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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77화 (277/740)

277화 62층

12번 마을이 61층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라지고 남은 마법진.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스킬북.

내성 관련 스킬은 대부분 있어 새롭게 얻을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빛 내성 (C) Lv.1]

-빛 속성에 내성을 지닙니다.

-신성력에도 같은 효과.

“따지고 보면 기본 속성은 일곱 개란 말이지.”

먼저 불, 물, 전격.

이 세 가지는 각각 화기, 냉기, 전격 내성으로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대지, 바람, 빛, 어둠?

대지야 물리 공격 내성을 비롯한 패시브 스킬로 견딜 만했다. 바람도 마찬가지. 간혹 특이한 형태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마법 무효화 (AAA) Lv.7]

마법형 공격에는 이 스킬이 있어서 말이지.

그 밖에 저주 내성과 정신 보호 스킬도 있고.

빛 속성이랑 어둠 속성은 신성력으로 커버 치고 있었다.

“귀한 걸 얻었군.”

사실 내성 스킬이라는 게 속성에 따른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독 내성과 같이 상태 이상에 대한 것도 있으니까.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출혈 내성이나 통증 내성 같은 스킬도 있다고 했다. 마비 내성을 가진 헌터도 종종 있었고.

종류 자체는 다양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성 관련된 내성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빛 속성 공격 전체에 대한 데미지가 줄잖아.”

내 몸을 보호하는 데 있어 그 범위가 넓다는 데 있었다.

마비 내성? 없어도 그만이다. 독 내성이나 저주 내성, 그것도 아니라면 마법 무효화, 셋 중 하나에는 걸리겠지.

출혈 내성이야 회복 포션이라도 먹으면 되는 거고, 나 같은 경우에는 덕춘이가 있으니 회복은 걱정이 덜하다.

툭툭. 손가락을 두들겼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남은 것들도 대충 짐작이 가네, 그치?”

“그에에.”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진행된다면 앞으로 내성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구간은 71층, 81층, 91층.

기본 속성 중 내가 얻지 못한 내성 스킬은 대지, 바람, 어둠.

탑을 만든 존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알차게도 짜 놨다.

순서까지 말이지.

환경 적응을 위해 화기와 냉기 내성을 가장 앞에 두고, 이후에는 수준이 낮을 때 위험한 독 내성 등을 배치해 뒀으니까.

물리 공격 내성을 얻은 건 운이었지만. 이건 영단을 먹고 얻은 스킬이다.

생각해 보니 마법 무효화도 랜덤 박스에서 얻었네.

정상적인 경로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

어떻게 보면 제일 사기적인 내성 스킬들까지 가지고 있는 게 나였다.

이거 나중에 가면 슈퍼 탱커 되는 거 아닐까?

모든 속성에 내성을 가지는 데다가 난 펠라인 세트로 모든 속성 강화 및 저항.

크으. 절로 박수가 쳐진다.

“탑 등반할 맛 난다.”

어디 보자. 이제 빛 내성 스킬도 생겼으니 메스토카가 쏘는 스타 버스트도 좀 버틸 만해지려나?

살짝 궁금했지만.

“그에에.”

“그건 좀 무리지?”

고작해야 C등급이다.

다른 내성 스킬이 E등급부터 시작하는 걸 생각하면 높지만, SS급 스킬인 스타 버스트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

하지만 구사일생이 있다면?

심지어 난 신성력 스킬도 있는데?

스윽,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 퀘스트를 다 못 깼네.”

3번 마을 페더가 준 퀘스트도 아직 끝내지 못했다.

가는 길에 스킬 레벨 좀 올려 둬야겠다.

“끼에에.”

밤 동안 무리해서 피곤했는지 엎어져 잠든 더덕이를 허리에 끼고 발을 옮겼다.

* * *

대충 5일 정도가 흘렀나?

아니면 6일?

일주일은 안 지난 거 같다.

“저, 저기 등반가다!”

“어? 그때 걔 아닌가?”

“페더! 이블아이가 왔습니다.”

“몰골이 장난 아닌데?”

다행히 살아서 3번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흙먼지와 피, 알 수 없는 오물로 뒤덮인 갑옷.

투구를 벗고 침을 뱉었다.

입안 가득 들어갔던 흙이 튀어나온다.

코도 좀 풀어야겠네.

슥, 손으로 문대자 피딱지가 묻어나온다.

머리는 떡이 진 지 오래.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자빠져 잠들고 싶다.

거울이 없어서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거렁뱅이 같은 몰골이 아닐까.

“그에에.”

나와 함께 구른 덕춘이 역시 혀를 내두르며 진절머리를 친다.

그만큼 빡셌다는 거지.

“끼, 끼익! 끼히익!”

더덕이는 아주 발작을 하고 있고.

비록 말은 못 하지만 처량하게 울며 마을로 달려가는 게 뭐랄까.

‘맨드레이크 살려! 저 미친놈이 날 죽이려 해!’

이러는 느낌이랄까.

하긴 더덕이가 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다.

메스토카가 우글거리는 곳을 밤낮없이 지나쳐 왔는데 살아 있는 게 기적이지.

몇 번은 진짜 죽을 뻔했고, 어떻게 살아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덕분에 성과는 좋았지만.

“스킬 레벨이 많이 올랐어.”

[빛 내성 (AA) Lv.4]

스타 버스트를 맞고 구사일생으로 견디고, 버프를 두르고 버티고 하다 보니까 레벨이 빠르게 올랐다.

하기야 SS급 스킬을 맞고 살았는데 많이 올라야지.

다른 스킬도 마찬가지.

안 그래도 12번 마을에 머물면서 경험치가 제법 쌓였었다.

오는 길에는 비교적 레벨이 낮았던 것들도 신경 써서 사용했으니 조금은 균형이 맞지 않았을까.

단기간에 끌어올렸다고 생각하기에는 꽤 훌륭한 수준.

잠도 안 자고 이 난리를 피웠으니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괘, 괜찮은가?”

“좀 졸리기는 한데 괜찮습니다.”

나를 마중 나온 페더.

마을에 들어서고 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단 샤워부터.

[샤워 (C) Lv.6]

[클린 (B) Lv.9]

“으어, 좋다.”

“그에에에.”

“끼에에아.”

몸에 묻었던 오물이 씻겨 내려가고 뜨끈한 온기가 몸을 감싸 피로를 풀어 준다.

사람과 개구리, 뿌리식물이 나란히 늘어지는 표정을 짓는 진풍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린다.

“페더, 잘 살펴요.”

“우리는 일이 많아 가지고.”

“맞네. 등반가가 왔으니 놈들이 올 수도 있는 거잖아.”

거 너무 대놓고 피하는 거 아닙니까.

종을 뛰어넘어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는 거지.

아무튼, 조금 누워서 쉬었더니 정신이 좀 든다.

“집으로 가죠.”

“그러지.”

우리는 페더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 말마따나 할 일이 많은데 마을 한복판에서 길 막고 있으면 안 되지.

“끼에에!”

“끼아아악!”

여전히 맨드레이크가 많은 곳.

아니나 다를까 또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껙!”

더덕이의 호통 한 번에 다들 쭈그러져 벽에 머리를 박는다.

나랑 함께하며 급속도로 성장한 건 더덕이도 마찬가지.

어디 감히 안전하게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녀석들이 더덕이에게 까불겠는가.

“끼, 끼엑!”

용감한 뿌리 친구 하나가 불만을 토로하려 했으나.

“끼아악!”

-빠악!

그대로 더덕이한테 턱을 맞고 쓰러졌다.

훌륭한 섬머솔트킥이었다.

와, 저게 되네.

가혹한 탑의 환경은 뿌리마저 뛰게 만드는 것인가.

무섭다. 무서워!

“그에에.”

수면 부족 때문인지 뻘소리를 하는 나에게 덕춘이가 핀잔을 준다.

알았어, 너무 그러지 마라.

흠흠.

헛기침 한 번 하고.

“그래, 12번 마을에 대해 알아봤나? 보아하니 좋은 일이 있던 거 같지는 않은데.”

“아뇨,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테러를 가했던 놈들도 알아냈고, 61층 클리어 방법까지 확인했거든요.”

“클리어? 설마 엘리자베스가?”

내 말에 페터의 눈이 커진다.

그 또한 61층에 갇혀 있는 건 매한가지니까.

마을 사람 중 안 그런 사람이 없겠다만 마을을 대표하는 입장인 만큼 더욱 관심이 있을 거다.

“예, 메스토카와 맨드레이크는 천적 관계예요. 그 자체로도 상극이지만, 전투 후에 알을 찾아내 먹어 감염을 예방할 수 있을뿐더러 혹여나 감염자가 나와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죠.”

“더 이상 누가 감염됐는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군.”

“그게 정답입니다.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죠. 페더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 열쇠를 키우고 있던 거구요.”

“허허, 세상일 참 모르겠어.”

3번 마을이 클리어되는 것도 시간문제.

내가 해 줄 생각은 없다.

메스토카랑 싸우는 것도 지긋지긋하거니와 이건 다른 등반가들을 위해 양보해야지.

슬슬 탈모맨과 핥짝이, 냥펀도 올라올 거 같은데.

연합 사람 중에서도 60층에 도착한 사람들이 있을 거고.

너무 바빠서 커뮤니티를 확인하지도 못했다. 여유 생길 때 봐야지.

아, 맞다.

‘릴카 퀘스트도 제대로 확인 안 했었네.’

이것뿐만이 아니다.

오면서 사냥해서 얻은 고기도 헬다잉 키친에 보내야 하고, 화조국에 보낼 포션과 아이템도 만들어야 한다.

쉴 틈이 없구만. 하나씩 하자.

다행히 릴카가 준 퀘스트에서 61층에서 얻을 건 없어 보이고 일단은 위로 올라가 볼까?

여기서는 잠도 편히 못 자니까.

인벤토리에서 탑 숭배 집단의 증명패와 편지를 꺼내 보여 줬다.

“테일러를 비롯한 3명이 탑 숭배자였습니다. 테러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그들이 움직인 건가.”

“아는 게 있나요? 유헤다라는 NPC도 숭배자라고 하는데요.”

“유헤다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잠깐 소문을 들은 게 있지, 탑과 직접 거래를 하는 자들이 있다고. 어떤 거래인지,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알려진 게 없지만.”

탑과 거래를 한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99층에 오른 이들은 가능한 일이니까.

프램버그의 수장 베힐탄도 거래하지 않았던가.

잠깐만 그렇다면?

‘탑 숭배자 중에는 99층까지 오른 자도 있다는 건가.’

벌써부터 짜릿하네.

오케이, 받아들이자. 언제부터 등반하는 게 편했다고.

숭배자가 아니더라도 장애물은 차고 넘친다. 하나 더 추가됐다고 생각하면 되지.

게다가…….

‘어차피 100층을 공략하려면 그들을 뛰어넘어야 해.’

릴카, 킬더레스, 알리오스, 베힐탄, 펠라인.

99층까지 올랐지만 결국은 실패한 이들.

그들보다 강해야 한다. 그들보다 나은 성과를 보여야만 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 정보는 잘 모아 온 거 같군. 남은 건 맨드레이크를 다른 마을로 옮기는 것뿐인가.”

“안 그래도 그거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말이죠. 따로 등반하는 사람들한테도 말을 해 둘까 합니다. 맨드레이크와 공략을 할 수 있는 방법이요.”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 여러 마을로 퍼져서 동시다발적으로 공략을 이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을 읽은 페더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지. 여기 마을 위치가 기록된 지도네. 최단 루트로 정해 뒀지. 사라진 마을도 있으니 3일이면 충분할 거야. 굳이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되네. 보상받고 바로 위로 올라가도 좋아. 자네도 바쁜 거 같으니.”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안 그래도 그러고 싶었는데.

“바로 출발하죠. 그리고 더덕이 아니, 엘리자베스 말인데.”

난 더덕이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뭐가 됐든 더덕이를 양도받은 상태. 사실상 12번 마을에서 요구한 거지만 12번 마을 자체가 사라졌다.

사실상 내가 책임자라는 말.

“너, 어떻게 할래? 나랑 올라갈 거야?”

“끼이이. 끼에에에…….”

고민되는지 몸을 비틀던 녀석이 도리질을 쳤다.

그럴 거 같았다. 요 며칠 겪어서 잘 알 거다. 나랑 다니면 어떻게 되는지.

애초에 맨드레이크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고, 보통은 한 구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나도 속으로는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더덕이가 싫은 건 아니다, 아닌데…….

‘정식으로 펫으로 등록이 안 됐거든.’

데리고 다닐 수는 있는데 그러다 죽으면?

펫인 덕춘이는 만에 하나 사고를 당하더라도 내가 안전지대로 가면 부활한다.

반면에 더덕이는?

그냥 죽는 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위험한 일이 있을지 모르는 만큼 가능한 더덕이는 남겨 두고 싶었다.

“그래, 미안해하지 말고 여기서 어? 좋은 뿌리 만나서 잘 먹고 잘살란 말이야. 페더도 있는 동안 잘 보살펴 줘요.”

“걱정 말게나.”

“끼, 끼이이이. 끼악, 퉷!”

정말 자리를 뜨려던 그때, 울먹이던 더덕이가 뭔가를 뱉어 냈다.

갑자기 침을 뱉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찰나.

“오오! 이것은!”

페더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난 조용히 녀석이 뱉은 걸 주워 들었다.

[맨드레이크 모종]

-더덕이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가지 못하지만 새로운 누군가는 함께하길 바랍니다.

-영물의 영역에 발을 디딘 더덕이의 힘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조건만 맞다면 군락을 이룰지도 모릅니다.

“더덕이 너…….”

“이걸 살면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귀한 광경이군.”

“끼엑. 끼아아아.”

기껏 고생해서 힘을 모았을 텐데 모종을 줄 줄이야.

조금은 쪼그라든 더덕이를 꼬옥 안아 줬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이제는 진짜 떠나야 할 때.

“잘 있어라.”

더덕이가 가만히 손을 흔들어 줬고, 난 페더의 안내를 받아 각 마을로 보낼 맨드레이크들을 차출해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렇게 3일.

각 마을에 맨드레이크를 배치하고 페더의 퀘스트도 완료한 난…….

-우우우우웅

[62층에 진입합니다.]

“드디어 62층인가.”

“그에에.”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빛이 가시며 새롭게 펼쳐진 필드.

그 모습을 담으려던 그때.

-스윽

“뭐, 뭐야!”

누군가 등 뒤에서 날 감싸며 눈을 가렸고.

“쉿, 날뛰지 말고 눈 감아요.”

정체불명의 여인이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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