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60화 (160/163)

승부다! (2)

“...아아. 저게 무슨 뜻일까요?”

어젯밤까지 예능을 찍고 곧바로 미화리로 내려와 1일 MC, 양재성은 단상 위에서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산골 마을 주민을 보고 있었다.

“음음!”

“사자?”

“으으음!”

“뭔데?”

“으으음! 으음!!”

턱턱.

단상 위에서 제시어를 표현하던 창식은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아! 알겠다! 고릴라!”

“...”

가슴을 쳤다고 자신 있게 손을 들어 고릴라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니, 힘이 쭉 빠졌다.

“3분경과 했습니다! 앞으로 2분!”

하지만 MC의 재촉에 창식은 힘차게 말했다.

“패스!”

“패스를 왜 그리 많이 하노? 진짜 설명 못 하네. 그래서 정답이 뭐였는데?”

“기린! 기린이다!”

“기린···? 대체 기린의 뭘 표현한 건데?”

“갓 태어난 기린! 그것도 모르나?!”

“...”

단상 밑에 옹기종기 모여 사력을 다해 정답을 맞추려했던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갓···. 태어난 기린···?”

그···. 꿈틀거리던 몸짓이 갓 태어난 기린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니···.

“야 이! 기린이면 이렇게 목을 쭉! 빼서! 니 팔다리를 최대한 늘려가지고! 어? 이렇게! 흐느적거려야제!”

참다못한 병팔이 몸소 시범을 보였다.

“맞네! 딱 기린이네!”

마을 사람들은 같은 친구인데 왜 병팔보다 못하냐고 창식에게 소리쳤다.

“아, 그럼 병팔이 니가 하든가!”

“오케이! 기다렸다! 바꾸자!”

창식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병팔이 서둘러 단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게임 종료를 알리는 양재성의 목소리가 병팔과 창식이 자리를 바꾸는 것보다 더 빨랐다.

“...5분 경과! 끝! 스코어는 아랫마을 15개! 산골 마을 3개! 아···. 안타깝습니다. 또 이로써 아랫마을이 승점을 가져갑니다.”

당당한 표정으로 계단에 한 발을 내딛던 병팔과 뚱한 표정으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창식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졌네.”

“...써글.”

시간이 뭐 때문에 이렇게 빨리 간다는 말인가.

다른 시도도 하기 전 끝나버린 시간에 병팔 또한 입술을 댓발 내밀었다.

친구 아니랄까 봐, 둘의 표정이 같아졌다.

“우와아아!!”

“흥. 다리만 좀 빨랐지. 별거 아니구먼.”

반면, 아랫마을 사람들은 형식적인 환호성만 한번 지른 뒤, 턱을 치켜들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전쟁에서 승전고를 울리고 돌아온 전사들과 같았다.

“...몸으로 말해요.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쥔 아랫마을에 50점! 이로써 전체 점수는 150 대 80이 되었습니다!”

모든 참가자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양재성이 다시금 마이크를 들며 현재 스코어를 말했다.

“아···. 이대로는 산골 마을이 지겠는데요···! 분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산골 마을 천막을 향해 양재성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화이팅을 외쳤다.

“분발은 무슨. 우리는 졌다.”

하지만 이미 패배의 기운이 짙게 도는 산골 마을 천막 안의 사람들은, 양재성의 화이팅에 화답하기는커녕 물끄러미 양재성과 아랫마을 천막을 번갈아 보고는, 이내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

숙연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장 이장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이긴 경기는 단 2개. 장애물 달리기와 계주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랫마을 차 이장이 말하는 것처럼 다리를 바삐 놀리는 달리기 종목만.

많은 사람이 참여해 점수 배점이 높은 박 터트리기와 풍선 터트리기, 몸으로 말하기 등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로 처절하게 패했다.

그렇게 장 이장 또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숙이려 할 때였다.

잠시 조용했던 양재성의 마이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남은 경기는 단 하나! 점수 차이 70으로 아랫마을이 앞서가고 있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릅니다! 마지막 경기, 줄다리기에서 승리할 경우, 100점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아랫마을은 승리를 더욱 견고하게! 산골 마을은 역전할 수 있는 찬스!”

“어어?”

“뭐라꼬?”

“그런 게 어딨노!”

이번 마지막 경기를 통해 역전도 가능할 거라는 양재성의 설명에 건너편 천막에서 아우성이 튀어나왔다.

“뭐? 내가 들은 게 맞나?”

“맞나 본데···?”

패배감과 무력함을 안겨준 아랫마을의 아우성에 맞춰 산골 마을 사람들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왔다.

“모두 준비되셨나요?”

모두의 고개가 올라옴과 동시에, 양재성의 해맑은 목소리가 좌중을 향했다.

한쪽에선 아우성을, 한쪽에선 환호성을.

각기 다른 느낌의 외침이 들렸지만, 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외침이든 마냥 좋은 모양.

마이크까지 앞으로 내민 걸 보니, 콘서트라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즐겁다 못해 쓰러졌던 사람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은 소식에 산골 마을 사람들은 크게 외쳤다.

“어!!!”

“준비됐다!”

“와라!”

고개를 숙인 게 언제였냐는 듯, 모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채로.

서 있는 산골 마을 사람들의 눈에 희망이 어렸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장갑을 주섬주섬 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준비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 여러분들의 체력 보충을 위해서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갑자기 점심을 먹으라는 말에 드릉거리던 마을 사람들의 몸이 멈춰 세워졌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

마치 중요한 장면을 앞두고 광고로 전환해 김이 빠지게 만드는 방송국처럼, 이해 가지 않는 진행이었다.

리듬이 끊기면 안 되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온 승리의 느낌을 놓치지 않고 싶던 산골 마을 사람들이 눈빛으로 항의해 보았지만···.

“네! 선수 보호를 위한 조치입니다! 자자, 모두들 든든한 점심 드시고 뵙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쇼!”

승패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양재성의 말에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MC로 인해 가지게 된 점심시간.

양쪽 마을 모두 석연치 않은 불만을 가진 채 시작된 것 치고는 화기애애했다.

“...후···. 몸으로 말하기는 그렇다 쳐도, 박이랑 풍선 터트리기 진 거는 너무 억울하지 않나?”

“내 말이. 그건 그냥 잘 맞추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 다 빗나가지고...”

아니, 진지하다고 하는 게 더 어울렸다.

양재성의 안내에 따라 천막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도시락을 풀고, 전을 굽다 보니 배가 고픈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배가 허하면 기분이 울적해지고, 울적해지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여태까지 경기는 전부 순발력이 더 필요로 했던 경기다. 근데, 줄다리기는 다르다···.”

밥을 먹고서야 제 배가 허한 걸 알아챈 마을 사람들은 밥을 꼭꼭 씹어 배를 채운 뒤, 아까와는 완전 다른 표정으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장원이, 줄다리기에 나가제? 나가기 전에 많이 무라. 자자. 여기 떡갈비랑 문어 산적. 백숙도 좀 더 줄까?”

우선은 전력 보충이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마을 어르신들은 이 대리 앞으로 음식을 척척 옮겼다.

우리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무게가 나가는 사람을 더 찌우자! 라는 전략이 가득 담긴 마음과 함께.

“우와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만에 먹는 기름진 음식에 게 눈 감추듯 제 몫을 해치우던 이 대리가 고개를 앞으로 쭉 내민 채 제 앞으로 오는 영양분들에게 손을 내밀어 반길 때였다.

턱.

돌연 먹음직스러운 반찬으로 뻗던 이 대리의 손이 멈췄다. 이 대리를 제지한 사람은 바로 한혜원.

배가 다 찼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먹는 걸 멈추지 못하는 아이를 제지하듯. 엄한 눈초리로 이 대리를 다스린 그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봄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미소를 담뿍 지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어르신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르신들 더 드세요. 지금까지도 저희가 다 먹은 것 같은데···.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서 줄다리기도 잘 못 해요.”

속뜻을 말하자면, ‘지금도 배가 남산만큼 나왔는데, 여기서 더 먹이면 제대로 힘을 못써 줄다리기를 질 수도 있으니 이기고 싶다면 그만 먹이시라.’라는 뜻이 되겠다.

“아···. 그런기가?”

“네.”

세상을 오래 산 만큼, 한혜원의 속뜻을 단박에 알아차린 어르신은 주섬주섬 반찬들을 다시 회수했다.

“어···. 어···!”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요!

눈앞에서 사라지는 육해공에 어룽어룽 눈을 떠보았지만, 한혜원이 교묘하게 어르신의 시선을 가려 이 대리의 억울함은 어르신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내가 또 실수할 뻔했네. 그럼 나물은 되나···?”

서둘러 이 대리에게 건넨 음식들을 다시 회수한 어르신은,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물었다.

“실수라니요. 지금도 어르신들 덕분에 저희가 진수성찬을 다 먹게 됐는데요. 네! 나물은 얼마든지, 감사합니다!”

나물은 산에서 온 식이섬유!

지금도 입이 터지라 먹으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 상사를 진정시키기에 딱 알맞은 반찬이었다.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어르신에게서 나물을 건네받은 한혜원은 그중 가장 씁쓸한, 하지만 비법 된장에 무쳐져 씁쓰름한 맛이 아주 일품인 반찬으로 거듭난 씀바귀 된장 무침을 이 대리의 앞에 놓았다.

“대리님, 이게 그렇게 몸에 좋대요. 간에도 좋고, 고혈압에도 좋고, 당뇨에도 좋고, 노화 예방에도 좋대요. 딱! 대리님을 위한 반찬인 거죠!”

“쓴데···.”

“어허. 입에 쓴 약이 몸에도 좋은 법! 된장에 무쳐서 향긋하다니까요? 향을 느끼면서 드세요! 여기 와서 대리님 살 더 찐 거 아시죠?”

부러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 대리의 건강을 유지시킬 의무가 있는 한혜원은 단호했다.

지금 벌여놓은 일이 몇 갠데. 장기 프로젝트들이 많은 만큼 그녀에게 상사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악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소심하게 반항해 보았지만···.

쓰읍.

어림도 없었다.

“...그래. 난 개보다 밑이었지.”

훌쩍.

너무나도 단호한 한혜원의 모습에 이 대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움직이지 않는 손을 억지로 뻗어 입안 가득 밥을 한가득 넣은 채 나물을 꾹꾹 쑤셔 넣었다.

밥이라도 많아야 쓴맛이 중화되지.

이 대리의 눈이 아련해졌다.

“...이것까지만입니다.”

이 대리가 자신에 대해 뭐라고 평가를 하든 말든. 그가 꾸역꾸역 씀바귀를 삼킬 동안 그의 주변을 체크한 한혜원이 테이블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 어? 악마 취소! 맛있어! 맛있다고! 나 씀바귀 좋아해!”

아직 배가 덜 찼는데!

몸에 좋은 거라며!

자신에게서 씀바귀조차 빼앗아가는 한혜원의 악랄한 행태에 이 대리는 있는 힘껏 화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화난 표정을 지은 얼굴과는 달리, 반찬을 향해 뻗은 손은 애처롭게 바들거렸다.

“...대신 꼭 줄다리기 이기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패배할 경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쓰윽.

불쌍하기 그지없는 제 상사의 모습에 한혜원은 조건을 걸며 물렀던 반찬을 다시 이 대리 앞으로 놓아주었다.

쓰윽.

하지만 이 대리는 제 앞으로 온 반찬을 다시 한혜원에게 돌려주었다.

“...?”

반찬 투정인가?

감히 어르신이 직접 산에서 캐서! 다듬고! 씻고! 버무린! 정성이 가득 들어간 반찬을 두고?

한혜원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아, 아니. 아니라고! 그게 말이지. 생각해보니까 내가 또 절제가 안된 거 같아. 의사 쌤한테까지 끌려가서 체중 조절하라는 소리 들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하하.”

레이저가 나올듯한 한혜원의 눈빛에 이 대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의사를 팔아보았지만···.

“그냥 드세요.”

“진짜···?”

“새벽에 조깅할 생각하시고요.”

“...”

한혜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팀장님···.”

협박성 짙은 한혜원의 말에 눈썹이 축 늘어뜨린 이 대리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잔뜩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팀원이 너무 무서워요···!”

한혜원의 눈치를 보며.

나는 제 덩치의 반도 안 되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몸을 잔뜩 옹송그린 이 대리에게 한껏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혜원 씨 말, 들어.”

“예, 예?”

“들으라고.”

“아···.”

내 말을 들은 이 대리는 믿기지 듯, ‘팀장님마저도···!‘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마을 철회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돌려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건너편 천막의 덩치를 주시하며, 나는 이 대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믿는다. 이 대리.”

승부는, 마지막에 나는 법!

역전의 준비는 끝났다.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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