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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403화 (403/412)

타자 인생 3회차! 403화

46. 썬세이션(9)

평소 에이스는 최대한 우대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던 데이브 로빈 감독은 크리스 반스를 묵묵히 지켜봤다.

자신이 흔들리지 않아야 크리스 반스도 마운드에서 굳건히 버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멀리서 경기를 지켜보던 박유성의 생각은 달랐다.

“가서 한 번 끊어줘야 하는데 큰일이네.”

오늘 경기 크리스 반스의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특유의 윽박지르는 피칭을 앞세워 1회와 2회를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자이언츠 타자들이 방망이 중심에 공을 맞히지 못할 정도.

그런데 타자들이 너무 일찍 점수를 뽑아줘서일까.

3회 들어 공이 점점 몰리고 있었다.

선두 타자 조이 패런트에게 솔로 홈런을 얻어맞은 공도 몰리듯 들어갔고.

방금 전 피터 페츠에게 던진 공도 실투로 봐야 했다.

제아무리 상대가 투수라 해도 한복판으로 빠른 공을 찔러 넣는 건 자만이었다.

그래서 내심 벤치에서 움직여 주길 바랐건만.

데이브 로빈 감독은 알려진 것처럼 선수들을 최대한 존중해 주고 있었다.

“크리스. 여기서 이번 이닝을 끝내야 해. 땅볼을 유도하자. 알렉스 카리오라면 분명 걸려들 거야.”

자이언츠의 1번 타자 알렉스 카리오는 솔직히 테이블세터에 어울리지 않는 타자였다.

3할에 근접하는 타율과 20개 전후의 도루가 가능해서 톱타자로 나서고 있지만 타격 스타일은 베드 볼 히터에 가까웠다.

특히나 투 스트라이크에 몰리기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편이니까 크리스 반스가 낮은 코스로 공을 찔러 넣는다면 땅볼을 유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 반스는 피터 페츠에게 안타를 내줬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 있었다.

그래서 알렉스 카리오를 상대로 분풀이를 하려고 했고.

딱.

2구째 몸 쪽 빠른 공을 던졌다가 다시 한번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아, 이 타구가 송현민 선수의 머리 뒤쪽에 떨어집니다. 행운의 안타! 1사에 주자 1, 2루로 바뀝니다.

-크리스 반스 선수. 이럴 때일수록 크게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꾸 승부를 걸고 있어요.

-앞선 2회까지만 해도 퍼펙트 피칭을 보여줬었는데요. 3회 들어 벌써 3개의 안타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공은 좋습니다. 구속을 보세요. 158㎞/h까지 나왔습니다. 문제는 너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타순이 한 바퀴 돌았으니까 레파토리를 바꿔줄 필요가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오늘 주전 포수 마이클 리드 선수를 대신해 백업 포수인 로이 스미스 선수가 선발 출전한 게 영향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영향이 크죠. 마이클 리드 선수라면 벤치를 대신해서 한 차례 마운드에 올라가 크리스 반스 선수를 달래줬을 겁니다. 하지만 로이 스미스 선수는 메이저리그 출전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니까요. 아무래도 크리스 반스 선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죠.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처럼 로이 스미스는 적극적으로 제 뜻을 펼치지 못했다.

주전 포수인 마이클 리드를 밀어내고 에이스 크리스 반스와 원정 개막전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 크리스 반스에게 최대한 맞출 수밖에 없었다.

‘제레미 데이비스는 좌타자니까 여기서 끊어가면 괜찮을 거야.’

2번 타자 제레미 데이비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로이 스미스는 계속해서 몸 쪽 공을 주문했다.

초구에 빠른 공으로 파울을 유도하고.

2구째 체인지업을 떨어뜨려 움찔하게 만든 뒤에.

3구째 몸 쪽으로 걸쳐 들어오는 커터로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그리고 4구째.

따악!

제레미 데이비스가 건드린 공이 높게 솟구치자 로이 스미스가 포수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소리쳤다.

“내가 잡을게!”

-내야에 뜬 타구를 포수 로이 스미스 선수가 처리합니다. 투 아웃.

-방금 공도 조금 위험한 코스로 들어갔는데요. 제레미 데이비스 선수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볼 카운트가 불리해서 여유가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3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못했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이번 공을 봤겠지만 투 스트라이크 상황이다 보니 제레미 데이비스 선수도 눈에 들어오는 공은 전부 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1사 1, 2루가 2사 1, 2루 상황으로 바뀌었는데요. 아직 위기가 끝난 건 아닙니다. 3번 타자 루이스 넬슨 선수부터 클레버 볼트 선수, 제이슨 보우저 선수에 이르기까지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이 연달아 나올 예정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부터가 시작이죠.

자이언츠의 간판타자인 루이스 넬슨이 타석에 들어오자 박유성은 좌익수 디에고 후리오를 향해 소리쳤다.

“디에고! 라인 쪽으로 붙어!”

루이스 넬슨은 전형적인 풀히터.

타구의 70퍼센트가 좌익수 방면일 만큼 구종과 코스를 가리지 않고 잡아당기는 편이었다.

그래서 우중간을 비우고 좌중간 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외야 왼쪽 공간을 좁히려 했지만 디에고 후리오는 박유성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라인으로 붙으라고? 코치는 아무 말 안 했는데?”

뚱한 표정을 짓던 디에고 후리오는 뒤늦게 메니 레만 벤치 코치의 사인이 나오자 투덜거리며 라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유성이 조금 더 라인 쪽으로 붙으라고 소리쳤지만 디에고 후리오는 글러브 낀 손을 한 번 들고는 자리를 지켰다.

반면 우익수인 바비 그린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우중간 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박유성의 리드를 따랐다.

“썬! 더 들어갈까?”

“아니야, 바비! 대신 조금만 앞쪽으로 가.”

“앞으로?”

“뒤로 빠지는 건 내가 커버할게.”

“오케이!”

포수석에 앉아 외야의 움직임을 체크한 로이 스미스는 초구에 바깥쪽 커터를 요구했다.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걸치듯 들어오는 커터라면 힘들이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제레미 데이비스를 잡아내고 한숨 돌린 크리스 반스도 군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퍼억!

커터가 완벽하게 채이지 않으면서 초구가 빠져 버렸다.

구상이 틀어지자 로이 스미스는 2구째 몸 쪽 빠른 공 사인을 냈고.

따악!

그 공을 루이스 넬슨이 걷어내며 볼 카운트가 균형을 맞췄다.

“좋아. 크리스. 잘하고 있어.”

외야에 서 있던 박유성이 글러브를 두드리며 크리스 반스를 응원했다.

이대로 바깥쪽으로 유인구를 하나 떨어뜨린다면 마음 급한 루이스 넬슨이 참지 못하고 덤벼들 것 같았다.

하지만 바깥쪽으로 던진 슬라이더가 맥없이 빠지면서 볼 카운트가 다시 불리해졌다.

“후우…….”

공을 교체한 크리스 반스는 마운드 뒤편으로 내려가 로진백을 주물렀다.

안타 하나면 한 점.

장타가 나오면 동점까지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이언츠의 3번 타자를 잡아내야 한다는 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어렵게 승부하다 볼넷을 내주고 싶진 않았다.

루이스 넬슨 다음은 타이거즈에서 이적한 클레버 볼트.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던 시절에 자신을 상대로 강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클레버 볼트까지 가면 안 돼. 변화구가 빠지는 것 같으니까 빠른 공으로 승부하자.’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던 크리스 반스는 자신이 직접 사인을 냈다.

몸 쪽 빠른 공을 붙여 길었던 3회 말을 끝내고 싶었다.

마이클 리드였다면 잠시 고심했겠지만 조이 스미스는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2구 때도 루이스 넬슨이 타이밍을 잡지 못했으니 이번에도 먹힐 거라 여겼다.

하지만 정작 루이스 넬슨은 크리스 반스가 몸 쪽 공을 던져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앗!

크리스 반스의 손을 빠져나간 공이 한복판을 지나 몰리듯 들어오자 루이스 넬슨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망이를 휘둘렀고.

따악!

타구는 좌익선상 쪽으로 뻗어 나갔다.

“젠장!”

타격음과 함께 디에고 후리오가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앞선 파울 때 좌중간 쪽으로 자리를 옮긴 탓일까.

타구는 디에고 후리오의 글러브 앞쪽을 지나 펜스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 이 타구가 완전히 빠집니다! 2루 주자 피터 페츠가 홈으로! 1루 주자 알렉스 카리오까지 홈을 밟습니다. 스코어 3 대 3! 자이언츠가 단숨에 동점을 만들어냅니다!

디에고 후리오가 비워둔 뒷공간으로 뛰어간 박유성은 빠르게 타구를 잡아냈다. 그리고 있는 힘껏 3루 쪽으로 공을 던졌다.

평소 흥분하면 주체를 못하는 루이스 넬슨의 성격상 무리하게 3루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 예상대로 2루를 크게 돌았던 루이스 넬슨은 멈추라는 3루 베이스 코치의 주문도 무시하고 발을 굴렀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연평균 20개 이상의 어시스트(보살)를 기록한 박유성의 송구는 빠르고 정확했다.

-루이스 넬슨 선수가 2루를 돌아 3루로! 공은 3루로 연결됩니다. 3루에서……! 3루에서 아웃! 박유성 선수가 환상적인 송구로 다시 한번 다저스를 구해냅니다!

-역시 박유성 선수네요. 사실 저런 상황에서는 타구를 처리하기도 정신이 없을 텐데요. 마치 머리 뒤에 눈이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을 쐈습니다.

-지금 느린 화면으로 다시 나오고 있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타구를 잡고 몸을 돌리는 순간 루이스 넬슨 선수가 2루 베이스를 돌았거든요.

-평범한 타구였다면 무조건 아웃이었습니다. 하지만 좌익수 뒤를 넘어가는 타구였고 루이스 넬슨 선수도 체구에 비해 발이 빠른 편이거든요.

-지금 현지 중계석에서도 믿을 수 없는 플레이가 나왔다며 감탄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아마 박유성 선수의 경기를 많이 보지 않았다면 방금 전 플레이에 입이 쩍 벌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프로 야구 팬들은 익숙할 겁니다.

-프로 야구판에 이런 명언이 있죠. 박유성 쪽으로 타구가 뻗으면 일단 멈춰 서서 지켜봐라. 박유성 선수의 호수비에 어시스트는 물론이고 더블 플레이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자이언츠 선수들은 어안이 벙벙할 겁니다. 어쩌면 다들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처럼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감행했던 루이스 넬슨은 전광판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 타구가 완전히 빠져나가는 걸 확인했고 박유성의 시야에 자신이 들어왔을 리가 없으니 설사 3루로 송구한다 해도 넉넉하게 살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아웃.

그것도 비디오 판독을 쓸 필요조차 없을 만큼 완벽한 아웃이었다.

처음에 챌린지를 부르짖던 자이언츠 팬들도 전광판에 나온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송구가 조금만 벗어났더라도 태그 여부를 의심해 볼 만했지만.

박유성이 팬스 근처에서 던진 송구는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원바운드로 3루수 미구엘 호네즈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고.

미리 3루 베이스에 붙어 있었던 미구엘 호네즈는 힘들이지 않고 몸을 반 바퀴 돌려 슬라이딩하는 루이스 넬슨의 오른 손등을 정확하게 찍었다.

“루이스. 괜찮아. 잘했어.”

평소 동료들의 본헤드 플레이에 질책을 아끼지 않았던 조이 패런트도 직접 루이스 넬슨의 글러브를 챙겨주며 어깨를 두드려 줄 정도였다.

반면 다저스 더그아웃은 박유성이 보여준 슈퍼 플레이에 확 살아났다.

“썬!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깨 좀 봐봐. 설마 기계로 만든 건 아니지?”

“펜스 근처에서 3루까지 정확하게 던지는 게 가능한 일이야?”

“불가능해. 오직 썬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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