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60화 (360/412)

타자 인생 3회차! 360화

41. 슈퍼라운드(4)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주된 임무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결정과 판단에 냉정하게 조언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대신해 주요 선수들과 에이전트를 만나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최우선은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게 직언하는 것이었다.

그런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언성을 높일 만큼 이번 피터 페츠의 발언은 위험했다.

실제로 다저스 출신 레전드들이 앞다투어 피터 페츠의 경솔함을 질타하고 있었다.

피터 페츠의 재계약을 바라던 팬들도 지금은 피터 페츠를 내쫓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몰랐던지 조쉬 애버튼이 어디까지나 흥행을 위한 쇼맨십이었다고 둘러댔지만.

애당초 피터 페츠가 이런 도발성 멘트를 즐겨 하는 선수가 아니다 보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로이. 진정해. 자네답지 않아.”

“저도 진정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이 사태를 빨리 수습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언론을 보세요. 이때다 싶어 다저스가 썬의 영입을 포기했다고 떠들어대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협상 테이블에는 앉아보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정말로 피터 페츠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하라고?”

“솔직히 그렇게 한다고 해도 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알아봤는데 쏭이 레인저스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도 레인저스 선수단 내부의 인종 차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종 차별? 허, 아직도 그런 게 있다는 거야?”

“앤드류.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다저스에도 있습니다. 직원들 중에서도 미국 국적이 아닌 선수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감히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거야?”

“그게 미국이라는 나라입니다. 언론에서 떠든다고 해서 고쳐질 거였으면 진즉에 고쳐졌죠. 쏭도 잠재적으로 깔린 차별에 상처를 받은 겁니다. 썬은 그 쏭과 가장 친하고요. 썬이 쏭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피터 페츠의 이번 발언을 다저스 선수단 전체의 분위기로 받아들일 겁니다.”

로이 홀랜드가 울분을 토해내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솔직히 처음 피터 페츠의 발언을 접했을 때.

피터 페츠를 정리할 수 있는 빌미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그래서 한국 문화에 대해 잘 아는 하버드의 윌리엄 교수에게 연락해 박유성의 메시지를 분석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경쟁자들이 이때다 싶어 다저스를 비난하고 질타하다 보니 다저스에 우호적인 언론들조차 뭘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때에 공식 입장을 차일피일 늦춘다면 박유성과 협상조차 하지 못하게 될 터.

“일단 구단 입장부터 올려.”

“말씀하세요.”

“우리는 썬을 간절히 원한다고. 썬을 영입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말이야.”

“후우……. 나쁘지 않은 메시지입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유성의 영입에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피터 페츠와 선을 긋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보다는 다저스 구단의 확실한 입장을 전달하는 편이 더 나아 보였다.

“그리고 일본행 티켓 좀 확인해 봐.”

“일본행 티켓이요? 설마 직접 가겠다는 겁니까?”

“원래 단장은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나서서 수습하는 자리야. 선수가 사고를 쳤으면 내가 수습을 해야지.”

“자칫 잘못했다가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이 전부 도쿄로 넘어올지도 모른다고요.”

“그럼? SNS에 구단 입장을 밝히는 것만으로 썬의 마음이 풀릴까? 자네라면 어떨 거 같아? 동료 직원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받아도 인프라넷에 자네는 좋은 직원이라고 팝업 창을 하나 띄우면 모든 화가 풀려?”

“지금 그런 비유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는 썬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아시아적인 사고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거야. 이미 돈 몇푼 더 주는 걸로는 해결이 되지 않잖아?”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챙겨준다면 가능은 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다른 전력 보강은 어렵겠지. 언론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선수들은 포스팅이 가까워지면 거품이 꺼지는 경향이 있다.

마츠다 유이토부터 시작해 천신위, 송현민, 니키타 쇼우에 이르기까지.

포스팅 전에는 총액 1억 달러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떠들어댔지만 실제 계약은 그보다 한참 미치지 못했다.

2025년 나란히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마츠다 유이토와 천신위는 각각 9천만 달러(6년)와 3,600만 달러(4년)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나마 총액에서 마츠다 유이토는 체면치레를 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연평균으로 따지면 1,500만 달러와 9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양국 언론에서 떠들어대던 연평균 2천만 달러 수준의 계약과 큰 차이가 있었다.

마츠다 유이토의 계약을 뛰어넘겠다던 송현민도 4년 6천만 달러에 레인저스에 입단했다.

송현민 입장에서는 주전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박유성이라는 초대형 떡밥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본 야구 팬들과 대한민국 야구 팬들은 총액은 마츠다 유이토가 압도하느니 옵션과 세금을 포함하면 송현민이 더 받느니 하는 유치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송현민보다 1년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니키타 쇼우의 경우 4년 6,500만 달러 계약을 발표하며 일본 야구팬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천만 달러 수준의 옵션이 포함된 금액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연봉 논쟁에서 빠져버렸다.

이처럼 아시아 출신 스타 플레이어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언론의 예상치와 실제 계약 금액의 차이가 큰 건 언론에서 시장 상황을 100퍼센트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언론이 주목하는 건 어디까지나 해당 선수의 실력과 스타성 정도.

하지만 실제 계약에서는 수많은 세부 조건들을 따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조건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선수라면 언론의 예상치에 근접한 금액을 받을 수 있겠지만 까다롭게 굴면 그만큼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계약 조건이 나빠지는 것이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박유성의 몸값 역시 거품이 빠질 거란 예상이 많았다.

데뷔 시즌에 기록한 7할이라는 가공할만한 타율을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박유성이 3년 연속 7할을 달성한 데 이어 해마다 커리어 하이를 경신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재 언론에서 추정하는 박유성의 계약 총액은 7억 달러 수준.

이마저도 프리미어 12 결과와 구단 간 경쟁을 통해 더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리고 이 같은 언론의 분석을 터무니없다 주장하고 깎아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난 일본과의 프리미어 12 개막전 직후 ESPM은 박유성과 협상 테이블을 펴려면 7억 달러를 준비하거나 연평균 6천만 달러 수준의 계약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초대형 계약이라 예상치를 웃도는 파격 배팅을 할 구단은 없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로 박유성을 노리는 구단들도 최소한의 실탄에 더해 박유성이 혹할 만한 플러스 알파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다저스의 에이스가 입방정을 떨어댔으니 경쟁 구단들만 이득을 본 셈.

이 상황을 만회하려면 다저스의 운영 총괄 사장인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티켓을 알아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티켓을 알아보는 동안 잠깐 집에 들러 필요한 짐을 챙겨 나올 생각이었다.

그러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만류하며 말했다.

“앤드류. 잠깐만요.”

“시간이 없다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아예 한국으로 가는 게 어때요?”

“한국?”

“지금 썬은 프리이머 12에 참가 중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미국과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만에 하나 한국이 미국을 이긴 상황에서 썬을 만나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야 피터 페츠의 일을 사과해야지.”

“그럼 언론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미국 대표팀은 결승 진출이 좌절됐는데 다저스만 잇속을 챙긴다고 물어뜯을 거예요.”

“흠…….”

“그리고 미국이 한국을 잡는 상황도 감안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썬이 만나줄까요?”

“썬도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지.”

“썬은 이번 프리미어 12를 끝내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러니까 썬과 직접 접촉하기보다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돌아가자고?”

“가족을 찾아가면 되는 거죠.”

“오호, 가족?”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면서 사과의 말을 전하면 진심도 전하면서 템퍼링 의혹을 피할 수 있습니다.”

스타즈의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끈 박유성은 일찌감치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스타즈 구단에서도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도전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국가 대표 포인트가 일부 부족해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슈퍼 라운드에 진출할 경우 포스팅 신청을 승인하는 것으로 프로 야구 협회와 조율을 마친 상태였다.

현 포스팅 제도상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박유성을 포스팅 대상자로 발표하면 자유롭게 접촉하는 게 가능하지만.

아직 대회가 진행 중인 데다가 메이저리스 사무국에서도 박유성의 포스팅 시점을 프리미어 12 이후로 잡고 있어서 섣불리 움직였다가 괜한 오해를 사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썬의 가족에게 사과만 하자는 거지?”

“네. 만약을 대비해 출입 기자와 함께 움직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흠…….”

“그러고 나서 쏭의 에이전트를 만나시죠.”

“쏭의 에이전트?”

“쏭을 영입하고 싶어 했잖습니까? 쏭의 에이전트는 한국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쏭의 에이전트가 썬의 에이전트지. 하하하.”

“우린 어디까지나 썬의 부모님께 진심 어린 사과를 한 다음에 쏭의 영입을 위해 움직인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짐을 챙기기 위해 잠깐 집에 들른 사이.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박유성의 가족들에게 선물할 특별 유니폼을 요청했다.

“그럼 다 해서 5벌을 만들면 되는 겁니까?”

“아니. 6벌을 만들어야 합니다.”

“썬의 가족은 다 해서 5명인데요?”

“썬은 재혼 가정입니다. 친어머니는 썬이 어릴 때 죽었죠.”

“아아, 무슨 얘기인지 알겠습니다.”

“어차피 선물용이니까 사이즈까지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이니셜을 틀리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마요. 로이. 우리 모두 썬이 다저스에 오길 매일같이 기도하고 있으니까요.”

한 시간 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로이 홀랜드 보좌역과 기자, 메이저리그 사무국 직원을 대동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LA를 출발한 비행기가 태평양을 가로지를 무렵.

대한민국 대표팀과 미국 대표팀의 슈퍼 라운드 경기가 시작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