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거짓 공략법
뭐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
-털썩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쌓이는 것과는 별개로 몸에 힘이 빠졌고 난 바닥으로 엎어졌다.
내가 죽인 고블린과 맞춰지는 시야.
텅 빈 놈의 동공을 지나 시선을 높이자 또 다른 고블린 한 마리가 보였다.
내 것이 분명한 피를 뒤집어쓴 채 앙상한 갈비뼈를 들썩이는 녀석.
한 손에는 나이프를 쥐고 있다.
눈에 익은 나이프다. 내가 직접 배낭에 달아 둔 물건이니까.
언제 훔친 거지?
아니, 그전에 왜 있는 거야?
“키륵. 키륵.”
“크흑!”
내 꼴이 우스운 걸까.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흘리던 고블린이 내 옆구리를 걷어찼다.
화끈하다 못해 뇌가 저릿해질 정도의 고통.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후드득 떨어진다.
얼핏 봐도 출혈이 심각하다. 숨 쉬는 것도 힘들고.
시야도 조금씩 흐려진다.
장기가 제대로 찔렸나 본데.
간? 어쩌면 폐도 같이 뚫렸을지 모르겠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진다.
“…도대체 왜?”
출혈 때문인가.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난 생각했다.
분명 1층에는 고블린 한 마리만 나온다고 했는데.
공신력 있는 수많은 헌터, 한 길드의 수장, 심지어 정부에서도 말했었다.
1층은 고블린 한 마리뿐이라고.
[Tip. 고블린은 무리 생활을 합니다.]
[Tip. 고블린은 물건을 잘 훔치죠. 주의하세요.]
경쾌한 알림과 함께 떠오르는 팁 메시지.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가장 흔한 몬스터 중 하나가 고블린인데.
하지만 1층에는.
“하. 시발.”
돌연 난 헛웃음을 터트렸다.
1층이 뭐? 고블린이 한 마리만 나온다고?
남이 뭐라고 떠들었든 내가 직접 본 건 두 마리다.
아무리 반박하고 합리화하려고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정신이 반쯤 나가니 상황이 명료하게 받아들여진다.
정부와 길드에서 뿌린 공략법은 잘못됐다.
어쩐지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인 정부와 길드가 그렇게 쿵짝이 잘 맞더라니.
“개새끼들.”
알아봤자 늦었다.
난 이미 칼에 맞았고 죽어 가고 있다.
포션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손은 움직이지도 않고.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은 아득해졌다.
[사망했습니다.]
[코인이 차감됩니다.]
[세이브 포인트로 이동합니다.]
어렴풋이 알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코인이 남아 있나 보다.
* * *
“허억!”
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빠르게 주위를 살피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탑의 시작점. 로비.
처음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똑똑히 들었으니까.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간다고.
“제길.”
난 몸을 살폈다. 고블린한테 찔린 옆구리에 통증이 남았다.
부활한 만큼 상처는 전부 나았지만.
그냥 신경이 놀란 거 같다. 환상통 같은 걸지도 모르고.
“후우.”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어이없이 코인을 날릴 줄이야.
다른 것도 아니고 고블린에 당해서 더 기분이 더럽다.
입술을 씹던 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제 하나 남았다고 봐야 하는 건가.”
벌써 두 번째 사망이다.
평균적으로 코인 3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하나가 남았다고 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내가 평균치만큼의 코인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에.
운이 나쁘다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정부, 길드 개새끼들.”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인터넷에 도배하다시피 한 튜토리얼 구간 공략법.
심지어 학교에서 하는 생존 교육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거짓말이었지.”
한 마리가 아니다. 두 마리지.
어쩌면 더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클리어 조건에도 한 마리를 죽이라는 거지 한 마리만 나온다는 설명은 없었다.
미묘한 말장난. 거기에 그동안 주입식으로 교육받았던 내용이 합쳐져 당연히 한 마리만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빠졌다.
“뭐 때문에?”
어째서 정부와 길드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어떤 이득이 있다고.
일부러 정보를 속여 가며 사람들을 죽게 만들 필요가 있나?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뒷수습은 어떻게 하려고?
당장 나 같아도 밖에 나가면 항의를 했을 텐데.
“잠깐만.”
탑에서 나온 사람 중에 정부와 길드에 항의한 사람이 있던가?
탑과 헌터에 관심이 많았던 나다.
관련 뉴스와 블로그, 뷰튜브 채널과 잡지를 빠지지 않고 찾아볼 정도였으니까.
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떠올렸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던 헌터들의 썰, 정부 공식 자료, 지라시 같은 기사들.
거기서 잘못된 공략법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적은…….
“없어.”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없다. 단 한 줄도. 짤막한 인터뷰에서라도 튜토리얼 공략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당시에는 별 신경 안 썼다.
누구라도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는 튜토리얼 공략보다 위층에서 겪은 일을 듣고 싶을 테니까.
이 부분이 이상하다.
그들도 공략법이 잘못된 걸 알 텐데 어째서 밝히지 않은 걸까.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걸지도 모르지.”
일종의 압박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
법적인 거로든 물리적인 거로든.
불리하거나 위험한 일이 있으면 감추는 게 정부니까.
“하지만 개개인은 통제할 수 없을 텐데?”
튜토리얼 구간을 통과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만 해도 몇 명인데.
뭐가 됐든 그들 역시 1층에 도전했을 테니까 고블린이 여러 마리라는 건 알아차렸을 거다.
익명의 사이트나 sns, 해외 포털 사이트 등등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많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것.
실질적으로 정부가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사람들끼리 만나 술 한잔 걸치면서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은 망했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에도 있었다.
탑에 소환됐다가 돌아온 사람. 마케팅 부서 김 대리.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회식 때만 되면 떠들어 댔는데.
“김 대리 그 양반도 3층까지 도전했다가 돌아왔다고 했었단 말이지.”
당시에도 난 탑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온갖 질문을 해 댔었다.
그는 만취했을 때도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부러 감췄다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모르겠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어쩌면 내가 겪은 튜토리얼만 다른 걸지도 모르고.
과민 반응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은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렇게는 못 하지.”
만약, 정말로 정부와 길드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공략법을 뿌린 거라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헌터를 육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건 나처럼 몬스터로 인해 가족과 친구, 직장을 잃은 자들을 욕보이는 짓이었으니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놈들 때문에 죽었어.”
빠득. 이를 갈았다.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기회.
안 그래도 쓰레기 같은 헌터놈들 때문에 코인 하나를 쓰고 시작한 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잘못된 공략법 때문에 또 하나를 날렸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무슨 고생을 하며 버텼는데!
자고로 남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은 똑같이 대해 줘야 한다.
탑의 부름을 받기 전, 나를 하운드 앞에 던져 버린 그놈들처럼.
“후우.”
난 심호흡을 했다. 지금 너무 흥분했다.
냉정하게 움직여도 죽을 판에 이러면 안 되지.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고.
진짜로 밝혀지더라도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그마치 정부와 대형 길드니까.
무작정 들이박아 봤자 내 머리만 깨진다는 이야기.
그러니 계획만 짜 두자. 안전하게 엿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난 잠시 머리를 정리했고 곧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올라가자.”
그 방법을 쓰기 위해서라도, 고위급 헌터가 되기 위해서라도 탑을 올라야 한다.
여기 있는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는 말.
이번에는 방심하면 안 된다.
공략법이 잘못됐음을 상정한 채 움직이고 기존에 알고 있던 건 지우자.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난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스으으으
[1층에 진입합니다.]
“키륵. 키륵.”
다시 들어온 1층.
역시나 공터에는 고블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몬스터가 다시 리젠된 모양.
하긴. 죽였다고 영구 소멸하면 탑은 진작 정복됐겠지.
-스윽
저번과는 다르게 난 자세를 낮췄다.
일단 놈에게 모습을 들키면 안 되니까.
몬스터와는 별개로 달라진 점은 있었다.
“나이프가 없어.”
메고 있던 배낭과 단검은 그대로 로비로 돌아왔지만 빼앗긴 나이프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이냐.
떨군 장비가 놈들 손에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날 찔렀던 놈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거겠지.
[고블린 처리 (0/1)]
클리어 조건도 원래대로 돌아가 있다.
클리어 조건을 달성했더라도 넘어가지 못하고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모양.
“쯧. 그냥 넘어가 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정신을 다잡은 난 천천히, 최대한 기척을 줄인 채 움직였다.
공터로 갈 생각은 없다. 공터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 생각.
다른 고블린이 어디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죽은 건 뼈아프지만 수확이 아예 없지는 않다.
일단 저놈은 미끼다.
질 걸 뻔히 안 채 나를 도발하는 역할.
내 시선을 끈 사이 다른 고블린이 다가와 공격하는 구조였다.
“영악한 놈들.”
고블린 주제에 함정을 파다니.
놈들의 노림수를 안 이상 어울려 줄 생각은 없다.
저놈은 무시한다. 대신 어디선가 숨어 있을 또 다른 놈을 노리자.
난 느릿하게. 하지만 철저하게 감각을 살린 채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든 찌를 수 있게 한 손에 단검을 쥔 채.
* * *
[1층]
[고블린 처치 (0/1)]
“그륵.”
수풀에 숨어 있던 고블린은 빤히 허공에 떠오른 알림창을 바라봤다.
알 수 없는 문자지만 저것이 뜨고 나면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건 알았다.
그리고 그놈을 죽여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본능이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각인 같은 것.
하지만 고블린에게는 무기도 없었으며 제대로 된 무리도 없었다.
“키륵.”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총 4마리. 1층에 존재하는 고블린의 수였다.
포탈을 타고 넘어오는 사람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자신들보다 키가 컸으며, 아무런 무기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것.
간혹 지레 겁먹고 당해 주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키루룩.”
그렇기에 고블린들은 계획을 짰다.
한 마리가 시간을 끄는 동안 남은 두 마리가 끝을 내자고.
그 전에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공터에 한 마리. 수풀에 두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남은 한 마리?
그는 공터에서 최대한 떨어진 곳에 위치 잡았다.
이곳 1층에서 고블린들이 해야 하는 역할은 두 가지였으니까.
첫째. 들어오는 인간을 죽인다.
둘째. 보물을 지킨다.
설사 앞의 세 마리가 죽더라도 남은 한 마리는 보물을 들고 도망칠 거다.
다행히 이곳으로 들어온 인간들은 한 마리를 잡으면 생성되는 포탈로 넘어갔다.
그렇기에 들어온 사람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되면 공터에 있는 놈이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괜히 덤볐다가는 덩달아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겸사겸사 보물도 지킬 수 있고.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고블린은 기본적으로 탐욕스러운 종족.
나름 머리를 쓴다고는 하지만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게 사실이었고, 방금과 같이 들어온 사람의 짐이 많을 경우에는 덤벼들고는 했다.
지금 수풀에 웅크리고 있는 고블린이 들고 있는 나이프도 그렇게 얻은 거고.
일종의 전리품. 단검을 품은 고블린이 히죽히죽 웃었으나.
-띠링!
[고블린 처치 (1/1)]
“키에에엑?”
곧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