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67화 (267/412)

타자 인생 3회차! 267화

32. 트레이드(하)(5)

박유성을 코앞에 둔 채로 로메오 클레멘스는 2번 타자 블레이크 테일러를 풀카운트 접전 끝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크아아아!”

구심의 스트라이크 콜이 터져 나오기가 무섭게 포효를 내지르는 로메오 클레멘스의 모습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에이스의 투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블레이크 테일러에게 너무 정신력을 쏟아부은 탓일까.

따악!

3번 타자 박준수에게 허무하게 초구를 얻어맞으며 박유성이 홈을 밟는 걸 지켜봐야 했다.

2 대 0으로 앞선 5회 말.

세 번째로 타석에 들어선 박유성은 로메오 클레멘스의 초구를 가볍게 밀어 쳐 3유간을 빼냈다.

본래 몸쪽 공을 노렸지만,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 이어 세 번째 타석까지 바깥쪽 빠른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드는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박유성 선수, 오늘도 3안타 경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첫 타석 홈런에 두 번째 타석 3루타, 그리고 이번엔 안타인데요. 2루타만 추가가 된다면 이번 시즌 세 번째 히트 포 더 사이클이 완성됩니다.

-보통 이런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는 언급하지 않는 게 기본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박유성 선수는 거의 매 경기 히트 포 더 사이클이 가능한 선수라서요. 아마 언급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호언장담대로 박유성은 8회 말 랜더스로 이적한 조승주를 두들겨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했다.

조승주가 절대 맞지 않겠다며 일부러 낮게 공을 던졌지만.

2회차 시절 중장거리 타자로 살아온 박유성에게 낮은 코스의 공을 퍼 올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2루에서 세이프! 박유성 선수가 기어코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달성합니다!

-박유성 선수. 이번에는 좀 살살 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현역 시절 3차례 도루왕을 달성한 이선철 해설위원의 공식 의견인가요?

-그 도루왕 세 번 했다는 얘기 좀 그만해요. 아주 민망해 죽겠습니다.

-참고로 박유성 선수는 오늘도 하나의 도루를 추가하며 28개째 도루를 기록 중인데요.

-그렇지 않아도 기종범 선수하고 잠깐 통화를 했는데 박유성 선수가 한 경기 최다 도루 갈아 치우는 거 보고 그냥 웃음만 났다고 합니다. 현역 시절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현역 시절 기종범 선수보다 더 낫다고 해줬습니다.

-역시 이선철 해설위원의 독설은 레전드라고 해도 예외가 없네요.

-독설이 아니라 사실이니까요. 기종범 선수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대단한 선수지만 박유성 선수는 비교 대상 자체가 없습니다.

-국내 야구팬들도 기종범 선수의 기록 경신은 기정사실로 두고 일본과 메이저리그 쪽의 기록을 가져오고 있는데요.

-제가 알기로 일본이 106개이고 메이저리그가 138개인데요. 두 기록 모두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깨질 것 같습니다.

생애 세 번째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달성한 박유성의 맹활약 속에 스타즈는 랜더스를 6 대 0으로 꺾고 6연승 행진을 내달렸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투수가 된 저스틴 스몰과 이적 후 첫 홈경기를 치른 박경호, 그리고 MVP로 뽑힌 박유성이 인터뷰단에 올랐다.

“먼저 저스틴 스몰 선수. 승리 투수가 된 거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오늘 11개의 탈삼진을 잡아냈는데요. 빠른 공 위주의 승부가 눈에 띄었습니다.”

“경기 전에 팍과 어떤 공이 좋을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팍이 물었고 제가 빠른 공이 좋겠다고 대답했죠. 그리고 저는 마운드에 올라가서 팍의 사인대로 던졌습니다.”

“박경호 선수와 호흡이 잘 맞았다는 얘기인데요. 처음 본 포수와 호흡을 맞추는 게 불안하지 않았나요?”

“전혀요. 썬이 말했습니다. 팍은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라고. 팍의 리드대로 던지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요.”

먼저 마이크를 잡은 저스틴 스몰의 말이 통역을 통해 전해지자 박경호가 피식 웃으며 박유성의 엉덩이를 툭 쳤다.

“그럼 이제 박경호 선수와 얘기를 나눠볼까요? 박경호 선수. 지난주까지만 해도 랜더스 유니폼을 입고 계셨는데 오늘은 스타즈 유니폼을 입고 친정팀을 상대하게 됐네요. 기분이 어때요?”

“먼저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성원해 주셨던 랜더스 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갑작스럽게 트레이드 요청을 하면서 실망하시고 상처받으셨을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다만 저도 포수로서 경기에 뛰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대승적으로 이적을 허락해 준 랜더스 구단도 고맙습니다.”

“스타즈 팬분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셔야죠.”

“사실 오늘 스타즈 유니폼을 입으면서 걱정 많이 했습니다. 랜더스가 스타즈에 워낙 강해서 저 싫어하시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환영해 주시는 팬분들을 보니까 스타즈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스타즈의 창단 첫 우승에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박경호의 입에서 우승이란 단어가 나오자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스타즈 팬들이 동시에 환호성을 내질렀고.

그런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던 박경호가 이내 박유성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박유성 선수. MVP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 세 번째 히트 포 더 사이클을 달성하셨는데요. 남들은 평생 한 번 하기도 어려운 대기록을 또다시 해낸 기분이 어때요?”

“좋습니다. 역시 홈에 오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지난 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 때 홈런을 때리지 못해서 아쉽게 히트 포 더 사이클 달성에 실패하셨는데요. 박유성을 막을 수 있는 건 자이언츠 파크 담장뿐이라는 얘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담장 밖으로 조만간 하나 넘기겠습니다.”

“자이언츠 원정 경기 때 꼭 따라가야겠는데요? 끝으로 스타즈 팬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경호 형까지 왔으니까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보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박유성의 말에 스타즈 파크는 다시 함성으로 가득 찼고.

무슨 말을 하나 지켜보기 위해 자리에 남았던 5백여 랜더스 팬들은 굳어지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경호 뭐야? 무슨 벌써 스타즈 선수 다 됐는데?”

“포수로 뛰고 싶어서 트레이드 요청했다잖아. 이해해 줘야지.”

“그런데 왜 하필 스타즈야? 박유성하고 같은 팀 하고 싶어서 스타즈 간 거 아냐?”

“그런 마음도 없지 않겠지. 솔직히 박유성 하나 때문에 스타즈 강팀 됐잖아.”

“무슨 박유성 하나 때문이야? 송찬우도 오고 김혜성도 오고 용병들도 잘 뽑았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라. 이제 4월인데 사이클링 히트만 3번이야. 타율은 7할이 넘고.”

“사이클링 히트가 아니라 히트 포 더 사이클 인마.”

“그거나 그거나. 어쨌거나 난 이제 박경호 그만 미워하련다. 임기성이 잘해주겠지.”

“넌 용서가 되나 본데 나는 용서 못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경호가 팀 분위기 개판 만들고 이적하는 게 말이 되냐? 만약에 이번 시즌 우승 못 하면 전부 박경호 탓이야.”

커뮤니티에서도 이번 트레이드의 승자는 스타즈라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박경호는 스타즈에서도 박경호네. 괜히 국대 포수가 아님.

└응, 아니야. 임기성한테 밀렸쥬?

└이간질 좀 적당히 해라. 랜더스 팬들도 박경호가 임기성한테 밀렸다는 개소리는 안 한다.

└스타즈 팬인데 박경호가 포수 마스크 쓰니까 안정감부터 다르더라. 빠른 공도 뻔한 코스로 요구 안 하고 상하좌우를 넓게 쓰니까 랜더스 타자들이 따라오질 못하네.

└랜더스 타자들이 원래 강속구 유형의 투수에 좀 약합니다. 내일은 다를 거예요.

└개막 3연전 때 제이슨 마이너에게 당한 거 벌써 까먹으셨나? ㅋㅋ

└레오 로드리게스도 컨디션 올라왔거든요?

└아직 한 경기뿐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스타즈가 이득이죠?

└트레이드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아직 모르죠. 시즌 끝나봐야 압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 10년쯤 지나야죠.

└무슨 10년씩이나 봐요?

└스타즈에서 2라운드 지명권 3년 치 받아왔으니까 그 결과까지 봐야 하는 거 아님?

└애당초 스타즈는 현재를 보고 투자했고 랜더스는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지향점이 다른데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인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타즈 팬인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솔직히 박경호 보내줘서 고마울 따름임.

└지나가는 트윈스 팬인데 이건 100퍼 스타즈 승인데요?

└베어스 팬이 보기에도 스타즈가 개이득입니다. 2라운드 지명권이요? 그걸 어디다 쓰게요?

└랜더스의 내부 사정이 어땠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박경호 내친 건 진짜 ㅂㅅ짓임.

└쉿! 이런 얘기 하면 그분이 화내십니다.

└그분이 누군데요? 설마 회장님?

└야구 관련 커뮤니티 전부 체크하는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 그러니까 과격한 표현은 조심하세요.

└님이 더 고단수인데요? 걱정하는 척하면서 엿 먹이는 거 아님?

└앗. 티 나?

어느 정도 비난은 감수하려 했던 정영진 회장도 SNS 계정까지 찾아와 조롱하는 야구팬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

“아니, 내 구단인데 잉여 선수 하나 트레이드 못 해?”

“아닙니다. 회장님.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외국을 봐. 구단주가 마음에 안 들면 에이스도 팔아 치우잖아? 심지어 거기는 구단 운영으로 돈을 벌어. 우리처럼 수백억씩 쏟아붓는 것도 아니라고!”

“잘 모르고 떠드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경기에서 이기면 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솔직히 나만큼 구단에 신경 쓰는 구단주가 누가 있어? 신성 신상욱 회장이 스타즈 만들 때 누굴 벤치마킹했는데?”

“회장님을 벤치마킹했죠. 인터뷰를 통해 여러 번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날 신상욱 회장하고 비교하는 게 말이 돼?”

“말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노여움을 푸십시오.”

밤새 정영진 회장을 달래고 돌아온 최윤철 단장은 박전권 감독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박 감독. 내 얼굴 좀 봐요.”

“밤새 회장님하고 대작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대작은 무슨. 내가 회장님하고 대작할 군번인가? 암튼 이번 트레이드 건 때문에 회장님 심기가 불편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요.”

“네. 노력하겠습니다.”

“노력만 하지 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라고요. 알았어요?”

최근 부진한 성적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박전권 감독도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승리를 독촉했다.

“오늘 경기는 꼭 잡아야 해. 제이슨 마이너는 충분히 해볼 만한 투수야. 지난번처럼 유인구에 속지 말고 침착하게 버텨. 연패를 끊을 생각을 하라고!”

앞선 트윈스 원정에서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3연패 중인 랜더스 타자들은 이를 악물고 타석에 들어섰다.

박경호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제이슨 마이너를 리드했지만.

지난해 통합 우승팀인 랜더스의 집념은 다른 팀들보다 더 강했다.

“볼!”

선두 타자 정의신이 풀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가자 박전권 감독은 곧바로 희생번트를 주문했고.

따악!

1사 2루 상황에서 간판타자 민병규가 1, 2루간을 꿰뚫는 안타를 때려내면서 정의신이 홈을 밟았다.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 브라이언 코빈이 센터 담장을 직격하는 2루타를 때려내며 1사 2, 3루를 만들자 최민태 수석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제이슨 마이어를 달랬다.

“괜찮아. 타자들을 믿고 편하게 던져. 충분히 뒤집을 수 있어.”

한숨 돌린 제이슨 마이너가 페트릭 도저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탈출하나 싶었지만.

따악!

민병규 이전에 해결사로 활약해 온 유강민이 2-1에서 바깥쪽으로 몰린 슬라이더를 밀어 치며 다시 한번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까지 홈으로 들어옵니다. 스코어 3 대 0! 유강민 선수가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때려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전권 감독은 오늘 경기를 쉽게 가져갈 거라 여겼다.

하지만 1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박유성이 12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나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 박유성 선수 뜁니다! 2루에서…… 2루에서 세이프! 이번 시즌 29호 도루를 성공시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루를 훔친 박유성은 내친김에 3루까지 파고들며 스타즈 파크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블레이크 테일러의 적시타 때 유유히 홈을 밟으며 대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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