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32화 (132/412)

타자 인생 3회차! 132화

19. 유성이 맛이 어때?(4)

“이 자식이?”

뒤늦게 깨톡을 확인한 박유성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건지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유신아. 넌 안 되겠다. 그냥 예전처럼 맞으면서 크자. 그게 맞는 거 같다.”

3회차 들어 다시 어려진 동생이 귀여워 오냐오냐했건만.

이대로 가다간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앉을 것 같았다.

그때 송현민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뭐 해? 밥 먹으러 가자니까.”

“네. 가요.”

송현민을 따라 방을 나서려던 박유성은 발걸음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국가대표니까 눈곱은 떼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윽!”

갑자기 코끝을 찌르는 냄새에 냉큼 화장실 문을 닫아야 했다.

“짜식이 유난은. 나 때는 인마 선배들의 방귀 냄새도 향기로웠어.”

“그건 형 때고요. 제 코는 솔직하다고요.”

“어휴, 진짜 이걸 어떻게 하지? 진짜 야구만 못했어도 가만 안 두는 건데.”

“그래서 제가 악착같이 야구 하잖아요.”

“그래. 넌 계속 야구 열심히 해라. 조금만 삐끗하면 내가 바로 갈굴 거야.”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너도 너 같은 후배 만나봐야 정신 차릴 텐데.”

혀를 차는 송현민을 보며 박유성도 마음을 다잡았다.

‘박유신. 한국 가면 보자.’

나중에 송현민 같은 꼴을 안 당하려면 지금부터 군기(?)를 확실히 잡아놓아야 할 것 같았다.

호텔 레스토랑에 내려갔더니 먼저 온 선배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박유성이 그 테이블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김하선이 이쪽으로 오라며 빈 테이블을 가리켰다.

“아, 저기서 먹으면 소화 안 되는데.”

“그럼 형은 저만치 떨어져서 먹어요.”

“장난하냐? 지금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그럼 편하게 받아들여요. 난 선배님들 좋기만 한데 왜요?”

“넌 막내니까 그렇지 인마. 그리고 넌 나 때문에 진짜 대표팀 생활 편하게 하는 줄 알아라.”

“그 소리 병규 형도 하던데요?”

“병규가? 이 자식이 이거 안 되겠네. 어디 우리 유성이 군기를 잡으려 들어?”

“형도 맨날 그러잖아요. 병규 형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야 인마. 나하고 병규는 다르지.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 그리고 넌 나하고 더 친하잖아. 안 그래?”

“그렇다고 쳐요.”

“그렇다고 치긴 뭘 쳐! 야. 박유성! 너 똑바로 말해. 나야 병규야?”

하이틴 드라마 속에서도 안 써먹을 것 같은 유치찬란한 말을 진지하게 내뱉는 송현민을 보며 박유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회차와 2회차 때 겪어서 송현민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착각이었다.

“빨리 가요.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요.”

“보면 뭐 어때서? 넌 내가 창피하냐?”

“어휴. 형 여자친구 없죠?”

“없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거거든?”

“이러니까 여자친구가 없지.”

“야! 그러는 너는 있냐?”

“전 아직 미성년자인데요?”

“미성년자 같은 소리 하네. 네 얼굴을 봐라. 복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다.”

“형은 거울 안 보나 봐요?”

“짜식이 어디 송스타 앞에서 얼굴 지적질이야? 너 내 팬들이 얼마나 많은 줄 몰라?”

“그거 형이 쿠폰 뿌려서 모은 거라던 소문이 있던데요?”

“50만 명한테 쿠폰 뿌릴 만큼 벌지도 못했으니까 헛소리 적당히 하고. 팍팍 담아 인마. 왜 이렇게 적게 담아?”

송현민이 박유성의 접시를 보며 물었다.

평소라면 음식들이 가득 쌓여 있을 텐데 오늘은 그 절반도 담지 않았다.

“뭐 하러 많이 먹어요. 경기 뛰지도 못할 텐데.”

“야.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막말로 경기 초반에 점수 못 내봐라. 그럼 감독님이 누구부터 호출하겠냐?”

“괜히 희망 고문 하지 마요.”

“진짜라니까? 암튼 형 믿고 제대로 먹어둬. 내가 장담하는데 너 무조건 후반에 투입한다.”

“확실해요?”

“까놓고 말해서 정후 형하고 백호 형 너 없으면 힘들어 인마. 네 덕분에 편하게 수비하고 있는데 너 빠져봐라. 저 노땅 형들 죽으려고 할걸?”

송현민의 말을 기정후와 감백호가 들었다면 발끈했겠지만.

한때 대한민국 야구계를 찬란하게 빛냈던 두 사람도 세월은 피하지 못했다.

98년생인 기정후는 한국 나이로 서른하나.

그보다 한 살 어린 감백호도 서른이었다.

기정후와 동갑인 백영완은 서른이면 한창때라고 주장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국내 일정과 달리 비행기를 타야 하는 메이저리그 특성상 국내 리그에 비해 체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저 형들은 수비하려고 온 게 아냐. 점수 내려고 온 거지. 수비 부담이 커서 좋을 게 없는데 참…….”

“알았으니까 거기까지만 해요. 그러다 진짜 누가 듣겠어요.”

혹시라도 송현민의 입에서 실언이 튀어나올까 봐 박유성은 갈비를 한가득 집어 접시에 담았다.

“그래. 이래야 박유성이지.”

송현민도 씩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차 자신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야구계를 이끌어야 하는 박유성이 고작 선발 출전 때문에 기죽어 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박유성과 송현민은 양손 가득 접시를 들고 선배들이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대부분 LA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마련해 준 선수촌을 사용하고 있지만.

야구 선수들은 야구광인 신성 그룹 신상욱 회장의 배려 속에 신성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 중이었다.

심지어 호텔 레스토랑 한편에 칸막이를 설치해 야구 대표팀 선수들만 사용하게끔 만들어준 덕분에 선수들도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유성이가 잘 퍼왔네. 오늘 갈비 맛있더라.”

“그래요?”

“유성아. 선발 출전 아니라고 삐치지 말고 많이 먹어둬. 그래야 언제든 경기 나갈 수 있지.”

최선참인 김하선이 박유성을 독려했다. 그러자 기정후와 감백호도 한마디씩 보탰다.

“유성아. 형은 오래 못 버틴다. 빨리 와야 해. 알았지?”

“나도 마찬가지야. 정후 형 보나 마나 대충 뛸 건데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뭐 인마? 내가 언제 대충 뛰어?”

“유성이에 비하면 대충 뛰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다 대충 뛰는 거네?”

“그래. 백호야. 기준이 너무 빡세다.”

“형들. 그만 싸워요. 이게 다 유성이가 쓸데없이 수비 잘해서 그런 겁니다. 다 유성이 잘못이에요.”

송현민이 이때다 싶어 한마디 거들었지만.

박유성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식사를 즐겼다.

앞서 국가 대표 생활을 겪은 데다가 2회차 말에 저니맨으로 지내면서 눈칫밥을 먹은 전력까지 있다 보니 이 정도 농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진짜 유성이 멘탈 좋다.”

“그러게요. 현민이 녀석은 처음에 우리가 같이 밥 먹자고 하면 국에 밥 말아 먹었잖아요.”

“제가요?”

“응. 네가요. 내가 나중에 물어봤더니 고기 먹으면 소화 안 될 것 같다고 했잖아?”

“저 그런 적 없는데요? 백호 형 나이 먹더니 가물가물하는가 봐요.”

“너 맞아요. 이 자식아. 내가 따로 챙긴 게 너뿐인데 어디서 형을 치매로 몰아?”

“나도 그 얘기 들었는데 기억 못 하는 거 보면 현민이 너야말로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 왜 갑자기 저한테 그래요? 아까처럼 유성이 까요. 네?”

“깔 게 있어야 까지 인마. 유성이처럼 잘하는 애가 어디 있다고?”

“와, 국대가 야구만 잘하면 장땡입니까?”

“그럼 야구만 잘하면 장땡이지. 뭘 더 바라?”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현민이 쟤는 진짜 왜 저렇게 뻔뻔해졌나 모르겠어요.”

“형들 그만 좀 해요. 유성이 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유성이 반만이라도 하시라고요. 송현민 선수.”

“유성아. 넌 현민이처럼 저러지 말고 바르게 자라라. 알았지?”

“넵. 선배님! 현민이 형한테는 야구만 본받을게요.”

야무지게 갈비를 뜯으며 내뱉은 박유성의 한마디에 김하선은 웃음이 터졌다.

그 와중에도 송현민의 자존심을 챙겨주는 박유성이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제 대만 너무 못하던데요?”

“상대가 미국이었잖아. 크리스 반스였고.”

“아무리 그래도 7회까지 퍼펙트는 좀 심하지 않아요?”

“우리도 게릿 벌렌더 상대로 안타 거의 못 치지 않았냐?”

“에이. 그래도 우린 유성이가 하나 해줬잖아요.”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은 야구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격언이다.

특히나 포스트 시즌과 같은 단기전 때는 투수력이 좋은 팀이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제 있었던 미국과 대만의 경기는 미국의 8 대 0 승리로 끝이 났다.

선발로 등판한 크리스 반스는 8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만 내준 채 대만 대표팀 타자들을 꽁꽁 묶었고.

미국 타자들은 매 이닝 출루에 성공하며 천신위 말고는 믿을 만한 투수가 없는 대만 대표팀을 철저하게 괴롭혔다.

“어제 대만 투수 몇 명 나왔지?”

“천신위하고 오늘 선발 빼고 다 나왔을걸요?”

“어차피 진 경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래도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았잖아요. 대만 입장에서는 오늘 우리를 잡을 수도 있는 거니까. TQB 신경 써야죠.”

비록 미국에게 대패하긴 했지만 대만에게도 아직 경우의 수가 남아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대한민국을 잡고 내일 도미니카 공화국이 미국을 잡아 주는 것.

이 경우에는 승자승에 따라 대만이 조 1위, 대한민국이 조 2위가 되지만 이렇게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0에 수렴했다.

그다음으로 남은 수가 바로 세 팀이 2승 1패가 되는 것.

대만이 대한민국을 잡고 미국이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으면 도미니카 공화국이 3패가 되고 나머지 세 팀이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TQB로 순위를 따지게 되는데 설사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대만이 4강에 올라갈 가능성은 희박했다.

“대만이 TQB로 올라가려면 우릴 몇 점 차이로 이겨야 하는 거야?”

“10점 차이로 이겨야 해요. 우리가 미국전에서 1점 땄고 대만은 8점을 까먹었으니까요.”

“9점 차이면 동점이야?”

“아뇨. 수비 이닝이 우리가 조금 더 많대요. 그래서 대만은 무조건 10점 차이로 이겨야 올라가요.”

“10점 차이로는 져줄 자신이 없는데?”

“에이, 그건 못 하죠. 우린 오늘 경기 투수들 총력전이잖아요.”

어제 경기를 치른 대만은 휴식일 없이 곧바로 경기가 잡힌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은 하루를 푹 쉰 상태였다.

대만 입장에서는 일정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LA 조직 위원회에서 세계 랭킹이 높은 순서대로 일정을 유리하게 편성하겠다고 발표한 터라 과정상의 문제는 없었다.

“오늘 경기 끝나면 우린 이틀을 쉬는 거지?”

“그렇죠. 내일 미국하고 도미니카 공화국 경기 있고. 그다음 날은 휴식일이니까요.”

“대만은 최악의 상황이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언론에서 출전 안 한 선수들 가지고 난리잖아요.”

송현민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감백호가 냉큼 눈치를 줬다. 그리고 박유성을 바라봤는데 박유성은 갈비 뼈대까지 쪽쪽 빨아대며 먹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현민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유성이 갈비나 더 가져다줘라.”

“네? 제가요?”

“그래 인마. 가는 김에 하선이 형 디저트도 가져오고.”

“에이, 백호 형. 이건 아니죠. 아니 대표팀 기강이 언제부터 이랬어요? 막내가 밥 먹는데 저더러 심부름을 하라고요?”

“그래. 현민아. 앉아 있어. 형이 가져올게.”

“정후 형이 왜 일어나요! 스톱! 엉덩이 붙이고 있어요. 내가 갈 테니까.”

송현민이 씩씩거리며 자리를 뜨자 김하선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성아. 언론이나 커뮤니티에서 떠드는 얘기들 신경 쓰지 마. 우린 여기 야구 하러 온 거다. 알지?”

“네. 선배님.”

“그래.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어.”

“선배님은 더 안 드세요?”

“난 너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김하선의 말에 기정후와 감백호가 피식 웃었다.

야구 잘하는 후배들을 보면 밥 한 끼라도 더 사주고 싶다는 선배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박유성을 보니까 알 것 같았다.

그때 송현민이 복수를 하듯 접시에 갈비만 가득 퍼 왔다.

“야 인마. 이걸 어떻게 다 먹냐?”

“무조건 먹어야죠. 하늘 같은 선배가 퍼 왔는데.”

“어휴, 송현민 저거 언제 철들까.”

“백호 형은 왜 맨날 나만 뭐라고 해요?”

선배들이 놀랄 만큼 양이 많긴 했지만 갈비가 입에 맞았던 박유성은 군말 없이 갈비를 해치웠다.

그리고 7회 말.

1사 이후에 감백호가 좌전 안타로 출루하자 강기태 감독이 소화를 시킬 기회를 줬다.

“유성아! 준비하자!”

“넵! 감독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