모두가 당당하게 말하는 와중에 박준혁은 가까이 있는 지민의 눈치를 보느라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안돼.”
하지만 이미 나는 아라를 아랫마을 팀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건 마을간 확 차이나는 바로 젊은이의 비중 때문.
우리 마을에는 벌써 박준혁과 지석호, 팀원들. 그리고 나까지 총 7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아, 이제는 거의 명예 산골 마을 주민인 지민까지 포함하면 8명.
하지만 아랫마을에는 차 이장님의 말대로 온통 머리에 구름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어르신들이 대부분.
젊은이들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공평하게 하려면, 비율 맞춰야 하니까 어차피 우리 마을 청년 중에서 몇 명 나가야 했는데, 잘된 거지. 그쪽 매니저분도 참가하실 건가요?”
“아, 저 말씀이십니까? 네. 대신 전 아라와 같은 팀만 가능해서···.”
“상관없습니다. 그럼 아라씨와 저쪽 팀에 가 주시고요···. 수가 맞아야 하니까, 우리 쪽에서 3명 더 보내야 하는데, 가고 싶은 사람?”
간단히 현재 상황을 설명한 나는,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 마을 청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저요!”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으악!”
내 고개가 돌아감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지원자가 나타났다.
“박. 준. 혁.”
“어? 어. 어.”
여자가 남자의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낮게 부르면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던가?
“안돼.”
“어? 어. 당연하지.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건너편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을 한 지민과 눈이 마주친 박준혁은 현실로 돌아오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지원을 포기했다.
너도 참. 어쩌다 쟤한테 걸려서···.
절레절레.
어떻게 봐도 지민에게 쥐어 잡혀 사는 박준혁의 모습에 나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 고생하고. 그럼, 다른 사람은?”
나와 지민, 박준혁, 지석호 이렇게 4명은 이미 산골 마을 붙박이나 다름없으니, 한혜원과 김연우 중 한 명이 지원하면, 양 팀의 비율이 딱 맞아진다.
“음···. 그럼 저요! 아이스크림도 얻어먹었는데, 도와드려야죠. 안녕하세요. 사랑방 유통판매팀의 한혜원이라고 합니다.”
팬 삼인방의 호들갑에 한발 물러나 있던 한혜원이 건너편 천막에서 정리하는 김연우를 한번 쳐다보더니, 손을 들었다.
김연우는 아라의 정체가 밝혀진 후, 인사만 꾸벅하고는 할 일을 찾아 돌아다녔다.
평소 인디음악에 심취한 그녀에겐 아무리 대중음악 쪽에서 유명한 가수가 오더라도 그저 얼굴만 아는 사람1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 딱 맞네. 남자 셋, 여자 둘. 그럼 미리 건너편에 가서 준비하고 있다가, 사회자 오면 시작하는 거로. 오케이?”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지만, 아직도 오전 8시. 30분 뒤 사회자들이 도착한다고 했으니, 그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기를 증진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넵!!”
“봐 드리지 않겠습니다.”
“목표는! 우승!”
아랫마을로 차출된 지원자들의 사기는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것만 같았다.
*
띠, 띠, 띠, 띠-!
정각 오전 9시.
익숙한 버저음이 울리고, 마이크가 켜지더니.
“안녕하세요! 미화리 주민 여러분! 지금부터 제48회 미화리 마을 운동회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저는 오늘 사회를 맡게 된 양재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
오늘의 사회자. 양재성 목소리가 운동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야! 48회라니! 저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 유서 깊은 운동회군요. 자, 즐겁고 안전한 운동회를 하기 전! 준비운동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교 앞으로!”
“앞으로!”
유려한 말투로 진행을 시작한 양재성의 신호와 동시에, 뒤쪽에서 조교가 나와 단상 위에 당당히 섰다.
‘홍경우.’
조교로 나온 남자의 가슴팍엔 커다란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양재성···? 홍경우···?”
“엄마야! 야들이 와 여기 있노?”
“누군데?”
“누구기는! 장 이장이랑 같이 테레비에 나왔던 사람들 아니가! 그, 뭐꼬. 목숨 걸었다는 아랑, 쌍꺼풀 수술하고 왔다는 아! 이야. 쌍꺼풀 자리 잘 잡았네. 나중에 어디서 했는지 물어보고 나도 해야겠네.”
“아. 아아! 실물이 훨씬 더 낫네!”
“이야! 잘생겼다!”
단상 위의 두 명의 정체를 알아본 사람들은 양손에 엄지를 치켜들고 그들을 향해 환호했다.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환호였는지, 단상 위 두 사람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했다.
오늘을 위해 섭외한, 아니. 자진한 양재성과 홍경우는, 장 이장님을 통해 운동회 소식을 듣고는 계속해서 이장님께 너튜브! 를 외쳤다고 한다. 그 결과로, 이들은 바쁜 스케줄을 끝내자마자 이곳으로 왔다.
“못 알아보시면 어쩌나 섭섭했는데, 휴. 정말 다행이지 뭡니까.”
인사 후 익살맞은 너스레를 떤 양재성의 말에 또 한 차례 환호성이 들려왔다.
“에헴!”
이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장 이장님은, 귀찮다고 하던 게 언제였냐는 듯,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자, 그럼 모두의 준비운동! 국민체조를 시작하겠습니다!”
-빠라바라밤! 빠라라바람! 빰빠, 빰빠, 빰빠...
스피커를 통해 국민체조 음악이 흐르고···.
“하나! 둘! 셋! 넷! 다서읏! 여서읏! 일곱! 여덟!”
그에 맞춘 홍경우의 구령 소리는,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한 가수답게 우렁찼다.
**
승부란 무엇인가.
“다들 준비됐나?”
“어이!!”
“준비됐다!!”
“가자!!”
착착착.
승부란, 매일 허리 어깨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을 일시적으로나마 낫게 해주는 것이며.
“오늘 우리의 목표는 뭐라고?”
“이기자! 안되면 되게 한다!”
집 나간 의욕을 잡아 와 강제로 고취해주고,
“배치기! 나가라!”
“간다!”
숟가락 들 힘도 없다고 한 사람들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승리와 패배를 위해 달려가게 만드는 것이다.
“...규칙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규칙은 단 하나! 각 팀당, 6명씩, 총 12명이 나와 제한시간 안에 풍선을 더 많이 터트리는 마을이 이기는 겁니다! 제한시간은 2분! 준비되셨으면···. 시작!”
삐이익-!
호각소리와 함께 2번째 경기, ‘풍선 터트리기’가 시작됐다.
“일다 풍선부터 꺼내라!”
시작과 동시에 각 진영에 자리한 풍선이 가득 든 박스로 다가간 산골 마을 참가자는, 한 사람의 말을 따라 다짜고짜 풍선을 꺼내 바닥에 놓기 시작했다.
“풍선 개수 세시는 분들은 정확하게 카운팅 해주세요! 선 밖으로 나간 풍선은 제외입니다!”
가벼운 풍선은 작은 바람에도 날려 통통거리며 하얀색으로 그어놓은 선 밖을 향해 날았다.
“으악! 풍선 잡아라!”
“풍선 그만 꺼내라! 다시 집어넣어라!”
생각지도 못한 풍선 탈출에 산골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모두가 날아가는 풍선을 쫓는 사이.
“하나씩. 터트리고 다시 꺼내라!”
“...”
펑!
펑!
아랫마을 참가자들은 차 이장의 지시를 따라 침착하게 풍선을 터트리고 있었다.
“오오! 비장한 눈빛! 열정적인 몸짓! 현재 아랫마을 스코어 9! 산골 마을은···. 아···. 안타깝습니다. 아직 풍선을 쫓고 있습니다!”
양재성의 중계는 축구경기 해설만큼 빠르고, 동시에 시끄러웠다.
“아아! 드디어! 산골 마을도 풍선을 터트리기 시작합니다! 하나! 속도를 좀 올려야 할 텐데요! 풍선을 쫓아가지 않고 박스에 남아있는 풍선을 먼저 터트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순간! 아랫마을 20개 돌파! 이대로라면 이번에도 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장님?”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양재성은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장 이장님께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이익···! 저저저!”
하지만 장 이장님의 온 신경은 경기가 이뤄지는 흙바닥을 향해 있었다. 뒷목에 손을 얹은 상태로.
“...예! 인터뷰가 안되는 상황입니다! 그럼···.”
-삐비빗!
“...2분! 스타-압! 모두 그만해 주십시오. 경기가 끝났습니다. 그럼 결과를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천만 안에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정확히는 장 이장님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중계하던 양재성은 타이머 소리에 자세를 바로 하고, 중앙으로 뛰어가 터트린 풍선을 세던 사람들과 조우했다.
“...네. 네. 결과 나왔습니다! 27대 15! 아랫마을 승리!”
“와아아!”
“이겼다! 또 이겼다.~!”
승부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아랫마을 승리. 연이은 승리 소식에 아랫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어깨춤을 췄다.
“에라이. 풍선이 날아가지만 않았어도···.”
“풍선이 당연히 날아가지! 붙어있나?!”
축제인 건너편 천막과 달리, 산골 마을 천막 안은 또 다른 패배에 이를 부드득 갈았다.
“윽. 뒷골아. 됐다. 고만 싸워라! 아직 3번째 경기밖에 안 됐다! 나머지 4경기에서 이기면 그만이다! 다들 모이라! 회의하자!”
결과를 듣자마자 천막 밖에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던 장 이장님은, 두 번째 경기만에 패배 기운에 휩싸인 천막 안으로 들어오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자! 다들 시원한 거 하나씩 먹으면서 들어라!”
아직은 무더운 여름.
점점 정수리 위로 자리를 옮기는 태양에 지칠 걸 대비한 방책이었다.
“후. 시원한 거 들어가니까 좀 낫네.”
입에 시원한 게 들어가자,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다들 알제? 오늘 경기는 6개인 거! 아직 반도 안 했는데 지금부터 퍼지면 안 되는 거 알제? 우리한테는 아직 4번의 경기가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 계주는 점수가 더 높다! 희망이 아직까지 이렇게나 많은데 왜 다 죽을상이고? 파이팅 안 하나? 자자. 그러지 말고, 다들 파이팅 하자! 손 한 짝씩 모아봐라!”
“...”
까만 선글라스를 낀 장 이장님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오케이! 맞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빨리 포기했었노?”
선글라스로 카리스마를 장착하고, 아직까지 벗지 않은 스팽글 자켓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장 이장님의 곁으로 하나둘,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그래! 우리가 한울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맨날 지는 게 일상이었는데!”
“맞다! 여태 나간 사람들은 다 피라미였다!”
“뭐···?”
피라미라니.
앞선 경기에 참여했던 주민들의 미간이 찌푸려 졌지만, 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우리한테는! 아직 남은 젊은이들이 있다! 안 그러나?”
“그렇제!”
“저짝은 벌써 2명이나 나왔고!”
“그렇제!”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파이팅 해야지!”
“그래! 파이팅 하자!”
우리 마을에서는 여태 단 한 명의 젊은 참가자가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한 마을 사람들은 축 처졌던 어깨를 쭉 폈다.
그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니네들만 믿는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