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방을 나오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다섯 기의 로봇이었다.
네 개의 다리. 등 뒤로 설치된 두 개의 총구.
[더블 라이플 터렛]
-로봇형 몬스터.
-두 개의 화기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2성급. 상황에 따라서는 3성급에 비교될 만큼 위험한 녀석.
밖에서는 보는 것 자체가 드문 희귀한 몬스터다.
그럼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는데.
“젠장!”
그 이유는 강인한 육체와 스킬로 덤비는 다른 몬스터와 달리 제대로 된 화기를 사용했기 때문.
-지이이잉
-타다다당!
놈의 렌즈가 나를 향하는 것과 동시에 총이 발사됐다.
바로 문 뒤로 몸을 숨기자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처음 이 몬스터가 출몰했을 때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총을 쏘는 몬스터라니.
헌터도 사람이다. 어느 정도 등급이 된다면 모를까 총 맞으면 죽는 게 현실.
하물며 민간인은? 일이 꼬이면 대량 학살이 벌어질 수도 있다.
“빌어먹을. 이건 생각 못 했네.”
20층대부터는 커뮤니티를 뒤져도 정보가 많이 안 나온다.
서로를 경쟁자로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본인이 겪은 일 남도 겪어 보라는 심보인지는 모르겠지만.
25층도 마찬가지. 폐쇄된 형태의 필드라는 말만 있었지 더블 라이플 터렛이 나온다는 말은 없었다.
-타다다다당!
-티잉!
틈이 작아서인가 놈들은 직접 들어오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총을 쏘아 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대격변 이후 가장 무서웠던 건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무정부주의 시절 돌아다니던 군인 놈들.
놈들은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잔혹한 짓을 수차례 저질렀고, 위협을 느낀다면 가차 없이 총을 갈기던 사이코였다.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던 시기를 정면으로 겪은 만큼 그때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어쩌면 중학생 때 있던 일이라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후우. 후. 진정하자.”
세차게 뛰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본능적으로 움츠러들 것 같다.
4성급 몬스터랑 처음 싸웠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짜악!
뺨을 한 대 쳤다.
볼이 뜨끈해지며 정신이 좀 든다.
과거는 과거로 남겨 두고 지금은 객관적으로 현실을 파악할 때다.
총을 쏴대는 터렛이 2성급 몬스터로 분류된 이유는 딱 하나.
“제대로 방어구를 착용했다면 버틸 수 있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
각성한 헌터는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옵션이 부여된 아이템은 현대 기술 이상으로 대단하다.
난 동층에 있는 사람들 이상으로 강했으며, 내가 입고 있는 펠라인 세트 역시 사기적인 옵션을 가지고 있다.
안전하다. 싸울 수 있다.
이미 나보다 먼저 탑을 오른 이들은 이곳을 통과하지 않았던가.
“예전처럼 굴면 안 되지, 현수야.”
내가 왜 탑의 부름을 받을 날만 기다리며 버텨 왔는데.
검을 움켜쥐었다.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펠라인의 빨간 투구를 착용하자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고.
-콰앙!
“덤벼, 새끼들아!”
덕춘이를 갑옷 속에 넣는 것과 동시에 문을 걷어찼다.
쇳덩이로 이루어져 있던 문이 크게 찌그러지며 공간이 벌어졌고.
-타다다다당!
놈들이 총을 난사했다.
-테데데뎅!
-티이잉!
총알이 몸을 때린다.
요란하게 울리는 쇳소리.
잊은 줄 알았던 화약의 메케한 냄새가 코를 지나 머리를 찌른다.
으득.
이를 악물었다.
난 그때의 내가 아니다.
야밤에 총성이 울리면 웅크렸던 아이가 아니다.
-콰드드득!
크게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반 토막 나 쓰러지는 더블 라이플 터렛.
그러거나 말거나 쇳덩이에 불과한 놈들은 계속해서 사격을 이어 나갔지만.
-콰직!
-뿌드드득!
-콰아앙!
난 말없이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로봇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고작해야 1분 정도의 시간이었건만 긴장한 탓인지 길게 느껴졌다.
“후우.”
투구를 벗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내가 해낸 성과를 찬찬히 살피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 많이 달라졌구나.”
자신에게 하는 말.
검을 쥔 손을 내려다봤다.
검으로 쇠를 가르고 초능력이나 다를 바 없는 스킬로 벽을 무너트리고, 점프 한 번으로 수 미터를 올라가는 초인이 됐다는 사실이 지금만큼 와닿은 적이 없었다.
야성적인 것만 익숙해졌지 아직 이런 건 익숙해지지 않았던 모양.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럼 계속 가 볼까.”
까앙!
바닥에 나뒹구는 로봇의 파편을 걷어차며 발걸음을 옮겼다.
놈들이 왔던 길로 발자국이 찍혀 있다. 아마 그곳에 전력실이 있을 거다.
이놈들도 결국은 로봇, 전력이 있어야 움직일 테니까.
* * *
좌측 통로를 따라 이동한 결과 전력실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까지 도착하면서 때려 부순 터렛만 스무 기가량.
처음에는 총성만 들어도 흠칫 떨었지만 이제는 별 관심도 없다. 오히려 좋았지. 스스로 위치를 알려 주는데 가서 부수면 그만이니까.
-철컹
-우우우웅!
스위치를 내리자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꺼져 있던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야간 시야가 종료됩니다.]
여전히 흐릿하기는 하지만 보는 건 문제가 없을 정도.
훨씬 낫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두운 곳에서 탕! 구석에서 탕! 난리도 아니었는데.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서 그런지 시야가 좀 더 트였다.
“이것들 자세히 보니 총알도 작네.”
9미리 권총탄까지는 아니고 그렇다고 군대에서 쓰는 5.56미리보다는 작은 것 같다.
전역한 지가 좀 돼서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이곳 기준과 지구 기준이 다를 테니 큰 의미는 없었다.
“이거 쓸 수 있나?”
터렛의 옆면을 부숴 총기로 보이는 것을 뜯어냈다.
3성급만 넘어도 총알이 안 통하겠지만 1, 2성급 몬스터한테는 충분히 좋을 거 같은데.
만약 이걸 쓸 수 있다면 이제 막 탑을 오르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악용할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C급 헌터한테도 일반 소총은 안 통해. D급만 돼도 몇 발은 버티고.”
안전지대에서는 한 발 쏘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제압당할 거다.
이후에는 뭐. 죽을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가 탑 밖으로 퇴출당하는 거고.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안전지대는 대형 길드가 관리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못할 거다.
문제는 내가 기계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데.
막상 뜯어서 봐 봤지만 구조를 모르겠다.
이게 방아쇤가?
-빠득
오케이. 아닌 거 같다.
망가진 부품을 던지고 몸을 세웠다.
“아쉽기는 하네. 이걸 뿌리면 새내기들 생존율도 올라가고 공략 점수도 올라갈 거 같은데.”
별수 있나. 이런 쪽으로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또.
잠깐만.
“한 명 있잖아. 기계 관련해서 잘 아는 애.”
20층 디펜스 이벤트 때 만났던 여인, 김소담.
분명 권능으로 메카닉을 가지고 있었다. 그 능력으로 소형 로봇을 만들어 몬스터를 학살하기도 했고.
내 기억으로는 김소담이 쁘띠공듀 팬클럽에 가입되어 있었다. 팬클럽의 회장은 이준석. 그렇다면?
“이거 되겠는데?”
난 바로 이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준석]: 공듀 님!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응? 뭐야. 얘 왜 날 반기고 있냐.
내 연락을 기다릴 이유가.
“아, 전에 부탁한 게 있었지.”
[이준석]: 부탁하신 포션 제작 스킬북을 구했습니다.
[이준석]: 혹시 몰라 다른 제작 스킬북도 준비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보시죠.
오오. 이준석.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해 준 건가?
난 그가 보내 준 목록을 살폈다.
총 3개.
내가 원했던 포션 제작과 장비 제작 스킬북.
남은 한 개는.
“인챈트?”
꽤 값비싼 스킬북이다.
횟수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게 해 주니까.
시중에 나와도 십억 단위로 팔리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인챈트를 가지고 있더라도 쓸 만한 스킬을 익히고 있지 않다면 별 의미 없으니.
[이준석]: 힘 좀 썼습니다. 후후.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다만 좀 과하지 않나 싶다.
냉큼 받기에는 뭐랄까. 이준석에게 빚을 지는 기분?
단순 호의라면 모르겠지만 이걸 빌미로 뭔가를 요구하면 곤란해진다.
그동안 쌓아 온 이미지가 있으니 입 싹 닫고 무시할 수도 없고.
[쁘띠공듀]: 아주 마음에 들어욧! 근데 제가 드린 거에 비해 너무 과한 것 가튼뎅…….
[이준석]: 아뇨! 걱정 마세요. 연합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구한 거니까요.
[이준석]: 공듀 님 덕에 무사히 탑을 오른 사람이 수십 명입니다!
[이준석]: 아직 쁘찡 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수는 더 많겠죠.
저놈의 쁘찡 연합은 들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좋네.”
추종자들이 생기고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확실히 편하다.
좋다. 받자.
[쁘띠공듀]: 여러분의 진심… 저에게 닿았습니닷☆
[거래 완료]
난 개인 거래를 완료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쁘띠공듀]: 미안하지만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닷.
[쁘띠공듀]: 김소담 씨에게 이걸로 총기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그나마 멀쩡한 터렛의 총기를 개인 거래로 보냈다.
[이준석]: 이건…….
[쁘띠공듀]: 25층에서 나오는 더블 라이플 터렛의 부품이지요오오.
[쁘띠공듀]: 20층만 돼도 큰 쓸모는 없겠지만 이걸로 총을 만들 수 있으면 이제 막 탑을 오르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이준석]: 과연… 역시 공듀 님입니다! 이제 곧 탑에 들어올 이들을 위한 배려!
배려는 무슨. 그냥 눈 뜨고 죽는 꼴 보기 싫어서 그런 거지.
겸사겸사 이름값도 높이고 공략 점수도 얻고.
그보다 이제 곧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게 무슨 소리야.
난 그에 대해 물었고.
[이준석]: 징조가 보였습니다. 늦어도 2주일 내로 새내기들이 탑의 부름을 받을 거예요.
탑의 초대는 규칙적이지 않다.
짧으면 한 달. 길면 반년 동안 부름을 받지 못한다.
내가 탑에 들어온 지도 한 달이 넘었으니 신입이 들어오지 말란 법도 없었다.
[이준석]: 제작을 서둘러야겠군요. 소담 씨한테 물어보겠습니다.
[쁘띠공듀]: 넹, 부탁해요.
이준석과의 대화를 마치고 스킬북을 익혔다.
[포션 제작 (B) Lv.1]
-재료를 이용해 포션을 제작합니다.
[장비 제작 (C) Lv.1]
-장비를 제작합니다.
-숙련도에 따른 퀄리티가 크게 차이 납니다.
[인챈트 (A) Lv.1]
-대상 물체에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적용합니다.
뿌듯하다. 이렇게 스킬을 얻게 되다니.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그러니까 이런 선물도 받지.
“이제 물약도 제작할 수 있겠군.”
상급 포션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이미 다 모아 뒀다.
몇 개나 만들 수 있는지, 어느 정도 퀄리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거고.
“나도 직접 건드려 볼까?”
터렛의 등딱지를 뜯었다.
장비 제작 스킬도 얻었으니 나도 총기를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스킬을 익힌 덕분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모르겠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까지 보조를 해 주니.
“생각보다 쉽게 만들 수 있겠는데? 덕춘아, 이것 좀 들고 있어 봐.”
“그에에에.”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포션 제작과 총기 제작에 투자하자.
-위이이잉
-철컥
재료는 충분하니까.
날 쫓아 온 터렛들이 렌즈를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