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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69화 (369/412)

타자 인생 3회차! 369화

42. 도쿄 찍고 미국으로(2)

방금 전 니키타 쇼우가 몸 쪽으로 공을 붙였을 때.

박유성은 일부러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마터면 손등을 맞을 뻔했는데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

다만 이틀 만에 마운드에 오른 니키타 쇼우의 컨디션을 감안해 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을 거라고 애써 넘겼다.

그런데 승부에 대한 집착을 넘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걸 보니까 동업자 정신이 싹 사라졌다.

‘어디 욕 한번 바가지로 먹어 봐라.’

니키타 쇼우를 무시하고 박유성은 성큼 성큼 리드를 벌렸다.

한 발. 또 한 발. 그리고 반 발.

좌투수를 상대로 리드할 수 있는 최대치를 나가 니키타 쇼우의 신경을 잔뜩 긁었다.

“감힛!”

짜증이 난 니키타 쇼우가 빠르게 견제구를 던졌지만 박유성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1루로 복귀했다.

그렇게 한 번.

다시 한번.

연거푸 세 번의 견제를 버텨낸 박유성은 니키타 쇼우가 오른발을 들어 올리기가 무섭게 2루를 향해 내달렸고.

끝내 니키타 쇼우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아, 지금 박유성 선수가 견제에 걸렸는데요.

-저건 보크죠. 엉덩이가 빠진 상태에서 저렇게 던지는 건 반칙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2루심이 보크를 선언하는데요. 니키타 쇼우가 강하게 반발합니다.

-이건 리플레이 화면으도 다시 볼 필요조차 없을 만큼 완벽한 보크였습니다. 니키타 쇼우 선수쯤 되는 선수라면 절대 하지 않아야 할 실수인데요. 박유성 선수가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까지 마운드에 올라와 항의를 했지만.

결승전을 맡게 된 미국 심판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게 보크가 아니면 뭐라는 겁니까?”

“니키타 쇼우는 평소 저런 식으로 던집니다.”

“우린 메이저리그 심판들입니다. 니키타 쇼우의 경기도 여러 번 참여했죠. 그런데 갑자기 일본에 와서 투구 방식이 달라졌다는 겁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괜히 편을 들려 나왔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조용히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잠시 후, 경기가 재개됐다.

“후우…….”

포수와 내야수들에게 위로를 받은 니키타 쇼우는 방금 전 보크를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머리 뒤쪽에서 보란 듯이 리드를 넓히는 박유성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다시 짜증이 치밀었다.

‘빌어먹을 자식. 다음 타석 때 반드시 죽여 버린다!’

또다시 견제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니키타 쇼우는 분노에 사로잡혀 공을 내던졌다.

후앗!

당연하게도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완전히 벗어났고.

민병규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얻어내 박유성이 비워준 1루를 채웠다.

-니키타 쇼우 선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있는데요.

-지금 중계 화면에 제대로 잡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유성 선수가 니키타 쇼우 선수의 뒤에서 열심히 움직여 준 결과입니다.

-박유성 선수에게 3루 도루는 식은 죽 먹기니까요.

-왼손 투수 앞에서 2루로 뛰고 오른손 투수 앞에서 홈스틸을 노리는 선수인데 3루 도루가 대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 공 4개가 전부 빠르게 들어왔는데요.

-발 빠른 박유성 선수를 신경 쓰다 보니 공을 더 빨리 던져야 했을 테고요. 그 과정에서 투구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왔습니다.

-이제 무사 1, 2루 상황에서 박준수 선수인데요.

-경기 전에 일본 언론에서 송현민 선수가 아닌 박준수 선수가 3번으로 출전하는 걸 두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을 했었거든요? 이번 타석에서 박준수 선수가 송현민 선수보다 먼저 나온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바람대로 박준수는 초구와 2구를 침착하게 골라낸 뒤에 3구째 들어오는 밋밋한 포심 패스트 볼을 잡아당겨 펜스 상단을 직격하는 장타를 때려냈다.

다른 구장이었다면 홈런이 되고도 남은 타구였지만 박준수는 선제 2타점 안타를 때려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현민이 형!”

2루에 선 박준수의 호명을 받은 4번 타자 송현민이 피식 웃었다.

‘너도 하나 쳤으니까 나도 하나 치라 이거지?’

결승전까지 오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매 경기 10점 이상의 점수를 뽑아냈다.

그리고 그 점수의 절반 이상을 박준수와 송현민이 만들어냈다.

이번 대회에서도 9할대의 타격쇼를 펼치고 있는 박유성은 타점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타점만 자신과 박준수에게 뒤진 공동 3위.

이런 상황에서 박준수에게 타점왕을 양보한다면 빈손으로 FA 시장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 타점왕은 양보 못하지.’

다저스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박유성의 본가를 찾아간 다음 날.

미국 쪽에서 템퍼링 의혹이 터져 나왔다.

아직 정식적으로 포스팅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박유성의 에이전트인 송광철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다저스는 구단 SNS를 통해 일부 언론들의 의혹을 일축했다.

[다저스는 올해 FA가 된 레인저스의 쏭에 관심이 있습니다.]

송광철 대표가 송현민의 에이전트이자 삼촌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알려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지만.

송현민은 다저스의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나길 원치 않았다.

“유성이하고 누가 더 잘 맞는지 잘 보라고.”

타석에 들어선 송현민이 방망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따악!

초구에 풀려 들어온 커터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아, 큽니다! 쭉쭉 뻗어나갑니다!

-이번에는 넘어간 것 같은데요?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이 타구는 우익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홈런! 투런! 송현민 선수가 오늘 경기 쐐기를 박는 한 방을 날립니다!

멍하니 타구를 지켜보던 니키타 쇼우는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젠장할. 대체 이게 뭐야.”

대만전 때 조기 강판을 당했을 때도 짜증은 났지만 일본 대표팀의 결승 진출을 위해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제 대한민국전에 선발 등판 지시를 받았을 때도 힘들고 부담스러웠지만 일본 대표팀의 우승을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마운드에 올라와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4점을 내주고 나니까 모든 게 허망해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대만전 때 끝까지 던지는 건데.

그랬다면 오늘 선발 등판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치미는 후회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무렵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다가와 어깨를 잡았다.

“고생했다. 니키타.”

니키타 쇼우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타카하시 타이세이는 후속 타자들을 범타로 잡아내고 충격적이었던 1회를 끝냈다.

그리고 2회 초.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박유성의 타석이 돌아오자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오타니 쇼헤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까 불펜에 오타니 쇼헤 선수가 몸을 풀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정말로 오타니 쇼헤 선수를 투입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경기 초반이긴 하지만 여기서 점수를 더 내주면 오늘 경기를 쫓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오타니 쇼헤 선수. 어제 있었던 미국과의 경기에서도 2이닝을 소화했는데요. 오늘 다시 박유성 선수를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만약에 오타니 쇼헤 선수가 박유성 선수를 잡아내고 이닝을 끝마친다면 일본 대표팀에게도 분명 기회가 올 겁니다. 하지만 오타니 쇼헤 선수마저 박유성 선수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글쎄요. 오늘 경기가 시시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1회 말 공격이 송찬우에게 막혀 삼자범퇴로 끝이 났을 때.

“감독님.”

오타니 쇼헤이가 직접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을 찾아왔다.

“안 돼. 오타니.”

오타니 쇼헤의 표정을 읽은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에서 열리는 프리미어 12 결승전이고 오타니 쇼헤의 국가대표 은퇴 대회라 하더라도 어제 던진 오타니 쇼헤를 다시 마운드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오타니 쇼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박유성을 다시 한번 상대해 보고 싶습니다.”

“박유성은 내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뛸 거야. 그때 상대해도 늦지 않아.”

“리그와 국제 대회는 다릅니다. 리그에서 박유성을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후우…….”

“이대로 끝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습니다.”

투수로서 다시 한번 박유성과 싸워보고 싶다는 오타니 쇼헤의 요청에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경기가 끝나고 나면 어떤 변명을 대더라도 욕을 먹겠지만.

일본 야구를 위해 헌신해 온 오타니 쇼헤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최고의 컨디션이었던 조별 예선에서도 막지 못한 박유성을 구속과 구위가 떨어진 상태에서 이기겠다는 건 과욕이나 다름 없었다.

따악!

바깥쪽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오타니 쇼헤가 스플리터를 던지자 박유성은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퍼 올렸고.

경기장을 반으로 가르듯 정확하게 센터로 뻗어나간 타구는 전광판 상단을 때리고 그라운드 안으로 뚝 떨어졌다.

“하아……. 이것도 얻어맞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스플리터를 때려낸 박유성을 보며 오타니 쇼헤가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한일전 이후 오타니 쇼헤는 어떻게 하면 박유성을 잡아낼 수 있을지 수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빠른 공 승부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변화구를 총동원해 박유성을 정신없이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공을 던질지 예상하고 대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치는 쪽보다 던지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한 법.

그래서 포심 패스트 볼 타이밍에 기습적으로 스플리터를 던졌건만 박유성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일본 야구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오타니 쇼헤마저 물러나자 마츠다 유이토가 나섰다.

“다음 타석은 제가 막아보겠습니다.”

“마츠다.”

“이대로 결승전을 허무하게 내줄 수는 없습니다.”

5회 초.

박유성이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자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은 다시 한번 투수를 바꿨다.

-요시카와 카이토 선수가 물러나고 마츠다 유이토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니키타 쇼우 선수와 오타니 쇼헤 선수에 이어 이번에는 마츠다 유이토 선수네요.

-박유성 선수를 잡기 위해 일본 대표팀 에이스들이 총출동하고 있습니다.

-마츠다 유이토 선수도 지난 LA 올림픽 때 박유성 선수에게 3루타를 3개나 얻어맞은 바 있는데요.

-당시 탈삼진도 하나 잡아냈었죠.

-그 삼진이 박유성 선수가 최근 성인 무대에서 당한 유일한 삼진인데요. 그때보다 더 견고해진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어떤 공을 던질지 지켜보겠습니다.

마운드에 오르기 전.

마츠다 유이토는 포수 구와하라 세이지에게 단호히 말했다.

“포크 볼로 승부를 볼 거야.”

메이저리그에서는 거의 던지지 않지만 지난 LA 올림픽 때 잠깐 다시 꺼내 들었던 그 포크 볼이라면 그나마 박유성을 잡아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유성은 그런 마츠다 유이토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봤다.

“지친 건 마츠다 유이토도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정면 승부는 피하겠지.”

애매한 빠른 공은 무조건 얻어맞는다고 가정했을 때 마츠다 유이토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구종은 포크 볼뿐이었다.

‘지난 올림픽 때는 한 번 당했지만 이번엔 어림없어.’

타석에 들어선 박유성이 포크 볼에 대비해 평소보다 타격 위치를 앞쪽으로 잡았다.

그 사실을 눈치챈 구와하라 세이지가 포심 패스트 볼 사인을 냈지만 마츠다 유이토는 담담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스트 컨디션이라 해도 빠른 공으로는 박유성을 이기기 힘들어. 계획대로 가야 해.’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마츠다 유이토는 지쳤을 때 포크 볼을 더 잘 던졌다.

자이언츠 시절에는 경기 후반에 던진 포크 볼이 마치 너클 볼처럼 날아가서 하마터면 폭투로 경기를 내줄 뻔했던 적도 있었다.

제아무리 박유성이라 해도 이런 포크볼은 거의 겪어보지 못했을 터.

“후우…….”

길게 숨을 고른 마츠다 유이토가 빠르게 투구판을 박차고 나갔고.

후앗!

마츠다 유이토의 손끝을 빠져나온 공이 춤을 추듯 박유성의 몸 쪽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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