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28화 (228/412)

타자 인생 3회차! 228화

28. 황소개구리(9)

만약에 강기태 감독이 출전 기회가 적은 베테랑 타자들을 챙겨주기 위해 교체를 했더라도 박유성은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경기 초반 스코어는 7 대 0.

대한민국 대표팀의 마운드를 고려했을 때 뒤집기 어려운 점수 차이였다.

게다가 푸에르토리코 타자들은 송찬우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뒤에서 고생하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다저스 파크를 밟을 기회를 주는 게 옳았다.

미국이 기다리고 있는 결승전에서는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을 때까지 주전 선수들을 빼기 어려울 터.

어쩌면 벤치 멤버들에게는 출전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기태 감독은 진심으로 박유성을 걱정해서 교체시켰다.

박유성이 공에 맞아 결승전을 결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선수들도 가장 먼저 교체된 박유성을 달랬다.

“유성아. 메이저리그에서도 원래 홈런 친 타자한테 빈볼 던지잖아.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라.”

“그래. 야구 잘한 게 죄라면 너는 사형으로도 안 끝나. 알지?”

“지금 3월이다. 괜히 공 잘못 맞으면 시즌 내내 고생해.”

“맞아. 우리도 시즌 초에는 빈볼 조심해. 맞아봐야 우리만 손해거든.”

“복수는 형들이 할 테니까 넌 벤치에서 푹 쉬고 있어. 벤치클리어링 나도 절대 나올 생각 말고.”

선두 타자로 나선 박유성에게 연거푸 몸쪽 공을 붙였던 호세 부르고스는 구심의 구두 경고에 어깨를 으쓱였다.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 연달아 홈런을 때려 낸 타자에게 이 정도 위협구는 괜찮지 않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대회 전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불필요한 빈볼 시비를 일으키지 말라는 당부가 나온 상황에서 공 4개를 연속해서 몸쪽 깊숙이 찔러 넣은 건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제일 비싼 놈이 누구야?”

“연봉으로만 치면 하비에르 벨트란일걸요?”

푸에르토리코에서 내세우는 간판타자는 카를로스 마틴이지만.

푸에르토리코에서 가장 커리어가 화려한 타자는 하비에르 벨트란이었다.

메이저리그 8년 차로 FA를 통해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올해 2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야! 걔는 안 돼. 현민이 팀 동료잖아.”

“그럼 카를로스 마틴이나 프란시스코 코레아를 맞춰야죠.”

“1번 타자는 뭔가 느낌이 없으니까 카를로스 마틴으로 가.”

“원래 빈볼은 클린업이죠.”

박유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은 벤치에 모여 빈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계획은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타자들이 5회와 6회에 추가점을 올리며 점수 차이를 10점 차까지 벌렸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7회 말에 송현민의 쐐기포까지 터지자 강기태 감독은 오늘 경기를 잘 마무리하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괜한 분란 만들지 마. 깔끔하게 이기자. 그래야 뒷말이 안 나와.”

경기가 끝나고.

강기태 감독은 승리 인터뷰에서 박유성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푸에르토리코 타선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만큼 한 점이라도 리드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선취점을 내길 바랐는데 오늘도 박유성 선수가 해줬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난 올림픽 때도 박유성 선수가 홈런을 치면 이겼거든요. 박유성 선수의 홈런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마 그건 오늘 경기를 지켜보신 모든 야구 팬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경기 MVP는 송현민의 차지였지만.

푸에르토리코 야디에르 모리나 감독 역시 박유성을 막지 못해 졌다는 걸 인정했다.

“일단 썬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던 발언은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프로 데뷔도 하지 못한 루키라서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제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선수였습니다. 썬에게 두 번째 홈런을 얻어맞았을 때 솔직히 오늘 경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주요 매체들도 박유성의 활약상을 집중보도 하며 결승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과 푸에르토리코의 4강전은 일방적인 경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습니다. 양 팀 모두 몰아치기에 능한 만큼 먼저 기세를 잡는 쪽에서 대승을 거둘 것 같았죠. 그런데 그 기세를 썬이 끌고 왔습니다.”

“썬의 홈런은 단순히 한 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호세 로페즈는 공격적인 피칭으로 타자들의 파울과 스윙을 적극적으로 유도해내는 유형의 투수입니다. 하지만 썬에게 선두 타자 홈런을 얻어맞은 이후로 투구 수가 많아졌습니다.”

“1회에 6타자를 상대로 던진 공만 28구입니다. 이미 그 순간부터 호세 로페즈의 피칭 플랜은 꼬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두 번째 홈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팍을 땅볼로 잡아내고 실점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호세 로페즈를 다시 한번 절망의 늪으로 빠트렸으니까요.”

“야디에르 모리나 감독은 경기 시작 전 두 명의 선발 투수로 경기를 끝낼 계획을 세웠습니다. 흔히 말하는 원 플러스 원 전략이죠. 하지만 그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호세 로페즈가 너무 일찍 무너졌고 올렌도 디아즈도 킴에게 홈런을 얻어맞았죠.”

“오늘 경기를 보면서 지난 LA 올림픽 결승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에 비해 대한민국 대표팀 타선은 탄탄해졌습니다. 지금 모든 경기에서 10득점 이상을 해내고 있어요.”

“한국의 공격을 막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썬을 출루하지 못하게 만들면 됩니다. 문제는…… 그게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이번 결승전에서는 LA 올림픽 때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썬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해요. 어떻게든 잡아내야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국의 모든 공격은 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썬을 막아내야 한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와의 4강전보다 하루 앞서 열린 미국과 일본의 4강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마츠다 유이토와 게릿 벌렌더라는 아메리칸 리그 최고 우완 투수들이 맞붙으면서 5회까지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는데 미국 대표팀은 매 이닝 꾸준히 주자를 내보낸 반면 일본 대표팀은 6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아닌 다른 대회였다면 마츠다 유이토와 게릿 벌렌더의 명품 투수전이 이어졌겠지만.

일본 대표팀은 6회 초 투수 교체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5회까지 마츠다 유이토의 투구 수가 94구에 달했기 때문이다.

시즌 전에 열리는 대회 특성상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들의 부상 방지 차원에서 투구 수 제한 규정을 두었는데 4강전 제한 투구 수는 95구였다.

만약을 대비해 니키타 쇼우를 결승전 선발 투수로 빼놓았던 일본 대표팀은 6회부터 불펜을 가동했다.

불펜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초호화 타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경기는 미국 대표팀의 6 대 2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 직후 ESPM은 결승전 파트너로 누구를 원하냐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응답자의 89퍼센트가 대한민국 대표팀이 올라오길 희망했다.

└우린 한국에게 빚이 있어. 그 빚을 갚아야 해. @mlbteacher324

└지난 LA 올림픽 때 아쉽게 졌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이불을 박차게 돼. @Miky H.

└난 이번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미국이 한국을 결승전에서 만나서 이기는 상상을 해왔어. @gavriele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푸에르토리코는 강팀이야. 하지만 한국은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3명뿐이지. @CappDrop34

└제발 한국과 리턴 매치가 성사되길! @peter_JM

그런데 대한민국 대표팀과 푸에르토리코 대표팀 간의 4강전이 끝나고 진행된 설문 조사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올라와서 기쁘다는 의견은 전체의 9퍼센트.

기타 의견 3퍼센트를 제외한 88퍼센트의 응답자들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난 한국이 올라올 줄 알았어. 한국은 강하다고. 이미 LA 올림픽 때 보여줬잖아? @10thInning

└다저스 파크에서 한국을 상대로 또다시 결승전을 치러야 해. 심지어 선발 투수도 똑같이 크리스 반스라고. @Drewbaca

└푸에르토리코보다 약한 한국이 올라왔는데 이 결과가 옳은 걸까? @kait_yk

└푸에르토리코는 분명 까다로운 상대야. 하지만 한국은 푸에르토리코를 13 대 1로 대파했어. @SUNN78

└지난 설문 조사 때 한국이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투표한 사람은 올림픽을 보지 않은 사람인 게 틀림없어. 올림픽 결승전을 봤다면 한국을 절대 우습게 여기지 못할 거라고. @Coco75448

└결승전은 쉽지 않을 거야. 우리는 썬을 막아야 해. 하지만 썬은 지난 올림픽 때 크리스 반스를 상대로 홈런 포함 3안타를 때려냈어. @fearless

미국의 주요 도박 사이트들도 결승전 배당률을 거의 비슷하게 책정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표팀의 전력은 세계 최강이지만 LA 올림픽 때 세계 최강이었던 미국을 연달아 잡아내고 금메달을 목에 건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미국 언론들이 떠드는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메이저리그가 주관하고 미국에서 결승전을 치르는 대회였다.

미국 언론이 돌아가며 앓는 소리를 늘어놓아도 대한민국 대표팀이 미국 대표팀에 비해 열세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을 놓고 봤을 때 우리가 미국보다 나은 건 유성이 하나뿐이야.”

“인정. 저도 딱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잠시 지난 올림픽 금메달은 내려놓자. 미국을 이겼다는 자부심은 안고 가되 자만심에 빠지진 말자.”

“크으, 하선이 형. 그 말 멋진데요?”

김하선을 필두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결의를 다졌다.

목표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기왕이면 지난 LA 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싶었다.

“유성아. 크리스 반스는 버릇 같은 거 없냐?”

“있긴 한데 그거 신경 쓰면 타격에 집중 못 해요.”

“그러지 말고 좀 알려 줘 봐.”

“그래. 유성아.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

“크리스 반스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잖아요. 보통 그 정도 반열에 오른 선수들은 눈에 띄는 버릇 같은 게 없어요. 버릇을 반대로 역이용하기도 하고요.”

“그럼 노하우라도 알려 줘. 맨땅에 헤딩할 수는 없잖아.”

지난 4강전에서 박유성의 덕을 본 송찬우와 박준수가 소문을 내면서 박유성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대부분 크리스 반스 공략법을 물었지만 박유성이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많지 않았다.

박유성 역시 크리스 반스를 만난 건 지난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결승전 투구 제한이 있으니까 타석에서 최대한 많은 공을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라는 거지?”

“투구 수 제한을 최대한 이용해 보자고요.”

박유성은 밤늦게까지 동료 선수들과 소통하며 미국전에 대비했다.

그리고 다음 날.

결승전의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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