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4화 (34/412)

타자 인생 3회차! 34화

06. 박유성이 누구야? (2)

혀를 쯧쯧 차던 나영진 기자의 시선이 3루 쪽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점수 차이를 단숨에 4대 0으로 벌려서일까.

신성 고등학교 더그아웃의 표정은 확실히 밝았다.

“누가 지금 덕우 고등학교와 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러게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쪽이 덕우 고등학교인 줄 알겠어요.”

“유니폼에 신성이라고 쓰여 있는데 무슨.”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나저나 우리 예쁜 유성이는 어디로 갔나?”

“무슨 유성이?”

“예쁜 유성이요. 참고로 제가 침 발랐으니까 넘보지 마세요.”

“뭐?”

“선배가 지난번에 그랬잖아요.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지켜보면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고교 야구 기자의 역할이라고. 그거 한 번 해 보려고요.”

올해로 스물다섯인 공윤경 기자는 야구 기자 생활 4년차였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베이스볼 패치 수습기자로 활동하면서 나영진 기자를 따라다녔고.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수습기자 경력을 인정받아 아무나 뽑지 않는다는 베이스볼 패치의 정식 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밥그릇을 넘보겠다고?”

“먼저 침바른 사람이 임자죠. 그리고 선배도 긴가민가 했잖아요.”

“뭐? 내가?”

“아까 선배가 한 말 기억 안 나요?”

혹시라도 박유성이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줄 걸 대비해 적당히 약을 쳐 놨던 걸 떠올린 나영진 기자가 쓰게 웃었다.

이렇게 잘 할 줄 알았으면 일단 침을 바르고 보는 건데.

간 보다가 새파랗게 어린 후임에게 박유성을 빼앗기게 생겼다.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다른 선수 알아 봐.”

“싫어요. 저 유성이 키울 거예요.”

“박유성이 애완동물이야? 키우긴 뭘 키워?”

“암튼 전 유성맘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선배가 양보해요. 어차피 선배 프로 야구 취재하느라 바쁘잖아요.”

“너도 프로야구 취재하거든요?”

“저야 선배 따라다니는 거고요. 유성이 쫓아다니면서 당분간 고교 야구에 집중할게요. 네?”

“하아······.”

“유성이 저 주세요오~”

공윤경 기자가 어울리지 않게 코맹맹이 소리를 내자 주변에 앉아 있던 기자들의 시선이 몰렸고.

나영진 기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거기까지만 해라.”

“진짜죠? 나중에 딴 소리 마요.”

“대신에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내가 담당할 거야. 알았어?”

“그런 일 없을 거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입만 살아가지고는.”

나영진 기자의 허락을 받아낸 공윤경 기자는 곧바로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애정픽이 된 박유성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1대 0으로 한 점 앞선 3회 초.

이관우의 송구 실책으로 무사 주자 1,2루 찬스가 만들어지자 덕우 고등학교 최명룡 감독이 다급히 타임을 요청했다.

마운드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주목하는 에이스 이관우가 서 있었지만 최명룡 감독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투수 코치가 이관우를 달래는 동안 코치들과 작전 회의를 한 최명룡 감독은 선발로 출전한 우익수를 백업 멤버로 교체했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장타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앞서 이 관우를 상대로 선제 솔로 홈런을 때려낸 이 선수를 막을 수가 없었다.

“소설 쓰냐?”

“팬픽이라고 해 주세요.”

“그게 기사야?”

“경기 결과만 나열하면 누가 고교 야구 기사를 봐요?”

나영진 기자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윤경 기자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기사를 이어 나갔고.

나영진 기자도 노트북 덮개를 열고 기사 초안을 써내려갔다.

아직 경기는 3회 초.

이관우가 내려가고 불펜 믿을맨 강영신이 마운드를 물려받았지만 나영진 기자의 시선은 그라운드보다 노트북 모니터에 더 오래 머물렀다.

제 아무리 덕우 고등학교라 해도 이 흐름은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예상대로 신성 고등학교와 덕우 고등학교의 경기는 신성 고등학교의 7대 4, 신성 고등학교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단순히 점수만 놓고 보자면 제법 치열하게 맞붙은 것 같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덕우 고등학교는 에이스 이관우가 2이닝 동안 3피안타 4실점을 하고 물러난 반면 신성 고등학교는 에이스 손지원이 6이닝을 6피안타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지켰다.

6회 말 투구수가 많아지면서 연타를 허용하기 전까지는 만점에 가까운 피칭을 선보였고.

덕우 고등학교를 상대로 자신의 한계 투구수를 채우면서 다음 경기에 대한 기대감까지 보여주었다.

덕우 고등학교가 자랑하는 김정우와 이태민, 황윤성은 손지원의 씩씩한 투구에 눌려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 신성 고등학교 타자들은 이관우가 내려간 이후에도 매 이닝 안타를 때려 내며 덕우 고등학교 투수들을 괴롭혔다.

경기 초반에는 이관우의 위력적인 피칭에 힘을 쓰지 못했지만.

이관우가 내려간 이후에는 덕우 고등학교 타자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맹타를 뿜어냈다.

기세를 탄 신성 고등학교 타자들을 막기 위해 최명룡 감독은 무려 6명의 투수를 마운드 위에 올렸다.

선수층이 탄탄하지 않은 학교였다면 패전조를 돌려 경기를 포기했겠지만 10년 째 덕우 고등학교를 이끌고 있는 최명룡 감독은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영진 기자는 베스트 플레이어와 워스트 플레이어를 뽑았다.

워스트 플레이어는 에이스 노릇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자멸한 이관우.

그리고 베스트 플레이어의 영예는 2타수 2안타를 기록한 박유성에게 돌아갔다.

뒤늦게 기사를 접한 고교 야구 관계자들은 박유성이라는 이름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유성이 누구야?”

“신성 고등학교에서 요즘 밀어주고 있는 1번 타자라는데 아직 데이터가 없습니다.”

“데이터가 없다니?”

“지난 2년 간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만 나와서요.”

“타석에 들어선 적이 한 번도 없어?”

“다 해서 세 타석밖에 되지 않습니다. 안타는 없고요.”

“그러니까 전형적인 벤치 멤버였다는 건데······ 이게 말이 돼?”

선인 고등학교 장태우 감독이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박유성 - 홈런(1) 2루타(2) 볼넷 볼넷 볼넷

기사 하단에는 박유성의 타석별 결과와 성적이 적혀 있었는데 2타수 2안타에 무려 5번이나 출루에 성공했다.

추가로 3타점에 5득점. 도루 1개.

이관우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나갈 때마다 홈을 밟으며 신성 고등학교가 낸 7점 중에 5점을 책임졌으니 이 정도면 혼자서 다 했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라이벌 팀의 패배에 반색하던 김남훈 수석 코치는 신성 고등학교의 승리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이관우의 컨디션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관우가 못해서 졌다는 거야?”

“아직 봄이니까요. 덕우 고등학교도 전력을 다질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신성 고등학교와 우명 고등학교, 성현 고등학교, 덕우 고등학교, 서울 중앙고등학교, 서울 상업 고등학교, 선인 고등학교, 세명 고등학교가 맞붙는 서울 지역 A지구에서 우승 후보는 단연 덕우 고등학교와 선인 고등학교였다.

지난 해 덕우 고등학교는 황금사자기 준우승을 포함해 출전한 모든 전국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선인 고등학교도 5개의 전국대회 중 하나인 청룡기를 가져오며 우승 고교로 이름을 올렸다.

결과적으로는 두 학교 모두 성공했다 자평할 만한 시즌을 보냈지만 작년 초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덕우 고등학교는 첫 전국대회였던 대통령배에서 4강을 찍고 황금사가지 결승에 진출하며 올 해 일을 낼 거라는 기대감을 드높인 반면 선인 고등학교는 대통령배 2라운드 탈락에 이어 황금사자기도 16강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작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신성 고등학교 얘기하는데 왜 거기까지 가는 거야?”

“우리도 투수들 키우겠다고 밀어주다가 대통령배 광탈했잖아요. 하지만 결국 청룡기에서 우승했고요.”

“그래. 그게 중요한 거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작년 성적은 덕우 고등학교가 선인 고등학교보다 조금 나았다.

하지만 현장의 평가는 달랐다.

선인 고등학교가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에서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우승학교였다.

반면 덕우 고등학교는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다 보니 우승학교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 수가 없었다.

“작년에 시즌 끝나고 체육위원회에서 최명룡 감독 불려다가 잔소리 좀 했다고 합니다.”

“나도 그 얘기 듣긴 했는데 정말이었어?”

“그 쪽 코치들한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준우승도 좋지만 우승을 해 달라고요.”

“그래서 내가 말 했잖아. 준우승 백날 해 봐야 소용없다고. 아무튼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인간들은 우승밖에 모른다니까.”

장태우 감독이 혀를 찼다.

작년 초에 경질 이야기가 나돌았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이불을 박찰정도였다.

“아무튼 덕우 고등학교도 우승을 위해서 이관우를 테스트한 건지도 모릅니다.”

“테스트?”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평균 이상은 해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컨디션 안 좋았던 거 맞아?”

“이관우 피칭 기록 보니까 송구 실책도 있더라고요.”

“그랬어?”

“제가 다 파악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흠······. 그럼 이 녀석은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운도 운이지만 이관우를 노리고 나온 것 같습니다.”

“이관우를 노려?”

“지난주에 세명 고등학교 상대로도 이 녀석이 잘 했잖습니까. 그 때 세명에서 좌완 투수 내보냈었고요.”

“오호, 그러니까 이 녀석이 좌완 킬러라 이거지?”

“겨울에 따로 좌투수 공략법이라도 배워 온 것 같은데 아직은 한참 더 지켜봐야 합니다. 잘 하는 녀석이었으면 진즉 잘 했을 테고요.”

“흠······.”

“그리고 이관우 그 녀석은 조만간 한 번 호되게 털릴 줄 알았습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갑작스럽게 기량이 폭발하는 선수가 종종 나오지만 아마추어 레벨은 달랐다.

특히나 고교 야구는 중학교 때 잘 하는 녀석들이 대체로 성적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통용되는 게 떡잎론이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크게 될 재목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딱 보면 안다는 얘기였다.

떡잎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관우는 실력 이상으로 주목을 받는 중이었다.

중학교 성적은 평범했지만 갑자기 키가 크면서 운 좋게 덕우 고등학교에 갈수 있었고.

투수 조련사라 불리는 덕우 고등학교 김재영 코치의 집중 관리를 받으면서 고교 야구 최고의 유망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김남훈 수석 코치는 선인 고등학교 원투펀치인 김영진과 나해준이 이 관우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이관우는 김재영 코치가 만들어 낸 허상입니다. 작년에도 철저하게 관리를 받았고요.”

“한 경기 부러졌다고 너무 깎아내리는 거 아냐?”

“두고 보십시오. 다음 덕우 전 때 영진이가 이관우를 잡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

1주일 후.

김남훈 수석 코치의 호언장담대로 덕우 고등학교가 자랑하는 이관우는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선인 고등학교 타자들을 상대로 5이닝 동안 무려 5점을 내주고 만 것이다.

반면 선인 고등학교의 에이스 좌완 김영진은 덕우 고등학교 타선을 6이닝 3실 점으로 틀어막고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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