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85화
45. Adios(1)
1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장호영입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경기를 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선철입니다.
-지금 스타즈 파크가 꽉 들어찬 게 보이십니까? 지난 한국 시리즈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스타즈 관계자 말로는 오늘 경기를 위해서 특별 좌석까지 마련했다고 하는데요.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습니다.
중계진의 멘트에 맞춰 중계 카메라가 스타즈 파크를 전체적으로 훑었다.
1루 쪽 관중석은 스타즈 유니폼을 입은 팬들로 가득 채워졌고.
3루 쪽 관중석은 타 구단 팬들과 다저스를 비롯해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눈에 띄었다.
-관중들이 든 응원 피켓을 보면 아시겠지만 오늘 이 경기장에서 메이저리그의 최고의 인기 구단인 다저스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맞붙게 됐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다저스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친선 경기 얘기가 나왔었는데요. 프로 야구 협회에서 나서면서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이 추가됐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프로 야구 협회가 눈치 없게 끼어들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야구 팬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비록 지난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긴 했습니다만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팀의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죠.
-일단 다저스는 국내 야구팬들에게 친숙한 구단인데요. 박찬오 선수를 비롯해 최희석 선수와 류현신 선수 등 대한민국 선수들이 다저스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명맥을 이번에 박유성 선수와 송현민 선수가 이어가게 됐는데요.
때마침 화면으로 10억 듀오라는 제목과 함께 박유성과 송현민의 계약 관련 내용이 떠올랐다.
-이선철 해설위원은 박유성 선수의 계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8억 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었잖아요? 그때 솔직히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오타니 쇼헤 선수의 4억 5천만 달러가 최고 금액이라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했었죠. 그런데 14년에 8억 달러라는 계약이 정말 이루어지니까 제가 다 뿌듯하더라고요.
-지금 채팅창으로 박유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는데요.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최고의 야구 선수는 박유성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박유성 선수에 이어 송현민 선수도 7년에 2억 달러에 계약을 했는데요.
-어떤 분들은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해 잘 받았다고들 하던데 글쎄요. 저는 오히려 송현민 선수가 조금 더 받았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니까요.
-박유성 선수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최고 타자 타이틀은 송현민 선수가 계속 유지하지 않았을까요?
-송현민 선수가 활약하던 당시에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니까요.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출신 야수 중에 박유성 선수 다음으로 많은 돈을 받아낸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다저스에서 10억 달러를 주고 영입한 코리안 듀오가 오늘 경기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게 됐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양쪽에서 다 뛰는 거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건 내일 경기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박유성 선수는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로 뛰게 됩니다.
-반면 송현민 선수는 오늘은 대한민국 대표팀 소속으로 뛰고 내일은 다저스 소속으로 뛰게 되는데요.
-내일은 스타즈와 다저스의 경기니까요. 송현민 선수는 스타즈 소속으로 뛸 명분이 없죠.
이선철 해설위원과 장호영 캐스터가 오프닝 멘트를 주고받는 사이 경기 전 행사가 끝이 났다.
그리고 다저스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먼저 다저스의 스타팅 라인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번 타자 중견수 카일 홀리데이. 2번 타자 2루수 브룩스 조던. 3번 타자 1루수 코리 베츠.
-다저스의 간판타자죠.
-4번에 지명타자 미구엘 호네즈. 5번 타자 우익수 바비 그린. 6번 타자 좌익수 디에고 후리오. 7번 타자 유격수 마크 터너. 8번 타자 포수 마이클 리드. 그리고 9번에 3루수 조나단 그레이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지금 명단에서 1번 타자와 2번 타자를 박유성 선수와 송현민 선수로 바꾸면 올 시즌 다저스의 주전 라인업이 되겠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카일 홀리데이 선수와 브룩스 조던 선수는 벤치 멤버인데요. 데이브 로빈 감독은 타순을 조정하지 않고 박유성 선수와 송현민 선수의 빈자리를 그대로 남겨뒀습니다.
-작년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던 브라이언 조던 선수와 미카엘 로하스 선수가 팀을 떠난 상황이라서요. 무리해서 타순을 조정하기보다는 시범 경기에서 성적을 냈던 타순대로 라인업을 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에 맞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라인업입니다. 1루수 박준수. 2루수 송현민. 3루에 이종률. 유격수에 박찬희. 외야는 차례대로 민병규 선수와 박유성 선수, 백영완 선수가 나섰습니다. 포수는 박경호 선수. 그리고 투수는 송찬우 선수입니다.
-지난 프리미어 12 베스트 멤버가 전부 출전했는데요. 시즌 직전에 치러지는 이벤트 대회라 선수들의 참여 여부가 관건이었는데 다들 기꺼운 마음으로 협회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합니다.
프로 야구 협회에서 급하게 다저스와의 친선전을 추진했을 때 상당수 야구팬들이 우려를 표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도 아니고 스타즈와 다저스가 준비한 이벤트에 억지로 끼어들어 애꿎은 국가대표 선수들만 고생하게 됐기 때문이다.
일부 야구팬들은 선수들의 동의 없이 일방통행하는 프로 야구 협회를 두고 볼 수 없다며 경기 보이콧 운동까지 벌였다.
하마터면 팬들의 반대로 이벤트전이 무산될 뻔했지만.
프로 야구 선수 협회에서 대한민국 야구팬들의 볼거리를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를 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프로 야구 협회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출전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 스타즈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만큼 주축 선수들이 다수 빠지더라도 다음 날 이벤트 전을 치러야 하는 스타즈 선수들을 통해 팀을 꾸릴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박유성과 함께 국제 대회 트리플 크라운(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올림픽 우승)을 달성한 대표팀 선수들의 의리는 생각 이상으로 끈끈했다.
“유성이 때문에 마련한 경기인데 다들 참석하는 거죠?”
“당연하지. 참석 안 하는 사람은 진짜 배신이다?”
“유성이 덕에 포상금 많이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유성이 추억 하나 만들어주자고요.”
“명색이 국가대표 팀인데 제가 빠지면 되나요.”
“다른 팀도 아니고 다저스라잖아요. 무조건 뛰어야죠.”
그렇게 다시 뭉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별도의 합숙 훈련 없이도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아, 이 타구를 유격수 박찬희 선수가 역동작으로 잡아냅니다! 박찬희 선수가 재빨리 2루로! 2루수 송현민 선수가 다시 1루로! 6-4-3의 더블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코리 베츠 선수가 송현민 선수의 스플리터를 힘껏 밀어쳤습니다만 박찬희 선수의 수비를 뚫어내지 못했습니다.
-송현민 선수도 재빨리 베이스 커버에 들어왔는데요. 경기 초반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의 움직임이 확실히 좋아 보입니다.
-확실히 경기가 경기이다 보니 집중력이 느껴집니다.
-비록 2번 타자 브룩스 조던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했습니다만 까다로운 타자 코리 베츠 선수를 더블 플레이로 유도하면서 송찬우 선수가 공 10개로 1회를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대표팀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선두 타자는 8억 달러의 사나이죠, 박유성 선수입니다.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2선발인 벤들 윌리엄 선수인데요. 97mile/h(≒156.1㎞/h)의 빠른 공에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투수입니다.
박유성이 타석에 서자 메이저리그 취재석이 술렁거렸다.
“드디어 썬의 실전 경기를 볼 수 있는 건가?”
“그러게. 연습 경기는 그렇다 쳐도 시범 경기조차 출전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고.”
“무려 8억 달러의 사나이잖아. 다저스에서 출전을 말렸겠지.”
“그럼 오늘 경기도 빠져야 하는 거 아냐? 시즌이 코앞인데 오늘 부상 당하면 어쩌려고?”
“난 벤들이 보란 듯이 썬을 잡아줬으면 좋겠어. 썬이 잘하는 건 알겠지만 메이저리그를 무시하는 건 용납 못한다고.”
입단 후 3개월여 만에 실전 경기에 투입된 박유성을 두고 일부 다저스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튀어나왔다.
경기에 뛰지 않을 거라면 언론과 친밀한 관계라도 유지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벤들! 화끈하게 꽂아 넣어!”
“썬을 깜짝 놀라게 만들어주라고!”
3루 측 더그아웃에 자리 잡은 다저스 선수들도 벤들 윌리엄을 응원했다.
하지만 정작 벤들 윌리엄은 마이클 리드의 사인에 고개를 가로젓기 바빴다.
박유성의 시범 경기 불참이 확정된 다음 날.
마이클 리드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게 불려갔다.
그 자리에는 로이 홀랜드 보좌역과 브랜든 킹스턴 단장, 데이브 로빈 감독, 그리고 레드삭스에서 넘어온 크리스 반스가 앉아 있었다.
“혹시…… 트레이드입니까?”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벤들 윌리엄은 겁이 덜컥 났다.
박유성의 영입으로 잘하면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게 될지도 모른다고 들떠 있었는데 구단의 정리 대상에 자신이 포함된 거라 여겼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벤들 윌리엄을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벤들. 썬의 훈련을 좀 도와줄 수 있겠어?”
“썬이요?”
“지금까지는 크리스가 도와줬는데 크리스도 슬슬 컨디션 조절에 들어가야 해서. 수준급 투수가 한두 명 더 필요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벤들 윌리엄에게 크리스 반스가 대신 설명을 해주었다.
“훈련이 끝나면 난 썬하고 9타석 대결을 해왔어. 그런데 나 혼자서는 썬을 감당할 수가 없겠더라고.”
“썬이 요구한 겁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요청했어. 썬이 나를 원한 이유가 궁금했거든.”
박유성이 크리스 반스의 영입을 원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였다.
다저스 팬들에게까지 퍼진 상황이라 박유성 못지않게 크리스 반스도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컸다.
다행히도 재활 훈련을 착실히 받은 덕분에 부상당했던 팔꿈치 상태는 양호했지만 경기 감각을 완벽하게 끌어올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박유성.
리그 최고의 타자인 박유성을 상대하다 보면 떨어졌던 감각을 빨리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유를 찾았습니까?”
“어느 정도는? 확실히 썬은 강하더라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어. 어떤 공을 던져도 다 걷어내는데 미치겠더라고.”
“그 정도였습니까?”
“그런데 썬에게 시달리고 나니까 다른 타자들을 상대하는 게 수월해졌어. 썬이라면 충분히 걷어낼 만한 공에 헛스윙을 하고 썬이었다면 얻어맞았을 공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더라고.”
“……!”
“솔직히 썬을 다른 투수들과 나누고 싶지 않은데 앤드류가 그러더라고. 우승을 위해 나를 데려왔다고. 나도 올해 꼭 우승하고 싶어. 그러니까 벤들. 너도 좀 당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