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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87화 (387/412)

타자 인생 3회차! 387화

45. Adios(3)

-2루에서 세이프! 박유성 선수가 단숨에 베이스를 훔칩니다.

-박유성 선수는 여전히 빠르네요. 지금 마이클 리드 선수가 송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나오고 있는데요. 벤들 윌리엄 선수가 투구에 들어가기 직전에 박유성 선수가 스타트를 끊었네요. 공이 포수의 미트 속에 박혔을 때는 이미 슬라이딩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제가 몇 번 언급했습니다만 도루를 잘하려면 4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흔히들 4S라고 하는데요.

-스타트, 스피드, 슬라이딩, 센스. 이렇게 네 가지를 묶어서 그렇게들 표현하는데 이걸 다시 선천적인 영역과 후천적인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후천적이라 하면 노력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거니까 아마도 슬라이딩하고 스피드일 것 같은데요.

-일단 슬라이딩은 훈련을 통해 개선이 가능합니다. 스피드도 마찬가지죠.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확실히 발이 빨라집니다.

-체중 감량이나 근력 훈련을 하면 주력이 좋아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처럼 도루를 잘하려면 스타트를 잘 끊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또 도루 센스가 필요하고요.

-그러니까 스타트와 센스는 타고나야 한다는 건데 스타트를 잘 끊는 것도 훈련을 통해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불펜에서 160㎞/h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도 4번 타자를 상대로 몸 쪽 사인을 내면 못 던지거든요.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는 얘기네요.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도루를 잘하는 타자들은 많지만 왼손 투수 상대로 박유성 선수만큼 뛰는 선수는 없잖아요? 채팅창에 올라온 글처럼 클래스가 다른데 그 차이가 바로 센스 차이라는 겁니다.

-지금 중계 화면으로 포수 마이클 리드 선수가 나오고 있는데요. 2루 송구를 하려다 포기를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습니다.

-마이클 리드 선수도 답답할 겁니다. 2루로 공을 던져보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박유성 선수가 빨라도 너무 빠르거든요. 이러면 박유성 선수가 3루로 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예상대로 마이클 리드는 2구째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요구했다.

박유성이 빠른 타이밍에 도루를 시도하는 만큼 3루로 가는 걸 잡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은 무턱대고 스타트를 끊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경기 흐름을 꼼꼼히 살피며 도루 타이밍을 재다 보니 그런 뻔한 수에 걸려들지 않았다.

-아, 이번에는 볼입니다. 공이 완전히 빠졌습니다.

-저 정도면 거의 피치 아웃인데요. 마이클 리드 선수가 박유성 선수에게 완전히 꽂힌 거 같습니다.

-저러면 오히려 상황이 나빠질 텐데요.

-아마 국내 포수였다면 박유성 선수를 무관심 도루로 보내고 타자 주자에 신경 쓸 텐데요. 마이클 리드 선수도 박유성 선수를 적으로 상대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타석에 선 민병규도 살짝 짜증이 났다.

“뭐야? 어디에 정신을 파는 거야?”

비록 꿈보다 사랑을 선택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제 대회때도 대한민국 대표팀의 공격 흐름을 끊으려면 민병규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름 키 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박유성 때문에 볼카운트를 버리다니.

국가대표 간판타자(?)의 자존심상 용납이 되지 않았다.

“후우…….”

치미는 짜증을 삼키며 타석에 들어선 민병규는 바깥쪽 빠른 공을 노렸다.

박유성이 3루로 뛸지도 모르는 이상 변화구는 들어오지 않을 터.

그렇다고 또다시 공을 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 루상에 나가 있던 박유성이 보란 듯이 유격수의 위치를 확인했다.

좌타자인 민병규를 타석에 서면서 2루수가 깊숙이 수비 중인 상황.

그런 2루수를 대신해 유격수가 2루 백업을 해야 하다 보니 3유간이 뻥 뚫려 있었다.

보통 이럴 때는 3루수가 수비 위치를 조정해 3유간의 빈 공간을 커버해야 했지만.

박유성이 3루로 뛸 수도 있다 보니 3루수 역시 3루 베이스 근처에 발이 묶인 상태였다.

‘알았어, 인마. 욕심부리지 말라는 거잖아?’

치미는 욕심을 억누르며 민병규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때 벤들 윌리엄의 손끝을 빠져나온 공이 바깥쪽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따악!

원하는 코스로 공이 들어오자 민병규는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방망이를 휘둘렀고.

타다닥!

타구의 방향을 확인한 박유성은 그대로 3루를 돌아 홈으로 내달렸다.

“어딜!”

타격과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왔던 좌익수 디에고 후리오는 공을 잡기가 무섭게 홈으로 내던졌다.

수비 범위가 아쉽다는 지적이 많지만.

디에고 후리오는 작년에 5개의 보살을 기록했을 만큼 어깨가 좋고 송구가 정확한 편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2루 주자들은 좌익수 앞 안타 때 함부로 홈을 노리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성의 머릿속에는 디에고 후리오의 송구 능력까지 전부 들어 있었다.

‘보나 마나 또 다이렉트 보살을 노리겠지. 그럼 송구가 오른쪽으로 치우칠 테니까 이대로 달리면 마이클이 놓칠 가능성이 커.’

박유성이 생각했을 때 디에고 후리오는 좋은 외야수가 아니었다.

걸음이 느리다는 핑계로 까다로운 타구는 일찍 포기해 버렸고.

보살 욕심에 다른 수비수들을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송구도 빠르게만 던지려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2루에 붙어 있던 주자라면 3루를 지날 때 원심력에 밀려 반원을 그리듯 크게 돌아 홈플레이트로 달리지만 박유성은 달랐다.

이미 큼지막하게 리드를 벌려놓은 터라 빠르게 3루를 찍은 뒤에 거의 직선 코스로 홈을 향해 내달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디에고 후리오가 평소처럼 홈플레이트를 향해 곧장 공을 던졌으니 마이클 리드의 시야가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3루를 지나 박유성 선수가 홈으로 내달립니다!

-이거 승부를 지켜봐야 할 거 같은데요?

-박유성, 슬라이딩! 아아! 공이 뒤로 빠집니다. 마이클 리드 선수가 제대로 포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사이에 타자 주자 민병규 선수가 2루를 지나 3루까지 들어갑니다.

-지금 송구와 박유성 선수가 겹친 것 같은데요. 디에고 후리오 선수가 마음이 앞섰습니다.

“젠장할!”

박유성을 홈에서 잡아내고 팬들의 찬사를 들을 생각에 들떴던 디에고 후리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설마하니 박유성이 저렇게나 빨리 홈플레이트를 파고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팬들도 충격에 빠졌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타이밍은 분명 아웃이었잖아?”

“디에고 후리오의 송구는 정확했어. 바보 같은 마이클 리드가 공을 놓친 거라고.”

“마이클 리드가 공을 제대로 잡았다면 썬은 아웃이 됐겠지?”

“결과론은 아무 의미 없지만 무조건 아웃이야.”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들은 대부분 마이클 리드를 탓했다.

앞서 무리하게 공을 뺀 것부터 시작해 포수로서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현지 해설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각도를 돌려서 다시 볼까요? 자, 디에고 후리오가 공을 잡았을 때 썬은 3루를 밟고 홈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욕심은 낼 만했습니다. 경기 초반이고 썬 한 명 때문에 초반 경기 분위기가 스타즈 쪽으로 넘어갔으니까요. 디에고 후리오도 뭔가 반전을 만들어내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송구가 너무 나빴어요. 보세요. 썬이 3루 베이스를 크게 돌지 않았는데 송구는 거의 3루 베이스 라인 쪽으로 붙어서 날아왔습니다.

-저럴 때는 포수가 잡을 수 있도록 홈플레이트 오른쪽으로 타겟을 잡았어야 했어요.

-포수 기준 오른쪽인 거죠?

-그렇죠. 차라리 그랬다면 마이클 리드가 포구를 하고 몸을 돌려서 태그를 시도했을 겁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어땠을까요? 썬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디에고 후리오의 송구가 지금보다 낮고 빠르게 날아오고 마이클 리드가 그걸 단번에 잡아냈다면 어쩌면 챌린지까지는 끌고 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비디오 판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네요.

-솔직히 방금 전 썬이 보여준 베이스 러닝은 예술에 가까웠어요. 보통 3루에 빨리 도착할 생각을 하다가 원심력에 밀려 홈까지 멀리 돌아오는데 썬은 달랐습니다. 스킵 동작에 이어 타구보다 한발 앞서 3루로 달렸고 3루 베이스를 밟은 이후부터 속력을 내기 시작했어요. 무리해서 발목을 비틀어 코스를 수정한 게 아니라 애당초 저럴 생각으로 뛰었던 겁니다.

-모든 선수들이 썬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타자 주자가 3루까지 들어갔습니다. 이건 썬이 만들어낸 결과나 다름없어요.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세계 정상을 지키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래서입니다. 썬을, 저 8억 달러의 사나이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본래 5회까지 던지기로 했던 벤들 윌리엄은 2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1회에만 3실점을 한 데 이어 2회 2사 후에 다시 만난 박유성에게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스타즈 구장의 외야가 넓은 편이긴 하지만.

개장 이후 나온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은 4번뿐이었다.

첫 번째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의 주인공은 다니엘 브리토.

그리고 이후 3번은 박유성이 해마다 한 번씩 기록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박유성의 타격 때 수비에 더 신경을 써야 했지만.

우익수 바비 그린은 단 두 경기만 치를 스타즈 파크에 적응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우익수 라인 선상으로 타구가 뻗었을 때 펜스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중견수 쪽으로 완전히 굴절되어 데굴데굴 굴러가는 타구를 중견수 카일 홀리데이가 잡았을 때는 이미 박유성이 3루를 돈 상태였다.

“젠장할!”

박유성에게 허용한 안타보다 팀 동료들의 무성의한 수비에 화가 난 벤들 윌리엄이 폭발했고.

그런 벤들 윌리엄을 계속 마운드에 둘 수 없었던 데이브 로빈 감독은 다급히 불펜을 가동했다.

하지만 제대로 몸조차 풀지 않은 불펜 투수들이 세계 무대를 제패한 대한민국 대표팀을 막아낼 리 없었다.

-아, 큽니다! 쭉쭉 뻗어 나갑니다!

-이건 넘어갔죠?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가 추격을 포기합니다! 홈런! 박유성 선수의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에 이어 송현민 선수까지 홈런을 추가합니다. 스코어는 5 대 0! 세계 최강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인 다저스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박유성 선수를 다시 다저스로 보내야 할 거 같은데요? 지금 분위기로는 경기를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신세혁 사무총장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게 경기 룰을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국 대표팀은 세계 최고의 팀입니다. 그런 팀을 상대로 질 수도 있는 거죠. 괜찮습니다.”

만약에 박유성이 부진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거라면 문제가 됐겠지만.

지금 이 분위기는 박유성이 만들어낸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오늘 경기는 넘어갔어. 중요한 건 내일이야. 스타즈를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면 곤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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