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84화 (284/412)

타자 인생 3회차! 284화

34. 박유성은 특별해(9)

“역대 최고 득표가 송현민 선수였지?”

“294만 표요. 300만 표에서 6만 표 부족했다는 기사를 하도 많이 봐서 아직까지 외우고 있습니다.”

투표 방식이 편해지고 간소화되면서 유효 득표수는 해마다 늘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다 득표 기록이 계속 경신되는 건 아니었다.

역대 최다 득표는 2026년 송현민이 기록한 294만 표.

그때는 박준수와 민병규의 실력이 한창 올라오던 시절이라 야구 팬들의 몰표가 쏟아졌다.

오히려 타격 7관왕을 달렸던 2027년에는 송현민의 득표가 285만 표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송현민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지난해에는 총투표수가 450만 표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200만 표를 넘기지 못했다.

“솔직히 송현민 선수는 팬덤 덕이 컸잖아.”

“박유성 선수 팬카페도 50만 명 다 되어가던데요?”

“뭐? 벌써?”

“전 세계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할 7할 타자잖아요. 해외 팬들도 엄청 가입한다던데요?”

“그래서 팬카페 이름을 영어로 바꾼 거야?”

“그거 팬들이 요청한 거래요.”

“팬들이?”

“조만간 메이저리그 진출할 건데 영어가 낫지 않겠냐면서요.”

만약에 다른 신인이 벌써부터 메이저리그를 운운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안재희 운영팀장은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려야 했다.

신인 관련 각종 기록들을 경신하며 프로 야구판을 씹어먹다 못해 갈아 마시고 있는 박유성이라면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금 이름이 뭐였지?”

“BPS요. 베이스볼 플레이어 썬의 약자.”

“아, 그랬지? 그거 방탄보이즈 팬들이 별말 안 해?”

“방탄보이즈 팬들은 오히려 좋아하던데요? 방탄보이즈 멤버들도 박유성 선수 열혈팬이래요.”

말이 나온 김에 안재희 운영팀장은 박유성의 팬카페에 들어가 봤다.

4월 중반쯤에 봤을 때까지만 해도 20만 명 남짓이던 회원 숫자가 한 달 반 만에 48만 명까지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최근 가입 글은 절반 정도가 외국어였다.

“영어만 있는 게 아니네? 일본어도 있고 중국어도 있는 거 같고.”

“박유성 선수 일본에서도 은근 인기 많대요.”

“일본에서?”

“스즈키 이치이로 선수가 그랬다던데요? 감독으로서 단 한 명의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면 스즈키 지로보다 박유성이라고요.”

“진심으로 한 말이야?”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가면 자신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 치울 거라고까지 했대요. 그래서 사회자하고 패널들 전부 벙쪘다던데요?”

“메이저리그 레전드라 이건가? 대단하네.”

“대단할 게 뭐가 있어요?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MVP 출신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이 이상한 거죠.”

“그런가? 그런데 그 기사를 못 본 거지?”

“못 본게 아니라 보도가 거의 안 됐어요. 아시잖아요. 메이저 언론사들 아직도 일본 우익 반응 퍼다가 박유성 선수 까는 거. 그런데 어떻게 스즈키 이치이로가 인정했다는 기사를 옮기겠어요?”

“하아. 진짜 왜들 그러나 모르겠다.”

안재희 운영팀장이 푸념하듯 말했다. 4월에 이어 5월에도 7할이 넘는 타율을 유지했다면 이제 받아들일 때도 됐건만 여전히 박유성과 스타즈가 무너지기만을 바라는 이들이 상당했다.

그렇다 보니 이번 올스타전 투표도 신경이 쓰였다.

“올스타전 투표가 언제부터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한 달간이요.”

“최다 득표 가능할까?”

“성적이 압도적인데 가능하지 않을까요?”

“성적으로만 따졌으면 송현민 선수도 마지막 시즌에 최다 득표를 경신했겠지. 오히려 너무 잘하면 어차피 뽑힐 거라는 생각으로 표를 안 주게 돼.”

“그럼 독려 좀 할까요?”

“독려가 필요하긴 한데…… 대놓고 박유성 선수 뽑아달라고 말하긴 그래.”

“그걸로 또 트집을 잡을 테니까요?”

“하아. 복잡하다. MVP 뽑으라고 하면 90퍼센트 이상은 나올 텐데 올스타전은 인기투표니까 장담하기가 어려워.”

“인기투표면 오히려 더 유리한 거 아니에요?”

안재희 운영팀장과 임세영 대리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박승철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러자 임세영 대리가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박승철을 바라봤다.

“우리 지금 최다 득표 얘기 중이거든?”

“그러니까요. 박유성 선수 인기라면 최다 득표는 확실하잖아요? 송현민 선수 기록 경신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건 박유성 선수만 인기 있을 때의 이야기잖아. 우리 팀 순위 안 봤어?”

“안 보긴요.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는데요? 2위하고 20경기 차이로 1위잖아요.”

5월까지 전체 일정의 30퍼센트 정도가 진행된 상태지만 나눔 리그의 우승은 확정적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2위 타이거즈와 벌써 20경기 차이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매직 넘버를 계산할 시점은 아니지만.

타이거즈는 일찌감치 우승 경쟁 대신 2위 자리 수성으로 방향을 틀었고.

3위 트윈스와 4위 랜더스도 포스트 시즌 티켓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중이었다.

“그걸 봤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

“……네?”

“하아. 승철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 우리가 그냥 1위도 아니고 압도적인 1위잖아? 그럼 우리 팀에서 올스타가 몇 명이나 나올까?”

“그야…… 많이 나오겠죠?”

“그래. 박유성 선수를 빼더라도 박준수 선수와 다니엘 브리토 선수, 박경호 선수는 확정이야. 투수도 저스틴 스몰 선수와 송찬우 선수가 유력하고.”

“김정석 선수도 뽑히지 않을까요?”

“김정석 선수 세이브 3위인데?”

“그래도 그건 우리가 워낙에 점수를 많이 뽑아내서 세이브 기회가 없었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네 말은 개인 성적만큼이나 팀 성적도 고려해서 올스타를 뽑아야 한다는 거야?”

“보통 그렇지 않나요?”

“그래. 맞아. 보통은 그래. 아까 내가 말한 선수들은 성적으로 뽑혀도 문제없는 선수들이지만 너처럼 스타즈가 1위니까 뽑아버리면 대환장의 멀티버스가 열리는 거라고.”

“……?”

“10개 구단 체제일 때도 리그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팀의 선수들이 올스타 투표를 싹쓸이하다시피 했어. 해당 팀 팬들은 우리 팀이 성적이 가장 좋으니까 뽑아주고 다른 리그 쪽 팬들은 선수들 성적 일일이 찾아보기 귀찮으니까 순위 높은 팀 선수들 찍어주고 하는 거지. 이러다 보면 말이야. 하위권 팀 팬들은 빈정상해. 어느 팀이건 한 명쯤은 올스타전에 뽑힐 만한 선수들이 있잖아? 그 선수들이 팀 성적 때문에 주목을 못 받으면 흑화한다고.”

“그러니까 일부러 박유성 선수를 안 뽑을 거라는 거죠? 와아, 그건 생각 못 했는데요?”

한 팀에서 올스타 선수를 독식하는 걸 막기 위해 감독 추천으로 추가 선수들을 선발하지만.

팬들이 인식하는 올스타 선수는 어디까지나 팬 투표로 뽑힌 12명이었다.

포지션별 야수 8명에 지명타자, 외국인 투수와 국내 선발 투수 1명씩. 그리고 중계와 마무리를 포함한 1명까지.

이렇게 12인 안에 누가 이름을 올리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작년에 우리 박준수 선수 올스타 만들려고 엄청 고생한 거 알지?”

“알죠. 하마터면 외국인 타자들에게 밀릴 뻔했잖아요?”

“그러면서도 다니엘 브리토 선수 투표에서 밀릴 때는 욕했어.”

“다니엘 브리토 선수는 성적이 좋았잖아요.”

“성적으로 따지면 박준수 선수와 민병규 선수, 별 차이 없었어.”

“그건…… 그렇지만요.”

지난해 LA 올림픽 직전에 열린 올스타전에서 박준수가 나눔 리그 올스타 1루수로 뽑혔다.

2위 민병규와는 고작 2만여 표 차.

민병규가 올스타보다 LA 올림픽 선발이 중요하다고 입방정을 떨지 않았다면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좋은 민병규가 2년 연속 팬 투표 올스타로 뽑혔을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올스타 투표 당시 박준수와 민병규의 성적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반면 나눔 리그 외야수들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던 다니엘 브리토는 국내 선수들에게 밀려 3위로 팬투표 올스타 막차를 탔다.

“아마 올해는 박유성 선수와 박준수 선수, 박경호 선수까지가 안정권일 거야.”

“다니엘 브리토 선수는요?”

“외야에 민병규 선수가 들어갔잖아. 박유성 선수와 민병규 선수 두 자리 확정이니까 한 자리 두고 박 터지겠지.”

“아무리 그래도 다니엘 브리토 선수가 떨어지는 건 말이 안 되는데요?”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라면 말이 안 되는데 올스타전은 충분히 가능해. 게다가 우리는 신생 구단이라 다른 구단에서 팬심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박승철이 안재희 운영팀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안재희 운영팀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투표 독려가 최선이야. 그러면서 최대한 실력 위주의 투표가 이루어지길 바라야 해.”

“1위 팀이라고 마냥 찍지 말고 성적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거죠?”

“그래. 그렇게 된다면 박유성 선수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박유성이 실력에 걸맞은 득표수를 기록하려면 야구팬들이 스타즈에 대한 반감을 갖지 않아야 했다.

사심으로 투표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도 심리적인 반발심 때문에 반대 투표를 해버리면 애꿎은 박유성만 피해를 보게 될 터였다.

하지만 스타즈 구단의 걱정과 달리 박유성에 대한 야구팬들의 호감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프로 야구 휴식일인 월요일에 시작된 올스타전 팬 투표 첫날.

박유성은 전체 득표자의 90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이거 괜히 걱정했는데요?”

“그러게. 이 정도면 정치해도 되겠는데?”

스타즈 구단은 예상을 뛰어넘는 득표율이 놀랐지만.

정작 야구 관련 커뮤니티들은 박유성에게 투표하지 않은 10퍼센트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나눔 리그 외야수들 중에 박유성보다 잘하는 선수가 있음?

└이해해요.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일 수는 없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박유성을 3순위 안에 안 뽑는다는 건 문제 아님?

└왜 3순위예요?

└외야수는 포지션 불문 한 번에 3명 투표합니다. 팬심으로 자기 팀 선수 한 명 뽑더라도 박유성 선수는 뽑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네. 3명 뽑는 거면 박유성은 100퍼 아님?

└박유성 안 뽑은 사람들은 눈 딱 감고 박유성 무시한 거란 소리잖아? 완전 소름인데?

└대한민국에는 투표의 자유가 있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실력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어서 뽑지 않았을 수도 있죠.

└잡았다, 요놈!

└저는 박유성 선수 뽑았습니다만?

└원래 올스타전은 인기투표잖아요. 그러려니 해야죠.

└진짜 박유성 안 뽑은 인간들은 앞으로 국제대회 때 박유성 응원하지 마라.

└LA 올림픽하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박유성이 해준 걸 기억하면 양심에 찔려서라도 투표했을 거임.

└박유성 안 찍은 사람들은 100퍼 나눔 리그일걸? 드림 리그는 그냥 박유성부터 찍고 시작함.

└드림 리그는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함?

└드림 리그 팬들은 드림 리그 선수가 중요하니까 박유성을 안 찍을 이유가 없죠. 심지어 투표 페이지 들어가면 성적 순서대로 선수 나오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박유성을 무시한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임.

커뮤니티들의 반응을 담은 기사들까지 나오자 박유성의 득표율은 점점 올라갔다.

이를 두고 몇몇 기자들이 독재나 다름없다는 기사를 올렸지만.

6월에도 맹타를 휘두르는 박유성을 지켜보며 감탄하는 야구 팬들에게는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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