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상위권 경기
핥짝이의 권유로 시작된 내기.
친선 경기는 서버별로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을 나눠서 진행한다.
각각 다섯 번의 시합이 벌어지며, 맨 마지막에는 서버 대표 간의 스페셜 매치가 준비되어 있다.
하위권 첫 경기의 승자는 대한민국 팀.
이어 경기는 계속됐고, 어느덧 중위권 마지막 시합이 끝을 맺었다.
[중위권 마지막 경기- 릴레이 경기]
[승리, 몽골 서버.]
“안 돼!”
“돼!”
핥짝이가 절규했고, 난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 경기에서 난 몽골에 걸었고, 핥짝이는 필리핀 팀에 걸었다.
맞춘 건 나.
기쁨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에에에.”
한심하게 바라보는 덕춘이.
그 정도 눈빛으로는 내 기분을 망칠 수 없다, 요놈아.
“크으윽. 제법인데?”
“너야말로.”
지금까지 진행된 경기는 모두 10개.
핥짝이가 맞춘 횟수는 다섯 번, 난 여섯 번이다.
단 하나 차이.
확실히 보는 눈이 있다.
권능으로 참가자들의 능력을 확인한 나도 이 정도인데 이 녀석은 대체.
“이제 남은 경기는 여섯 개인가.”
“스페셜 매치까지 하면 그렇지?”
이제 곧 내기가 끝이 난다.
한번 보자고 누가 이기는지.
[중위권 시합 종료.]
[상위권 시합이 시작됩니다.]
[상위권은 종목마다 한 번씩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하위권과 중위권은 단체전이 대부분이었는데 상위권부터는 개인전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국가별 상위권 헌터겠지.
[상위 헌터를 경기장으로 전송합니다.]
-파아아앗!
메시지와 함께 빛이 몸을 감쌌다.
부유감을 느낄 새도 없이 경기장으로 이동.
직접 서 보니 규모가 굉장하다.
-와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
환호성이 뜨겁게 분위기를 달구고, 경기장에 선 각국 헌터들이 경쟁심을 불사른다.
특히나 각 팀 앞에 선 대표들.
하나같이 비범하다.
시스템 공인 50층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 모인 거니까.
스킬이며 칭호며 뭐 하나 나무랄 게 없다.
해외 대형 길드 소속이 많은 거 같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만 대형 길드 소속이 몇 없다.
상위권에는 아예 없고.
오지혁이 있기는 하다만 예전 이야기니까.
“다들 분위기 살벌하네.”
오른쪽에 서 있던 핥짝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각국 대표로 나온 이들 모두,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단순 경쟁심이라고 하기에는 적의나 경계심이 섞여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쪽에 대형 길드 소속이 없어서 그런 걸 거다. 예전이었다면 여기서 각국 대형 길드 루키들이 서로 안면을 텄어야 하니까.”
왼쪽으로 다가온 오지혁이 그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린다.
얘도 대형 길드에 감정이 좋지 않았었지.
조작된 튜토리얼 공략법.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규모로 이루어진 희대의 사기극.
이들 역시 진실을 알고 있을 거다.
생각해 보면 50층에 맨 처음 올라왔을 때도 그랬다.
우리나라 헌터가 유독 많이 왔다며, 대형 길드에서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난 각국의 대표를 살폈다.
[벤카테쉬]
-인도 대형 길드, 트리무리티(trimūriti)의 루키
[등륜]
-중국 대형 길드, 태황의 루키
[산바 카즈노부]
-일본 대형 길드, 등천무도(登天武道)의 루키
[호앙빈]
-베트남 대형 길드, TGC의 루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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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곳도 몇몇 섞여 있기는 했지만 대표 대다수가 대형 길드 루키.
놈들 입장에서는 우리는 초대받지 말아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이곳은 각국의 루키들이 모여 인맥을 다지는 자리. 그들이 빛나야 하는 이벤트니까.
“살짝 불쾌하네요.”
“그, 그러게요. 무섭기도 하고.”
김소담 역시 노골적인 적의에 미간을 찌푸렸고, 그 옆에는…….
지선화였나?
연합 사람인 거 같다. 팔에 핑크색 띠를 두르고 있는 걸 보니.
성격은 좀 내성적인 것 같다만 실상은…….
[지선화]
-최고 공략층- 50층
-AAA급 권능, 인내하는 복수 보유
-칭호, 확인 사살 보유
-칭호, 목숨 수확자 보유
-칭호, 마음속의 칼 한 자루 보유
-칭호, 살생부 보유
.
.
.
보기만 해도 살벌한 칭호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오우야, 이게 다 뭐야.
스킬 목록도 잠깐 살펴봤는데 숫자만 따지면 오지혁 못지않다.
아니, 그것보다.
‘저 칭호들 사냥으로만 얻을 게 아닌데?’
‘확인 사살’이나 ‘목숨 수확자’의 경우야 사냥을 통해 얻었다 쳐도, ‘마음속의 칼 한 자루’나 ‘살생부’는 사람을 상대로 얻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확한 건 상세 내용을 확인해야겠지만.
따로 살인자 칭호가 없는 걸 보니 안전지대에서 사고를 친 건 아닌 거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다들 파이팅 하자고요.”
내 시선을 느낀 지선화의 물음에 적당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무서워라. 되도록 엮이지 말아야지.
일단은 우리 팀이니까 그렇다 치고.
“이상하군. 구룡 아니면 무학성 루키가 대표로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흐음. 마크를 떼 둔 건가.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쯧. 한국 놈들한테 뭘 바라겠어. 제멋대로 굴기나 하고.”
“팔에 찬 띠 귀엽다. 우리도 저런 거 만들까?”
이미 다른 루키들끼리는 안면을 텄는지 멋대로 우리를 평가하고 있다.
상위권 시합은 개인전이라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연합해서 우리를 공격했을 테니까.
딱히 걱정되지는 않지만.
“말이 많군, 잔챙이 새끼들. 루키 놈들은 하나같이 특권 의식이 있지. 까 보면 뭣도 없는 것들이. 쯧.”
우리의 성격 밑바닥 오지혁이 가만히 있질 않는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 몰랐는지 상대 대표들이 얼굴을 구긴다.
“뭐, 뭣!”
“네가 지금 누구한테 입을 터는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미쳤군. 방금 지껄인 말은 국가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하라, 저능한 자여.”
삿대질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녀석들.
오지혁은 입가를 비틀며 조롱했다.
“국가적 문제는 무슨. 어차피 쓰다 버릴 장기짝 따위가. 모가지에 달린 거나 떼고 그런 소리 하지?”
툭툭. 목을 두드린다.
루키는 비밀 엄수를 위해 목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해외 루키들도 마찬가지.
오지혁의 뜻을 이해한 대표들이 이를 악물었고.
“에헤이, 그 정도로 해. 대답은 결과로 들으면 되니까.”
난 오지혁을 말리는 시늉을 했다.
어디까지나 시늉만.
“결과는 시발, 됐다. 이해하마. 원래 치와와가 성격은 제일 더럽거든. 작은 개는 작은 위협에도 짖는 법. 계속 짖어, 길드의 개들아.”
잘한다, 오징혁. 경기 전에 흥분시키는 것도 훌륭한 전략.
평소 성격대로 하는 거겠지만 효과만 좋으면 장땡이지.
딱 여기까지만 하면 좋을 텐데.
“흥! 웃기지도 않는 도발. 어차피 네놈들은 어떠한 경기에서도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패배자 녀석들.”
“…패배자?”
아, 왜 그런 단어를 써요.
핥짝이 화나게.
“그래, 밑바닥에서 우러러보기만 하는 루저. 보아하니 대형 길드가 없는 틈을 타 운 좋게 이 자리에 섰나 보다만 편법은 어디까지나 편법.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네놈들처럼 근본 없는 놈들이 낄 자리가 아니라 이 말이지.”
“50층에 올랐다고 다 같은 A급 헌터가 아니야. 주제를 알아.”
우뚝 멈춰 선 핥짝이를 보고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대표 몇몇이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대형 길드가 자리를 비운 게 아니라 우리가 쓸어버려서 없는 겁니다.
오해를 풀어 주고 싶었으나.
-콱!
“아, 그래? 그 말 꼭 지켜. 아주 박살을 내버리려니까. 첫 번째 경기에 나와.”
“이, 이 자식이!”
이미 핥짝이는 상대 대표의 멱살을 잡은 후였다.
“와아아아아!”
“잘한다! 파이팅 넘치네!”
“저거 비매너 아니냐?”
“비매너는 개뿔. 각 나라의 자존심이 걸렸는데 까고 보는 거지!”
핥짝이의 돌발 행동에 환호성이 튀어나오는 관람석.
그에 반응한 걸까.
[상위권 경기가 시작됩니다.]
[상위권 제1경기]
[보스전]
[각 팀은 참가자를 정해 주십시오.]
시스템이 종목을 발표했고.
[보스- 강화된 기간틱 가디언이 소환됩니다.]
[가장 공헌도가 높은 참가자가 승리합니다.]
-구구구구구궁
필드 중앙, 거대한 골렘이 생성되었다.
흡사 로봇과 같이 생긴 몬스터.
흉흉하게 빛나는 안광.
놈이 괴성을 지른다.
“크아아아아아아!”
[위압 (AAA) Lv,9]
“크으윽!”
“뭔데 저거!”
사람들의 몸이 굳었다.
한순간 사기가 꺾일 정도의 위력.
[강화된 기간틱 가디언은 5성급 최상위의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강화됐다는 의미가 그런 건가.
일반적인 5성급 몬스터와는 급이 다른 힘이다.
그래 봤자 내게는 때릴 곳 많은 샌드백으로 보였지만.
핥짝이 역시 마찬가지인지 은은한 미소까지 짓고 있다.
김소담은 외형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반짝이고 있고, 오지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침을 뱉었다.
지선화는 무슨 표정인지 잘 모르겠다.
비교적 여유로운 우리와 달리 다른 팀들은 안색이 안 좋다.
“5성급 최상위라니!”
“저건 좀 힘들겠는걸.”
“협력으로 가지.”
“귀찮은 놈이 나왔군.”
대표들이야 루키라고 괜찮아 보였지만 나머지는 긴장한 모습.
“첫 경기는 내가 나간다.”
“그래라. 무리하지 말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핥짝이가 무대로 나서고.
[대한민국 서버 출전자- 냥펀 정수리 딱대^^]
“뭐 해? 쫄보들.”
까딱까딱.
핥짝이가 도발을 했다.
아, 저 참가명은 볼 때마다 부끄럽네.
덕분에 상대방들을 꼬드겨 낸 것 같지만.
“저저! 진지함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군!”
“내가 나간다!”
“명백한 차이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대표 대부분이 나선다.
이걸로 참가 인원은 끝.
나머지 팀들은 경기장 외곽으로 밀려났다.
“내기 안 잊었지? 이번 경기 승자는 나로 정한다.”
“파이팅. 나도 네가 이긴다에 걸게.”
“딴 애한테 걸어!”
응. 싫어.
네가 이길 게 뻔한데.
난 팔짱을 끼며 집중했고.
[상위권 제1경기]
[보스전을 시작합니다!]
“쿠아아아아아!”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됐다.
“1등은 내 거다!”
어떠한 탐색전도 없이 달려 나가는 핥짝이.
그 모습에 기겁하는 사람들이 보였으나 나는 안다.
“금방 끝나겠네.”
“그에에에.”
절대 확신 없이 움직이지 않는 녀석인 걸 알고 있으니까.
승부할 때 미쳐서 그렇지 결코 만만히 볼 사람이 아니다.
봐라.
-탁! 타아앗!
말 같지도 않은 몸놀림으로 가디언의 모든 공격을 회피.
이어 녀석의 몸에 손을 얹은 핥짝이가 스킬을 사용했다.
[압축 (AAA) Lv.1]
-지정 물체를 압축합니다.
“쿠어어어어!”
가디언의 몸뚱이가 블랙홀에 빨린 것처럼 압축된다.
강력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풍경.
“미쳤네.”
난 순수히 감탄했다.
무려 AAA등급.
내 파이어 밤이랑 등급이 똑같다.
대체 승급을 얼마나 한 거야.
이걸로 하나는 확실하다.
핥짝이의 메인 스킬은 압축.
그리고…….
[해제 (AA) Lv.9]
-콰아아아앙!
압축됐던 몸뚱이가 그대로 팽창.
그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상체가 터져 나가는 건 당연지사.
상성이 나빴다.
핥짝이의 압축은 생명체에는 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가디언은 무생물.
[보스 처치 완료]
[승리자 냥펀 정수리 딱대^^]
[공헌도- 100퍼센트]
“다시 말해 봐, 루저들. 누구보고 패배자라고?”
이 경기는 승부가 결정되어 있었다.
뭐 하나 못 해 보고 그 자리에 굳은 상대 팀들.
재밌네.
“다음 타자는 저로 할게요.”
“아, 네.”
나도 몸이 근질거린다.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앞으로 나섰다.
“바로 다음 경기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