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14화
37. 어나더 레벨(5)
신민아의 조언을 들은 신상욱 회장은 무릎을 쳤다.
그리고 곧바로 김재식 단장을 불러들였다.
“그러니까 스타즈 뮤지엄 쪽에 박유성 선수의 공간을 따로 만들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가능하겠어?”
“가능은 하지만 아직은 시기 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첫 시즌이고 아직 일정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반대하는 거야?”
“아직 박유성 선수가 보여준 게 많지 않습니다. 회장님.”
당시에만 해도 박유성의 시즌 타율 7할 달성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적잖던 터라 김재식 단장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시즌 종료를 한 달 앞둔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박 과장. 유성이 시즌 타율이 최소 얼마야?”
“지금 26경기가 남았고 4타석씩 소화해서 안타를 못 친다고 계산하면 0.602입니다.”
“남은 타석을 다 죽어도 6할이 넘어?”
“네. 회장님. 5타석으로 계산해도 0.574입니다.”
“만약에 7할을 맞추려면?”
“4타석 기준으로는 5할만 쳐도 7할이 가능합니다. 5타석 기준으로는 5할 4푼을 쳐야 하고요.”
“그 정도면 7할은 확정인 거 아니야?”
“인터 리그 경기는 다 끝났고 나눔 리그 일정만 남아 있으니까 오히려 몰아치기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드림 리그의 경우 여전히 4개 팀이 포스트 시즌 진출 티켓을 두고 다투는 중이지만 나눔 리그는 달랐다.
스타즈가 102승 22패로 1위를 확정 지은 가운데 타이거즈와 트윈스가 2위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이고 4위 랜더스부터는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였다.
시즌 막판, 포스트 시즌 탈락이 확정된 이후라면 무리해서 박유성과의 승부를 피하지는 않을 터.
특별히 타격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다면 7할 유지는 문제없어 보였다.
“홈런은 어떨 것 같아? 70개는 넘기겠지?”
“이미 63개이고 가장 적게 홈런을 때려낸 7월에도 7개는 때려냈습니다.”
“그럼 70홈런까지 가능하겠네.”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타율과 홈런 이외에도 박유성이 세운 기록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실업 야구 시절부터 야구를 봐온 신상욱 회장은 7할과 70홈런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 실장. 미리미리 금배트 준비해 놔.”
“제작이 가능한 업체를 미리 확보해 놓겠습니다.”
“박 과장. 보통 이럴 때는 얼마나 해야 하는 거야?”
“금배트 무게 말씀이시라면 이승협 선수 56호 홈런 때는 격려금과 순금 56돈이 나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채정 선수가 통산 400홈런을 때려냈을 때는 금 60돈 배트를 제작했고요.”
“400홈런인데 고작 60돈?”
“400돈으로 하기에는 부담이 컸을 겁니다. 다른 선수들도 챙겨야 하니까요.”
“지금 금 한 돈이 얼마야?”
신상욱 회장의 시선이 다시 한용준 비서실장에게 향했다. 그러자 한용준 비서실장이 냉큼 핸드폰을 꺼내 시세를 확인했다.
“대략 29만 원 정도입니다.”
“30만 원 잡고 70돈이면 2,100만 원인데…… 그 정도로 되겠어?”
“기념품의 가치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용준 비서실장을 대신해 박원호 과장이 대답했다.
홈런 개수에 맞춰 금의 무게를 늘리는 건 나름의 전통이었다.
신상욱 회장이 그 기준점을 확 올려 버린다면 추후에 활약할 선수들이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었다.
“한 실장도 같은 생각이야?”
“아무래도 상징성이 중요하니까요. 홈런 수와 금의 무게를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흠…….”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차별성을 두시는 게 어떨까요?”
“어떻게?”
“기념 배트를 두 쌍 만들어서 구단에 전시하는 겁니다. 금전적인 가치보다 기념품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해서 말이죠.”
70돈짜리 방망이가 두 개로 늘어나면 구단 지출도 배가 된다.
거기에 홈런과 타율뿐만 아니라 최다안타,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신기록까지 전부 챙기면 기념품 비용만 억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상욱 회장은 개인 소장을 위해 처음부터 기념품을 추가 제작할 생각이었다.
“그게 다야? 그걸로 차별성이 만들어지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빙 돌리지 말고 방법을 말해봐.”
“솔직히 말씀드려서 딱히 생각한 건 없습니다. 다만 그 차별성은 회장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기념품 제작은 스타즈 구단에서 진행하고 회장님께서 따로 박유성 선수를 챙겨주신다면 포상 규모를 가지고 말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흠…….”
신상욱 회장은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국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개인적으로 해결하라는 이야기였지만 손주사윗감으로 점찍은 박유성에게 줄 선물을 두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대한민국 야구 역사를 새롭게 썼으니까 넉넉하게 챙겨줘도 되겠지?”
“구단주가 소속 선수를 챙기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박 과장 생각은 어때?”
“저도 한 실장님 생각과 같습니다. 다만 내년 시즌도 생각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년 시즌이라니?”
“박유성 선수는 이제 프로 1년 차입니다. 내년 시즌에 2년 차 징크스를 겪지 않는 한 올해보다 성적이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8월에 성적이 급반등하긴 했지만 박유성의 6월과 7월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다.
월간 타율은 겨우(?) 7할을 넘기는 수준이었고.
월간 홈런도 한 자릿수에 그쳤다.
이 기간을 타격 스타일 변화를 위한 과도기라고 감안했을 때 내년 시즌에는 지금보다 안타와 홈런 수가 늘어날 터.
그 과정에서 타율이 일정 부분 하락하더라도 다른 기록 경신 가능성은 상당해 보였다.
만약 다른 구단주였다면 아차 하는 표정이 됐겠지만 신상욱 회장은 달랐다.
“올해 과하게 퍼주면 내년에는 그 이상 퍼줘야 한다는 거지? 그거 좋네. 하하. 유성이가 내년에 더 잘해주면 스타즈 성적도 더 좋아진다는 거잖아?”
신성 그룹의 성과급 규모는 대한민국 10대 그룹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실적이 없는 회사까지 성과급을 퍼주지는 않지만 실적이 확실한 회사는 직원들의 이직을 막고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경쟁사들 이상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편이었다.
“회장님께서 따로 신경을 써주신다면 박유성 선수도 정규 시즌 2연패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솔직히 죽기 전에 정규 시즌 우승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막상 한 번 해보니까 욕심이 생겨. 기왕이면 우리도 왕조 소리 한번 들어보자고.”
프로 야구 역사에서 왕조라 불리던 구단은 크게 셋.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연속 우승을 포함해 80년대와 90년대 9번의 우승을 차지한 타이거즈.
2003년과 2004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4번이나 정상에 오른 유니콘스.
마지막으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연패를 달성한 라이온즈.
라이온즈 왕조를 잡아내고 3번의 우승과 4번의 준우승을 차지한 베어스도 왕조로 불려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지만.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을 포함해 다른 팀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팀은 80~90년대의 타이거즈와 2000년대의 유니콘스, 2010년대의 라이온즈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즈가 2020년대의 왕조가 될 수 있을까?
“어때?”
신상욱 회장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은 박원호 과장이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 기틀만 잡아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가능하겠지?”
“일단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시즌과 내후년에도 리그 1위는 확정이고 선발 투수들이 올해처럼만 던져준다면 단기전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유성이가 메이저리그 가기 전까지 3시즌 우승하고 그다음에는 전력 보강을 통해 버텨보자고.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유성이 빠진다고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겠어?”
“시즌 농사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그래. 그렇게 되어야지.”
신상욱 회장이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야구와 관련해서는 확언을 아끼는 박원호 과장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스타즈 왕조를 세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참, 그 유성이 여동생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현재 검찰에서 추가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야 나도 아는 거고. 대충 나온 게 있을 거 아냐?”
“아직 조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몇몇 비리 정황이 확인됐다고 들었습니다.”
“비리? 설마 유성이 여동생?”
“박유성 선수 여동생 관련해서는 협회 조사 때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다만 최근 10년간의 전수 조사 과정에서 배구 선수 출신 학부모를 둔 선수들에 대한 차별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뒷돈을 받고 말이야?”
“금전적인 거래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자리가 났을 때 추천해 주는 식으로 답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이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선수 출신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협회 차원의 자체 조사에서 끝날 문제가 검찰 조사로 커진 상황에서 그런 관례를 눈감아줄 리 없었다.
“가해자 중 한 명이 부장검사 딸이라고 했지?”
“네. 배구부는 아닌데 박유선 양 관련한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왕따를 주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해야지 어디 권력을 남용해? 그 인간하고 절대 상종하지 마.”
“검사장도 아니고 고작 부장 검사라서요. 신경 쓰실 대상이 아니지만 그래도 법무팀장에게 단단히 일러놓겠습니다.”
베이스볼 패치 기사가 난 이후 아마추어 배구를 총괄하는 한국배구협회는 발 빠르게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언론에 허위 제보를 한 이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실상은 부모 덕에 대우를 받았던 가해자였다는 게 드러났고.
덩달아 박유선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단체 채팅방까지 드러났는데 문제의 채팅방을 만든 건 신화 여자 중학교
배구부와 전혀 상관없는 박유선의 같은 반 학생이었다.
면피할 거리가 생긴 한국배구협회는 신화 여자 중학교 측에 해당 학생에 대한 관리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는데 부장 검사라는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졌다.
“누구 맘대로 내 딸더러 가해자래? 너희들 싹 다 콩밥 먹고 싶어?”
만약에 박유선이 그저 평범한 배구부 선수였다면 조용히 덮고 넘어갔겠지만.
애석하게도 박유선의 친오빠는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일지 모를 박유성이었다.
박유성의 인기에 편승해 어떻게든 숟가락을 얹을 생각으로 혈안이 되어 있던 정치인들은 이때다 싶어 덤벼들었고.
끝내 굵직한 사건들만 전담해 온 서울 중앙 지검까지 나서게 만들었다.
“그런데 유성이 후원 이야기는 뭐야?”
“신화 여중 쪽에서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최근 후원금이 줄어들어서 배구부 운영에 차질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데 아무래도 새 감독이 들어온 이후로 출전에 대한 혜택이 줄어들면서 생긴 일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후원을 해주면 알아서 경기 출전 기회를 늘려줬다는 거네? 그러다 좋은 자리 나면 옮기는 거고?”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말세다. 말세야. 비리가 없어야 할 학원 스포츠가 오히려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으니 원…….”
신상욱 회장이 혀를 찼다. 여러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구단주로서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 신상욱 회장을 향해 한용준 비서실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박유선 양을 전학시키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