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72화 (372/412)

타자 인생 3회차! 372화

42. 도쿄 찍고 미국으로(5)

3

“건방진 놈!”

“지금 뭐라고 떠드는 거야?”

박유성의 인터뷰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던 일본의 언론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나 박유성의 몸에 맞는 공 때문에 니키타 쇼우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보수 언론들은 이대로 당할 수 없다며 입을 모았다.

“구심은? 아직도 연락이 안 되는 거야?”

“미국 심판이라 접촉이 쉽지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뭐래?”

“거기야 지금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정신이 팔려 있지 않습니까. 공문은 넣었지만 언제 답이 올지 알 수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연락해서 사진부터 공수해! 분명 맞지 않았을 거야. 맞았다면 저런 플레이를 할 수가 없다고!”

11 대 0으로 대패를 당한 상황에서 일본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정도.

주최국으로서 중립성을 유지해야 했지만 희생양이 필요했던 일본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박유성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마이치 쪽에서 심판 중 한 명과 접촉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판 누구? 구심이야?”

“2루심이라는데요?”

“2루심이 사구 상황을 제대로 본 거야?”

“그것까진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판정 관련해서 멘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길. 그 정도로는 부족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박유성의 사구 문제를 공론화시키려면 일단 심판진의 증언이 필요했다.

하지만 결승전 판정을 미국 심판들이 맡았기 때문에 무작정 달라붙어 대답을 강요할 수가 없었다.

“산자이는 뭐래?”

“판이 깔리길 기다리는 분위기입니다.”

“그냥 산자이가 먼저 터뜨리면 되잖아?”

“아무래도 극우라는 이미지를 신경 쓰는 거 같습니다.”

“젠장할. 그딴 걸 신경 쓸 거였으면 애당초 왜 나선 거야?”

우미우리 신문 아라이 히로히토 편집부장이 혀를 찼다.

산자이 신문은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극우 언론사.

일본 내에서도 혐한 기류의 선봉에 서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위장 기자를 기자회견장으로 투입해 소란을 피웠는데 그렇게 괜찮은 카드를 손에 쥐고도 꺼내길 주저하고 있었다.

“산자이 쪽에 다시 연락해 봐.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아라이 히로히토 편집부장의 닦달에 기자 하나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산자이 신문도 일을 키울 상황이 아니었다.

“들켰다고? 대체 어떻게?”

“한국 기자가 회사까지 쫓아왔다고 합니다.”

“설마 회사로 바로 돌아온 거야?”

“마무리하지 못한 기사가 있다고 해서…….”

“하아. 미치겠군. 왜 우리 기자를 쓴 거야?”

“상황이 급박해서 대역을 구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때 유키가 자원을 했고요.”

박유성이 탈아시아급 활약을 펼치면서 일본 내에서도 박유성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상당했다.

스즈키 지로와 오타니 쇼헤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는 평가부터 시작해 한국은 싫어도 박유성은 좋다는 말까지.

오죽하면 혐한 전문 언론인 산자이의 매출이 박유성 때문에 반토막이 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산자이 신문은 일본 내 박유성의 인기를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게 다 오타니 쇼헤의 후계자가 없어서야.”

“스즈키 지로는 대체 언제 성장하는 거야? 해마다 박유성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잖아!”

“스즈키 지로로는 답이 없어. 차라리 오타니 쇼헤처럼 투타 겸업을 선언한 마츠모토에게 기대를 거는 게 나아.”

“마츠모토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야. 메이저리그에 가려면 앞으로 7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이런 상황에서 박유성이 일본을 대표하는 간판 투수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대한민국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 산자이 신문을 비롯한 극우 언론들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K-Pop을 듣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혐한이 먹히지 않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매출이 반토막이 날 겁니다.”

“차라리 박유성의 말실수를 유도하는 게 어떨까요?”

“그 전략을 쓰려면 진즉 썼어야죠. 이미 박유성은 아시아 야구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폭망한다면 몰라도 어느 정도 성적을 내주면 사소한 말꼬리 잡기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열정 넘치는 여기자 사토 유키가 나섰지만.

하필이면 산자이 신문으로 복귀하는 모습을 공윤경 기자에게 들키면서 모든 게 꼬여 버렸다.

심지어 공윤경 기자는 타협 따위는 없다며 곧바로 기사를 올렸다.

[기자회견장에서 한국인이라고 추태 부리던 정체불명의 여성이 산자이 신문사로 복귀한 이유는?]

산자이 신문에서 사실무근이라 발뺌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결승 진출에 불만이 많았던 미국과 대만 언론에서 해당 사건을 집중 보도하면서 오히려 국제적 망신을 사고 말았다.

└미국 타임즈. 산자이는 일본 언론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언론사. (K32NFT2G45)

└수치스러워서 쥐구멍을 찾고 싶다. (RQ32W1E45T)

└이제 증오로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어. 언제까지 혐한으로 장사를 할 셈이야? (P145EI6D7K)

└산자이는 더 이상 언론사가 아니야.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쓰레기 공장에 불과하다고. (DFS231AD23)

└결승전 판정에 관여한 미국에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DK351KAB55)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해. 박유성의 사구는 말도 안 됐다고. (SAR32GQ525)

└해당 경기 구심이 나와서 직접 상황을 설명했어. 미국 분석 전문 기관에서도 글러브에 스쳤다고 분석했고. (RQ32W1E45T)

└그 모든 게 날조라는 생각은 못 하는 거야? (SAR32GQ525)

└거짓 주장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녀석들이야. 상종할 필요가 없다고. (KA23E4I58T)

└나도 그렇게 생각해. (SAR32GQ525)

└멍청아. 너한테 하는 얘기야. (KA23E4I58T)

└뭐야? 너도 춍이었어? (SAR32GQ525)

└우리는 오타니 쇼헤의 말을 새겨들어야 해. 경기는 끝났고 우리는 완벽하게 졌어. 한국이 터무니없이 강해졌다고. 이걸 인정하지 못하고 부들거리기만 하는 건 낙오자들이나 하는 짓이야. (P145EI6D7K)

└스즈키 이치이로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 박유성이 한국 야구의 키플레이어긴 하지만 박유성이 전부가 아니라고. (K32NFT2G45)

└한국 야구는 지난 3년간 상당히 발전했어. 우리가 무시하던 수준이 아니라고. (RQ32W1E45T)

└나도 종종 한국 야구를 보는데 일단 외국인 용병 투수들의 수준이 확 올라갔어. 그리고 그 외국인 용병 투수들을 상대하면서 타자들의 실력도 덩달아 좋아졌고. (IEJ534A6D2)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야. 박유성이 내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걸? (J14Q44W6DF)

└난 생각이 달라. 지난 3년간 박유성을 앞세운 스타즈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어. 그래서 다들 박유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P145EI6D7K)

└박유성과 함께 젊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봐. (IEJ534A6D2)

└맞아. 원래 한국은 세대교체 과도기에 걸려 있었는데 몇 년간 겪을 진통을 박유성 때문에 단번에 털어냈어. (DFS231AD23)

└뭐야? 여긴 다들 춍들뿐인 거야? 언제부터 1ch가 춍들에게 먹힌 거야? (DK351KAB55)

└제발 춍춍거리지 마. 멍청한 녀석아. 너 같은 녀석들 때문에 일본 야구가 이 모양인 거라고! (K32NFT2G45)

4

대표팀과 함께 귀국한 박유성은 신성 호텔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잡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신민아와의 약혼을 공식 발표했다.

“원래 MVP 수상 소감 때 말을 하려고 했었는데요. 분위기상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파혼 기사까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마음고생을 한 여자 친구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결승전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대승으로 끝이 나자 대회 MVP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후보로 거론된 건 총 세 명.

대표팀의 중심 타선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송현민과 결승전에서 완벽에 가까운 피칭으로 우승에 견인한 송찬우, 그리고 박유성이었다.

다른 때 같았다면 타점을 제외하고 모든 타격 타이틀을 휩쓴 박유성에게 표가 몰렸겠지만.

적잖은 일본 기자들은 이번 대회에서까지 박유성이 주목을 받는 걸 원치 않았다.

“박유성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사구 문제는 그냥 넘길 수가 없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구심이 사구를 인정한 거잖아?”

“제대로 맞은 것도 아니고 스친 정도라면 타석을 이어가는 게 나았어.”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박유성은 이후 세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냈어. 타석을 이어갔다면 아마 4연타석 홈런이 나왔을 거야!”

기자들의 반응을 살피던 주최 측은 슬그머니 박유성과 송찬우를 공동 MVP로 밀었다.

박유성 한 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는 것보다 투수 쪽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송찬우를 함께 내세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같은 추태를 보다 못한 외신 기자들이 끼어들면서 결국 박유성이 다시 한번 MVP를 차지하게 됐다.

“유성아. 수상 소감은 최대한 간략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본 기자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네. 코치님.”

이병구 수석 코치의 조언을 받은 박유성은 대회를 마련해 준 주최 측과 야구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평소였다면 언급이 됐을 가족들과 신상호 회장이 빠지자 국내 일부 언론들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박유성 신민아 결별? MVP 소감에서 언급 사라져.]

[일방적인 약혼 발표 때문일까? 박유성, 연인 언급 안 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박유성이 신상호 회장을 배신했다는 선을 넘는 기사까지 나오자 송광철 대표가 발끈했다.

“아니 이놈들은 유성이 잘되는 꼴을 못 보나? 왜들 이 지랄이야, 지랄이!”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반박 기사를 내고 싶었지만 박유성의 만류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알아서 정리할게요. 민아한테도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박유성이 귀국장에서 약혼을 공식 발표하자 결별 관련 기사들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만 볼 신성 그룹 법무팀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이 쓰레기들을 확실히 청소합시다.”

신성 그룹 법무팀이 움직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박유성 팔이로 조회 수 장사를 하던 기자들이 몸을 사렸다.

본래라면 미국발 카더라 통신들을 들고 와서 포스팅 관련 기사들을 써 올려야 했지만 신성 그룹 법무팀에서 인력까지 보강해 모니터링을 돌리는 탓에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5년 전 송현민의 메이저리그 진출 때처럼 언론이 나서서 설치는 어지러운 상황은 사라졌다.

“일단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에서 계약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냈는데 어떻게 할까?”

“30개 구단 전부요?”

“몸값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포기할 분위기가 아니거든. 아마 절반 정도는 기대 이하일 거야.”

“그럼 아저씨가 알아서 추려주세요.”

“나한테 다 맡기겠다는 거지?”

“제 에이전트가 아저씨인데 당연하죠.”

“그래. 그럼 내가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최대한 꼼꼼하게 살펴서 추릴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