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276화
34. 박유성은 특별해(1)
1
└스타즈 vs 타이거즈 한 줄 요약. 승리투수 박유성.
└ㅋㅋㅋㅋㅋㅋㅋ
└뭐임? 박유성이 공도 던졌음?
└그냥 오늘도 박유성이 다 했습니다.
└에이, 그거 아니죠. 연출 박유성, 각본 박유성, 주연 박유성, 찬조 출연 송찬우&임찬기.
└박유성 칭찬하는 건 좋은데 임찬기 선수하고 송찬우 선수도 칭찬해 줍시다.
└인정. 근래에 보기 드문 명품 투수전이었습니다.
└진짜 오늘 경기 보면서 대한민국 야구계의 미래가 밝다는 걸 느꼈습니다.
└타이거즈 팬으로서 오늘 박유성 다시 봄.
└왜요? 3안타 칠 수 있었는데 2안타만 쳐서요? ㅋㅋㅋ
└인터뷰 안 보셨나요?
└박유성이 경기 끝나고 임찬기가 크리스 반스보다 더 까다로웠다고 한 거요? 그건 친하니까 한 립서비스죠. 그걸 진짜로 믿습니까? ㅋㅋㅋ
└임찬기는 오늘 제대로 긁힌 날이었지만 박유성에게 졌고 송찬우는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라이벌 임찬기를 잡고 승리를 챙기는 거 보니까 이런 게 인생이 아닐까 싶네.
└아재요. 막걸리 한잔 걸치셨습니까?
└야구 보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중입니다.
타이거즈와 스타즈의 경기가 끝나고.
여느 때처럼 베이스볼 파크에는 박유성에 대한 글들이 쏟아졌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박유성의 계약금으로 화제가 튀었다.
└스타즈 팬들에게 질문. 박유성 20억 준 거 이제 안 아까움?
└??????
└무슨 멍멍이 소리죠? 박유성 계약금 아깝다고 한 스타즈 팬이 있다고요?
└처음에 박유성 20억 받을 때 타율 4할은 쳐야 한다고 하지 않았음?
└계약금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만한 활약을 펼쳐야 한다고 말한 거지 아깝다고 한 적 없는데요?
└ㅋㅋㅋ 그게 그거죠. 솔직히 저도 박유성 20억 기사 떴을 때 야구판이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요. 심지어 박유성은 4년 후 메이저리그 확정이라 더 오버 페이 같았음.
└그래서 지금은요?
└지금은 스타즈가 헐값에 계약한 거 아님?
└에이. 아무리 그래도 헐값은 아니지. 아직 시즌 끝나지도 않았음.
└시즌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WAR 10을 넘겼는데? 연평균 계약금 5억 잡고 박유성은 WAR당 5천만 원임.
└와, 듣고 보니까 개혜자인데?
└계약금 총액으로 잡아도 WAR당 2억입니다. 이 정도면 박유성이 사기당한 수준임.
베이스볼 파크 반응을 살피던 안재희 운영팀장은 헛웃음이 났다.
시즌이 시작되면 박유성의 계약금 논란이 잠잠해질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전반기가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혜자 계약 소리까지 나올 줄은 미처 예상 못 했다.
그때 임세영 대리가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팀장님. 여기요.”
“어, 그래. 고마워. 잘 마실게.”
“그런데 요새 베팍 너무 보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는 임 대리야말로 퇴근하고 나서도 커뮤니티 보잖아?”
“헐, 어떻게 알았지? 설마 우리 집에 몰카 설치하셨어요?”
“어디 임 대리뿐이겠어? 다들 커뮤니티 하느라 정신없잖아?”
“그래서 야구는 잘하고 봐야 하나 봐요.”
씩 웃던 임세영 대리가 안재희 운영팀장의 모니터를 힐끔 바라봤다. 그러다 화면에 걸린 댓글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사람들 참 양심 없네요. 호구 취급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혜자래요?”
“그러게나 말이야. 박유성 선수 시범 경기 불참한 거 가지고 벌써부터 배가 불렀다고 난리였잖아?”
“저 그때 먹튀 기사 쓴 기자하고 대판 싸웠잖아요.”
“리얼스포츠 황재민 기자?”
“어휴. 기자라고 하지 마세요. 그런 인간이 기자질을 하니까 대한민국 언론이 발전이 안 되는 거예요.”
“뭘 대한민국 언론까지 가?”
안재희 운영팀장이 피식 웃었다. 당시에는 임세영 대리만큼이나 격분해서 신문사로 쳐들어가려 했지만 지금은 그저 웃어넘기는 해프닝에 불과했다.
“그렇게 좋으세요?”
“좋지. 스타즈가 전체 1위잖아? 우리는 야구를 제일 잘하는 구단의 일원이고. 임 대리는 안 좋아?”
“저는 좀 피곤해요.”
“피곤해? 뭐가?”
“요즘 저 소개팅 엄청 들어오는 거 모르시죠?”
“오호, 우리 임 대리에게도 봄날이 오는 건가?”
“봄날은 무슨. 나오는 인간들마다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뭔데?”
“박유성 선수하고 친해요?”
“헐.”
“박유성 선수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요?”
“초면에 그런다고?”
“소개팅뿐만 아니라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 와서 난리도 아니에요. 박유성 선수 사인 유니폼 좀 받아달라고요. 요즘 그게 엄청 비싸게 거래된다나요?”
“나도 그 얘기는 들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난 스프링 캠프 때 박유성이 직접 유니폼에 사인을 해준 이후로 박유성 사인 유니폼을 원하는 팬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오죽하면 박유성의 유니폼 관련 문의는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는 별도의 음성 메시지까지 넣었을 정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당분간은 유니폼에 박유성의 사인을 받을 수가 없었다.
“전반기 끝나고 팬 미팅 한 번 더 하면 어떨까요?”
“그거 좋네. 이번에는 좀 크게 열까?”
“얼마나요?”
“박유성 선수 사인 원하는 팬들이 많으니까 한 2만 명쯤 모으지 뭐.”
“헐, 그럼 박유성 선수 팔 빠질 텐데요?”
“2만 명이나 2천 명이나. 팔 빠지는 건 똑같을 텐데? 그러다 사인 후유증으로 무안타 경기 나오면 임 대리가 책임지는 거고.”
“아니요. 제가 잠깐 미쳤나 봐요. 박유성 선수는 야구해야죠. 사인은 무슨.”
“그래. 한두 푼 받는 선수도 아니고 계약금만 20억을 받은 귀한 선수야. 그 돈을 왜 줬겠어? 사인하라고?”
“야구 잘하라고 줬죠. 그리고 엄청 잘하고 있고요.”
“박유성 선수가 팬서비스 차원에서 경기마다 사인 볼 30개씩 만들어 주는 거 알지? 그걸로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박유성 선수도 할 만큼 하고 있어. 팬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선후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평소 안재희 운영팀장은 선수들에게 팬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안타 하나 더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팬이 있어야 프로 스포츠가 존재할 수 있다며 피곤하더라도 팬들의 사인 요청에 최대한 응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박유성은 상황이 달랐다.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MVP를 거머쥐며 야구 영웅으로 등극한 데다가 <사부열전>까지 출연하면서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쌓은 상태였다.
야구는 몰라도 박유성은 안다는 유행어와 축구 팬이지만 박유성의 사인은 받고 싶다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
그만큼 박유성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보니 지난 홈 개막전에서는 박유성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든 팬들 때문에 대형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스타즈 팬들이 앞장서서 박유성에게 사인 요청과 사진 촬영 요청을 자제하자는 운동까지 벌였다.
“그런데 박유성 선수도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싸인볼도 다른 사람 안 시키고 전부 직접 하는 거 아세요?”
“스프링 캠프 때 안 봤어? 영상까지 찍어가며 일일이 유니폼에 사인해 줬잖아.”
“그 영상 제가 편집했거든요?”
“차라리 사인볼이 낫지 유니폼은 크게 그려야 해서 엄청 번거롭다고. 대표팀 합류하기 전날까지 유니폼에 사인하는 거 보고 나 진짜 감동했어.”
“그러면 뭐 해요. 언론은 뻑하면 팬서비스 엉망이라고 물어뜯는데.”
“내버려 둬. 커뮤니티 말대로 사설 토토에 박유성 선수 삼진 걸었다가 돈 날렸나 보지 뭐.”
얼마 전.
스포츠 토토 관련 커뮤니티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유성아. 형 한 번만 살려줘라.]
자극적인 제목에 엮인 글에는 사설 스포츠 토토에 수천만 원을 잃은 사연이 적혀 있었다.
[박유성이 매번 안타를 치니까 첫 타석 안타에 걸어도 손해더라. 그래서 과감하게 첫 타석 삼진에 돈을 걸었는데…… 유성이가 삼진을 안 당해. 진짜 삼진 한 번만 당해주면 지금까지 날린 돈 거의 다 복구할 수 있어. 유성아, 제발!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삼진 한 번만 당해주라.]
해당 글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 나갔고.
글쓴이처럼 박유성의 삼진에 배팅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검찰이 대대적인 불법 도박 사이트 단속에 나섰다.
“올해 박유성 선수 삼진 몇 개 당할까요?”
“글쎄. 박유성 선수도 슬럼프가 오긴 할 테니까 몇 개는 나오지 않을까?”
“10개 업다운이요.”
“10개는 안 넘을 거 같은데?”
“저도요. 많아야 다섯 개 정도?”
“어쨌거나 박유성 선수 삼진 당하는 날이 불법 도박 사이트 멸망하는 날이 될 거야.”
“사이트들 전부 먹튀할 거라는 거죠?”
“첫 타석 삼진 배당률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그거 터지면 벌어들인 돈 다 뱉어내야 할걸?”
“불법 사이트들이 그 돈을 순순히 내놓을 리 없죠.”
임세영 대리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즈 직원이기 이전에 팬으로서 박유성이 삼진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 척결을 위해서라도 다섯 개쯤 당해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안재희 운영 팀장의 메신저에 알람이 떴다.
“팀장님. 단장님 호출이요.”
“갑자기 무슨 일이시지?”
안재희 운영 팀장은 서둘러 단장실로 향했다.
그러자 김재식 단장이 자리를 권하고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박유성 선수 옵션 계약 말입니다. 이거 괜찮겠습니까?”
처음 박유성에게 옵션을 걸어줄 때만 하더라도 김재식 단장은 박유성이 7할을 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잘하면 4할 언저리.
못해도 3할 5푼 이상.
박유성의 타격 재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기종범 부자는 물론 송현민조차 달성하지 못했던 4할 타율을 박유성이 넘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즌의 20퍼센트가 진행된 현재까지 박유성은 7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고 가정하면 옵션 보너스가 얼마입니까?”
“정확한 건 저도 찾아봐야겠지만 타율은 임세영 대리가 말해준 게 있습니다.”
“얼마입니까?”
“지금 타율 기준으로 42억 정도 됩니다.”
“후우…….”
자신이 대충 계산한 금액과 엇비슷한 숫자가 나오자 김재식 단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부신 활약으로 스타즈를 압도적인 1위로 이끈 박유성에게 돈을 쓰는 게 아까운 건 아니지만 42억은 너무나 큰 돈이었다.
게다가 옵션은 타율에만 걸린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송광철 대표를 만나서 옵션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송광철 대표가 과연 응할까요?”
“외부에 알려지면 박유성 선수에게도 좋을 게 없습니다.”
“하긴. 이대로 가다간 신성 그룹에서 받은 지원금을 전부 박유성 선수에게 지급해야 할 테니까요.”
안재희 운영팀장과 논의를 마친 김재식 단장은 신성 그룹 본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상욱 회장에게 자신의 불찰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유성이가 이렇게 잘할 줄 모르고 옵션을 퍼줬단 말이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박유성 선수 이외에는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할 옵션이었습니다. 오히려 옵션을 제안했을 때 송광철 대표가 언짢아하지 않도록 신경 썼고요.”
“그럼 그대로 진행시켜야지 왜 이제 와서 바꾸자는 거야?”
“이 추세라면 박유성 선수가 받아야 할 보너스가 200억이 넘습니다.”
“200억이면 대충 2,500만 달러 정도인가?”
“세금은 구단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니 실질적으로는 5천만 달러 수준입니다.”
“흠…….”
김재식 단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지만 정작 신상욱 회장은 솔직히 박유성에게 200억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았다.
박유성이 없는 스타즈에 200억을 추가로 쏟아붓는다고 해서 지금처럼 압도적인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어림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