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91화
24. 역대급 신인(12)
“15개 구단이라고? 확실한 거야?”
“에이전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일부 구단에서 접촉을 시도한 건 사실 같습니다. 250만 달러라는 금액도 현실적이고요.”
“젠장. 썬에게 관심 없다는 말을 믿는 게 아니었어.”
LA 올림픽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이저리그는 중단했던 리그를 재개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축제의 여운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재를 뿌렸다며 불만스러워했지만.
리그가 단축되면 손해를 봐야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야구팬들의 관심사도 포스트 시즌으로 향했다.
└이번 시리즈만 잡아내면 포스트 시즌 진출 확정인 거지? @Weden
└아직 포스트 시즌 진출이 확정된 팀은 없어. 탈락이 확정적인 팀들은 있지만. @Berth H
└난 아직도 올림픽 기간 동안 메이저리그를 멈춘 게 이해가 가지 않아. @RS8042
└나도 마찬가지야. 올림픽은 올림픽이고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그야. 월드컵을 한다고 메이저리그가 멈추진 않잖아? @Andres128
└우리 나라에서 치르는 올림픽이니까 이해 해 줘야지. 어쨌든 다들 푹 쉬었으니까 순위 싸움이 재미있어 질 것 같아. @CappDrop34
└그래서 불만인 사람들도 많을 걸? 중간에 쉬는 바람에 약팀들도 전력을 재정비할 수 있게 됐잖아. @mario033e
2028년 메이저리그는 지구를 불문하고 순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올림픽 이후 60경기를 남겨 놓은 상황이고 산술적으로는 모든 팀에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남아 있다 보니 준우승으로 끝난 올림픽 야구를 언급하는 이들은 손에 꼽혔다.
여론을 살핀 빅마켓 구단들도 박유성에 대한 관심을 잠시 내려놓았다.
프로 야구 드래프트가 끝이 나고 각 구단에서 지명한 선수들과 계약을 진행할 때쯤 오퍼를 해도 늦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자신들이 잠시 순위 싸움에 집중하는 사이 포스트 시즌에서 밀린 팀들이 한발 앞서 박유성에게 달려가 버렸다.
“지금 가장 많이 부른 곳이 어디야?”
“로열즈에서 330만 달러까지 제안했다고 합니다.”
“330만 달러면 거의 절반이잖아?”
“그래서 지금 다른 구단들도 비상에 걸렸습니다. 썬의 에이전트와 대화라도 해 보려면 그 이상을 준비해야 하는데 다들 사정은 빠듯해서요.”
빅마켓 구단들의 선수 독점을 막기 위해 등급제가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몰 마켓 구단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아니었다.
A그룹과 B그룹, 그리고 C그룹의 차이는 각 50만 달러.
스몰 마켓이 빅마켓보다 두 배 정도 돈을 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최대 100만 달러 차이로는 큰 변별력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로열즈의 조건을 확인한 빅마켓 구단들은 앞다투어 보너스 풀 트레이드에 나섰다.
“지금 보너스 풀이 남은 구단이 어디지?”
“썬에게 접촉한 구단이 15개니까 정말로 썬을 영입할 생각이 있다면 대부분 남겨 놓았을 겁니다.”
스몰 마켓 중에서도 최하위권의 구단들은 해외 아마추어 선수 계약금조차 전부 다 소진하지 않았다.
빅마켓 구단에게 550만 달러는 껌값일지 몰라도 스몰 마켓 구단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기 때문이었다.
스몰 마켓 입장에서는 어찌 될지 모르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300만 달러를 투자하고 로또가 터지길 바라느니 그 300만 달러를 타 구단에 넘기고 그 대가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선수를 받는 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이 올림픽에서 보여 준 활약상이 너무 인상적이어서일까.
예년처럼 고분고분하게 협상에 임하는 구단이 없었다.
“브루어스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이크 머레이를 데려가라고 합니다.”
“뭐? 누굴 데려가?”
“제이크 머레이요.”
“그 처치 곤란한 골칫덩어리를 우리더러 떠안으라는 거야?”
“거기에 유망주들도 원하고 있습니다. 구색은 맞춰야 한다면서요.”
“미쳤군. 미쳤어. 메이저리그가 미쳐 돌아가고 있어.”
다저스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시장 원리상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면 비싼 값을 치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브루어스 구단들을 비롯해 스몰 마켓 구단들이 부리는 배짱은 기가 찰 정도였다.
“오늘까지 연락을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설마 그 미친 소리를 들어 줄 구단이 있다는 거야?”
“브루어스 말로는 양키즈와 레인저스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제이크 머레이의 남은 연봉이 얼마인데?”
제이크 머레이는 브루어스 구단 역사상 최악의 계약이라 꼽히는 선수였다.
스물여섯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30개의 홈런을 때려낼 때까지만 해도 대기만성형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4년 차 시즌인 3년 전에 7년에 1억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맺고 난 다음부터 말 그대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2할 후반까지 나오던 타율은 2할 초반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가끔씩 터지던 장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브루어스도 계약 후반에 계약금을 몰아넣었지만, 대신 바이아웃 조건을 빼버린 탓에 손해를 줄이려면 어떻게든 제이크 머레이를 트레이드를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양키즈와 레인저스라면 제이크 머레이의 잔여 연봉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잔여 연봉의 문제가 아니잖아. 대타로도 쓰지 못할 선수를 데리고 있어서 뭐 하려고? 사치세 더 낼 일 있어?”
“물론 그렇긴 하지만 쏭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쏭? 레인저스의 쏭 말하는 거야?”
“네. 6년 전에도 쏭에게 많은 구단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때 레인저스가 가장 끈질기게 구애를 했었고요.”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쏭이 레인저스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예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쏭도 입단 당시에 레인저스 구단의 꾸준한 관심을 언급했으니까요.”
“하아. 진짜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모든 프로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메이저리그도 돈이 최고였다.
구단은 가치 있는 선수에게 돈을 쓰고.
선수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팀을 선택하는 게 옳았다.
물론 로키즈처럼 개인 성적을 내기 힘든 팀이나 주세가 많은 팀들은 고려 대상이 되겠지만.
결국 돈의 논리를 따라가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작년에 송현민을 놓쳤을 때도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주세 때문이라고 여겼다.
레인저스가 자리를 잡은 텍사스의 주세가 낮다 보니 송현민이 보다 나은 조건을 선택한 거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생각은 달랐다.
“오타니 쇼헤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에 모든 구단이 오타니 소헤에게 매달렸지만 결국 애인젤스를 선택했습니다. 아시아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브루어스의 저 미친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거야?”
“브루어스가 아니더라도 일단은 최고의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고 싶은데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현재 다저스에 남은 해외 아마추어 선수 관련 보너스 풀은 250만 달러.
언론에 공개된 최저 계약 조건과 같은 금액이었지만 이마저도 기존에 추진하던 계약 일부를 해지해 만든 결과물이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말대로 250만 달러짜리 오퍼를 넣는다 한들 그 이상의 계약을 받았을 게 뻔한 박유성 쪽에서 받아들일 리 없었다.
오히려 형식적인 오퍼를 했다고 언론의 질타를 받을 게 뻔했다.
“지금 당장은 보너스 풀을 트레이드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금액을 전부 쓴다면 썬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0만 달러로 말이야?”
“아니요. 550만 달러로요.”
“……뭐?”
“지금 추진 중인 계약을 전면 유보하고 썬에게 올인하는 겁니다. 분명 따라 하는 구단도 있을 테고 트레이드를 통해 더 많은 금액을 제안하는 구단도 나오겠지만 일단은 우리가 썬에게 이만큼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썬이 계약을 받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시죠. 어차피 아마추어 계약 기간은 6월까지입니다. 일단 우리가 썬을 잡으면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보너스 풀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정 안 된다면…….”
“안 된다면?”
“페널티를 각오하는 거죠.”
2027년에 개정된 노사 단체 협약에서 일부 빅마켓 구단들의 꼼수를 막기 위해 페널티를 강화했다.
양키즈를 비롯한 빅마켓 구단들이 페널티가 약한 구간까지 금액을 초과 지출하면서 시장 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바로 올해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 따르면 상한선의 5퍼센트 미만 초과 시 초과 금액의 100퍼센트를 사치세로 물게 되며 20퍼센트까지 5퍼센트가 늘어날 때마다 사치세도 100퍼센트씩 가산된다.
“썬에게 550만 달러를 주고 지금 계약을 전부 이행한다면 얼마가 오버되는 거야?”
“대략 300만 달러입니다.”
“그럼 20퍼센트 이상이니까 초과 금액의 500퍼센트잖아?”
“네. 1500만 달러를 내야 합니다. 추가로 3년 간 30만 달러 이상의 아마추어 계약 금지고요. 하지만 그 금액이 제이크 머레이를 받아 오는 것보다 저렴합니다.”
내년부터 커지기 시작하는 제이크 머레이의 잔여 연봉은 4년 간 무려 7천만 달러.
연평균으로 치면 1750만 달러이니 사치세를 내는 게 싸게 먹혔다.
“올림픽 때 썬은 쏭과 룸메이트였습니다. 쏭은 일찌감치 썬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후원했고요. 레인저스에서 브루어스의 계약을 두고 고민하는 이유도 쏭의 추천 때문일지 모릅니다.”
“쏭이 생각 이상으로 잘해 주고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이대로 상황이 흘러간다고 가정했을 때 쏭이 적극적으로 레인저스를 추천한다면 썬이 레인저스에 입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전에 우리도 승부수를 꺼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까지 했는데 썬이 레인저스로 가면?”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레인저스 돈 다니엘 사장은 사치세 내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니까요.”
한참을 고심하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이내 칼을 뽑아들었다.
“언론사에 연락해. 썬에게 올인하겠다고.”
박유성이 아마추어 계약보다 포스팅을 통한 대형 계약을 맺을 거라는 예측 속에서 던진 블러핑이었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다.
다저스, 박유성 영입에 올인한다! 최대 550만 달러 준비 중!
바다 건너 들려 오는 소식에 야구 팬들은 물론이고 신상욱 회장도 화들짝 놀랐다.
“550만 달러면 얼마야?”
“지금 환율로 74억 정도입니다. 세후 수령액은 절반 쯤 될 테고요.”
“우리가 준비한 금액은 얼마야?”
“지난번 보고로는 세후 20억 정도였습니다. 추가로 그룹 계열사 광고 2편이 포함됐고요.”
“그렇게 해도 절반밖에 안 되잖아? 김 단장한테 전달해! 다른 구단 눈치 보지 말고 제대로 준비하라고!”
신상욱 회장의 지시를 받은 김재식 단장은 곧바로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커뮤니티 반응은 어떻습니까?”
“550만 달러면 메이저리그에 가는 게 맞다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스타즈 팬들은 패닉 상태고요.”
“다저스에서 박유성 선수에게 550만 달러를 지불할 수는 있는 겁니까?”
“보너스 풀을 트레이드해도 550만 달러까지는 안 나올 겁니다. 아마 다른 아마추어 선수들의 계약을 포기하고 박유성 선수 한 명에게 집중하겠다는 쇼인 것 같은데 다른 구단도 아니고 하필 다저스라서요. 여파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미국 쪽에서 적당히 반응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크네요.”
김재식 단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벼운 잽 정도를 기대했건만 갑자기 어퍼컷을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박유성을 메이저리그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유성 선수가 입단 계약을 한 건 일단 머릿속에서 지우세요.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박유성 선수를 잡아도 잡은 게 아닙니다.”
김재식 단장의 주재 속에 팀장들은 밤늦게까지 머리를 쥐어짜 냈다. 그리고 겨우 송광철 대표와 박유성이 만족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