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24화 (224/740)

224화 이런 걸 준비해 놨네?

브루헴의 발언.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지지한다는 말은?”

“탑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력 중 하나. 헬다잉 키친이 뒤를 봐준다는 이야기지요.”

“오오오오!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거 같구만.”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엄청 좋은 거다.

등반가들도 길드에 속해 있냐 아니냐에 따라 생존율이 갈리는데, NPC로 이루어진 집단의 지원을 받는다?

상상 이상으로 등반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만능은 아니다. 결국 탑은 본인이 오르는 거고 NPC들 역시 시스템에서 자유롭지는 않으니까.

좀 더 집중하자.

브루헴이 입을 연다.

“알고 있겠지만 탑에는 다양한 세력이 있습니다. NPC, 등반가 할 거 없이 말이죠.”

“대형 길드 말이우?”

“그런 것도 포함이 되지요. 몇 군데 알려 드리죠, 먼저 이곳 헬다잉 키친.”

브루헴이 손가락을 펼치며 설명을 이어 나간다.

“금천황후가 이끄는 화조국, 킬더레스가 회장으로 있는 투기장 연합회.”

“어? 킬더레스도 세력이 있었어요?”

“물론이죠. 탑에 있는 투기장들은 모두 연합되어 있거든요. 34층의 플레타도 그곳 소속이고요.”

그건 몰랐네.

이상하기는 했다.

킬더레스와 플레타는 전 부부 사이. 그것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데도 굳이 킬더레스가 관람을 하러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투기장 연합회의 회장이라면 납득이 되네.

“그 외에도 많습니다. 드루이드와 엘프가 운영하는 히든 가든. 요정과 정령이 만든 프렉탈 파크 등등. NPC 외에도 상위층을 등반하는 이들이 만든 곳도 있습니다. 루키 그룹도 있고, 바다낚시 좋아 그룹도 있고.”

바다낚시 좋아는 또 뭐야.

이름 성의 없이 지었네.

“최근에는 쁘찡연합이라는 곳도 생겼더군요. 성장세가 대단합니다.”

움찔.

작게 몸을 떨었다. 바다낚시한테 뭐라 할 게 아니었다.

쁘찡연합의 쁘띠공듀가 나였으니까!

억울하다, 연합은 이준석이 멋대로 만들었는데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인가.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안 브루헴의 설명은 끝나 가고 있었다.

“자잘한 것들까지 합치면 수는 더 많아지죠. 자랑 같지만 헬다잉 키친은 상당히 규모가 큰 편에 속합니다. 여러분에게 손해는 없을 겁니다.”

대충 헬다잉 키친에 대한 어필은 끝난 거 같고.

얼마나 솔직하게 나오는지 봐 보실까.

좋은 점만 말해서는 신뢰가 안 가지.

헬다잉 키친이라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NPC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한계.

“물론 명분은 있어야겠지요.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헬다잉 키친이 끼어들 방법이 없어요.”

“솔직하군요.”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요.”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직접 말하지 않으면 내가 물어보려 했는데.

NPC는 행동에 제약이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등반가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돕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

브루헴은 그 해결책을 내놓고 있었다.

“관계라… 안 그래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내가 뭐라 하기도 저네 박재경이 먼저 나선다.

“와 보니 알겠어. 난 아직 무지렁이우, 더 배워야지. 여기서 요리사로 활동하고 싶수다!”

“좋습니다. 물론 등반은 하셔야겠지만요. 한동안 머물며 힘을 기르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입니다. 아까 보니까 메인 요리는 당신이 하시더군요.”

브루헴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반면 VIP께서는 손질과 보조, 따로 재료를 준비해 오셨죠.”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는 요리사 말고 다른 걸 하고 싶은데요.”

난 박재경만큼이나 요리에 대한 열정이 없다.

요리 스킬도 앞으로 등반을 위해 필요하다고 느껴서 익힌 거고.

다 떠나서 요리사가 되면 헬다잉 키친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게 뻔했다.

이들의 협조는 받되 휘둘리지는 않는 위치, 내가 원하는 건 그거다.

이기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별수 있나. 사는 게 다 이렇지.

대충 눈치챘다는 듯 브루헴이 고개를 끄덕인다.

“VIP께서는 파트너십 계약을 맺는 게 어떻습니까? 헬다잉 키친에는 식재료 조달팀이 존재하지만 NPC인 이상 활동 범위에 제약이 있거든요.”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나 술, 향신료 등을 가져오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VIP께서 가져온 크라켄의 다리나 메스토카 유충의 살은 구하기 힘든 곳에 있거든요. 청룡의 눈물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도록 하죠.”

고개를 끄덕이자 브루헴이 계약서를 꺼낸다.

나와 박재경에게 주어졌는데 내용은 달랐다.

난 파트너십을 맺을 예정이고, 녀석은 셰프로 활동할 예정이었으니까.

꼼꼼히 내용을 살핀 뒤 사인을 완료했고.

[헬다잉 키친과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습니다.]

[헬다잉 키친 파트너 전용 아티팩트가 제공됩니다.]

계약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떠오르며 검은색 팔찌가 주어졌다.

탄력 있는 재질로 만들어졌는데 팔에 착용하자 알아서 달라붙는다.

의식하지 않으면 차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

[헬다잉 키친 파트너 팔찌 (A)]

-헬다잉 키친과 일시적으로 연결됩니다.

“VIP께선 얻은 부산물을 팔찌를 통해 거래할 수 있습니다. 대가는 원하시는 것으로 해 드리지요. 포인트는 물론, 아이템이나 정보도 가능합니다. 그 외의 것들도요.”

“정보요?”

“탑 곳곳에 파견 나간 직원이 많은 만큼 듣는 것도 많지요.”

“그럼 몇 층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있겠군요.”

“시스템 제약을 받지 않는 수준에서는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죠.”

“저야말로.”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세한 건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

헬다잉 키친, 생각보다 많은 수확을 얻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

박재경이야 뭐.

“잘 지내라.”

“혼자 보내서 미안하구만. 덕분에 이런 곳도 와 보고 고맙수. 답례라 하기는 뭐하지만 돌아가면 그곳에 남아 있는 조리 도구는 형씨가 가지슈.”

그러고 보니 파티에 초대되기 전에 요리를 했었지.

이곳으로 넘어오느라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었다.

살짝 짬처리 같기는 했지만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나쁠 거 없다, 필요하기도 하고.

녀석이 쓰던 거니 성능은 확실할 거다.

“건강한 등반 되시길 바랍니다.”

“나중에 좋은 거 얻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에엑.”

작별 인사는 이 정도로.

[파티 종료.]

[역소환됩니다.]

-우우우우웅!

발밑에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빛이 쏟아져 나온다.

훅 꺼지는 듯한 느낌이 몸을 관통하고.

[54층- 아사 지대]

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 * *

덩그러니 남아 있는 박재경의 조리 도구들.

꽤 많다. 간단한 도마와 식칼, 냄비 등 기본적인 것들도 있고, 왜 꺼내 놨는지는 몰라도 그릴까지 있다.

차갑게 식은 갈비찜은 덤.

하얗게 굳어 버린 기름과 마찬가지로 하얀 해골, 벨자트가 보인다.

“나쁜, 나쁜 새끼들…….”

“저 왔어요.”

“으아아아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갈비찜을 바라보던 녀석이 소리를 지른다.

그 속에 차 있는 울분과 원망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

눈앞에 음식을 놔 두고 보기만 해야 하는 게 그렇게 힘든 걸까?

힘들겠지. 팔다리 묶인 채로 쫄쫄 굶고 있는 앤데.

이럴 줄 알았으면 파티에서 남은 음식 좀 가지고 올걸.

생각해도 이미 늦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헬다잉 키친과 연결되어 있는 팔찌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거래용.

텔레포트를 하게 해 주는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좀 기다리고 있어요. 뭐라도 만들어 줄 테니.”

녀석이 내게 준 퀘스트.

[벨자트의 인정- 돌발 퀘스트]

-NPC 벨자트는 공허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동시에 죽고 싶은 마음은 없죠.

-저주를 풀지 않은 채 저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만드세요.

-보상: 포탈 생성, ???

이걸 위해서라도 요리는 해야 한다.

굳이 안 해도 되기는 한데,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필요하다.

요리 관련 칭호도 얻었겠다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하고 생각한 순간.

“음?”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파바바밧!

권능이 발동되며 수많은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너무 많아서 파악하기조차 힘든 수준.

갑자기?

분명 헬다잉 키친으로 갔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보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권능을 통해 보인 정보들이 심상치가 않다.

[오방의 봉인석 (AA)]

[일곱 악마의 울타리 (S)]

[뇌전결계 (AA)]

[결속 토템 (A)]

.

.

.

바닥에서 환하게 올라오는 마법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토템.

그중 가장 압권은 거대한 일곱 개의 악마 석상.

하나같이 움직임을 제한하는 아티팩트다.

그 수가 무려 24개. 그중 6개가 AAA등급 이상이었고, 하나지만 S급 아티팩트도 섞여 있었다.

벨자트가 있는 골짜기.

그 위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많다.

포위하듯 둘러싼 인원은 60여 명.

난 놈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척살단.”

“그에에에.”

어디 한 나라에서 온 게 아니다.

최소 다섯 개 국가가 힘을 합쳤다.

우연으로 모인 게 아니다. 철저히 계획된 거지.

내가 눈치채지 못한 건 아마…….

‘파티로 초대됐을 때 준비했겠지.’

이것 참… 기회가 위기로 돌변할 줄이야.

난 놈들을 노려봤다.

“어째 한 명만 돌아왔군.”

복면을 쓴 녀석이 주변을 훑는다.

박재경의 위치를 찾는 건가.

난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들었다.

“너희 뒤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지.”

“거짓말하지 마라. 네놈들이 동시에 사라지는 걸 확인했으니까. 한 명만 돌아왔다는 건 같이 갔던 녀석은 낙오됐다는 뜻이겠지.”

낙오는 아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날 도우러 올 수는 없으니까.

내 상태가 어떤지도 모를 거고.

“나 잡으려고 이렇게 몰려온 거야? 할 일도 없다, 너네들.”

“여유 있는 척하는 게 꼴사납구나.”

괜히 뜨끔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뻔뻔하게 나가야 하는 법.

“내 뒤에 NPC 있는 거 보이지? 이 친구 많이 화난 상태인데 잘못 건드렸다가는 너희나 나나 그냥 죽는 거야.”

눈물과 침을 흘리고 있는 벨자트를 미끼로 걸었다.

아무리 놈들이라도 NPC까지 적으로 돌릴 위험을 감수하기는 싫을 터.

-따악

난 누군가 신호를 보냈고.

심리전이고 뭐고 할 새도 없이 놈들이 디버프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비티 (AAA) Lv.1]

[접착 (A) Lv.6]

[죽음의 대지 (AA) Lv.4]

[바람의 끈 (AA) Lv.9]

[탈진 (AA) Lv.2]

.

.

.

한 번에 수십 개의 디버프가 중첩된다.

나를 지키기 위해 보호 스킬들이 발동되었지만.

[마법 무효화 (AA) Lv.3]

[3개의 마법이 무효화 됩니다!]

[무효화 실패! 감각 저하 외 9개의 디버프에 노출됩니다!]

[정신 보호 (AA) Lv.2]

[16개의 정신 공격을 막아 냅니다!]

[정신 보호 실패! 트라우마 외 3개의 디버프에 노출됩니다!]

[저주 내성 (A) Lv.1]

[5개의 저주를 막아 냅니다!]

[저주 방호 실패! 불안한 시선 외 9개의 저주에 노출됩니다!]

모든 것을 막아 내기에는 놈들이 쏟아부은 스킬이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것만으로 죽을 정도.

“크으으읍!”

하지만 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방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보호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고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가 버릴 거 같지만.

애써 태연한 척 서 있었다.

“듣던 대로 괴물 같은 놈이군. 그래 봤자 죽는 건 변함이 없다.”

“넌 너무 설쳤어.”

“군중을 선동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곱게 죽이지는 않으마. 네놈 때문에 동료가 여럿 죽었거든.”

쌓인 게 많았는지 살벌한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왜 나한테 그러냐… 나쁜 짓 한 건 네놈들인데.

머리가 띵하다.

정신 나갈 것 같네.

놈들도 마력이 무한정은 아닐 터.

식은땀이 흘러내리지만 당당하게.

“잡소리 할 거면 꺼지고 덤빌 거면 덤벼.”

중지를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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