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78화
12. 헤이, 부라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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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박성구입니다. 오늘은 서울에서 진행중인 2028 U-18 야구 월드컵 슈퍼 라운드 첫 경기죠. 대한민국 대 쿠바, 쿠바대 대한민국의 경기를 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한재윤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한재윤입니다.
-조별리그가 끝나고 하루가 지났는데 곧바로 슈퍼 라운드로 접어들었습니다.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다소 가혹한 일정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국제 대회라는 게 길어서 좋을 게 없거든요. 게다가 우리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는 상황이니까요. 경기력을 유지하는데는 오히려 타이트한 일정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에도 한 차례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타이트한 일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다 신성 그룹에서 신성 고교 야구 전용 경기장을 지어줬기 때문인데요.
-사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신성 고교 야구 전용 경기장의 관중석규모를 가지고 말이 많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단 매진이 된 경기가 대한민국과 일본 전. 한 경기 뿐이었으니까요.
-네. 그 경기도 현장 매진이었고 암표 같은 건 거의 없었다고 하니까요. 이정도면 성공적인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회 마지막 날 열리는 3,4위전과 결승전은 목동 야구장에서 치르기로 합의가 됐다고 하는데요.
-우리 대표팀 성적이 좋잖아요? 홈에서 치르는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을 차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요. 협회 쪽에서도 목동 구장을 활용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박성구 캐스터와 한윤재 해설 위원이 주거니 받거니 오프닝을 진행하는 사이 중계 카메라가 양 측 더그아웃을 비춰 주었다.
5전 전승으로 A조 1위로 올라 온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몇몇 선수들은 카메라가 잡고 있는 줄도 모르고 서로 장난을 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반면 쿠바 대표팀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결승전 못지 않은 비장감이 감돌았다.
-지난 대회 전까지만 해도 U-18 야구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게 쿠바였습니다만 지난 대회에서 미국이 우승하면서 공동 1위로 내려오게 됐는데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 대회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해 보입니다.
-아마 야구 최강이라던 타이틀의 가치가 상당했으니까요. 한때는 쿠바 대표팀선수가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넘어오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돈 보따리를 싸 들고 달려들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요. 오히려 요즘에는 베네수엘라나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출신 선수들이 더 각광 받는 추세고요.
-폐쇄적인 정책으로 재능있는 선수들의 유출을 막아 왔는데 오히려 그게 독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말씀이시네요.
-쉽게 풀자면 이런 겁니다. 어느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거기 가려면 한 달 전부터 예약하고 줄 서고 해야 했는데 요즘은 시들한 겁니다. 엇비슷한 레스토랑이 많이 생겼거든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최소 입상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인데요. 다행히 이번 대회는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조 3위로 슈퍼 라운드에 올라오긴 했지만 조별 예선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으면서 슈퍼 라운드 전적이 1승 1패가 됐죠? 오늘부터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을 차례로 상대하게 되는데 세 경기 중 한 경기만 챙기더라도 슈퍼 라운드 4위 안에 들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동메달을 딸 수 있는 3,4위전 출전의 마지노선은 2승이었다.
조별 리그에서 1승 1패를 거둔 쿠바로서는 대만만 잡아내도 3,4위전 출전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오늘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을 잡아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 같은데요. 오늘 경기를 앞두고 방용택 감독이 맞춤 전략을 준비했다죠?
-대한민국 공격의 핵심은 박유성 선수니까요. 박유성 선수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선공을 맡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의 스타팅 라인업이 나왔습니다. 1번 타순에 중견수 박유성.
-대한민국의 심장이죠.
-2번 타순에 그동안 6번을 쳤던 오대석 선수가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주포지션인 3루가 아니라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는데요. 수비에서 안정감 있는 활약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3번 타자는 1루수 이동엽. 4번 타자 3루수 강준혁.
-강준혁 선수도 평소 지명 타자로 출전했습니다만 오늘 경기를 위해 3루수로 나왔는데요. 이동엽 선수와 함께 공격적으로는 최고의 활약을 펼쳐 주고 있지만 역시나 수비 안정감이 걱정입니다.
-5번 타자는 좌익수 홍상철. 6번 타자는 2루수 홍우진. 7번 타자는 포수 송산아. 그리고 8번과 9번에 김현중 선수와 고우일 선수가 들어갔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예선전을 돌이켜 보면 박유성 선수 앞에 주자가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상대로 편하게 볼넷으로 박유성 선수를 거를 수 있었고요.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마치 박유성 선수 앞에 테이블 세터를 깔아놓은 것 같은 라인업입니다.
-네. 잘 보셨습니다. 일단 경기 초반은 박유성 선수의 기동력을 극대화하면서 경기 후반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볼넷 작전까지 대비한 전략으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대표팀의 테이블 세터는 8번과 9번, 그리고 1번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괜찮을까요?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강한 2번 타자 론은 오래된 이론인데 박유성 선수는 나가면 도루가 보너스인 선수라서요.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타자보다는 오대석 선수처럼 펀치력이 있고 찬스에 강한 타자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한윤재 해설 위원이 방용택 감독의 구상을 열심히 변호했지만.
경기장을 찾아온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한국 타선이 왜 저 모양인 거야?”
“흠······. 아무래도 썬에게 타점까지 기대하는 것 같은데 너무 욕심 아닐까?”
“욕심이지. 저러면 썬에게 너무 과부하가 걸린다고.”
“한국 대표팀 감독이 너무 승부에만 집착했어.”
오로지 박유성을 보기 위해 제 1경기장을 찾아 온 다저스의 스카우트 빌리 게 스파노도 전광판에 새겨진 라인업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말 저대로 경기를 할 생각인가?”
“빌리. 라인업은 한 번 제출하면 끝이에요. 바꿀 수가 없다고요.”
“답답해서 하는 말이잖아. 만약에 말이야. 오늘 저 엉터리 라인업 때문에 썬이 집중 견제를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야······ 어쩔 수 없죠.”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썬이 지독한 부담감을 이겨내길 바라는 것 뿐이야. 그래야 구단에서도 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테니까.”
빌리 게스파노는 잠시 미친 듯이 날뛰는 박유성을 상상해봤다.
톱타자로 출전해 시작부터 선취 득점을 올리면서 클린업을 대신해 하위 타자들을 홈으로 불러들여 추가점을 뽑아내 준다면 박유성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구단 수뇌부들에게도 충분히 어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야구란 혼자서 할 수 없는 팀 스포츠였다.
제 아무리 위대한 투수라 해도 타자가 점수를 뽑아주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제 아무리 재능있는 타자라 해도 혼자서 활약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앞선 경기들처럼 쿠바가 박유성과의 승부를 피해 버린다면?
박유성의 장기인 빠른 발까지 묶이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지 몰랐다.
하지만 다저스보다 일찍 박유성을 눈여겨보고 있던 레이즈 스카우트들의 반응은 달랐다.
“한국이 머리를 잘 썼어. 썬의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거야.”
“주변 반응은 시원찮은데요?”
“킴. 저런 애송이들이 떠드는 말은 신경쓰지 마. 보나마나 썬을 동양인으로 보고 깔보는 걸 테니까.”
레이즈의 수석 스카우트 앤드류 톰슨은 다른 스카우트들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했다.
애당초 저들 중에 박유성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U-18 야구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박유성을 보면서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저것도 다 인종 차별이라는 거죠?”
“그래. 맞아. 내가 지난번에 말 해 줬지? 동등한 실력을 가진 미국 태생의 백인 선수와 쿠바 태생의 흑인 선수. 그리고 아시아 선수를 두고 순위를 매기면 백이면 백 아시아 선수에게 최하점을 준다고.”
“그야 아시아 쪽 선수들이 체격적으로······.”
“킴. 내가 방금 한 말을 이해 못 한 거야?”
“이해 했습니다. 동등한 실력이라고요.”
“그래. 동등한 실력.”
“하지만 체격 차이는 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체격 차이가 날 수도 있지. 하지만 아시아 선수의 체격이 가장 형편없을 거라는 건 네 편견 아닐까?”
“그건······.”
“난 네 출신 따위는 관심 없어. 하지만 말이야. 스카우트로서 선입견에 빠져서 선수를 판단하는 건 곤란하다고. 만약에 썬이 미국 대표팀 소속이었어 봐.
그래도 과연 주변 반응이 이럴까?”
“······만약 그랬다면 난리가 났겠죠.”
“그래. 그 선수를 위해 감독이 절묘한 작전을 짜냈다고 극찬을 쏟아냈겠지.
만에 하나 결과가 나쁘더라도 아쉬운 결과였다고 포장해 줬을 테고.”
“······.”
“그러니까 우리라도 스카우트로서의 본분을 다하자고. 솔직히 썬은 다른 구단에 가 봐야 제대로 된 기회를 보장받기 어려워.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우리는 얼마든지 썬을 밀어줄 수 있어.”
대단한 듯 떠드는 앤드류 톰슨을 보며 아시아 담당인 데이비드 킴은 멋쩍게 웃어야 했다.
솔직히 말해 레이즈라고 해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빅마켓 구단은 아무나 뽑지 않으니 경쟁이 치열한 거고.
레이즈 같은 스몰 마켓 구단은 연봉이 비싼 선수들을 팔아먹고 그 빈 자리를 유망주들로 채우다 보니 기회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 어느 팜을 가더라도 유망주들은 득실득실했다.
만약 그 속에 박유성을 밀어 넣었을 때 과연 얼마만큼 해 줄 수 있을까.
앤드류 톰슨은 성공을 확신하는 눈치지만 그보다 먼저 박유성을 찾아 낸 데이비드 킴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번 대회 전 데이비드 킴은 20-80스케일로 박유성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정확성 - 40~45
파워 - 30~35
스피드 - 60~65
어깨 - 60~65
수비 - 55~60
종합 - 50
대통령배 최고의 타자로 꼽히며 청소년 대표팀까지 승선한 활약상에 비한다면 저조한 느낌이지만.
기준점이 메이저리그인 걸 감안했을 때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실제 2021년 투타겸업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한 일본의 오타니 쇼헤의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타자로서의 점수는 60점에 그쳤다.
여기에 이번 대회 활약상을 집어넣더라도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확성을 45점으로 상향 조정하고 스피드를 65점으로 올려도 50점이라는 종합평가는 그대로였다.
만약 박유성이 미국 태생이거나 북중미 선수였다면 50점이라는 점수도 유의미했겠지만.
아시아 출신 선수이다보니 실질적으로는 45점 이상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20-80 스케일 기준으로 주전급은 50점.
45점이면 빅마켓의 백업이나 스몰 마켓의 주전급인데 이 정도 수준의 선수는 마이너리그에 차고 넘쳤다.
‘지금 상태로는 돋보일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