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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03화 (203/412)

타자 인생 3회차! 203화

25. 스타즈의 신성(12)

박유성은 안준혁 팀장을 슬쩍 바라봤다.

안준혁 팀장이 불쾌해하면 적당히 핑계를 대고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안준혁 팀장은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이었다.

“박유성 선수. 제 눈치 안 봐도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블라인드 심사를 할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블라인드 심사요.”

“만장일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보 선수가 10명이나 되고요.”

현재 다른 구단은 괜찮은 선수들을 추려놓고 저울질이 한창이었다.

그중 일부는 벌써 구두 계약을 끝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고.

일부는 반대로 여러 구단의 오퍼를 두고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5명도 아니고 10명이나 되는 후보군을 뽑았다는 건 너무 태평해 보였다.

‘도대체 누굴 뽑으려는 거지?’

안준혁 팀장의 양해까지 구한 박유성은 조심스럽게 리스트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이름을 훑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이름을 찾아냈다.

‘제이슨 마이너? 내가 아는 그 마이너인가?’

박유성은 재빨리 제이슨 마이너의 세부 정보를 확인했다.

2006년생. 밀워키 브루어스 쿼드러플 좌완 투수. 191㎝에 89㎏. 최고 구속은 155㎞/h. 주무기는 슬라이더.

“혹시 제이슨 마이너 팔 각도가 어떻게 되나요?”

“네?”

“제이슨 마이너요. 여기 5번째에 있는 투수요.”

“아, 제이슨 마이너요? 쓰리쿼터라고 하기에는 조금 낮고…….”

“언더핸드라고 하기에는 조금 높고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미튜브에서 이 선수 영상을 본 적이 있어서요.”

“그래요? 보기에 어땠나요? 잘 던지던가요?”

“그냥 제 느낌이지만 이 선수 공은 어지간한 좌타자들은 건드리지도 못할 거예요.”

느낌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긴 했지만 박유성은 제이슨 마이너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1회차 시절은 물론이고 2회차 시절에도 제이슨 마이너를 상대로 1할을 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성기 시절 앤디 존슨처럼 긴 팔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공을 던지는데 횡적인 무브먼트가 상당히 좋다 보니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히팅포인트를 앞쪽으로 잡으면 열에 아홉은 파울이 났고.

반대로 뒤쪽으로 잡으면 도망치는 공에 헛스윙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한국에서 딱 1년만 뛰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망정이지 한국에 오래 있었다면 통산 타율을 상당히 까먹었을 터.

‘예전에는 다이노스가 데려가서 꿀을 빨았으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데려오자.’

박유성이 상기된 얼굴로 김재식 단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멋쩍게 웃고는 안준혁 팀장에게 말했다.

“제이슨 마이너 선수는 어떻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몸값이 문제입니다.”

“몸값이 얼마입니까?”

“200만 달러 정도라면 협상의 여지가 있을 텐데 300만 달러 정도를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흠……. 300만 달러라.”

“아시겠지만 외국인 선수 초봉은 150만 달러입니다. 규정 위반 시 페널티가 커서 뒷돈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고요.”

프로 야구 구단이 12개로 늘어나고 양대 리그가 시행되면서 좋은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뒷돈이 오갔고.

원하던 선수를 빼앗긴 구단에서 언론에 이중 계약 사실을 폭로하는 등 야구판이 시끄러워지자 현 장인석 총재가 초강경책을 내놓았다.

[계약 위반 사항 적발 시 3년간 외국인 용병 보유 제한 1명 감축.]

말 그대로 뒷돈을 주다 걸리면 4명까지 쓸 수 있는 외국인 선수를 3명밖에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타 구단의 부정 거래를 신고할 경우 1명에 한해 외국인 선수 첫해 계약금을 100퍼센트 늘려준다는 당근책까지 내놓으니까 뒷거래가 깨끗이 사라졌다.

단순히 페널티만 있다면 구단들끼리 적당히 눈 감고 넘어갔을 테지만.

타 구단의 부정행위를 고발하면 초봉 300만 달러짜리 용병을 데려올 수 있는 혜택은 우승으로 가는 골든 티켓이나 다름없었다.

“옵션으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장기 계약이 아닌 선수들은 옵션으로 연봉을 보전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계약금 100만 달러에 50만 달러짜리 옵션을 넣는 건 가능하지만 계약금 150만 달러에 50만 달러 옵션을 걸면 당장 협회에서 계약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흠……. 그럼 다른 혜택들로 금액 차이를 맞춰야 한다는 건데 골치 아프네요.”

미국과는 달리 국내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에게 집과 차는 물론이고 개인 통역까지 붙여주지만 그 이점은 한국에 와서 직접 뛰어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외국인 선수에게 구단의 복지를 얘기한들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게다가 그런 혜택들은 선수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보니 수수료로 먹고사는 에이전트들도 시큰둥해했다.

“그래도 박유성 선수가 까다롭게 느끼는 투수니까 한번 힘써보세요.”

“네. 단장님. 최선을 다해 협상해 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준혁 팀장은 제이슨 마이너와 계약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제이슨 마이너가 이번 시즌에도 메이저리그 콜 업에 실패해서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거라면 또 몰라도 지금 당장 150만 달러에 사인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성은 2회차 시절 김경민 단장으로부터 제이슨 마이너의 계약 비화를 들어 알고 있었다.

‘제이슨 마이너가 은퇴를 했다네요.’

‘제이슨 마이너요? 그 투구폼 엿 같던 걔요?’

‘하하. 네. 박유성 선수가 꼼짝을 못 하던 걔요.’

‘저 말고도 좌투수들은 제이슨 마이너한테 다 죽 쒔는데요 뭘. 그런데 일본에서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더니 왜 은퇴를 했대요?’

‘제이슨 마이너라고 평생 잘 던지겠습니까? 전성기가 지났으니 은퇴를 하는 거겠죠.’

‘그래도 일본에서 벌어놓은 돈이 많아서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겠네요.’

‘꼭 저 들으라고 하는 말 같습니다만?’

‘알아들으셨으면 저 좀 챙겨주세요. 돈이 없어서 장가를 못 가고 있어요.’

‘방금 그 말 기사로 나가면 대한민국 노총각들한테 돌 맞을 겁니다.’

‘그나저나 다이노스는 어떻게 제이슨 마이너를 잡은 거예요?’

‘아, 그거요? 제이슨 마이너에게 형이 있습니다. 터너 마이너라고. 그 친구도 야구 선수거든요. 동생처럼 재능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함께 호흡을 맞췄다고 합니다. 은퇴 후에는 제이슨 마이너의 매니저 역할을 해왔고요.’

‘그럼 터너 마이너까지 함께 계약한 건가요?’

‘역시. 박유성 선수는 눈치가 빨라서 좋아요.’

당시에는 술자리 안줏거리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3회차로 돌아온 지금은 달랐다.

“단장님. 만약에 말이에요. 제이슨 마이너가 친형과 같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친형이요?”

“네. 어려서부터 함께 야구를 했고 서로 의지하는 그런 형제라면요?”

“그렇다면 같이 데려와야겠죠. 구단에서 체류 비용을 지불하더라도요.”

“하지만 그러면 시즌 중에는 집에서만 봐야 하잖아요?”

“……?”

“제가 알기로 제이슨 마이너 친형이 포수거든요. 은퇴하긴 했지만 구단에 영어 잘하는 불펜 포수 한 명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박유성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안준혁 팀장은 눈을 치떴고.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김재식 단장은 감탄을 터뜨렸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 중에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걸 최우선으로 두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만약 제이슨 마이너가 박유성의 말처럼 친형과 함께 야구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거라면?

친형을 불펜 포수로 기용해 시즌 내내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귀가 솔깃할 것 같았다.

“안 팀장 생각은 어때요?”

“만약에 다른 팀에서 태클을 건다면 육성 외국인 선수로 넣어도 될 것 같습니다.”

“육성 외국인 선수는 연봉 제한이 얼마죠?”

“없습니다.”

“없어요?”

“1군에서 쓰지도 못하는 선수에게 과다한 돈을 지출할 구단은 없으니까요. 별도의 계약금 제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 야구 협회는 1군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가 개인사나 단기 부상 등으로 갑작스럽게 전력을 이탈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육성 외국인 선수 제도를 만들었다.

4명 출전 제한에 몇 명을 보유하든 상관없는 일본 야구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건데 용병 투수 교체 제한이 4번으로 늘어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였다.

“육성 용병 선수도 1군 경기에 따라다닐 수 있나요?”

“더그아웃 출입만 하지 않으면 상관없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한번 추진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단장님.”

김재식 단장은 만약을 대비해 육성 외국인 선수까지 고려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제이슨 마이너는 형 바보니까 오히려 시즌 내내 편하게 동행할 수 있는 불펜 포수를 선호할 거야. 제이슨 마이너의 형도 구단에서 적당히 대우해 주면 군말 없이 받아들일 테고.’

한 건 했다는 생각에 우쭐해진 박유성은 다른 이름들을 살폈다. 그러다 마지막에 적힌 선수를 보고 씩 웃었다.

‘뭐야? 저스틴 스몰도 있잖아?’

기억하기로 저스틴 스몰은 라이온즈에서 5년을 뛴 장수 용병이었다.

스몰이라는 성과는 달리 키가 무려 204㎝에 달했는데 큰 키에서 내리꽂는 싱커가 예술이었다.

빠른 공 승부를 즐겨서 메이저리그에서는 피홈런을 자주 얻어맞았지만 메이저리그만큼 강타자가 없는 국내 리그에서는 톱클래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유성도 저스틴 스몰을 상대로 정타를 때려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똑딱이었던 1회차 시절은 물론이고 중장거리 타자로 전향한 2회차 시절에도 저스틴 스몰의 구위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팀장님. 저스틴 스몰은 어때요?”

“아, 저스틴 스몰 선수는…….”

“팔꿈치가 좋지 않다고요?”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 요즘 영어 공부 열심히 하잖아요. 뉴스를 봐도 야구 관련 뉴스만 봐요.”

“뉴스에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직 연봉 조정 신청 전이라 잘하면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2025년에 로열스에 입단해 2026년 후반기에 대체 선발로 콜업된 저스틴 스몰은 메이저리그에서 그렇게까지 인정받는 투수가 아니었다.

체격 조건은 좋지만 포심 패스트 볼과 하드 싱커 외에 플러스 피치가 없고 커맨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이라 잘해야 4선발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로열스 구단에서 꾸준히 기회를 주고 있지만 포텐을 터뜨리지 못했다.

풀타임 첫 시즌인 2027년에는 7승 9패에 4.74라는 평균 이하의 성적을 냈고.

그나마 나아졌다는 2028시즌에도 9승 6패에 4.21에 그쳤다.

게다가 2026년 콜업이 늦어서 슈퍼 2 조항의 혜택도 받지 못했다.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얻기까지는 1년을 더 뛰어야 하는데 정작 로열스 구단은 팔꿈치를 문제 삼아 장기 계약을 피하고 있으니 저스틴 스몰도 차선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10명의 투수들 중에서 저스틴 스몰의 계약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합니다. 다만 팔꿈치가 문제겠죠.”

“메이저리그에서만큼 싱커를 던지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솔직히 그렇게 던질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그리고 랜더스 보세요. 로메오 클레멘스 데려와서 결국 우승했잖아요?”

“……!”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2미터가 넘는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포심을 내리꽂는다? 이거 쉽게 못 칠 거예요. 다른 팀 용병 투수로 만나면 진짜 짜증 날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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