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96화 (396/412)

타자 인생 3회차! 396화

46. 썬세이션(2)

2

피터 페츠가 벼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기자들을 불러 엄포를 놓았다.

“지난 LA 올림픽 때 썬을 본 이후로 썬이 메이저리그에 올 날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다들 마찬가지죠? 썬이 우리 선수라서가 아니라 아마도 당분간 메이저리그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할 겁니다. 슈퍼스타는 팬을 부르고 팬은 돈을 벌게 해주죠. 하하하. 물론 썬이 기대만큼 해줘야 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나는 썬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요. 다만 공동체 의식이 없는 일부 선수들이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까 봐서 걱정입니다.”

일부는 피터 페츠가 또다시 언론을 통해 도발하는 걸 경고하는 거라고 해석했고.

일부는 경기 중 일어날지도 모르는 빈볼 사태에 대해 걱정하는 거라고 여겼다.

“유성이 네 생각은 어때?”

“긁어 부스럼을 만든 느낌?”

“역시 박유성. 최고의 선수는 생각하는 것부터 다르구나?”

“그런 거 아니에요?”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대에게 섀도우 복싱을 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괜히 도발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국내 야구와 달라. 한국에서는 네가 최고라는 걸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지. 투수들이 빈볼 무서워서 몸 쪽 승부도 잘 안 했잖아?”

“형. 빈볼 6개예요.”

“3년간 고작 6개면 편하게 야구했네. 난 지난 4년간 100번은 맞았어.”

“형, 그 정도면 허언증이에요.”

“진짜라니까? 삼촌한테 물어봐.”

“뭘 그걸 아저씨한테 물어봐요? 직접 찾아보면 되지.”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간 박유성은 송현민을 검색했다.

지난 4년간 송현민이 얻어낸 몸에 맞는 공은 총 69개.

100개와는 차이가 컸지만 호들갑을 떨 만큼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좀 맞긴 했네요.”

“그렇지? 특히나 첫 시즌에 엄청나게 맞았거든? 메이저리그에서는 한국에서 잘했던 거 아무 소용 없어. 오히려 돈 좀 받고 왔다 싶으면 작심하고 몸 쪽으로 던진다. 그거 엄청 스트레스야.”

송현민이 너는 모를 거라며 혀를 찼지만.

박유성도 2회차 시절 사구왕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많이 얻어맞아 봤다.

2회차 시절에 얻어낸 사사구는 총 1,207개.

그중 229개가 몸에 맞는 공이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별것도 아닌 걸로 빈볼을 던져. 째려봤다고 던지고 웃었다고 던지고 빠던했다고 던지고 홈런 치고 빨리 안 돌았다고 던지고. 그중에 제일 엿 같은 게 뭔 줄 알아?”

“대신 맞는 거요?”

“맞아. 사고는 다른 놈이 쳤는데 날 맞히려고 들어. 내가 레인저스 간판이라나 뭐라나. 이젠 사고 친 놈들이 웃으면서 그래. 쏭. 다음 타석 땐 조심해. 어떨 때 보면 이 새끼들이 일부러 이러나 싶다니까?”

어느 스포츠나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지만.

메이저리그처럼 지켜야 할 게 많은 곳도 없었다.

서로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면 보복구가 날아들게 마련인데 메이저리그에서는 몇 년 전 일을 핑계로 빈볼을 던지기도 했다.

“레인저스 선수들도 형 벼르고 있다던데 사실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벨트란한테 전화 왔어. 레인저스 경기 때 좀 쉬라고.”

“설마 프리미어 12 때문에요?”

지난 미국과의 프리미어 12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주원인은 선발 투수였던 피터 페츠와 포수 조이 패런트의 불화였다.

라이벌 팀의 에이스와 주전 포수가 호흡을 맞추게 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의 신경전은 예상됐지만 그게 경기 초반에 폭발해 버릴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그 과정에서 뜬금없이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던 브룩 로우가 참전했고 결국 박유성까지 벤치 밖으로 뛰어나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내가 비웃었다는 오해는 언론에서 여러 차례 다뤄서 거의 다 풀렸어.”

“근데 솔직히 형 웃긴 했잖아요.”

“웃긴 걸 어떻게 하냐?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대표팀이 박유성 하나 때문에 자멸하는 모습을 직관하는 게 어디 흔해?”

“하긴. 그전까진 그래도 나름 팽팽했으니까요.”

“너야 한국에서 뛰었으니까 별 감흥이 없지만 나는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관계를 잘 알잖아. 게다가 미국 애들은 우리만큼 애국심이 없어. 프리미어 12도 다들 보너스 때문에 참가했을걸?”

“그런데 왜 저 난리예요?”

“왜겠냐. 너 때문이지.”

“또 저예요?”

“네가 나 따라서 다저스 왔잖아. 레드삭스 팬들은 오해할 만하지.”

“형. 제가 먼저 입단 계약하고 형이 온 건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인마. 나하고 네가 같은 팀이라는 게 중요한 거지.”

프리미어 12 이전부터 송현민과 레인저스 구단의 관계는 틀어진 상태였다.

송현민은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까지 뽑힌 자신을 구단이 존중하고 제대로 대우해 줄 거라 여겼지만.

송현민에게 많은 돈을 주기 싫었던 레인저스 구단은 포지션 경쟁자인 브룩 로우와 일찌감치 재계약 의사를 밝히면서 송현민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속사정을 전부 다 알지 못하는 레인저스 팬들은 송현민이 박유성을 데리고 다저스로 이적했다고 오해했다.

주요 언론에서 다저스가 송현민을 박유성의 룸메이트로 영입했다는 표현까지 썼지만 레인저스 팬들은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레인저스전 때 결장하려고요?”

“분위기 좀 봐야지. 근데 내가 안 뛰면 네가 표적이 될까 걱정이다.”

송현민이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박유성은 딱히 빈볼을 걱정하지 않았다.

더는 무리해서 홈플레이트 쪽에 붙어 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타자가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서는 경우는 몸 쪽 공략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홈플레이트에 붙는 타자를 상대로 과감하게 몸 쪽 공을 던지라고 주문했다.

설사 몸에 맞는 공이 나오더라도 몸 쪽 공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며 배짱을 강조했다.

하지만 스타즈에서 3년을 뛰면서 2회차 시절에 완성한 타격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몸에 익힌 박유성은 홈플레이트에서 제법 거리를 두고 타격 위치를 잡았다.

3년간 몸에 맞는 공이 고작 6개뿐인 것도 투수들이 몸 쪽 승부를 피해서가 아니라 박유성이 필요 이상으로 홈플레이트에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박유성을 상대로 억지로 위협구를 던지려 한다면 오히려 투수의 밸런스가 무너지게 될 터.

“형. 저도 메이저리그까지 와서 부상으로 고생할 생각 없어요. 빈볼은 철저하게 피할 거니까 걱정 마요.”

“그래.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안 다치는 게 최고다. 만약에 너 다치지? 그럼 언론부터 계산기 두드릴 거다. 네 하루 일당이 얼마인데 얼마를 손해 봤다면서 말이야.”

개막전 당일.

자이언츠 구단 쪽 언론사에서 도발적인 기사를 냈다.

[다저스, 8억 달러의 사나이를 지키려면 썬을 벤치에 놔둬야 할 것.]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인터뷰에 대한 반박 기사였지만.

피터 페츠의 위협구를 조장하는 듯한 제목으로 다저스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이쯤 되면 해보자는 거지? @Dodgers SN

└워워, 진정해. 인터넷 신문사잖아. 어그로일 뿐이라고. @dills smith

└문제는 자이언츠 팬들이 전부 저 기사를 인용한다는 거야. @mario033e

└모든 일의 원인은 앤드류의 인터뷰라고. 앤드류가 그런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거야. @Go Giants!!

└헛소리하지 마! 시작은 피터 페츠가 했어. @Whiteheart77

└피터 페츠는 자신을 버린 다저스에게 복수하겠다고 했을 뿐이야. 그 정도 발언은 누구나 할 수 있잖아. 안그래? @stinall

└그럼 앤드류의 인터뷰는? 뭐가 문제지? @Sepulve

└당사자인 썬이 가만있는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나선 게 문제지. 선수들끼리 경기 전에 신경전을 펼치는 건 문제 없다고 봐. @linda K

└자이언츠 개자식들! 썬에게 위협구를 던지면 가만두지 않겠어! @go Dodgers

└흥분할 필요 없어. 이렇게라도 해서 썬의 기세를 꺾어보려는 것 같은데 썬은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고. @Sepulve

└과연 피터 페츠의 빠른 공을 얻어맞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Jefff!

└만약에 피터 페츠가 썬을 맞힌다면 자이언츠는 스트라이크도 던지지 못하는 X신을 2억 달러에 데려온 게 되는 거야. @Hect Diaz

└2억 달러 투수로 8억 달러 타자를 제거한다면 자이언츠가 더 이득일 것 같은데? @Mark871

└이게 메이저리그 팬들 수준이라니 한심하다. 한심해. @epicgiraf324

언론이 부추긴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갈등은 경기장으로까지 이어졌다.

“가자! 자이언츠!”

“피터! 다저스에게 제대로 복수하라고!”

“썬! 자이언츠로 오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줄게!”

경기장을 가득 채운 자이언츠 팬들은 위협적인 응원 피켓까지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다들 약이라도 먹은 거야?”

“그러게. 이거 오늘 경기를 치를 수는 있는 거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다저스 선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스타즈에서 뛰며 수많은 원정 경기를 치러온 박유성에게 이 정도 야유쯤은 우습기만 했다.

“요즘도 자이언츠 원정은 빡세냐?”

“프로 야구 말하는 거죠? 빡세죠. 근데 또 제 타석에선 박수 나옴.”

“잘났다 인마. 어떻게 넌 보면 볼수록 뻔뻔해지냐?”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요?”

“어휴. 이 깐족이 자식. 깐족거리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대?”

“제가 괜히 형하고 같은 팀에서 뛰려는 게 아니죠.”

1회차 시절 박유성은 얍삽이로 불렸다.

연거푸 파울을 내며 투수를 끈질기게 괴롭히다가 결국 내야 안타로 출루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2회차 시절에는 악바리였다.

해마다 20개 넘는 사구를 얻어맞으면서도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서 중요한 순간마다 안타를 때려내며 얻어낸 이미지였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박유성은 본래 야구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3회차 들어서는 그러지 못했다.

신인 시절부터 리그를 씹어 먹으면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했고.

2년 차 때 부주장을 거쳐 3년 차 때 주장 완장까지 찬 이후로는 쉴 새 없이 들이미는 카메라 때문에 물조차 편하게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다는 메이저리그로 오게 됐으니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유성아. 부담 갖지 말고 하나 때려라.”

“2루타면 되겠어요?”

“내 타점 신경 쓰지 말고 너부터 챙겨.”

“그러면 일단 이 야유부터 죽여볼까요?”

좌타석에 들어선 박유성은 평소보다 느긋하게 루틴을 실행했다.

오른발로 타석 앞쪽을 단단히 다지고.

왼발을 타석 끝 선에 맞춰 깊숙이 파묻은 뒤에 방망이를 쭉 뻗어 오른쪽 타석 라인을 긁었다.

그러고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피터 페츠를 도발하듯 빙글빙글 방망이를 돌렸다.

그러자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던 조이 패런트가 한마디 했다.

“썬. 메이저리그 개막전이라고 긴장한 거야?”

“긴장은 조이가 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뭐? 내가?”

“첫 타석부터 얻어맞으면 피터가 또 난리 치지 않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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