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의 이유 (2) -完-
달칵.
“꽈악. 왔냐?”
“왔다! 잘 다녀왔냐?”
현관문을 열자,
찹쌀과 노을이 중문 앞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맞이했다.
노을의 탐스러운 꼬리가 살랑거리고, 찹쌀의 꽁지깃이 엉덩이와 같이 흔들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TV에서 봤다며 내가 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저러고 있는데, 볼 때마다 사람들이 왜 혼자 살면 안 되는 동물이라는 걸 알게 된달까.
“어. 너희들도 잘 놀았···.”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격하게 반겨주는 노을과 찹쌀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릴 때였다.
슝-!
찹!
“잡았다! 컁!”
“꽉! 나이스다! 노을!”
꼬리를 흔들던 게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는지 제트기처럼 발사된 노을은 내 손에 들린 봉투를 채갔다.
“...”
챠자작!
나는 찹쌀의 현란한 날갯짓으로 해체되는 봉투를 보며 할 말을 잊었다.
“이, 이건···!”
“치느님이다! 컁!”
치느님! 꽥꽥!
치느님! 컁컁!
노릇하게 튀겨진 시골통닭과 맛깔스러운 붉은 양념이 발린 양념 통닭을 가운데 두고 노을과 찹쌀은 ‘치느님!’을 외치며 빙글빙글 돌았다.
“...”
그 모습에 나는 신발을 벗는 것도 잊고서 어디서 저 모습을 봤는지 생각했다.
어디서 봤더라···.
그때였다.
퉁.
내 다리에 푹신한 무언가 부딪혔다.
“킁.”
“어. 포동아. 잠시만.”
푹신한 것의 정체는 현관을 통과해 들어온 포동이었다.
포동이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서니, 포동이도 저 이상한 의식에 합류했다.
“킁!”
포동이 발을 탕탕, 구르니 뱅글뱅글 돌던 찹쌀과 노을이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그리더니 꾸벅 절을 했다.
“컁! 맛있는”
“치킨을 주신! 꽈악!”
“한울에게 감사를. 킁.”
이거···.
어디서 본 건가 했더니.
아프리카 원주민이 사냥에 성공한 돼지를 통구이로 만들기 전, 사냥 성공을 축하하며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이렇게 신에게 감사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가만히 있는 내 모습에 다시금 절을 하려는 정령들을 향해 나는 황급히 손을 뻗었다.
“그만. 산 사람한테는 절 한 번만 하면 돼.”
“꽈악···?”
갸웃.
날개를 벌리고 고개를 숙이려던 찹쌀이 어정쩡한 자세로 머리만 올려 나를 보았다.
“두 번 절하는 건 죽은 사람한테만.”
“꽈악?!”
내 말에 어중간한 자세로 멈춰 있었던 정령 셋 모두 후다닥거리며 몸을 바로 했다.
찹쌀은 퍼드덕거리며 중심을 잡았지만, 포동은 엉덩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노을은···.
“컁! 한울이 제일 좋아하는 거다! 먹어라!”
누가 여우 아니랄까 봐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더니 닭 다리를 물고 와 내게 건넸다.
“어···. 고마워. 근데 괜찮아. 노을이 먹자.”
“호에에? 그래도 되냐?”
이미 양념치킨의 닭 다리는 노을의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럼.”
좋아하고, 저도 먹고 싶어 안달을 내 하면서도 나를 먼저 챙겨주려는 노을의 마음이 예뻐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캬하항!”
노을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눈을 반달 모양으로 감았다.
“꽤애액? 나도!”
“킁!”
저도 만져 달라며 달려와 날개를 쭉 내밀고,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이는 찹쌀과 포동의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 알았어. 자, 이제 얼른 먹어.”
“알았다! 꽉!”
“킁!”
평소 같았으면 한참을 뭉그적거렸을 녀석들이 후다닥 일어나 치킨으로 달려갔다.
“꽈악! 날개는 내꺼다!”
“...”
날개를 내놓으라고 하는 찹쌀의 말이 참···. 뭐랄까. 저래도 오리인데···. 괜찮겠지?
찹쌀이 치킨을 먹을 때마다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라텔은?”
워낙 호전적인 성격이라 이제나저제나 밭에 붙어있긴 하지만 식사가 시작되면 귀신같이 나타났다.
치킨을 오픈한지 꽤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라텔을 찾을 때였다.
“캬하하! 롹앤롤!”
주방 창문이 드륵! 하고 열리더니, 오늘도 두 손을 번쩍 든 채 입을 벌리고 시원하게 웃는 라텔이 등장했다.
“크, 킁! 문으로 다녀라!”
말없이 두 손으로 치킨 한쪽을 잡고 뜯던 포동이 전에 없이 눈을 크게 뜨며 호통쳤다.
“오?”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성향이 완전 반대라 그랬는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포동은 라텔만 가까이 나타나면 내 등 뒤로 숨어 옷자락만 꾹 잡았더랬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친해 진 거지?
영문 어린 표정으로 그 둘을 보던 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캬하하! 브로! 사나이는 문으로 다니지 않는다!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길!”
“크, 킁! 마음에 안 든다!”
안으로 들어온 라텔은 곧바로 포동의 곁으로 가 친한 척을 해댔고, 포동은 귀찮은지 인상을 찌푸렸다.
“친해졌구나.”
조금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라 생각한 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다! 킁!”
내 말에 엉덩이로 라텔을 밀던 포동이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표정이었다.
“알았어. 안 놀릴게. 얼른 먹어.”
“호에? 친한 건 좋은 거다! 우리는 친구다!”
“꽈악? 기분이 안 좋은 거냐? 내가 노래로 기운을 북돋아 주겠다! 꽤-”
“크, 킁! 좋다! 친구다!”
“노래인가? 도전은 언제나 환영이다.! 캬하햐!”
그저 얼른 더 먹으라는 한 마디밖에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또 이 둘의 노래 배틀을 들어야 하는 걸까?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해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마찬가지로 귀를 틀어막은 노을과 포동이 둘에게서 대피해 내 품을 파고들었다.
-꽤개객!
-롸롸롹! 롸롸롹앤롤! 베이베! 예이!
찹쌀과 라텔의 노랫소리가 귀를 막은 손을 뚫고 어렴풋이 들어오지만 뭐 어떤가.
함께임에 행복하다.
**
여름의 중간을 장식한 운동회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이쿠. 오늘도 낮에 쨍쨍하겠구먼. 어? 한울아, 니 어디가노? 복장이 평소랑 좀 다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대문을 열자,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심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아. 오늘은 공장으로 출근하기 전에 사과밭 좀 들렀다 가려고요.”
“아. 글나? 저번에 준 사과 너무 맛있게 묵었다. 니 다 파는 건데 맨날 이렇게 주지 마라. 나도 사서 먹을 거다! 내 돈 많다!”
이번 사과밭은 포동과 고라니, 그리고 멧돼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인해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사과 선물에 이건 또 언제 키웠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산속 깊숙이 자리한 밭에서 키웠다는 말로 넘어갔다.
할머니가 내가 남겨주신 밭은 집 옆에 있는 작은 텃밭을 제외하고는 전부 뒷산에 자리한 덕분이었다.
“네. 주문은 환영입니다. 손님.”
“뭐꼬? 내 바로 손님 된 거가? 그럼 또 내가 하나 팔아줘야지. 마수걸이가 중요한 거 알제? 어디 보자···.”
마수걸이.
‘맨 처음 물건을 파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장을 보면 흥정하는 게 일상이었던 할머니조차 이 마수걸이는 꼭 지키셨다.
‘한울아, 마수걸이는 말이다. 장사하는 사람한테는 억수로 중요한 일이다. 첫 손님을 잘 받으면 그날 장사는 저절로 잘 되는 거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할머니?’
그때 할머니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마 크면 알게 될 거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나 다른 어른들 모두 마수걸이라 하면 흥정 없이 물건을 샀었기 때문에, 나는 독립 할 때까지도 마수걸이란 ‘흥정하지 않고 물건을 사는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총각 덕분에 오늘 내 장사 잘되겠네! 자! 이건 서비스!’
마수걸이의 참뜻을 알게 된 건 독립 후였다. 물건값을 깎지 않고 바로 사는 나에게 기분 좋게 덤을 원래 값을 치른 것보다 더 많이 얹어주는 시장 상인 덕분이었다.
첫 장사를 공치면 그날 장사는 망할 거라는 미신 때문에 첫 손님은 가격을 깎아주더라도 판다는 것.
“...우리 며느리랑, 시집간 손주랑 동생한테도 보내고···. 그래! 곧 있으면 추석인데 10상자 산다! 얼마고?”
“10상자요? 선물이니까 특등품으로 골라서 드려야 하니까···. 좀 비싼데 괜찮으세요?”
“다, 당연하지! 얼만데!”
비쌀 것이라는 내 말에 심 할아버지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턱을 치켜들며 ‘와라!’ 하는 그의 표정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한 박스에 1만 원. 총 10만 원 되겠습니다. 아, 택배비 포함이요.”
“으응? 10만 원?”
생각지 못했던 가격이었는지, 심 할아버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네. 선물 포장 사과 10박스. 택배비 포함, 총 10만 원입니다. 제 계좌 아시죠?”
“니 그렇게 팔면 판판이 손해다! 30만 원! 30만 원 해라!”
아무리 마수걸이라도 그럴 순 없다며, 심 할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파는 사람이 싸게 팔겠다고 해도 안 된다고 제대로 값을 치러 주려는 사람은 우리 마을밖에 없을 거다.
“안됩니다. 이건 사장인 제 마음입니다.”
그러니, 마수걸이 가격측정은 내 마음이다.
“아니 그래도···.”
“10만 원. 더 주시면 제 성격 아시죠? 저 할아버지 집 비밀번호 아는 거 아시죠?”
“어···? 하이고. 그래! 내가 졌다. 뭔 장사하는 사람이 돈 더 주겠다고 해도 싫다 그러노. 니 진짜 돈 잘 벌고 있는 거 맞제?”
혼자 사는 심 할아버지의 현관 비밀번호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부터 알았다.
노인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안배였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그럼, 저 시간이 없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나도 얼른 가야 된다. 낸중에 보자!”
“네. 오늘도 일 조심히 하시고요!”
“알았다. 알았다.”
정말 못 말린다는 듯, 손을 휘휘 저은 할아버지는 몸을 돌려 밭으로 향했다.
뒤를 도는 그의 얼굴엔 가려지지 않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
아침 햇살을 가득 받아 반짝거리는 사과가 가득한 밭에는 나보다 더 먼저 도착한 선객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한울! 왔냐? 여기 이것 봐라! 컁!”
“아침 사과는 보약이랬다! 꽉!”
“킁. 내가 딴 게 제일 크다.”
“캬하하! 제일 높은 곳에서 땄다!”
나를 발견한 선객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도도도 뛰어와 내 앞에 사과를 내밀었다.
하나같이 큼지막하고, 잘 익은 빨간 사과.
“이야. 다 너무 좋은 사과라서 못 고르겠다. 고마워. 잘 먹을게.”
졸지에 아침마다 사과 4개씩 먹게 됐지만, 어떠한가. 맛있고, 영양도 좋은데.
그 덕분인지 요즘 사무실 직원들은 내 피부 비결을 묻기 시작했다.
아삭.
씻어 놨는지 물기 어린 사과를 한입 베어 물자, 달큰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음.”
아직 채 깨지 못한 정신을 깨우는 상큼함을 얼마나 만끽했을까.
-지이잉.
새싹이 그려진 작업복 앞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장변]
“어.”
너무나 익숙한 발신인에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으니, 스피커 건너편에서 분기탱천한 장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넌 시골로 내려가고 왜 연락이 안 되냐? 농사는 잘되고? 인마, 농사를 잘 짓긴 하는 거? 안 되겠다. 내가 곧 간다···.]
“...”
누가 변호사 아니랄까 봐.
잔소리도 육하원칙에 맞춰 조리 있게 하는 친구 놈의 목소리에 난 수화기를 멀리 떨어뜨렸다.
[...야! 듣고 있냐?]
“어. 듣고 있어. 우리 농장 주소가 뭐냐면, 인터넷에 ‘신비농장’이라고 치면 나와.”
[오케이. 신비농장. 메모했다···. 어? 신비농장?]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하려면 신비농장처럼! 을 외쳤던 장민준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작아졌다.
“와서 확인해 보던가.”
심드렁하게 내가 신비농장 주임을 시인하자, 스피커 너머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헐! 야! 나 당장 간다! 딱 기다려!]
“그래.”
-뚝.
나는 흥분해 마지않는 친구의 목소리를 다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내 품 안에서 사과를 챱챱 먹던 포동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킁. 친구가 오는 거냐?”
“응. 오래된 친구지.”
“친구면 선물이 필요하다! 컁!”
“내가 아주 신 열매를 찾았다! 먹여보자! 캬하하!”
“꽈악? 남자냐?”
노을을 필두로 각각 내 어깨와 머리, 그리고 발치에 자리를 잡은 정령들이 선물을 외쳐댔다.
“대체 뭘 주려고”
딱 좋은 게 있다고 방방 뛰는 정령들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꽈악!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댔다! 컁!”
TV에서 봤다고 가슴을 쭉 내미는 찹쌀과 노을.
“환장하겠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
뒤뚱뒤뚱.
자신에게 맡기라던 찹쌀은 노란 발을 재게 놀리며 숲속을 해쳤다.
“어디로 가는 거야?”
사람이 다니지 않은 듯, 오솔길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컁!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내 어깨에 앉아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 등을 치우던 노을이 낭랑하게 대답했다.
얼마나 더 갔을까.
“꽉! 도착했다!”
빽빽했던 숲을 헤치고 나오니 커다란 공동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
이 장면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나는 숨이 짧게 놀란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탁.
멍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어깨에 앉아있던 노을이 뛰어내리더니 어딘가를 향해 총총 걸어갔다.
“이거다! 이게 남자한테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타원형의 빨간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 앞에 섰다.
“산수유.”
“꽈악! 맞다!”
“킁. 맛없는 거.”
“캬하하! 실험하자! 실험!”
단맛과 신맛, 그리고 떫은맛이 혼재하는.
그리고 남자에게 참 좋다고 유명한 열매.
“이게 왜···.”
하지만 내가 놀란 건 따로 있었다.
산수유는 보통 11월 말부터 열매를 수확하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산수유는 홀로 11월을 맞은듯했다.
뿐인가.
산수유나무 옆에는 여름에 익는 앵두가 빨간빛을 내며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그 옆에는 백도가, 그 옆에는 넝쿨 딸기가.
수확 철이 제각각인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노을이, 네가 한 거니?”
“컁! 아니다! 여긴 원래 이런 곳이다!”
원래 이런 곳.
노을의 힘이 닿지 않았는데도,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곳은, 옛 서적에서 읽었던 ‘무릉도원’이 현실에 있다면,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현실이 아닌듯한 기분에 그저 이 풍경을 눈에 담을 때였다.
“여길 온 인간은 한울 네가 두 번째다! 꽉!”
한쪽에 있는 맑은 연못에 뛰어들어 깃을 관리하던 찹쌀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두 번째···?”
두 번째라면 첫 번째가 있다는 소리인데···.
“누구···?”
왜인지 물어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에 작게 물었다.
“으음. 첫 번째 사람은 이곳에 오지 않는지 오래됐다! 꽈악!”
“ 로 오래도 아니다. 아직 그 계절이 오려면 몇 밤이나 더 자야 한다! 컁!”
“여자 인간이었다. 킁.”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조금 굽었고.
하얀색 목도리를 둘둘 감고.
항상 잘 익은 배 하나를 옷가지에 둘둘 싸 품속에 넣고 갔다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혹시···. 그 할머니 이마에 흉터···. 같은 거 없었어?”
“킁. 있었다. 왼쪽.”
버스가 매일 한대만 다니는 산골 마을.
눈이 온 세상을 덮을 듯이 내리는 겨울에는 이마저도 어려웠다.
3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겨울을 대비해 산골 마을 사람들은 저장식품을 준비해두지만, 과일과 같은 과채류는 가장 먼저 없어지는 것들 중 하나였다.
‘할머니···. 나 열나.’
공교롭게도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겨울만 되면 심한 감기에 걸려 끙끙거리는 아이였고.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이리 못 먹어서 우짜노. 목이 깔깔하제? 쪼매만 기다려봐라. 할매가 니 좋아하는 배숙해줄게.’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미리 사놓은 배 속을 숟가락으로 판 뒤 대추와 생강 꿀 등을 넣어 푹 찐 배숙을 떠먹여 주셨다.
‘그래. 이건 좀 넘어가제? 우리 똥강아지, 많이 묵고 아프지 마라. 할미가 평생 이거 해줄테니까네.’
손이 빠른 할머니는 배숙 정도는 금방 만들곤 했는데, 가끔 오래 걸릴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몸에는 차가운 바깥 공기가 둘러져 있었다.
“컁! 맞다! 왼쪽에 흉터!”
“맨날 와서 이 연못에서 기도했었다!”
우리 손주, 빨리 낫게 해주이소.
우리 손주, 건강하게만 살게 해주이소.
우리 손주···.
평생 행복한 일들만 있기를.
내 없어도 외롭지 않기를.
“아···.”
할머니의 바람이었다.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건.
“아아···.”
사아아-.
대나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언제고 걷던 그 대나무 숲.
‘어떻노? 이 할미 없어도 괜찮제?’
“...네.”
‘그래. 그러면 됐다. 아푸지 말고. 울지 말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분명 그렇다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목이 꽉 막힌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살랑.
노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다리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툭.
포동이 제 머리만 한 배를 내 발치에 놓았다.
타닥.
주변을 돌아다니며 영역표시를 하던 라텔이 바위 위로 올라갔다.
파다닥.
연못을 유영하던 찹쌀이 날갯짓해 내 어깨에 앉아 라텔과 눈을 마주쳤다.
이내, 조심스러운 찹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꽈악···. 내 노래가 필요하냐?”
“...”
평소 같았으면 찹쌀에 말에 먼저 귀부터 막았을 녀석들이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끄덕.
고개를 끄덕이자, 귀가 먹먹할 정도의 찹쌀과 라텔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후.”
아무리 내 목소리를 내봐야 순식간에 덮일 그들의 노래에 나는 짧게 숨을 고르곤 말했다.
“네. 저 아주 잘, 살고 있어요. 할머니 기도 덕분에.”
깨끗한 공기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스트레스 없이.
좋은사람들과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내며.
“아주 잘, 살고 있어요.”
사아아-.
다시 바람이 불었다.
“...”
이번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살랑이는 바람은 나를 넉넉하게 안아주던 할머니의 품처럼 따스했다.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