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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268화 (268/412)

타자 인생 3회차! 268화

33. 감히 누굴 건드려?(1)

1

작년.

투수들을 상대로 가장 껄끄러운 타자를 조사했을 때 예상외로 백영완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았다.

“영완이 형은 좀 끈질겨요. 악바리 같다랄까?”

“보통 투 스트라이크를 잡으면 타자가 좀 위축되어야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영완이 형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스윙을 하니까 부담스러워요.”

“준수나 병규도 까다롭죠. 메이저리그에 간 현민이도 엄청 까다로웠고요. 그런데 영완이 형도 거의 비슷해요. 스타일만 다를 뿐이지 전력을 다해서 상대해야 하는 상대?”

“일단 영완이는 발이 빠르잖아요. 기습 번트도 잘 대고 도루도 잘하니까 루상에 내보내기 싫죠.”

백영완을 꼽은 투수들 중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았다.

가장 까다로운 타자는 박준수나 민병규, 혹은 각 구단 용병 타자들을 거론했지만 3순위나 4순위 선수를 언급할 때 여지없이 백영완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자이언츠의 백?”

“백은 엄청 얄밉게 플레이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면 빈볼을 맞고 병원에 실려 갔을걸요?”

“제일 짜증 나는 거요? 당연히 도루죠. 사실 백이 외국인 타자들처럼 홈런을 뻥뻥 때려내는 건 아니잖아요?”

레오 로드리게스는 특별히 까다로운 타자는 없다면서도 백영완과 같이 투수를 자극하는 타자에 대해서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특히나 백은 공을 던지려고 할 때 일부러 소리를 냅니다. 그건 매너가 아니에요.”

실제로 지난 시즌.

레오 로드리게스는 백영완에게 두 번의 빈볼을 던졌고 그중 한 번을 등에 맞혔다.

하지만 지난 개막 시리즈 때 두 개의 도루를 훔쳐낸 박유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레오. 아까 보니까 자꾸 몸쪽으로 공을 붙이는데 그러지 마. 유성이는 한국의 보물이야. 위협구를 던지다가 몸에 맞으면 진짜 큰일 난다고.”

박경호가 일찌감치 레오 로드리게스를 단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박경호가 스타즈로 이적한 지금은 레오 로드리게스를 제어해 줄 선수가 없었다.

“레오.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점수 준 건 잊어버려. 타자들이 금방 점수 뽑아줄 거야.”

“네.”

“그리고 유성이는 신경 좀 써. 너무 쉽게 출루시켰어.”

통역을 통해 말을 전해 듣던 레오 로드리게스가 고개를 들어 이진형 수석 코치를 바라봤다.

박유성을 잡기 위해 무려 12개의 공을 던졌는데 쉽게 출루시켰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진형 수석 코치가 레오 로드리게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레오. 너답게 던져. 쫄지 마. 오히려 네 빠른 공으로 유성이를 쫄게 만들어야지.”

이진형 수석 코치는 어디까지나 공격적인 피칭을 주문한 것뿐이지만 레오 로드리게스에게는 달리 들렸다.

‘썬을 겁먹게 만들라고? 그래도 상관없는 거였어?’

이진형 수석 코치가 제자리로 돌아가자 레오 로드리게스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바라봤다.

3 대 3.

1회 초 3점의 리드를 고스란히 까먹어 버렸다.

이유를 찾자면 역시나 박유성이었다.

공을 12개나 던지게 해놓고 기어코 볼넷으로 걸어 나가더니 초구와 2구에 연달아 도루를 성공시키며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블레이크 테일러의 안타로 한 점.

박준수의 볼넷과 다니엘 브리토의 2루타로 다시 두 점.

만약 이승오 투수 코치가 제때 올라와 주지 않았다면 1회를 끝내지 못하고 강판을 당했을 것이다.

그때 따악,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2사 이후에 정의신이 다시 안타를 때려내며 제이슨 마이너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후우…….”

레오 로드리게스는 길게 숨을 골랐다.

제이슨 마이너도 지난 등판 때만큼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최대한 오래 버틸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귀찮은 박유성부터 처리해야 했다.

“좋아. 이제 봐주는 거 없어.”

마음을 다잡은 레오 로드리게스는 2회 말 스타즈의 공격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7번 타자 박경호를 중견수 플라이로 유도한 뒤에 8번 타자 장태수와 9번 타자 최일준을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자 요란스럽던 스타즈 파크가 잠잠해졌다.

-지금 전광판에 158㎞/h가 찍혔는데요. 어제 저스틴 스몰 선수가 강속구로 랜더스 타자들을 압도했다면 오늘은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스타즈 타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느낌입니다.

-동점을 내준 이후로 확실히 안정을 되찾은 것 같은데요. 랜더스 타자들도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호투를 펼칠 때 점수를 뽑아줘야 합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얘기를 들은 것일까.

따악!

선두 타자로 나온 민병규가 제이슨 마이너의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담장 밖으로 넘기면서 3 대 3의 균형을 깨뜨렸다.

그리고 이어진 3회 말.

박유성이 선두 타자로 들어서자 스타즈 파크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스타즈의 슈퍼 루키~ 야구 천재 박유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지구소녀의 톱 아이돌에 맞춰 개사된 응원가가 흘러나오자 스타즈 팬들은 한목소리로 따라 불렀고.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함성이 파도처럼 스타즈 파크를 집어삼켰다.

“더럽게 시끄럽네.”

마운드에 선 레오 로드리게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메이저리그에도 등장 곡이 나오긴 하지만.

마치 박유성이 뭔가 하나 해줄 거라 기대하며 악을 써대는 스타즈 팬들을 보니까 소음공해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스타즈 팬들의 응원은 응원가로 끝나지 않았다.

“박유성 선수의 안타를 기원하며! 다 같이!”

응원단장이 마이크를 잡아 들자 스타즈 팬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박유성만을 위한 육성 응원을 시작했다.

“최! 고! 타! 자! 박유성! 안타!”

“최! 고! 타! 자! 박유성! 안타!”

육성 응원에 맞춰 박유성이 느긋하게 루틴을 펼치자 레오 로드리게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3회 초 스타즈의 공격은 박유성 선수부터 시작됩니다. 첫 타석은 볼넷으로 출루해 2루 도루와 3루 도루를 성공시킨 뒤에 블레이크 테일러 선수의 적시타 때 홈을 밟은 바 있습니다.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 집중해야 합니다. 박유성 선수를 내보내면 또다시 페이스가 꼬일 수 있습니다.

-투포수 사인 교환이 끝났습니다. 이제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아아! 157㎞/h의 빠른 공이 박유성 선수의 머리 쪽으로 날아갑니다.

-공이 손에서 빠진 것 같은데요. 레오 로드리게스 선수.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깨의 힘을 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은 레오 로드리게스가 실투를 던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바깥쪽 빠른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레오 로드리게스가 3구째 다시 옆구리 쪽으로 공을 던지자 언성을 높였다.

-이건 아닌데요. 지금 일부러 저런 식으로 공을 던지고 있는 거 같은데 이건 구심이 경고를 줘야 합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석률 감독이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자 구심이 다급히 다가가 김석률 감독을 달랬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왜 저래요?”

“제가 경고 주겠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들어가세요.”

“아까 초구에 경고를 줬어야죠. 그걸 안 주니까 저러는 거 아닙니까?”

“계속 그랬던 것도 아니라서 경고를 주기가 애매했습니다.”

“머리 쪽으로 위협구 던지면 퇴장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일단은 제가 경고 줄 테니까 들어가시죠. 감독님이 이러시면 경기 운영하기 힘듭니다.”

김석률 감독을 어렵게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낸 구심은 마운드 쪽으로 다가가 레오 로드리게스에게 경고를 줬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전권 감독이 더그아웃을 밖으로 뛰어나왔다.

“뭡니까? 왜 경고예요?”

“아까 위협구 던진 거 경고한 겁니다.”

“그건 끝났잖아요?”

“실수인 줄 알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또 위협구 던졌잖아요.”

“몸쪽 깊은 공이지 그게 어떻게 위협구입니까? 그리고 박유성이한테 좀 떨어져서 서라고 해요.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서니까 위협구처럼 보이는 거잖아요!”

“박 감독. 나 심판만 15년 차예요. 내가 설마 몸에 붙는 공하고 위협구도 구분 못 할 거 같아요?”

“그럼 처음부터 경고를 했어야죠. 이제 와서 경고를 주는 게 말이 됩니까?”

박전권 감독이 편파적이라고 항의했지만 구심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들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추어 지도자 출신이던 김석률 감독에게는 쩔쩔매던 구심이 박전권 감독 앞에서는 당당한 게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구심, 선출 아냐?”

“선출 맞을걸? 랜더스에서 뛰었잖아.”

“그런데 왜 저래? 박전권 감독이 선배 아냐?”

“선배면 뭐? 심판인데 선배라고 편들어 줘야 해?”

“대한민국 인맥 사회인 거 몰라? 저러다 랜더스에서 심판 배정 거부하면 심판만 손해 볼 텐데?”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던 나영진 기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자들 중에 아직도 저런 인간들이 있다는 게 수치스럽다.”

“저도 그래요. 뭐예요 저게? 꼰대도 아니고. 선배면 뭐 후배들이 전부 설설 기어야 해요?”

“그런 거밖에 내세울 게 없는 인간들이잖아. 그러니까 유성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그나저나 이거, 랜더스에서 작전 나온 거죠?”

공윤경 기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에 나영진 기자가 인정한다면 곧바로 기사를 써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교 야구와 프로 야구를 섭렵한 나영진 기자도 감히 단언할 수가 없었다.

“박준수나 다니엘 브리토에게 저랬다면 벤치 지시가 의심스러운데 유성이라 애매하네.”

“왜 애매해요? 오히려 빼박 아니에요?”

“만약에 레오 로드리게스가 유성이를 맞혀봐라.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

“그럼…… 레오 로드리게스는 한국에서 야구 못 하는 거죠. 유성이가 어떤 선수인데 빈볼을 맞혀요?”

다른 때 같았으면 한마디 했을 나영진 기자였지만 이번만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유성은 대한민국 야구사에 다시는 나오지 않을지도 모를 야구 선수.

야구 신동이나 야구 천재라는 말로도 형용이 되지 않는, 현존하는 최고의 타자였다.

그런 박유성에게 빈볼을 던져 만에 하나라도 부상을 입힌다면?

아마 랜더스는 레오 로드리게스를 퇴출시킬 때까지 대한민국 야구계의 공적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벤치 지시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거야. 여차하면 모든 욕은 구단이 다 먹게 될 텐데 그런 무리수를 둘까?”

“그럼 왜 저러는 건데요?”

“레오 로드리게스 원래 저래. 자신한테 강한 타자가 나오면 일부러 위협구 던진다고.”

“그럼 벤치에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성적이라면 그래야 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저러다 진짜 유성이 맞으면 난리 날 텐데.”

나영진 기자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박전권 감독이 더그아웃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고의성이 없었다는 해명을 하려는 줄 알았는데 경고를 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걸 보니까 랜더스 벤치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스타즈 김석률 감독도 박전권 감독의 반응을 보고 의심을 굳혔다.

“랜더스 벤치에서 지시가 나온 것 같지?”

“아까 1회 말 끝나고 이진형 수석 코치가 레오 로드리게스와 한참 얘기를 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지시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맞힐 거면 클린업을 맞히든가. 유성이한테 저러는 게 말이 돼?”

“이건 랜더스에서 어떤 해명을 하더라도 욕먹을 겁니다. 진짜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연달아 들어온 빈볼에 경기장이 소란스러워졌지만 정작 박유성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프로 생활만 40년 차다 보니 이런 상황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어디 맞히기만 해. 내가 가만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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