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30화
38. 한국 시리즈는 처음이라(12)
올 시즌 다저스는 지구 라이벌 자이언츠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지구 1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지구 1위 팀 중에 승률 상위 두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 선착하고 나머지 팀들끼리 와일드 카드 시리즈를 치르는 포스트 시즌 방식에 따라 전체 승률이 상당히 중요했지만.
브라이언 조던의 재계약 문제로 팀이 어수선해지면서 다저스는 후반기 연패의 늪에 빠졌고.
그 결과 내셔널리그 지구 1위 팀들 중에 가장 낮은 승률을 기록하며 와일드카드 시리즈로 밀려나게 됐다.
와일드카드 시리즈의 상대는 내셔널리그 포스트 시즌 진출 팀 중에서 가장 해볼 만하다고 평가받는 카디널스.
리그 평균 이상의 투수력과 준수한 타격을 갖췄지만 확실한 리딩 히터가 없다는 공통점을 갖춘 두 팀의 맞대결에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다저스는 비교 우위라는 팀 전력 차이를 앞세워 카디널스를 시리즈 스코어 2 대 0으로 제압하고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갔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맞붙은 상대는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 우승 팀인 컵스.
대다수 야구 전문가들은 후반기 들어 득점생산력이 뚝 떨어진 다저스보다 올 시즌 자이언츠와 내셔널리그 팀 홈런 1위를 두고 다퉜을 만큼 강력한 타선을 갖춘 컵스가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할 거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다저스는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컵스를 잡아내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월드 시리즈의 문턱에서 만난 건 지구 라이벌 자이언츠.
시즌 성적은 다저스가 자이언츠보다 2승을 더 챙겼지만 상대 전적은 반대로 자이언츠가 12승 7패로 앞선 터라 언론들은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의 향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떠들어댔다.
기선 제압이 필요했던 다저스는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 등판했던 에이스 피터 페츠 카드를 꺼냈고.
자이언츠도 에이스 호세 가르시아 카드로 맞불을 놓으면서 메이저리그 야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 중요한 경기에서 다저스가 연장 접전 끝에 자이언츠를 잡아냈을 때만 하더라도 다저스가 기세를 잡았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다음 날 열린 2차전까지 잡아내자 월드 시리즈로 가는 9부 능선을 넘었다는 분석이 쏟아졌고.
3차전을 내준 뒤 나흘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른 피터 페츠를 앞세워 4차전을 잡아내자 지역 언론에서는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걸 기정사실처럼 다뤘다.
그러나 다잡은 5차전을 허무하게 내주고.
홈으로 돌아온 6차전에서 대패를 당하자 시리즈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시리즈 스코어가 3 대 3으로 변하자 다저스는 월드 시리즈를 위해 아꼈던 피터 페츠를 다시 7차전 선발로 소환했다.
연이은 등판으로 인해 피터 페츠의 컨디션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지만 자이언츠의 추격을 따돌리고 팀을 월드 시리즈로 이끌어줄 수 있는 선수는 피터 페츠뿐이었다.
하지만 중견수 브라이언 조던이 발목 부상 재발로 7차전에 결장하고.
1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백업 중견수가 타구 판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주자들을 전부 홈으로 들여보내면서 월드 시리즈 우승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기 직후 데이브 로빈 감독이 월드 시리즈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발표했을 만큼 3연패의 충격은 컸다.
지역 언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며 한탄했고.
팬들도 SNS를 통해 감정을 쏟아내며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자이언츠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라도 한다면 분노의 화살은 실질적으로 단장 역할까지 하고있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심 걱정이 되어 찾아왔건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여전히 박유성에게 푹 빠져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냐니? 뭐가?”
“챔피언십 시리즈 말입니다.”
“챔피언십 시리즈가 왜? 지긴 했지만 7차전까지 갔잖아? 결과적으로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문제 있어?”
지난해 다저스는 간발의 차이로 자이언츠에게 지구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다시 자이언츠를 만나 시리즈 스코어 3 대 2로 패배하고 가을 잔치를 끝내야 했다.
반면 다저스를 꺾고 올라간 자이언츠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메츠를 잡아낸 뒤에 월드 시리즈에서 레드삭스까지 꺾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도 지구 2위의 성적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끝내 월드 시리즈에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자이언츠와 비교해 올 시즌 다저스의 성적을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많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우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최선을 다했어. 그래도 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와일드카드 시리즈부터 시작해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올라갔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안 그래?”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죠?”
“그럼. 당연히 진심이지. 아까 구단주에게도 똑같이 말해줬어. 자이언츠를 꺾고 지구 1위를 차지한 것만 생각하라고 말이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껄껄 웃었다.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결과를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죠?”
“그렇다니까 그러네.”
“그럼 저도 편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마음대로.”
“조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조쉬? 갑자기 왜?”
“포스트 시즌이 끝났으니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조쉬 애버튼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눈치를 봤다.
분명 역정을 낼 거라 예상했지만
“그래? 뭐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정작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앤드류. 차라리 화를 내지 그래요?”
“화? 무슨 화? 난 정말 괜찮다니까?”
“정말 괜찮다고요? 브라이언 조던이 갑작스럽게 결장하면서 7차전을 내주고 월드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는데요?”
“물론 결과는 아쉽지. 하지만 브라이언 조던의 발목이 좋지 않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잖아. 안 그래? 그리고 브라이언 조던이 설마 계약 문제 때문에 일부러 출전을 안 했겠어?”
“그건 아닙니다. 팀닥터도 출전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 했으니까요.”
“그래. 브라이언 조던도 최선을 다했어.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포스트 시즌까지 열심히 뛰어줬다고. 피터 페츠도 마찬가지야. 7차전은 실망스러웠지만 1차전과 4차전의 피칭은 좋았지. 그런데 누구의 탓을 하겠어. 안 그래?”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은 다저스 팬들에게 두고두고 악몽 같은 경기로 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믿었던 피터 페츠는 2회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했고.
브라이언 조던이 빠진 외야진은 연이은 실책으로 점수를 내줬으며.
타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헛스윙을 해대며 아웃 카운트만 늘려댔다.
6차전의 무기력한 패배에 화가 나 있던 다저스 팬들이 7차전은 꿈에 나올까 두렵다고 분개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놓고 봤을 때 7차전 패배의 주역들 중에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선수가 없었다.
올해 처음으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피터 페츠는 에이스라는 칭호에 어울릴 만한 커리어 하이 시즌을 썼고(18승 6패 2.85).
재계약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브라이언 조던도 0.285의 타율과 15개의 홈런으로 제 몫은 다해줬으며
경기 직후 얼굴을 들지 못했던 클린업 트리오도 무려 124개의 홈런을 합작하며 지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단순히 한 경기 결과만으로 이들의 노력을 깎아내릴 수 있을까.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데 왜 계속 썬만 보고 있는 겁니까?”
“그야 올 시즌 다저스의 야구는 끝이 났으니까?”
“그럼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죠.”
“에이, 그건 아니지. 나도 좀 쉬어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그러니까 결국 괜찮지 않다는 얘기잖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올 시즌 성적에 만족해. 솔직히 지구 우승도 어려울 줄 알았어.”
“그렇다면 브라이언 조던과 재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앤드류!”
“내가 말했잖아. 지구 우승이 어려울 줄 알았다고. 지금 전력으로 사실 이만큼 해낸 것도 대단한 일이야. 하지만 내년은 또 모르는 거지. 우린 전력 보강을 해야 해. 문제 있는 선수들은 잘라내고 새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고. 그래야 내후년 쯤에 월드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 거야.”
“…….”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구상을 들은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서 화를 내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애당초 팀을 갈아엎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브라이언 조던과 재계약을 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재계약을 할 수 있다면 해야겠지. 하지만 과연 조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까?”
“이러면 피터 페츠와의 재계약에도 문제가 생길 겁니다.”
“어차피 피터 페츠는 내후년까지 다저스 소속이야. 서두를 필요 없다고.”
“앤드류. 그러다 피터 페츠가 다저스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2005년생인 피터 페츠는 올해로 메이저리그 풀타임 4년 차 시즌을 보냈다.
5선발로 활약하던 첫해 10승 7패에 평균자책점 3.55로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받았고.
이듬해 13승에 이어 지난해 14승을 찍으면서 연봉 조정을 통해 현재 500만 달러를 받고 있었다.
올 시즌 성적을 반영했을 때 피터 페츠의 연봉은 최소 2배 이상 오를 터.
이러다 내년 시즌에 사이영상을 받기라도 하면 나가야 할 돈이 더 늘어날 수 있었다.
“피터 페츠 같은 선수들은 5년 차에 들어가기 전에 장기 계약으로 묶는 게 최선입니다. 5년 차 시즌이 끝난 다음에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합의점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메이저리그에서 FA자격을 얻기까지 필요한 서비스 타임은 6시즌.
올해로 4시즌을 채웠고 이변이 없는 한 내후년 직후 FA 자격을 얻게 될 피터 페츠를 가장 저렴한 가격에 묶어둘 수 있는 기간은 올해까지였다.
내년 시즌이 시작되고 피터 페츠가 올해처럼 초반에 치고 나간다면 분명 FA에 준하는 높은 계약 조건을 요구할 터.
그때는 올 시즌 성적이 반영된 연봉이 기준이 될 터라 다저스도 상당한 지출을 각오해야 했다.
반면 올해 피터 페츠를 장기 계약으로 묶어두면 상황은 달라진다.
“올해 피터 페츠의 연봉은 500만 달러입니다. 각종 보너스를 더하더라도 600만 달러를 넘지 않을 거고요. 올해 안에 피터 페츠를 장기 계약으로 묶는다면 연평균 2천만 달러 이하의 계약이 가능합니다.”
“만약 연봉 조정에 들어간다면 얼마를 줘야 할까?”
“조쉬는 최소 2배 이상을 요구할 겁니다. 우린 그 이하로 연봉을 책정해야 하고요.”
“그럼 1천만 달러로 잡고 내년 시즌 후에 장기 계약을 맺으면 연평균 금액이 얼마나 되겠어?”
“내년 시즌 15승에 평균 자책점 3점대 초반을 찍는다고 가정하면 2,500만 달러쯤 예상합니다.”
“그러다 해를 넘겨서 FA 계약을 맺는다면?”
“앤드류. 그건 최악의 판단입니다. 피터 페츠가 내년 시즌과 내후년에 연달아 잘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겠지만 평균 이상만 해줘도 FA 시장에서는 최대어로 평가받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최소 2억 달러까지 몸값이 치솟을 겁니다.”
“2억 달러면 6년 기준인가?”
“6년에서 7년 사이가 되겠죠. FA 시점에서 피터 페츠는 27살이 되니까요.”
“피터 페츠에게 2억 달러라. 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길게 신음했다.
피터 페츠가 좋은 투수인 건 사실이지만 계약 총액 2억 달러는 리그 에이스급 대우였다.
내년과 내후년에도 올해만큼의 활약을 펼쳐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올해 처음 15승을 넘긴 투수에게 2억 달러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앤드류. 피터 페츠의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냉큼 말을 붙였다.
그러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