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32화
38. 한국 시리즈는 처음이라(14)
지난 2023년 겨울.
오타니 쇼헤는 에인젤스와 10년 총액 4억 5천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언론에서 떠들던 총액 5억 달러를 넘지는 못했지만.
만 29세에서 시작해 만 38세에 끝나는 계약에 오타니 쇼헤도 상당한 만족감을 보였다.
오타니 쇼헤의 계약이 발표됐을 때.
미국 주요 언론들은 아시아 출신 선수 중에 이 계약을 깰 수 있는 선수는 없을 거라며 놀라워했다.
일본 언론은 한술 더 떠 향후 100년간 제2의 오타니 쇼헤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의 분위기는 당시의 예상과 매우 달랐다.
“최소 4억 5천만 달러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날 단념시키기 위해서 금액을 부풀린 거야?”
“4억 5천만 달러면 단념이 됩니까?”
“그럴 리가. 오히려 더 오기가 생기는데?”
“그런데 제가 왜 블러핑을 하겠습니까?”
5년을 함께 부대끼는 동안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에게 익숙해진 게 아니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 역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었다.
지역 언론들은 여전히 큰돈을 쓰는 데 주저하는 성격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만한 투자를 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박유성이 LA 올림픽에서 활약하기 전부터 그 진가를 알아봤다.
U-18 야구 월드컵에서 타격 8관왕의 위엄을 달성했을 때부터 다저스로 데려오고 싶어 했고.
박유성이 한국 잔류와 메이저리그 진출을 두고 저울질하던 시기에는 해외 아마추어 계약 전체를 올 스톱시키고 모든 자금을 박유성에게 올인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다음 날에도 박유성의 경기를 챙겨보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고작 돈 때문에 박유성을 포기할까?
‘천만에. 오히려 몸값이 오르면 경쟁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할 거야.’
오타니 쇼헤의 재계약 시점이 다가왔을 때 상당수 언론들은 에인젤스가 오타니 쇼헤의 몸값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전망했다.
에인젤스가 오타니 쇼헤를 원하고 오타니 쇼헤 역시 에인젤스 생활에 만족하더라도 관건은 결국 돈.
총액 5억 달러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에인젤스 구단 총연봉 지출의 2배에 가까운 금액을 오타니 쇼헤 한 사람을 위해 쓰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여차여차해서 오타니 쇼헤를 주저앉히는 데 성공한 에인젤스의 선수단 총연봉은 이듬해 2억 6천만 달러까지 상승했다.
아메리칸 구단 중에서는 4번째.
내셔널리그 구단까지 포함하면 6번째로 많은 금액을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올 시즌은 2억 8천만 달러까지 올랐지.’
자신의 예상대로 박유성의 계약에 오타니 쇼헤가 기준이 된다면 입찰에 참가할 수 있는 구단은 손에 꼽혔다.
내셔널리그에서는 다저스를 비롯해 자이언츠와 메츠, 내셔널스 정도.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이런 이벤트에 빠지지 않는 양키즈와 레드삭스, 레인저스, 그리고 에인젤스에 블루제이스 정도.
30개 구단 중에 많아야 10개 구단 정도만 경쟁 테이블에 앉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빅마켓이라 불리는 구단들이 경쟁하기 시작하면 썬의 몸값은 더 치솟겠지.’
빅마켓 구단들 중에 박유성 쟁탈전에서 쉽게 물러날 구단은 많지 않았다.
포지션을 떠나 박유성은 대체 불가능한 레벨의 톱타자.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걸 시즌을 통해 입증한 이상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4억 5천만 달러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구단들이 1차적으로 경쟁했을 때를 감안한 금액이었다.
아마도 4억 5천만 달러까지는 다들 눈치를 보며 따라올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연평균 연봉을 확 올려 버리면 그때부터는 다들 자신들만의 계산기를 두드리게 될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최소 기준점은 오타니 쇼헤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유는? 같은 아시아 선수이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은 라이벌 관계니까요. 한국 언론에서 먼저 오타니 쇼헤를 언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에서 여론이 만들어지면 결국 구색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거지?”
“썬이 올 시즌 보여준 활약상만 놓고 봤을 때 무리한 요구는 아니니까요.”
기정후와 감백호에 이어 송현민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이지만 아시아 최고의 타자 계보는 일본 쪽에서 쥐고 있었다.
아시아 선수들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쥔 스즈키 이치이로.
그리고 아시아 선수들 중 두 번째로 MVP를 차지한 오타니 쇼헤.
박찬오-류현신으로 이어지는 투수들은 일본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만 타자 쪽에서는 스즈키 이치이로-오타니 쇼헤와 경쟁할 선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한국에서 벌써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는 거야?”
“아직 구체적인 얘기는 없습니다. 일단 썬이 포스팅을 신청할 자격을 얻는 게 먼저니까요. 아마 내년에 있을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나야 본격적인 여론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박유성이 내후년쯤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거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아직 제도적인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게 아니었다.
프로 야구 구단들의 동의를 얻은 일명 박유성 법은 가안만 나왔을 뿐 아직 통과되지 않았고.
국가대표 포인트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더라도 아직 박유성이 채워야 할 국가대표 포인트가 많이 남아 있었다.
“아시안 게임까지만 참가하면 메이저리그로 넘어오는 데 문제는 없는 거야?”
“내후년에 열릴 프리미어 12까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다만 올 시즌이 끝나고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과 U-23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점수를 쌓으면 프리미어 12에서 슈퍼 라운드만 진출해도 포스팅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즌 후에 국제 대회가 2개나 있어?”
“다음 주부터 대만에서 U-23 야구 월드컵이 열립니다. 한국 시리즈와 일정이 겹치지만 이미 U-23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라 한국 시리즈가 끝나는 대로 대만으로 넘어가 대표팀에 합류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회가 끝난 직후 일본에서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이 열립니다.”
“대만을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는 거야?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야?”
“힘들긴 하겠지만 두 대회 모두 국가대표 포인트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썬도 올해가 아니면 U-23 야구 월드컵과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에 참가할 수가 없습니다.”
2년 주기로 열리는 U-23 야구 월드컵은 말 그대로 23세 이하 선수들만 참가가 가능한 대회였다.
올해로 만 19세인 박유성의 경우 규정상 2031년 대회와 2033년 대회까지는 출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2031년에는 대회 기간에 프리미어 12가 열리고.
2033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라 참가의 의미가 없었다.
만 24세 이하의 선수들만 참가하는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도 마찬가지.
대회 주기가 4년인 데다가 다음 대회가 열릴 때쯤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로 신분이 바뀌어서 참가 자격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썬이 U-23 야구 월드컵에 나가도 괜찮은 거야?”
“프로 선수들의 출전도 가능해서 규정상으로는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2015년 대회 이후로 한국이 우승을 하지 못한 상황이라서요. 협회에서 먼저 썬을 차출했다고 합니다.”
“이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했는데 그런 작은 대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잖아?”
“자세한 속사정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올해가 아니면 썬은 U-23 야구 월드컵에 참가할 수가 없습니다.”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도 한국 협회에서 원한 거야?”
“그 대회는 일본 쪽에서 썬의 참가를 강력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썬은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높으니까요. 썬이 참가하면 티켓이 잘 팔릴 거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썬의 인기가 그 정도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정적인 여론도 관심의 일환이니까요. 지금도 일본 언론에서는 썬이 오타니 쇼헤의 계약을 넘어설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일본 언론들은 한국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한 게 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중이죠.”
“그렇다면 일본 언론들도 썬이 오타니 쇼헤의 계약을 넘어설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그렇다기보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 스타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LA 올림픽 4강전 때도 한국이 결승전에 올라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엄살을 부렸으니까요.”
“결국 한국이 이겼잖아?”
“그래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언론이 부정적인 보도를 하는 바람에 한국이 이겼다는 비난도 상당했고요.”
“그러니까 썬이 오타니 쇼헤의 계약을 넘을까 봐 일부러 더 호들갑을 떤다는 거지?”
“썬의 나이가 어린 만큼 계약 총액에서 썬이 앞서더라도 오타니 쇼헤의 연평균 금액을 넘기기란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을 겁니다.”
현재 미국 주요 언론들이 예상하는 박유성의 연평균 연봉은 3,500만 달러에서 4천만 달러 사이.
반면 10년 4억 5천만 달러에 계약한 오타니 쇼헤의 연평균 연봉은 4,500만 달러였다.
박유성과 오타니 쇼헤의 연평균 연봉 차이는 최대 1천만 달러 정도.
박유성의 몸값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는 걸 감안했을 때 금방 따라잡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타니 쇼헤의 4,500만 달러는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연봉 중에 최고 금액이었다.
그 속에는 타격과 투구, 양쪽에서 평균 이상의 활약을 해줄 거라는 기대감이 포함되어 있었다.
노장 투혼을 발휘한 맥스 슈저나 저스트 벌랜더가 연평균 4,333만 달러의 연봉을 수령하기도 했지만 10년간 4,500만 달러를 받는 사례는 오타니 쇼헤가 유일했다.
“로이, 자네의 생각은 어때?”
“오타니 쇼헤는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썬이 내년과 내후년에 좋은 활약을 펼치더라도 한국 무대에서의 성적만으로는 오타니 쇼헤의 연평균 연봉을 넘어서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약 기간을 늘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내후년이 되더라도 썬은 스물한 살이니까요.”
“그렇다면 홀리오 로드리게스를 참고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되면 계약 총액이 6억 달러를 넘어설 겁니다.”
지난 2022년, 매리너스는 루키 홀리오 로드리게스를 잡기 위해 4억 7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썼다.
계약 기간은 무려 17년.
기간이 긴 만큼 수많은 옵션이 포함되어 있어서 4억 7천만 달러를 온전히 수령하기란 불가능할 거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지난해 매리너스에서 10년 추가 옵션에 합의하면서 17년 계약을 전부 채울 길이 열린 상태였다.
“그런데 매리너스는 썬에게 관심을 보일까?”
“무조건 보일 겁니다. 옵션 연장을 두고도 말이 많았으니까요.”
“홀리오 로드리게스를 두고 썬을 노린다라. 그건 욕심이 과해 보이는데?”
“앤드류라면 어떻겠습니까?”
“나라면?”
“브라이언 조던 대신 홀리오 로드리게스가 주전 중견수라면 썬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썬을 대신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고.”
“그러니까 손쉽게 썬을 영입할 생각은 버려요. 정말 썬에게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힐 생각이라면 사력을 다해야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 썬의 영입에 내 모든 걸 걸 생각이니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씩 웃었다.
빈말이 아니라 오랫동안 탐냈던 박유성이 다른 구단의 유니폼을 입는 꼴은 절대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 시리즈는 재미있습니까?”
“당연히 재미있지. 썬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오른다고.”
“저는 그래서 더 못 보겠던데요. 솔직히 한국 리그에서 썬을 막을 수 있는 투수가 없잖아요.”
“그건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일걸? 그리고 쓸데없이 월드 시리즈 보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그건 그렇겠네요. 다음 경기가 언제입니까?”
“한국 시리즈? 내일 자정 넘어서?”
“저도 내일은 한번 봐야겠네요.”
“우승까지 2경기 남았으니까 마저 챙겨보라고.”
“이대로 스윕 우승을 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당연하지. 썬은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8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 중이야. 심지어 매 경기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고. 단언하는데 히어로즈는 썬을 막지 못해. 결국 스타즈가 편하게 우승할 거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예언대로 스타즈는 3차전과 4차전을 내리 잡아내며 창단 첫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한국 시리즈 MVP는 한국 시리즈 10할 타율을 달성한 박유성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