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78화 (378/412)

타자 인생 3회차! 378화

43. 최종 협상(3)

“그럼요. 쏭뿐만 아니라 썬이 원하는 전력을 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형 선수를 영입할 때 추가 영입이나 방출이 이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월드 시리즈 우승을 위해 꼭 필요한 투수가 시장에 나왔는데 전담 포수를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그 투수를 원한다면 전담 포수까지 함께 영입하는 게 정답이었다.

그 선수가 팀 내 특정 선수와 불화가 있다면 어떨까.

일단 저울을 가져다 놓고 두 선수를 올려놓은 뒤에 무게가 기우는 쪽의 편을 들면 된다.

영입 대상이 훨씬 더 유용하다면 문제의 선수를 방출하고.

반대로 문제의 선수가 더 낫다고 판단된다면 영입을 취소하고 다른 영입 대상을 물색하는 식이었다.

물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박유성에게 한 제안은 그런 일반적인 요구 조건을 상회하는 것이었다.

박유성이 원한다면 추가 한국인 선수의 영입은 물론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외야 라인을 전부 정리할 마음까지 먹고 나왔다.

송광철 대표도 박유성이 내심 송현민을 언급해 주길 바랐다.

조카이기 이전에 에이전트로서 박유성과 송현민이 한 팀에서 뛰며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나눠 끼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유성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크리스 반스. 가능한가요?”

“크리스…… 반스요? 레드삭스?”

“개인적으로 크리스 반스 선수의 팬이라서요. 크리스 반스 선수 덕분에 빨리 유명해진 것도 있고요.”

지난 LA 올림픽 당시.

박유성에게 가장 먼저 홈런을 얻어맞은 건 게릿 벌렌더였다.

하지만 크리스 반스의 인기가 훨씬 더 많아서일까.

정작 그 사실을 기억하는 야구팬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박유성과 크리스 반스가 치열하게 맞붙었다는 사실만 언급됐다.

박유성 이전에 크리스 반스의 호적수라 불릴 만한 상대가 양키즈의 마크 스테리뿐이었던 터라 새로운 호적수의 등장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결과 다저스로부터 14억 8억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받아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박유성이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크리스 반스를 언급하지는 않았을 거라 여겼다.

“썬. 정말 크리스 반스가 다저스에 오기를 원합니까?”

“네.”

“그렇다면 진짜 이유를 말해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박유성이 가볍게 웃었다.

다들 크리스 반스가 한물갔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1회차와 2회차를 겪은 박유성은 크리스 반스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와 송현민 선수가 다저스에 온다면 다저스 팬들은 오랫동안 함께했던 에이스를 잃게 될 겁니다.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크리스 반스만큼 좋은 대안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피터 페츠의 이적을 염두에 둔 구상인 거죠?”

“저는 크리스 반스가 다시 예전의 구위를 되찾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 반스라면 월드 시리즈에서 누구와 맞붙더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요.”

다저스가 박유성을 위해 준비한 금액은 14년 기준 8억 달러.

연평균 5,714만 달러였다.

북미 스포츠 역사상 이보다 더 큰 계약은 없었으니 다저스 구단도 추가 영입의 여력은 적을 터.

여기에 총액 1억 달러 이상이 유력한 송현민까지 잡는다면 피터 페츠와의 FA 계약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물론 박유성도 피터 페츠와 한솥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는 지난 프리미어 12 때 보여주었던 고집스러운 피칭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피터 페츠 역시 자신과 송현민이 다저스로 들어온다면 더 많은 돈을 줄 구단을 찾아 움직일 터.

그 과정에서 상심할 다저스 팬들의 마음을 달래려면 피터 페츠의 부재를 깨끗이 지워낼 새로운 에이스 투수가 필요했다.

여기에 덧붙여 박유성은 또 하나의 이유를 들었다.

바로 월드 시리즈.

포스트 시즌에서 다소 기복 있는 피칭을 보여준 피터 페츠와 달리 크리스 반스는 포스트 시즌의 사나이였다.

커리어 통산 평균 자책점보다 포스트 시즌 평균 자책점이 더 낮을 만큼 큰 경기에 강하고 중요한 순간에 이길 줄 아는 투수였다.

“확실히 크리스 반스라면 피터 페츠의 좋은 대체 선수가 될 겁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페츠와 크리스 반스 모두 부진한 시즌을 이어가고 있지만.

똑같이 부진하다면 체격 조건과 포스트 시즌 성적이 좋은 크리스 반스가 더 나아 보였다.

“크리스 반스의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지?”

“2027년 시즌 종료 후 7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총액은 2억 달러고 현재 옵트 아웃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남은 계약은 얼마야?”

“1억 달러입니다.”

“레드삭스에서 크리스 반스를 풀어줄까?”

“부상 이력에 코비 스펜스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어서요. 크리스 반스가 시장에 나올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이후 크리스 반스는 7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거두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로 군림했다.

팔꿈치 부상으로 절반을 날린 작년에도 8승 5패에 3.33의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레드삭스의 포스트 시즌 경쟁에 힘을 실어주었다.

만약 크리스 반스가 부상 이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 나왔다면 엄청난 주목을 받았겠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진출 시점과 맞물리는 바람에 크리스 반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구단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그래서 더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크리스 반스가 옵트 아웃을 행사한다면 어느 정도 계약이 적당할까?”

“건강한 크리스 반스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연평균 4천만 달러까지도 올라갑니다. 다만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보니 총액 1억 달러 미만의 계약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계약 기간은? 4년?”

“그건 크리스 반스가 거절하겠죠.”

“3년으로 하면 레드삭스의 잔여 계약과 똑같은 거 아니야?”

“레드삭스의 계약에 불만이 있었다면 크리스 반스 쪽에서 일찌감치 옵트 아웃 얘기를 꺼냈을 겁니다.”

“지금까지 조용한 걸로 봐서 연봉에 대한 불만은 적다는 거지?”

“크리스 반스의 레드삭스 사랑은 유별난 편이니까요.”

7년 2억 달러에 계약한 크리스 반스의 평균 연봉은 2,857만 달러.

메이저리그에서 벌써 116승을 기록한 에이스급 투수의 연봉치고는 적은 편이지만

레드삭스는 이 계약을 메이저리그 5년 차 때 제안했고.

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원했던 크리스 반스는 군말 없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7년 계약 중에 옵트 아웃을 행사할 수 있는 건 4년 차 종료 후 단 한 번.

그 옵트 아웃 시점을 기점으로 계약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는데 전반기 4년 계약 때의 연봉은 2,200만 달러를 시작으로 200만 달러씩 늘어나는 구조였다.

4년 평균으로 따지면 2,5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지만.

크리스 반스가 2030시즌 후반기에 부상으로 이탈해 2031시즌 전반기를 통째로 날려 먹은 걸 감안하면 연평균 3천만 달러 수준의 계약이었다고 봐야 했다.

남은 3년 1억 달러 계약(연평균 3,333만 달러)도 레드삭스와 계속 함께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미스터 쏭, 미안한데 우리에게 잠깐만 시간을 줄 수 있나요?”

“지금 말입니까?”

“어차피 우리가 마지막이지 않습니까? 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흠……. 그렇다고 협상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형평성의 문제라서요.”

“그렇다면 직원 한 명을 남겨놓고 옆 방에서 잠시 회의하고 오겠습니다. 그건 가능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다른 구단들도 그랬으니까요.”

신성 호텔이 마련해 준 협상장은 대형 컨퍼런스 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좌우에 별도의 휴게실과 회의실이 존재했다.

“스콧.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네. 보스.”

스콧 알슨을 놔두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과 로이 홀랜드 보좌역, 그리고 계약 관련 직원들이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남은 시간이 얼마지?”

“구단마다 최대 1시간 30분입니다. 지금 30분을 썼으니까 1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럼 시간은 충분하네.”

“그래도 서둘러야 합니다. 좋은 분위기가 식어버리면 곤란하니까요.”

“자, 그럼 피터 페츠부터 말해 볼까? 우리 쪽에서 추산한 피터 페츠의 적정 계약이 얼마야?”

“6년 기준 2억 달러였습니다.”

“에이전트 요구는?”

“5년에 2억 달러, 혹은 그에 준하는 계약이었습니다.”

“연평균 4천만 달러는 받아야겠다는 거지?”

“일단 초반에는 그렇게 요구를 했는데 지금은 조정할 의사가 있어 보였습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과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손을 뗐다고 해서 FA가 된 에이스 피터 페츠와의 대화를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협상 담당자들 중에 가장 경험이 많은 제이크 베노이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오고 있었다.

프리미어 12 이후 팬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조쉬 애버튼도 협상의 여지를 내비친 상태.

하지만 송현민을 영입한다면 조쉬 애버튼이 원하는 최소 5년 이상의 장기 계약은 불가능해진다.

“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쏭은 일단 4년에 1억 달러가 적당해 보입니다.”

“그러다 쏭이 4년 만에 팀을 떠나고 썬도 옵트 아웃을 신청하면 어쩌려고?”

“쏭은 아시아 선수입니다. 에이징 커브가 빨리 찾아올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협상 담당자인 피트 샘퍼스가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28세인 송현민이 3년 후 30대에 접어드는 만큼 계약 기간을 길게 끌고 가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제이크 베노이가 바로 반박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썬은 5년과 10년 차에 옵트 아웃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8년 차 이후로는 구단에서 바이 아웃이 가능합니다. 쏭에게 4년 계약을 제시한다면 썬도 구단의 바이 아웃을 신경 쓰게 될 겁니다.”

“옵트 아웃과 바이 아웃은 어느 계약에나 포함된 권리입니다.”

“만약에 썬이 미국인이고 백인이었다 해도 8년 이후부터 바이 아웃을 걸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바이 아웃이 포함되더라도 한두 해 정도 늦췄을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회의를 하는 동안 썬도 우리의 조건을 면밀하게 뜯어 보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8년째 바이 아웃의 의미를 눈치챘겠죠.”

“그래서? 바이 아웃 조건을 변경하자는 거야?”

“이제 와 바이 아웃을 빼버리면 정말 그럴 의도였다고 실토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조건은 그대로 두되 쏭의 계약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7년으로 가시죠. 대신 4년 후에는 상호 합의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고 추가로 3년을 연장할 수도 있다면 미스터 쏭도 만족할 겁니다.”

어찌 보면 조삼모사처럼 느껴지지만.

연장 계약이 남아 있는 것과 4년 후 새롭게 계약해야 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선수 입장에서도 4년 차 때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무리하지 않아도 보험이 생기는 셈이고 구단 입장에서도 추가 3년을 빌미로 우선 협상을 진행할 수 있으니 나쁠 게 없었다.

“그럼 7년에 얼마를 제시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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