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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13화 (213/740)

213화 인사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물.

두툼한 외투에 어깨에는 창을 걸치고 있다.

등 뒤에도 4개의 창을 메고 있고.

까무잡잡한 피부.

반쯤 감긴 눈으로 하품을 하던 녀석이 내게 창을 겨누었다.

“거, 남의 함정을 망치면 우짜요. 이거 만드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네가 만든 거였냐?

이만한 규모를?

대단하고 어이가 없다.

“덕분에 인생 하직할 뻔했는데 사과라니… 내가 죽었으면 어떻게 하려 했지?”

사실 죽을 만한 함정은 아니다.

저런 거에 당할 정도였으면 50층대에 올라오지 못했지.

그저 좀 짜증이 났을 뿐.

“어, 그렇네. 아이고, 미안합니다. 이 근방에는 저놈만 있지 사람은 없어 가지고… 운 나쁘게 이짝으로 왔나 봅니다?”

의외로 순순히 사과를 한 녀석이 창끝을 빙극태웅한테로 돌린다.

저놈을 노리고 있었다, 이거지.

권능으로 확인하기는 했다.

빙극태웅은 크레바스를 좋아한다고.

함정은 내가 밟았지만 놈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우연이네, 나도 노리고 있는데.”

“그건 좀 곤란한데.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놈이라.”

타악.

빙극태웅의 퇴로를 차단한 녀석이 창을 쥔다.

“이렇게 합시다. 먼저 놈의 숨통을 끊은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로, 콜?”

“좋지. 서로 방해하지는 말자고.”

“그 정도 매너는 있으니까 걱정 마쇼.”

시원시원하네.

먼저 사냥을 준비했네, 뭐 했네 하면 귀찮을 뻔했는데.

차지하고 싶으면 잡아라.

간단명료하지 않은가.

“크르르르르.”

졸지에 앞뒤로 포위된 빙극태웅이 자세를 낮추며 으르렁거린다.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놈의 결정은 후자였다.

[스노우 스텝 (AA)]

-눈에 몸을 녹여 이동합니다.

-스르르륵

신기루처럼 눈에 녹아드는 녀석.

6성급 몬스터라 그런가, 별의별 스킬이 다 있네.

하지만 어쩌나…….

“눈 녹이는 건 자신 있는데.”

[파이어 밤 (AAA) Lv.3]

-콰아아아앙!

한 번의 폭발.

단번에 녹아내리는 눈.

53층은 동사 구간인 만큼 녹기가 무섭게 다시 얼어붙는다.

그거면 족하다, 왜냐…….

“크허어어엉!”

얼음도 눈이 아니기는 매한가지니까.

약점이 명백한 이동기.

다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을 향해 쇄도했다.

스타트는 가볍게 검으로 가 보자고.

-사악!

절삭을 담아 그은 검.

놈 역시 앞발을 휘두른다.

발바닥이면 갈라 버렸으련만.

-카앙!

발톱에 가로막혔다.

상관없다. 일격으로 죽일 생각은 안 했으니까.

계속해서 파고들며 공격을 이어 나갔다.

자잘한 상처들이 생겨난다.

이쯤에서 버프 다이스.

[5]

[상처 벌어지기]

-푸화아아악!

눈금 5가 나왔다.

직관적인 효과.

놈의 상처가 벌어지더니 피가 솟구친다.

재생 능력이 있는지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었으나 이미 피는 많이 빠진 상태.

위기감을 느낀 걸까.

“쿠오오오오!”

[거인 죽이기 (AAA)]

-콰아아아앙!

놈이 두 앞발을 내리친다.

AAA등급 스킬!

그 파괴력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바로 뒤로 빠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사내가 창을 던졌다.

총 두 개.

-푸욱!

먼저 날린 창이 빙극태웅의 등에 꽂혔고.

“크아아악!”

분노한 놈이 뒤를 쳐다봤을 때.

-뿌국!

놈의 눈에 창이 박혔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빙극태웅.

보통 실력이 아니다.

“쩝. 안 죽었구만 곧 죽겠지만.”

입맛을 다신 녀석이 도약한다.

어느새 손에 잡힌 건 폴암.

도끼날이 번뜩인다.

가차 없이 빙극태웅의 목으로 내리꽂히는 폴암.

-까아아아앙!

까아앙?

목이 잘리기는커녕 빙극태웅의 몸이 부풀었다.

정확히는 몸을 뒤덮고 있던 털이 자라난 거지만.

[털 방패 (AAA)]

“얼씨구.”

“그에에에.”

지가 솜뭉치야 뭐야.

우스운 외형과는 다르게 효과는 확실했다.

공격력은 전혀 줄지 않은 상태에서 방어력은 올라갔으니.

눈에 꽂힌 창을 부러트린 놈이 마구잡이로 발을 휘둘렀다.

짐승 특유의 움직임으로 날뛰며 덤벼드는 것이 여간 위협적인 게 아니었으나.

[프로즌 브레이크 (AAA) Lv.1]

[일렉트릭 쇼크 (AA) Lv.9]

-파지지지지직!

“쿠어어어엉!”

나도 허술하지는 않다.

움직임을 봉쇄하는 동시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질기네.”

방어력만 높은 줄 알았더니만 각종 마법형 공격에도 내성이 높은 모양.

윤기 나던 털이 그을렸지만 눈빛은 여전히 흉포하다.

공들여 잡으면 충분히 잡겠다마는.

지금은 경쟁자가 붙어서 말이지.

-우우웅!

강력한 공격을 준비하는지 창을 든 녀석이 뭔가를 하고 있다.

그때마다 창이 번뜩이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고.

저거, 일격필살용 스킬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관통 (AA) Lv.8]

[내부 비틀기 (AAA) Lv.1]

[파고드는 송곳니 (AA) Lv.6]

.

.

.

중첩되는 효과.

저 녀석이 나서기 전에 끝내자.

내게는.

[영혼 찢기 (S) Lv.1]

방어력을 무시하는 스킬이 있으니까.

괜히 S급이 아닌지 마력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게 문제지만.

빠르게 끝내는 데는 이게 제격이지, 마침 쇼크를 먹여 놈의 몸이 마비되어 있는 상태라면.

과감하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파이어 밤으로 추진력을 얻어 점프.

“그르르륵!”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며 놈 역시 대응하려 했으나.

그보다 빨리.

-찌이이이익!

내 검이 놈의 목을 훑었다.

유령이 지나가듯 상처 하나 없이 목을 통과하는 검.

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쿠어어어?”

-쿠웅!

목 아래로 통제권을 잃은 녀석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남은 건 하나.

푸욱.

창에 찔렸던 눈에 손을 쑤셔 넣었다.

그대로 폭파.

-콰아아아앙!

파이어 밤이 놈의 뇌를 불태운다.

단말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한 녀석.

난 막 창을 집어 던지려던 녀석을 향해 손을 펼쳤다.

“내가 먼저 잡았다?”

“아이고, 저게 죽네.”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린 남자가 창을 거둔다.

중첩됐던 스킬들이 사라지며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는 창.

싸울 의지가 없다는 걸 확인시켜 주기 위함인지 착용하고 있던 무기들도 인벤토리에 넣어 버린다.

저렇게 나와 준다면 나야 땡큐지.

한번 챙겨 보실까.

“많구만, 많아.”

“그헤헤헤.”

고맙게도 앞으로 엎어져 있어서 등에 꽂혀 있는 무기들을 수거하기가 편해졌다.

뒤로 넘어갔으면 뒤집는 데 고생 꽤 했을 거 같은데.

빙극태웅의 위로 올라가니 대략 열댓 개가량의 무기가 꽂혀 있다.

일단 창 3개는 저기 쪼그려 앉아 있는 녀석 거니까 돌려주자.

“네 거다.”

“아, 땡큐.”

자연스럽게 창을 받아 인벤토리에 넣는 녀석.

자리를 뜨지 않고 얼쩡거리는 것이 원하는 게 있어 보이는데.

당장은 하는 일에 집중하자.

박힌 지 오래됐는지 잘 안 뽑히는 것도 있어서.

가죽과 근육이 워낙 두터워 억지로 빼내면 살덩이까지 뽑혀 나온다.

“저 아까운걸… 아고고, 저저.”

그때마다 들려오는 혼잣말.

은근 정신 사납다.

“뭔데, 너도 하나 줘?”

놈이 있는 쪽으로 챙겼던 물건 하나를 던졌다.

제일 작은 거로다가… 단검이면 되겠지. 큰 물건들은 내 거다.

어깨에 앉은 덕춘이가 한심한 눈길로 바라봤지만 무시했다.

그러지 마라. 내가 고생해서 내가 잡은 건데, 저거라도 주는 게 어디야. 천사 아니냐.

“그에에.”

고개를 흔드는 덕춘이와는 별개로 저 녀석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이런 거 필요 없수다. 크흠!”

단검을 주운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돌려준다.

그럼 뭐가 목적이지.

이미 아이템은 다 챙긴 관계로 도축 스킬을 이용해 빙극태웅을 해체하는 중.

그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한다.

“척하니 도축 스킬 레벨이 꽤 높아 보입니다? 쓸데없이 버리는 부분도 없고.”

“낮지는 않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계속 쓰다 보니 A등급이 되었으니까.

처음과 비교하면 깔끔하게 가죽과 살을 발라낸다.

발톱이랑 이빨도 빼야지. 나중에 재료로 쓰게.

“그… 거, 혹시 자투리 남는 거 있음 좀 얻어갈 수 있습니까?”

“자투리?”

자투리라 할 게 있나?

뭐가 없는데.

“거, 거, 조기 조 있네.”

“이걸?”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저게 맞다.

녀석이 원하는 건 다름 아닌 빙극태웅의 살코기.

자투리라 말한 건 무기를 뽑아낼 때 딸려 나온 걸 말하는 거였다.

저걸 어디다 쓰려고.

퀘스트 재료인가?

“고기가 필요한 거면 챙겨 가. 애초에 목적은 등에 있던 아이템이니까.”

“아하하하! 그런 거였으면 말을 하시지! 난 또. 거, 해괴하게 생기기는 했어도 괜찮은 형씨네, 그래.”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드린 녀석이 손을 내민다.

“박재경이요, 형씨는?”

“이블아이.”

“이름도 특이하네. 외국인인가.”

커뮤니티도 안 하고 사는 건가. 혹시나 NPC인가 싶어 가슴을 살펴봤지만 푸른빛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그냥 권능으로 보이는 정보만 해도 NPC와는 거리가 멀다.

범상치 않기는 했지만.

[박재경]

-SS급 권능, 탐식 보유.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동일 등급의 권능을 가지고 있어 자세한 정보를 읽을 수 없습니다.

등급이 왜 저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얜 또 어디서 튀어나온 괴물일까.

하는 짓을 봐서는 얼빵하기는 한데. 나에 대해 모른다고 하니 커뮤니티도 안 하는 눈치고.

본인 입으로 이 근방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혼자 있는 건가?

“형씨, 이거 뼈다귀도 가져가도 되오?”

“알아서 가져가.”

“크으, 멋져.”

엄지를 세우고 신나서 고기와 뼈를 챙기는 녀석.

척살단도 아닌 거 같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제 눈치챘는데 저 녀석 슬리퍼를 신고 있다.

미친놈인가… 모르겠다. 탑에 올라오니 미친놈이 너무 많다.

살짝 머리가 아파 오는 시점.

“아, 든든허다. 형씨 밥 먹었수?”

“밥?”

“어, 밥 먹어야지. 한국인은 밥심. 배가 불러야 힘을 써, 사람이.”

따로 챙겨 먹은 게 없기는 하다.

대충 도시락이나 까먹으면 그만이지만.

“고깃국에 소주 한잔 말면 기가 막힌다니까? 이것도 인연인데 내 대접하지.”

“소주가 있어?”

탑에?

“에헤이, 속고만 살았나. 따라만 오쇼. 스승님한테 뜯어내면 되니까.”

스승은 또 누구란 말인가.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가 보면 알겠지. 하는 행동을 봤을 때 이곳에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 같다.

저기, 크레바스로 만든 함정도 그렇고.

저런 건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 *

난 그를 따라 걸었고 대략 1시간이 흘렀을 때.

“스승님, 저 왔습니다!”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법적 처리를 했는지 이 주변에만 눈이 쌓이지 않았다.

굴뚝으로 올라오는 연기.

눈으로 뒤덮인 곳에 통나무집은 꽤 운치 있었고.

“아! 왔다고요!”

-콰앙!

박재경은 거침없이 문을 걷어차 부쉈다.

낯선 남자에게서 탈모맨의 모습이 보이는 건 착각인가.

“이놈 새끼가! 멀쩡한 문을 걷어차!”

“손이 없다 안 합니까. 봐 봐요, 양손 가득이지.”

산장의 주인으로 보이는 NPC가 얼굴을 구긴다.

능청스럽게 고기와 뼈를 들어 올리는 녀석.

NPC가 부르르 떨더니.

“바닥에 내려놓고 열면 되잖아!”

-빠악!

그대로 머리를 후려쳤다.

어우, 소리가 찰지네.

“아! 먹을 걸 바닥에 왜 둬요! 드럽게 시리! 그리고 때리지 좀 맙시다, 탈모 생겨요!”

“아냐. 넌 아직 풍성해. 겪어 봐서 잘 알지.”

“어… 예, 죄송합니다. 그, 스승님도 멀리서 보면 좀 있어 보여요.”

잘은 모르겠지만 둘 사이가 친근한 건 알겠다.

NPC랑 저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등반가는 찾기 힘든데.

“그보다 저쪽은 누구?”

“오다 만난 양반인데 괜찮은 사람이요. 한 끼 맥이라고 데려왔수다.”

“네가 그렇다면야. 들어오시게, 헤그릭이네.”

“이블아이입니다.”

“아, 그 릴카 친구? 들어는 봤지.”

릴카 녀석 여기랑도 거래를 하는 건가.

옆으로 비켜선 헤그릭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늑하고 따뜻하다.

풍족해 보이지는 않지만 소박한 맛이 있는 곳.

“적당한데 앉아. 요리는 금방 될 테니.”

“요리요?”

“어. 저 멍청이가 해 줄 거야.”

“딱 30분만 기다리쇼. 맛깔나게 해 줄라니까.”

믿어 보라며 주먹을 움켜쥐는 녀석.

그런데…….

“무슨 수로 요리를…….”

“말 안 했나? 저 녀석 나한테 요리 스킬 배워서 익히고 있어. 좀 가라니까 눌러앉아서 말이지. 쯧쯧. 식충이 하나 들인 게지. 멋대로 제자라 하고는… 끄응.”

잠깐만요.

요리 스킬이요?

사람이 먹을 수 없다는 몬스터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스킬?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던 그 스킬?

난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하. 스승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제자 이블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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