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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94화 (94/740)

94화 디펜스 이벤트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몸을 풀었다.

시간이 흘러 디펜스 이벤트를 시작할 때가 다가왔다.

“덕춘아, 준비 끝났지?”

“궤에에에.”

덕춘이가 주머니를 흔든다.

안에는 사탕이 가득하다. 나야 직접 싸워야 하지만 덕춘이는 갑옷 속에 들어가 있을 예정이라 심심하지 않게 군것질을 할 예정.

사람이 별로 없는 서쪽 구역을 정하기는 했지만 나 말고도 참가자는 존재할 거다.

보는 눈이 있는 동안은 덕춘이를 밖으로 꺼낼 수 없다.

“물약도 챙겼고, 장비도 완료. 어제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있네.”

마지막으로 무장 상태를 점검한 뒤 가볍게 점프했다.

챙긴 게 많아서 묵직한 느낌도 들었지만 신체 능력이 워낙 좋아져서 부담스럽지는 않다.

“흐흐흐. 드디어 써 보는 건가.”

난 허리에 참 검집을 두드렸다.

벨라에게 이벤트를 신청하고 가장 먼저 한 건 릴카를 찾아가 무기를 사는 거였다.

19층에서 필드 보스의 시험을 받느라 검이 부러졌다. 서리 불꽃 검도 펠라인의 빨간 머리통이랑 바꿨고.

무려 20,000포인트를 지불해 A등급 무기를 샀다.

뼈 아픈 지출이기는 하지만.

“이게 있어야 해.”

성공적으로 이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걸 사려다가 권능이 반응해서 산 거였지만, 숨겨진 옵션을 보니 바로 납득이 갔다.

침대에 누워 커뮤니티를 켰다.

“다른 애들은 뭐 하려나.”

슬슬 탈모맨도 올라올 거 같은데.

킬더레스와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제법 흘렀다.

녀석 역시 탑을 오르는 것이 목표. 킬더레스라고 그걸 모를 리는 없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면 움직일 게 분명하다.

[니머리 탈모]: 드디어 탈출이다!

오, 진짜 나왔다.

[쁘띠공듀]: ㅊㅊ! 자유를 만끽… 할 때가 아니죠. 어서 몬스터랑 뒹굴란 말이에욧!

가볍게 축하 메시지를 답글로 달았고.

[니머리 탈모]: 오옹, 역시 공듀. 내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구나. 후후. 조금만 기다려 오빠가 간다!

[정수리 핥짝]: 출소했냐? ㄲㅂ 평생 거기서 썩을 줄 알았는데.

[냥냥펀치]: 꼴찌, 어서 오고.

다른 녀석들도 탈모맨을 반겼다.

아닌가. 아니다. 아무튼 반긴 거다.

[니머리 탈모]: 다들 너무하시네. 딱 기다려 20층 쾌속 돌진 간다. 금방 따라잡음.

[냥냥펀치]: 나 18층임, 핥짝이는 20층이고. 가능?

[니머리 탈모]: 쌉가능.

[냥냥펀치]: 크으… 패기 좋고.

[정수리 핥짝]: 공듀는 어디냐. 20층인데 안 보이던데. 너, 이벤트 참가하냐?

[냥냥펀치]: 위로 올라간 거 아님?

[정수리 핥짝]: 그런가? 으흠… 솔직히 딱 불어라. 어디냐. 개인 메시지로 살짝 찔러줘 봐.

같은 층이다, 요놈아.

물론 알려 줄 생각은 없지만.

슬쩍 댓글을 올렸는데.

[쁘띠공듀]: 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존재…….

[정수리 핥짝]: 또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하지 말고 ――.

녀석이 동시에 채팅을 올렸다.

눈치챘나? 같이 놀다 보니 척하면 척이다.

[정수리 핥짝]: 저 탈모쟁이는 제쳤고 이제 너만 제치면 된단 말이야. 아, 말해 주라고오오.

[니머리 탈모]: 말해 즈르그으으으으.

[정수리 핥짝]: 뒈진다.

[니머리 탈모]: 낄낄낄, 난 10층인데? 무슨 수로?

[냥냥펀치]: 못 때리죠? 손도 안 닿죠?

[정수리 핥짝]: 이런 씨… ㅂㄷㅂㄷ.

여느 때와 같이 잡담하는 녀석들.

역시 긴장 풀 때는 커뮤니티만 한 게 없네.

하여간 핥짝이 녀석 승부욕은 넘쳐 가지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10층에서는 탈모맨. 20층에서는 핥짝이랑 붙는 건가.”

탈모맨 때도 꽤 고전했는데. 핥짝이 녀석은 어떤지 봐 볼까.

커뮤니티를 껐다.

이제 시작이다.

[디펜스 이벤트까지 남은 시간- 00:00:02]

[디펜스 이벤트까지 남은 시간- 00:00:01]

[참가자들을 지정 구역으로 전송합니다!]

-파아앗!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빛무리가 나를 감쌌다.

타이밍에 맞춰 목걸이 투구를 활성화했고.

[지정 구역에 소환됩니다.]

[조현수 님의 지정 구역은 서쪽 구역입니다.]

-스스스스슥

몸을 감싸던 빛이 옅어지며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20층 안전지대, 서쪽 구역.

잽싸게 덕춘이를 갑옷 속에 집어넣고 주변을 바라봤다.

‘좋군.’

여전히 황량한 공간이었지만 변화가 있다.

허허벌판인 건 변함없지만 길쭉한 구덩이가 곳곳에 파여 있었다.

깊이도 6미터 정도 되니 허접한 몬스터들은 떨어지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저게 다 내가 만들어 둔 거다.

릴카한테 검을 사자마자 방어선을 구축했으니까.

거의 8시간 동안 한 거 같은데.

할 때는 고생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든든할 따름이다.

-파아앗

-츠파앗!

나를 시작으로 다른 참여자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서쪽이 기피 지역인 건 맞지만 성공만 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참가자가 아예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네?’

대략 50명 좀 안 되는 숫자가 이곳으로 넘어왔다.

다른 인기 지역은 평균 150명 정도가 몰렸다고 생각하면 적긴 적은 숫자.

“드디어 시작인가!”

“오? 뭐야. 이번에는 사람이 좀 있네?”

“다들 비켜요. 장비에 깔리기 싫으면.”

“평지라고 들었는데 구덩이도 있네? 이러면 할 만하지.”

그 구덩이 제가 파 둔 겁니다.

내가 쓰려고 만든 거지만 뭐, 상관없겠지.

삽시간에 시끄러워지는 공간.

친분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개인으로 참가한 사람도 많아 보였다.

혹시 핥짝이도 이곳으로 왔을까?

난 권능을 사용해 사람들의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김정만]

-최고 층수 20층

-무소속

-F급 권능, 돌팔매질의 달인 보유

[이민후]

-최고 층수 20층

-팀 프레이 소속

-E급 권능, 전달자 보유

.

.

.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중에 눈에 띄는 인물이 두 명 있었는데.

[이상옥]

-최고 층수 20층

-무소속

-단 한 번도 죽지 않았습니다.

-칭호, 생존가 보유

-A급 권능, 위기의식 보유

먼저 과묵한 남자. 튜토리얼부터 한 번도 죽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냥펀도 튜토리얼에서 죽었었다. 권능이나 스킬이 생기기 전부터 타고난 뭔가가 있다는 거다.

권능도 A등급, 상당히 높다. 권능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주어지는 것. 순전히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만큼 가치가 더 높다.

C급 권능만 돼도 부러움을 받을 정도니 말 다 했지.

흘낏.

잠시 눈이 마주치자 그가 눈을 떨었다.

꼬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던 것도 같고, 이내 불편한 기색으로 자리를 피한다.

뭔가를 느낀 건가, 모르겠다.

시선을 돌려 온갖 장비를 꺼내는 여인을 바라봤다.

[김소담]

-최고 층수 20층

-무소속

-대량 학살 칭호 보유

-AA급 권능, 메카닉 보유

이쪽은 더 대단하다. AA급 권능이라니. 저 정도면 대형 길드에서도 영입하겠다고 달려들 수준.

저 상태로 위로 쭉 올라가면 엄청난 헌터가 될 건 분명했다.

세계 랭킹 1위 헌터, 데미 다이얼의 권능이 AA급이다.

권능만 따지면 최상위권이라 봐야지. 나나 탈모맨은 예외로 치자. S급 권능이란 게 그리 흔한 건 아닐 테니까.

게다가 대량 학살 칭호라. 나도 못 얻은 거다.

나름 몬스터를 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특별한 조건이 있는 건가.

역시 숨은 고수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었다.

-짝짝

모두가 준비를 하는 와중 한 남자가 손뼉을 쳐 이목을 끌었다.

“자자. 다들 서쪽 구역이 클리어 확률 낮은 건 아시죠? 흩어져서 뭐 합니까? 뭉칩시다! 저만 믿으세요!”

목청이 꽤 크다. 겉모습만 봐서는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 같은데.

외모랑 능력이랑은 별개니까 어디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봐 볼까.

[박웅식]

-최고 층수 20층

-무소속

-E급 권능, 시체놀이 보유

별것 없네.

시체놀이. 저게 무슨 권능인지는 모르겠다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한번 쓱 보고는 자기 갈 길 가느라 바쁘다.

“디펜스 실패하면 죽는 거 아시죠? 다들 코인 귀한 줄은 알 텐데. 제가 네크로맨서 계열입니다! 봐 봐요!”

“네크로맨서?”

“벌써 계열 잡은 사람이 있었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박웅식이 자신의 능력을 말했고, 하나둘 관심을 가지고 모이기 시작한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그가 인벤토리에서 몬스터 사체를 꺼냈다.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에 온 사람 중 몬스터 사체를 안 본 사람은 없으니까.

“거기, 좀 비켜 줘요. 다쳐도 책임 안 집니다.”

그가 한쪽에 몰린 사람들을 물리더니 능력을 발휘했다.

[좀비 고블린이 생성됩니다.]

-끼이이

죽은 고블린이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사이한 기운이 눈에 깃들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주변을 살피는 것만으로 포악함이 느껴질 정도.

“오? 진짜네.”

“근데 저 정도로는 썩 도움 안 되지 않나.”

반응은 반반.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을 흔드는 박웅식.

“걱정 마십쇼. 이게 다가 아니니까.”

-따악

박웅식이 사람이 없는 곳으로 좀비 고블린을 보내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폭사하는 좀비 고블린.

위력이 괜찮다. 내가 가진 파이어 밤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1성급 몬스터는 즉사, 2성급 몬스터도 치명상을 입힐 수준이었으니까.

관중의 반응이 뜨거워졌다.

“제법인데?”

“거, 아저씨. 같이합시다.”

“이건 인정이지.”

단숨에 그의 세력이 불어났다.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생존이니까.

가능성 있는 곳에 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야 별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몇몇도 흥미로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옮긴다.

방금 봤던 김소담과 이상옥도 마찬가지.

그래도 상당수가 그쪽에 붙은 건 사실이었다.

“하하하하! 좋습니다! 다들 제 지시만 잘 따라 줘요. 그쪽 형씨도 같이 하실라나?”

기분 좋게 웃은 박웅식이 나를 가리켰지만 손을 내저었다.

“혼자 하는 게 편해서요.”

“그럼 어쩔 수 없고, 나중에라도 마음 바뀌면 이쪽으로 오쇼. 난 아량이 넓으니까. 으하하하!”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첫 웨이브까지 5분 남았습니다.]

[디펜스 이벤트는 랭킹 시스템이 적용되며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이 이루어집니다.]

시스템 알림이 울리더니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떴다.

[랭킹에 올릴 닉네임을 선택해 주세요.]

[커뮤니티 닉네임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니.”

[디펜스 이벤트용 닉네임을 설정해 주세요.]

“이블아이.”

10층 투기장 이벤트 때 썼던 닉네임.

어차피 디펜스를 하면서 파이어 밤과 기타 능력들을 쓸 거다.

이미 내 능력은 공개된 상태. 굳이 다른 이름으로 할 필요는 없다.

[랭킹이 공개됩니다.]

[동쪽 구역]

-0위 김근섬

-0위 바리바라야

-0위 쥐에에엔자아앙

.

.

.

아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아 순위는 나뉘지 않았다.

난 팔짱을 끼며 랭킹 표를 살폈고.

[서쪽 구역]

-0위 근육팡팡전사

-0위 김밥나라 치킨공주

-0위 나비야 놀자

.

.

-0위 이블아이

제대로 등록된 것을 확인했다.

“어? 이블아이?”

“뭐야. 이쪽에 이블아이가 붙었다고?”

“그 사람 맞지? 투기장 이벤트 우승자.”

“저 사람이 이블아이야! 말하는 거 내가 들었어!”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내게로 시선이 쏠린다.

내 생각보다 이블아이가 가지는 이름값이 높은 모양이다.

박웅식도 당황했는지 입을 벌렸지만.

“어, 이거 거물이 있네요. 그래도 우리 점수가 더 높을 겁니다! 개인은 집단을 못 이겨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무리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모를 이탈을 막는 거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핥짝이는 어디에 있으려나.’

난 계속해서 랭킹창을 주시했고.

[서남 구역]

-0위 이발병A

-0위 지랄발光

-0위 기러기 아빠

-0위 서희연

·

·

-0위 1등 하는 거 보여 준다 탈모 쉐키야

“저거네.”

핥짝이로 추정되는 닉네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여간 죽어도 탈모맨은 이기고 싶어 하더라.

그보다 서남쪽이면.

“걔도 나랑 똑같은 작전을 짰나 보군.”

비인기 지역에서 휩쓰는 거.

-우우우웅

고개를 돌려 서남쪽을 바라봤다.

각 구역을 막는 반투명한 장막.

저 너머에 있는 거겠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한번 해보자, 누가 1등인지.

-차캉

난 검을 뽑았고.

[첫 번째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00:02]

[첫 번째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00:01]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크워어어어!”

“키이익!”

“키햐아아악!”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거, 거기! 혼자 달려가면 위험해요!”

“자살인가? 미친놈이네.”

뒤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걱정해 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괜찮다.

첫 번째 웨이브는 1성급 몬스터.

내 상대가 아니니까.

-촤아아악!

“키헤아악!”

“크르르르.”

단칼에 두세 마리가 베어진다.

[27점 획득!]

[랭킹이 올라갑니다!]

대충 한 마리에 10점에서 20점인가.

몬스터 등급이 올라가면 더 주겠지.

“와라.”

방금 잡은 놈들은 척후병.

아직 앞에는 700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있다.

-구구구궁!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일제히 달리며 생기는 굉음!

야생의 흉포함과 살기에서 느껴지는 짜릿함!

누군가는 전율하고, 누군가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지만.

-촤악

-서걱!

-푸슉!

나한테는 소중한 점수로 보일 뿐이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떨어져 나가는 머리.

그 모습에 사기가 오른 걸까.

“뭘 보고만 있어! 달려!”

“죽여라!”

“으아아아!”

뒤에 떨어져 있던 사람들도 함성을 지르며 공세에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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