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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34화 (34/740)

34화 오크 챔피언쉽

툭. 내 뺨에 닿은 장갑이 떨어졌다.

땀으로 흥건한 장갑에서 쿰쿰한 악취가 잠깐 올라왔던 것도 같고.

아니, 그보다.

“결투 신청?”

미친 건가?

지네들이 뭐 기사야? 장갑을 던져서 결투를 신청하게?

“허. 어허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하, 이걸 와.

[결투에 응하겠습니까? (YES/NO)]

“예쓰.”

난 고민할 것도 없이 수락했다.

결투고 나발이고 일단 때려잡고 싶었다.

[결투가 진행됩니다.]

-지이이잉

내 동의를 받은 시스템이 작동했다.

나와 오크 전사를 가두는 장막이 형성되었으며.

[제삼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놈을 따르는 무리가 바깥으로 밀려났다.

탑이란 게 참 묘하다.

이런 이벤트도 있고.

밖에 있을 때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현상인데.

“상관없지.”

탑이 이상한 곳이라는 건 들어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상한 걸 따졌으면 밑도 끝도 없다.

헌터. 몬스터. 탑. 게이트.

뭐 하나 상식선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

그러니 지금은.

“빠르게 끝내자.”

“궥!”

전투에 집중하자.

오크 전사. 다른 놈들보다 월등히 강인한 육체.

나만큼은 아니지만 제대로 장비한 무구들.

“쿠헤에엑!”

-콰앙!

놈 역시 나름의 실력이 있는지 도끼를 내려찍으며 나를 압박하려 든다.

육중하다. 키는 내가 더 크지만 체중은 놈이 더 많이 나간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무거운 도끼를 들고 있으니 한 방, 한 방 위력이 강력한 건 틀림 없었지만.

-빙글

난 도끼를 받아치며 몸을 돌렸다.

손목이 짜릿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위협 (E) Lv.1]

[안개 (F) Lv.1]

“쿠르륵?”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움찔. 놈의 몸이 굳는 것과 동시에 차단된 시야.

명백한 빈틈이었고.

-뿌국!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굳이 파이어 밤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깟 놈 하나 잡는 데 마나를 낭비하는 게 더 웃기지.

“쿠화아아!”

“쿠학! 쿠학!”

우두머리가 죽었기 때문일까.

장막 너머에 있던 오크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금니 부족의 전사 키텐탁이 사망했습니다.]

[승자-조현수]

[5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스템이 승부를 알리며 장막이 사라졌다.

분한 듯 날 노려보는 오크 무리.

그럼에도 공격하지는 않았다. 결투를 진행했기 때문일 걸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관심도 없고.

왜냐 저놈들보다 호기심이 드는 물건이 드랍되었으니까.

“뭐지?”

난 죽은 오크 전사가 떨군 아이템을 주웠다.

[어금니 오크 부족의 메달]

-어금니 부족의 전사에게 주어지는 메달.

-강인한 전사임을 증명해 보는 건 어떨까요?

메달? 일종의 훈장 같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수가 좀 많은데.

똑같은 메달이 4개나 있었으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챙기자.

잡템이어도 상점창에 팔면 조금이나마 포인트를 벌 수 있으니까.

난 별생각 없이 보물 주머니에 메달들을 넣었고.

[메달의 소유권이 바뀝니다!]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오크 챔피언쉽에 참가합니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발생했다.

[대부족장에 도전하라-돌발 퀘스트]

-오크 챔피언쉽 승리 후, 대부족장을 쓰러트려라!

-오크 챔피언쉽 승리 조건.

-송곳니 부족 메달 (0/10)

-어금니 부족 메달 (4/10)

-아랫니 부족 메달 (0/10)

-앞니 부족 메달 (0/10)

“엉?”

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퀘스트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얻을 줄은 몰랐으니까.

본의 아니게 퀘스트의 트리거를 건드린 모양.

발동 조건을 살핀 난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크 부족의 메달의 소유권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예외) 소유권이 있는 곳에 보관할 시 소유권이 바뀝니다. (ex-인벤토리, 보물 주머니)

“참 뭐 같네, 조건이.”

오크 부족의 메달의 소유권을 받아 갈 것.

이게 말이 쉽지 은근 까다롭다.

정확히 말하면 방법만 알면 쉬운데 그전에는 알아내기 힘들다고 할까.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가 절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왜냐.

단순히 메달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소유권이 바뀌지 않으니까.

일반적인 방법을 쓰자면 인벤토리에 넣어 소유권을 얻어야 하는데.

“누가 한 칸밖에 없는 인벤토리를 잡템 보관하는 데 써.”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을 넣어 뒀을 게 뻔했다.

어설프게 가지고 있다가 죽으면 최악의 경우 드랍하는 수가 있으니까.

당장 나도 아케인 젬을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7층에서 보물 고블린을 잡지 못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우연인지 행운인지. 아니면 7층 퀘스트를 깨면서 벌어진 연쇄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흐흐. 이번 층은 쉽게 가겠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8층의 히든 피스를 얻을 기회가 생겼다는 거지.

보아하니 메달이란 게 한 마리당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오크 챔피언쉽에 도전하는 놈들끼리 싸우고 빼앗는 형식이지.

“얘네는 없을까?”

난 눈을 반짝이며 내가 잡은 녀석의 무리를 살폈다.

“쿠, 쿠루루.”

“크오오오.”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걸 느낀 걸까.

놈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쿠화아악!”

-콰득!

숲속에서 튀어나온 오크 한 마리가 놈들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같은 오크가 맞나 싶을 정도의 무위.

들고 있는 장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어금니 부족의 일원들이 쓸려나간다.

뭐지? 동족상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난 얼굴을 구기며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크르르륵.”

“크하아아!”

저놈을 시작으로 다른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각 부족의 오크 전사들이 몰려옵니다!]

“뭐, 뭔데 오고 난리야!”

잘은 모르겠지만 알림에서 말하는 강자가 나인 건 분명했다.

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못해도 수십 마리. 그중에는 내가 상대한 놈과 같이 덩치가 큰 놈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간단한 방어구. 날이 바짝 든 무기. 커다란 송곳니.

산전수전 다 겪었는지 온몸이 흉터로 가득하다.

“크르륵.”

“쿠룩!”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놈들이 무리의 비호를 받으며 내게로 다가온다.

근육질 대머리들이 대열을 맞춰 오는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박력 있었고.

-척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멈춰선 놈들이 장갑을 벗는 모습에선 절도가 느껴졌다.

잠깐만, 장갑?

“설마?”

“으에게게.”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툭, 투두두둑

놈들이 각자의 장갑을 벗어 내게 던지는 순간.

[송곳니 부족의 전사, 투핸드가 결투를 신청합니다.]

[앞니 부족의 전사, 케할탄이 결투를 신청합니다.]

[아랫니 부족의 전사, 포렌토가 결투를 신청합니다.]

.

.

.

무수한 결투의 요청이 들어왔다.

어디 보자.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싸우자는 애들이.

[총 4개 부족, 23마리의 오크 전사가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이런 양심도 없는 놈들.

그래. 탑인데 쉽게 지나갈 리가 없지.

난 헛웃음을 흘렸고.

“그냥 한 번에 끝내자. 다 들어와.”

[결투가 시작됩니다!]

우리를 감싸는 거대한 장막이 생기며 전투가 시작됐다.

* * *

찌르고, 베고, 터트리기의 반복.

“쿠헤에에엑!”

휘두른 팔에 안면을 가격당한 놈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날아오는 몽둥이는 적당히 받아넘기면서 롱소드로 찔렀고, 몸으로 부딪쳐 오는 놈은 정강이를 걷어차 고꾸라트렸다.

섬광 같은 빠르기.

내 몸동작은 일반인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으며.

[파이어 밤 (B) Lv.3]

-콰아아앙!

허공을 불태우는 화려한 불꽃은 초인의 그것이었다.

전투를 하며 스킬 레벨 또한 올랐다.

비단 파이어 밤뿐만이 아니라.

[연막 (F) Lv.2]

[질주 (E) Lv.3]

[위협 (E) Lv.2]

다른 기타 스킬들도 마찬가지.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버프 다이스와 낮이라 발동 자체가 안 되는 야간 시야는 여전히 Lv.1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올라간 게 어딘가.

“쿠하아아악!”

“크하아아!”

난 포효를 하며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몸에 바짝 붙인 검.

달려가는 탄성을 이용해 그대로 팔을 뻗었고.

-푸국!

놈보다 족히 두 박자는 빠른 타이밍에 검이 오크의 미간을 꿰뚫었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일격은 단단한 두개골을 손쉽게 파괴했고.

-뻐억!

“쿠헤에엑!”

옆에서 날아오는 몽둥이를 가볍게 피해 낸 난 뒤차기를 먹여 줬다.

꺽꺽대며 주저앉는 녀석.

-촤아아악!

난 검을 휘둘러 놈의 목을 그었다.

갈라진 틈으로 쏟아져 나오는 피분수.

약간의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또 다른 공격이 날아온다.

정면 둘. 사이드에 하나.

-카앙!

-캉!

정신없이 공방이 오가는 속,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이 보였다.

앞에는 오크 두 마리가 힘으로 몰아붙이는 상황.

난 빠르게 단검을 뽑았고.

-푹!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놈에게 날렸다.

정확히 눈에 박힌 단검.

뇌까지 찔린 녀석이 그대로 뒤로 쓰러진다.

“하압!”

이어서 거세게 휘두른 롱소드.

반발력을 이기지 못한 오크 두 마리가 뒤로 밀려났다.

이제는 내가 공격할 차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전진.

두꺼운 팔을 들어 올리며 공격에 대비하는 오크들을 향해 일검을 내뻗었다.

버프를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고.

[버프 다이스 (C) Lv.1]

[4]

[스플래시 데미지]

-콰과과광!

충격파가 터지며 공격 범위가 확대됐다.

한 번에 휩쓸리는 오크들.

두툼하고 질긴 근육도 내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그저 신체 어딘가가 날아가며 괴성을 질러 댈 뿐.

부상을 입은 놈들을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서걱!

단 몇 번의 칼질만으로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사냥에 매진해서일까. 숨이 조금씩 차오른다.

땀도 많이 나고. 물 마실 틈도 없어서 목은 바짝 말랐다.

반면에 덕춘이는.

“궤에엑! 궥궥!”

내 어깨에 매달린 채 엉덩이를 흔들며 응원을 해 대고 있었다.

이놈의 개구리, 주인이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혓바닥 한번 까딱을 안 한다.

아주 상전이야, 상전.

실제로 상전이 맞다는 게 슬프다.

괘씸한 마음에 뒤통수라도 한 대 칠까 고민했지만.

“어딜!”

-쿠확!

슬금슬금 뒤로 달라붙는 오크 때문에 실패.

몸을 돌리며 회전력을 이용해 놈의 배를 걷어찼다.

깊숙이 들어갔는지 느낌이 제대로다.

“카학!”

코와 입으로 피를 토해 내며 쓰러지는 녀석.

내가 한 짓이기는 하지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확실히 세지기는 했구나.

발차기 한 번으로 오크를 잠재우다니.

-푸가각!

머리를 내리찍어 확인 사살을 한 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를 중심으로 널려 있는 오크 전사의 사체.

내 것인지 놈들 것인지 알 수 없는 피로 바닥이 흥건했고, 피 냄새에 절어 코는 제 기능을 못 했다.

머리가 핑핑 돈다. 마력도 바닥까지 긁어 사용했고 체력도 한계다.

그럼에도 난 가슴이 벅찼으니.

“으아아아아! 이겼다!”

“궤에에엑!”

기어이 끈질기게 덤벼들던 놈들을 모조리 해치운 덕이었다.

[승리자-조현수]

[놀라운 업적! 5,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스타터 킷의 효과]

[힘 +1.4]

[민첩 +2.5]

.

.

.

승리와 함께 시작된 정산.

알림음을 노래 삼아 난 바닥에 떨어진 메달들을 주웠고.

[대부족장에 도전하라-돌발 퀘스트]

-송곳니 부족 메달 (12/10)

-어금니 부족 메달 (23/10)

-아랫니 부족 메달 (15/10)

-앞니 부족 메달 (17/10)

[오크 챔피언쉽에서 우승합니다!]

[위대한 전사의 탄생!]

[올스텟 +1]

[대부족장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됩니다.]

-쿠구구구구구!

저 멀리 빛기둥이 생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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