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퇴출식
밤이 깊어 모두가 잠든 시각.
식당도, 술집도 문을 닫은 골목길을 걸었다.
“고생했다, 덕춘아.”
“으게에에에.”
보는 눈이 없는 만큼 덕춘이는 어깨에 올라와 있었다.
약간 찌푸린 얼굴. 아직도 입맛이 텁텁한지 혀를 내두르고 있다.
“여기 닭꼬치.”
“궥!”
난 달래 줄 겸 챙겨 둔 닭꼬치를 덕춘이에게 넘겼다.
한 손으로 쥐고 야무지게 먹는 녀석.
보고 있자니 나까지 입맛이 돌아 하나 더 꺼내 입에 물었다.
“맛이 괜찮네. 크흐. 역시 매콤 달달이 진리지.”
식기는 했지만 그 맛이 어디 가지 않았다.
볼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다성 길드의 처리관, 이진무가 마무리 지을 거다.
“그치, 덕춘아?”
“게에에에.”
내가 한 일은 간단했다.
포션 장수보다 빠르게 그가 있던 좌판으로 갔다.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포션을 선물로 바칠 거라고.
먼저 선수를 쳐, 줘서는 안 되는 물건을 넣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도움을 준 건 덕춘이.
[덕춘(카오스 개구리-E)]
-특성: 산성 (C), 회복 (E), 독 (E), 화염 (E)
-점점 잡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놈의 포션에 독을 섞기 위해서는 덕춘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원래는 산성침을 넣을까 했지만.
“특성 생기니까 좋지?”
“으게에에에.”
하는 김에 덕춘이에게 그놈에게 산 포션을 먹이기로 했다.
다행히 덕춘이도 내 생각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큰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본인이 골라서 마시기까지 했다.
덕춘이 역시 탑에서 살았던 존재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공간이었던 만큼 성장하는 데 있어서는 꽤 적극적이었다.
-꿈찔
여전히 꼬리가 남아 있는 만큼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넘쳐났지만…….
아무튼 20개의 실패작 포션 중 마신 건 12개.
그중에서 특성으로 변환된 건 두 개뿐이었다.
독과 화염.
덕분에 포션에 제대로 된 독을 탈 수 있었다.
난 덕춘이의 턱을 긁어 줬다.
산성 침도 뱉어, 핥으면 회복도 돼, 이제는 독도 뱉고 불도 내뿜는다.
‘점점 슈퍼 개구리가 되어 가는 거 같은데.’
나중에 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덩치도 엄청 커져서 날 태우고 돌아다니고.
그럼 돌아다닐 때 편하겠다.
“그에엑.”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덕춘이가 어림도 없다는 꼬챙이를 휘둘렀다.
치사한 녀석, 지는 맨날 내 어깨에 얻어 타면서.
좀 태워 주면 덧나나.
“궥궥.”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손가락을 흔든다.
나 한 번 가리키고 자기 한 번 가리키더니 손가락을 아래로 깐다.
그러니까.
“넌 나보다 서열이 낮아서 안 돼. 뭐 그런 건가?”
“궤엑.”
오. 맞췄다.
이제는 덕춘이와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인가.
이것이 펫과 주인의 교감. 함께 삶을 영위하는 반려동물과의 우정.
…은 개뿔. 요놈의 개구리.
“닭꼬치 압수.”
“그에에엑!”
-철썩!
자연스럽게 닭꼬치를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되려 뺨을 맞기까지.
족히 반 박자는 빠른 움직임이다.
너무한 거 아닌가. 얘는 내 생각을 읽는데 기습을 어떻게 해.
이래서 내가 서열이 낮은 건가.
슬프다. 한낱 양서류에게 밀리기나 하고.
“으게게게게.”
얄밉게 혓바닥을 내민 녀석이 다시 닭꼬치에 집중했다.
그래. 지는 게 이기는 거다.
고양이 키우는 사람도 집사라 하지 않던가.
고양이가 주인님이고. 그런 거로 생각하자.
난 성숙하고 참된 주인이니까.
만물의 영장. 인간의 승리다! 난 존엄성을 지켰어.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으로 못 이기면 정신 승리라도 해야지.
“으게에에.”
옆에서 덕춘이가 불경한 눈빛을 보냈지만 무시했다.
그때.
-파앗
-팟!
멀리서부터 빛이 터지기 시작했다.
불이 밝혀진 건물은 다성 길드가 대여한 곳.
길드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횃불과 발광석을 들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성난 고함이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고, 무슨 일인가 궁금한 사람들이 각자의 여관에서 창문을 열었다.
난 입꼬리를 올렸다.
“일이 잘 풀렸나 본데?”
놈들이 저렇게 반응할 일은 하나뿐이다.
내가 꾸민 대로 독이든 포션을 선물 받은 것.
포션 장수 멍청한 녀석. 최소한의 검수도 안 하고 모조리 갖다 바쳤나 보다.
혹시나 싶어 여러 개 만들어 두기는 했다만.
‘덕분에 지저분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겠네.’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협박을 통해 위로 올라가게 만들려고 했다.
아니면 다른 형식의 함정을 파서 처리관을 통해 처리하든가.
어찌 됐든 내게는 좋은 일이다.
“커뮤니티.”
관심이 쏠렸을 때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야지.
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쁘띠공듀]: 여러분 요즘 안 좋은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간혹 가다가 저를 도와준답시고 무분별하게 테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어찌나 슬픈 일인지. 아무리 대형 길드가 미워도 그러면 안 돼요!
다 같이 사는 곳 아니겠습니까! 지구촌! 위. 아. 더. 원!
물론 아닐 때도 있죠. (찡긋)
그래두 너무 그러지는 마세요.
대형 길드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니지만, 여러분이 다치는 건 마음이 아프다구요☆
그럼 다들 건강하게 탑을 오르기를 바라면서 저는 이만. 뿅!
밑에서 두 번째 줄은 진심이다.
사지 멀쩡하고, 열심히 탑을 올라야 내 공략을 읽고 공헌도를 줄 것 아닌가.
그 사람들도 위로 올라가니 좋고.
난 칭호가 업그레이드되니 좋고.
이게 바로 상부상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상생 관계라는 거다.
“으엑.”
덕춘이가 슬쩍 거리를 벌렸지만 가뿐히 무시해 주며 기지개를 켰다.
근심거리가 사라지니 상쾌하다.
늦긴 했지만 맛있게 저녁 먹고 꿀잠 자야지.
“아. 남은 포션도 마저 먹자, 덕춘아.”
혹시 아는가. 새로운 특성이 더 생길지.
“그에에에…….”
덕춘이 역시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기는 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나 혼자 올라가면 모를까 주인과 펫으로 연결된 이상 100층까지 쭉 함께할 거다.
잠깐만.
‘나야 죽으면 부활한다지만 덕춘이는 어떻게 되지?’
무한 코인. 그건 내게 부여된 퀘스트에 의해 생성된 것.
덕춘이가 나와 연결되어 있다지만 코인이 있을까?
갑자기든 의문에 난 펫 정보를 살폈고.
[덕춘(카오스 개구리-E)]
-주인이 사망 시 함께 안전지대로 이동됩니다.
-사망 시 주인(조현수)이 안전지대에 진입할 때 부활합니다. (탑 한정.)
“후. 다행이다.”
혹시나 죽으면 끝일까 무서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는 탑. 나라고 덕춘이의 안전을 완전히 책임질 수는 없다.
최악의 경우 덕춘이와 영영 이별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설명대로라면 조금 더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덕춘이가 먼저 죽으면 안전지대에 갈 때까지 혼자겠지만.
“그편이 낫지.”
툭. 난 덕춘이의 코를 건드렸다.
“그에!”
여느 날과 같이 덕춘이는 손가락을 물었지만 실실 웃음이 나왔다.
* * *
푹 쉰 난 나갈 채비를 했다.
가뿐한 몸.
“확실히 침대는 과학이야.”
바닥에서 자다가 보송한 이불을 덮고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잤더니 피로가 싹 가셨다.
따뜻한 물과 마음 놓고 식사를 하는 것도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탁월했다.
“헌터가 되니까 몸이 튼튼해지기는 하네.”
밖에서 짐꾼 노릇 할 때는 한번 구르고 나면 며칠은 몸이 아팠는데…….
일반인의 몸으로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장시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무리가 왔었다.
지금은 체력도 그렇고 회복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나중에 가면 밖에서 잘 때도 호텔에서 잔 것처럼 편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여관을 나서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야기 들었어? 어제 다성 길드 처리관 독살 시도 있었다는데?”
“모르는 사람 없을걸. 커뮤니티에서도 쫙 퍼졌는데.”
“요즘 핫하잖아. 쁘띠공듀 그 사람 추종자 같더만.”
“하여간 정신 나간 새끼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
간밤에 포션 장수가 잡힌 모양.
하기야 한 번에 몰려든 길드원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았겠지.
전투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아예 퇴출시킬 거라던대.”
“하긴 서로 치고받은 것도 아니고 음흉하게 독살하는 건 선 넘었지.”
“12시에 광장에서 퇴출식한대. 곧 하겠군.”
“크흐. 간만에 구경 잘하겠네. 또 그 말할 거 아니야. 날 이기면 모든 죄를 사해 주마.”
“풉! 미친 새끼. 개똑같네.”
퇴출식. 안전지대에서 허용 불가능한 범죄를 저지를 때 쓰이는 처벌이다.
코인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죽이는 것.
어젯밤에 포션 장수를 바로 죽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
한번 확인해 볼까.
어차피 가는 길목에 있기도 하고.
* * *
광장 중앙.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무대 위에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 묶여 있는 사람은 어제 만난 포션 장수.
“나, 난 억울해! 음모. 그래 음모야! 내 재능을 시기한 자들의 계략이라고!”
오랫동안 소리를 질러 댔는지 목소리가 갈라진 그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전히 정신은 못 차린 것 같지만.
저 정도면 대단한 자기애가 아닐까.
시간을 확인해 보니 12시 직전.
곧 퇴출식이 시작될 거다.
“오오오! 처리관이다!”
“죽여라! 저런 놈은 곱게 죽이면 안 돼!”
“이진무 처리관, 한번 보여 줘!”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하더니 인파를 뚫고 이진무를 비롯해 다성 길드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을 풀어라.”
이진무의 지시에 구속했던 포션 장수를 풀어 주는 길드원들.
바닥에 엎어지듯 넘어진 포션 장수가 주변을 살피다 이진무에게 달려갔다.
“이이이익!”
악에 받친 눈.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어딜!”
“기다려라.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근처에 대기 중이던 길드원들에게 제지당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침이 튀어 더욱 지저분해진 턱수염.
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내, 내가 뭘 잘못했는데! 개새끼들아! 아, 아니. 처리관님, 아시지 않습니까. 전 죄가 없습니다!”
포션 장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지만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진무 역시 마찬가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도끼를 쥘 뿐이었다.
“재밌는 짓을 했더군.”
까딱. 이진무의 신호에 뒤에 있던 길드원들이 검과 방패를 가지고 온다.
포션 장수를 내팽개치며 곁으로 던진 무구들.
“12시가 되었다. 퇴출식을 거행하지. 언제나 그렇듯 나를 이긴다면 너의 죄는 없어진다.”
“그, 그런! 억지야! 사기꾼! 대형 길드에 영입시켜 준다는 건 다 거짓이었어! 다 거짓말이었다고!”
“발악이라도 해라. 그래야 관중들이 환호하지.”
모든 길드원이 물러선 가운데. 이진무는 도끼를 가볍게 돌렸다.
눈앞의 무기를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부산 거리는 녀석.
눈살을 찌푸린 이진무가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것 같으니 한번 죽고 시작하자.”
“그게……!”
-콰직
뭐라 변명하려는 것도 잠시.
도끼가 휘둘러진 순간 포션 장수의 머리가 갈라졌다.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
안전지대에 적용된 회복 효과가 발동될 시간도 없이 그는 절명했고.
-파스스스
그의 시체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이 개새끼들아! 두, 두고 봐! 두고 보라고!”
다성 길드의 여관에서 되살아난 포션 장수가 다시금 끌려왔다.
방금 죽은 후유증 때문인지 눈이 뒤집혔다.
광기에 가까운 발버둥. 그럼에도 바뀌는 건 없다.
이 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그의 코인이 모두 소모될 때까지.
난 인파 사이를 빠져나갔다.
퇴출식이 진행됐으니 포션 장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위로 가 보실까.’
시간은 소중하니까.
투기장 이벤트까지 이틀.
난 탑을 등반할 생각이다.
몬스터를 잡아 실력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지만, 가장 큰 목적은.
‘릴카의 퀘스트 재료를 모아야지.’
이 고약한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멍청하게 안전지대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다.
아직 100층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려면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 * *
-우우우우웅
안전지대의 북쪽.
11층으로 올라가는 포탈이 보였다.
6층과는 달리 단 하나의 포탈이 존재했고 따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퇴출식을 구경하러 간 모양.
-철컥
난 검을 뽑아 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부유감.
[11층에 진입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빛이 일그러지는 것도 잠시.
서서히 시야가 돌아왔을 때는.
[11층]
[11층에서 19층까지는 폭염 지대입니다.]
[11층에는 등반자를 위한 안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리자드맨 처치 (0/30)]
[바이퍼 처치 (0/30)]
후끈한 열기와 단숨에 몸을 적시는 습기가 느껴졌다.
늪지대. 이끼가 잔뜩 낀 나무와 물풀이 자란 질퍽한 땅. 물비린내가 나는 늪까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것 같은 환경이었지만.
[달칸의 털목도리 (B)]
-화염 내성 증가.
-일정 등급 이하의 몬스터들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2성급)
목도리가 있는 덕분에 어느 정도 버틸 만했다.
같은 이유로 늪지대를 배회하는 리자드맨과 바이퍼의 공격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은근히 거리를 벌리는 몬스터들.
[릴카의 부탁-강제 퀘스트 (1)]
-바이퍼 가죽 (0/50)
-화갑룡의 비늘 (0/1)
-에꾸 예티의 눈물 (0/20)
“일단 바이퍼 가죽부터 모아 볼까?”
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