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쌍송곳바위
사람 얼굴 형상을 한 구름, 참을 수 없는 충동을 꿰뚫고 나타난 메시지.
바람이 구름을 비웃는다.
“재앙이 2개가 있다고?”
“그에에.”
미간을 찌푸렸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건 아니다. 메스토카의 경우도 군집체 전체를 묶어 재앙으로 분류했으니까.
66층의 재앙은 좀 특이하다.
하는 것만 보면 무너지는 돌탑이나 소원 들어주는 연못과 같이 괴이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놈들 같은데, 의사를 전달하는 건 쌍두귀나 달칸과 같다.
재앙이라는 건 알면 알수록 정의 내리기 힘든 뭔가가 있다.
중요한 건…….
‘또 어떤 식으로 날 엿 먹일지 모른다는 거지.’
일단 구름을 무찔렀다.
다시 수작질해도 이겨 낼 자신도 있고.
혼돈 수치가 100을 넘은 상황. 나도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다.
그걸 증명하듯 다른 재앙은 조심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바람은 기회를 엿볼 것입니다.]
-후우우웅
끈적하고 밀도 있는 바람이 날 훑고 지나간다.
자연 현상과는 다른 의지가 담긴 움직임.
-스스스스스
바람이 지나간 자리, 나뭇잎이 허공을 날며 사람의 얼굴을 만든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날 주시하다 사라지는 얼굴.
꺼림칙하기 그지없다.
“이놈의 탑에서는 상식이란 게 의미 없는 거 같단 말이지.”
구름이나 바람이나 멋대로 행동하기나 하고.
일단은 지켜보자. 구름도 이겨 냈으니 바람 역시 이겨 낼 수 있을 거다.
하늘을 노려봤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날 의식하는 눈길이 느껴진다.
날 예의 주시 하겠다 이거겠지.
구름과 바람이 한 내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이 이길 일은 없을 거다.
지들이 뭔데 날 가지고 내기를 해.
우선 하던 일에 집중하자.
레지스탕스 하얀뿔의 지부와 접촉해야 한다.
“어디부터 봐야 하나.”
오픈 필드인 만큼 규모가 꽤 크다.
갈매기한테 받은 편지를 확인했다.
대놓고 위치를 알려 주지는 않았으나 단서는 남겨 줬다.
“쌍송곳바위.”
뾰족하게 솟아오른 바위 두 개가 그려져 있다.
아무런 의미 없이 그려 둔 건 아닐 테니 이쪽에 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거 같다.
-파앗
발을 박차고 근처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이동했다.
시야가 트인다. 내가 있는 곳은 산 중턱.
산을 양분하듯 이어진 협곡을 기준으로 산의 분위기가 다르다.
이쪽이 파릇한 여름 느낌이라면 반대편은 가을. 단풍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바위는 보이지 않았으나…….
“…저건 또 뭐야.”
“그에엑.”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교적 나무가 적은 곳. 몬스터 한 마리가 열심히 바위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몬스터가 아닌 6성급 몬스터, 인면지주.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고, 상당히 보기 드문 종류 중 하나다.
중국에서는 영물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그에?”
“반응을 보니 영물은 아닌가 보네. 내가 봐도 그래.”
그동안 봐 왔던 영물을 떠올리면 한참 못 미친다.
-콰아아앙!
폭발을 일으켜 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머리가 깨져 피가 남에도 박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유명한 거미줄이랑 독은 어디다 팔고 저러고 있는 걸까.
근처까지 다가가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정상과는 거리가 먼 행동.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츠즈즈즈즈
[인면지주]
-6성급 몬스터.
-아나크네와 함께 거미류 투톱 몬스터!
-이 객체는 세계 제일의 박치기왕을 꿈꾸고 있습니다!
잘못 봤나?
눈을 감았다 다시 떠도 설명은 바뀌지 않았다.
거미가 왜 박치기왕이 되려고 하는…….
됐다, 이해하려 하지 말자. 되고 싶다는데 그러려니 해야지.
-푸욱
무방비한 놈의 뒤통수에 검을 꽂아 넣었다.
방어할 생각도 없는지라 6성급 몬스터인 게 무색하게 쉽게 죽는다.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알겠다.
놈이 저러는 데는 재앙의 영향이 있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난 숲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끼에에에엑!”
“크하아아!”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마경을 볼 수 있었다.
식물이 뿌리를 다리 삼아 부들거리며 걸어 다녔고, 육중한 짐승형 몬스터가 새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새 몬스터는 자기가 두더지라도 되는지 부리로 열심히 땅을 파 안으로 들어갔으며, 어떤 놈은 뜬금없이 돌을 씹어먹었다.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는 놈들이 멀쩡할 지경.
몬스터만 그러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크흡. 으흐흡!”
놈들 사이에 NPC도 한 명 섞여 있었다.
주변은 난장판. 나무란 나무는 모두 잘려 있다.
눈물을 흘리는 곰 같은 덩치의 아저씨.
펑퍼짐한 멜빵바지를 입고 있음에도 하체 근육이 느껴진다.
상체는 말할 것도 없고.
바닥에 놔둔 도끼는 거짓말 안 하고 내 키만 하다.
저게 도끼인가. 할버드에 가까워 보이는데 도끼날만 보면 도끼가 맞는 것도 같고.
제정신은 아닌 거 같은 관계로 슬쩍 자리를 피하려는 그 순간 덩치와 눈이 마주쳤다.
-콰아아앙!
“으익!”
“흐으윽! 자네 등반가인가!”
말 같지 않은 속도로 내게 달려와 손을 붙잡는 녀석.
저 덩치에 이런 속도가 나온다고?
아귀힘도 장난이 아니다.
눈은 순박했으나 뭐랄까.
‘좀 부담스러운데.’
왤까, 보송송이가 떠오르는 건.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NPC를 상대로 나이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등반가가 아니라 헌터입니다.”
“그게 등반가잖아!”
칫, 안 속나.
정신이 살짝 나간 거 같아서 혹시나 했는데.
“내 부탁 좀 들어줘. 난 할 일이 있어!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고!”
“별로 궁금하지는 않네요.”
“그래, 관심이 있겠지. 누구나 원할 만한 일이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 말을 안 듣네.
원래 성격인지 재앙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세계 최고의 나무꾼이 되는 것!”
“와아, 대단해요. 파이팅!”
난 응원을 해 주며 슬쩍 손을 뺐다.
이미 최고는 몰라도 최강의 나무꾼은 된 거 같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날 두고 가지 마아아아!”
“아, 좀 놔요!”
미련 없이 자리를 옮기는데 그가 다리에 매달렸다.
덩치가 커서 발을 붙잡았는데도 허리까지 온다.
“여기 있는 나무로는 부족해. 더 크고 커다란 나무가 필요하다고! 그래, 세계수 같은!”
큰일 날 소리하네, 이 양반.
내가 세계수 심으려고 무슨 고생을 했는데.
하더라도 눈의 정령과 드루이드, 엘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들에게 세계수는 목숨과도 같은 거니까.
“아니지. 세계수도 좋지만 그것도 좋겠어! 들은 이야기가 있네. 하얀 나무라고 강력한 뭔가가 있다고.”
“하얀 나무?”
나도 안다.
레지스탕스, 하얀뿔이 끝내려고 하는 게 하얀 나무. 왕족과 귀족으로 이루어진 천족 집단이다.
어디까지나 집단 이름이지 진짜 나무가 아니라는 말.
“그거 나무 아닌데요.”
“상관없다! 나무면 다 나무야!”
“…이름이 나무면요?”
“그놈들은 이미 내 손에 다 죽었어!”
미친놈이 확실하다.
문제는 날 놓아 줄 생각을 않는다는 것.
잠깐만.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하얀 나무를 원하신다고요?”
“그렇다!”
“제가 소개시켜 줄 곳이 있겠네요. 하얀 나무에 대해 잘 아는 곳이 있어서요.”
“오오오오! 진짠가?”
“예. 안 그래도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죠. 하얀뿔이라고 아십니까?”
“으음, 잘 모르겠군.”
“그럼 이렇게 생긴 바위는요?”
갈매기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 줬다.
안 그래도 위치를 어떻게 찾나 고민했는데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을 NPC라면 알고 있을지 모른다.
가뜩이나 넓은 필드. 이렇게라도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면 좋지.
“아! 이건 뭔지 알 거 같아. 주변에 제법 커다란 가시나무가 있었거든. 가지 대신 가시가 뻗어 있는 것이 얼마나 베고 싶던지!”
“예. 훌륭하십니다. 안내해 주시죠.”
“하하하하! 하얀 나무를 벨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번쩍, 도끼를 든 덩치가 흥겹게 안내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더욱 포악해진 몬스터가 덤벼들기도 했으나.
“떡갈나무 색깔이구나!”
-퍼억!
도끼질 한 번에 몸통이 두 동강 났다.
이야, 저만한 사이즈의 도끼가 저렇게 빨리 움직인다고?
근력 스텟이 몇이나 되려나. 나도 저렇게는 안 될 거 같은데. 탈모맨이면 또 모르겠다.
하는 짓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66층에 도착했을 탈모맨과 핥짝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나야 혼돈 수치가 있어서 그렇다 치지만 둘은 아직 100점이 넘지 않을 텐데.
그나마 핥짝이는 믿음이 가는데 탈모맨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자동으로 길을 뚫어 주는 나무꾼도 있겠다 여유를 가지고 커뮤니티를 켰다.
[쁘띠공듀]: 인생을 날로 먹는 건 너무나 행복한 것!
어그로 끄는 말을 올려 주면.
[정수리 핥짝]: 날로 먹냐? 어? 날로 먹냐고!
[니머리 탈모]: 나도 회 좋아해! 육회도 좋아! 같이 먹자!
[정수리 핥짝]: 얜 또 뭔 개소리야;
[쁘띠공듀]: 평소와 같은 걸욧?
[정수리 핥짝]: 그건 ㅇㅈ.
이렇게 바로 반응이 온다.
잡담을 하는 걸 보니 아직까지 둘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대화하는 걸 본 걸까, 냥펀도 대화에 합류했다.
[냥냥펀치]: 이얍! 65층 입성!
[정수리 핥짝]: 후후… 이제 65층이냐!
[냥냥펀치]: 엥? 뭐야, 달칸 여기서 또 나와? 아직 봉인 안 풀렸네.
[니머리 탈모]: 거기 7명 필요함. 너 다른 사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
[쁘띠공듀]: 한동안 구르겠네요. 또르륵……☆
[냥냥펀치]: 아, ㄱㅊ할 듯? 연합 사람들 몇 명 올라올 거 같음.
연합 사람 중에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몇몇이 60층에 진입했다고는 했는데 벌써 그만큼 올라왔나.
뭔가 싶어 확인해 보니 진짜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열댓 명의 연합 사람들이 60층에 도착했고, 다 같이 뭉쳐서 위로 올라가는 중이라는 모양.
오픈 필드인 만큼 어디로 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필드 어딘가 도움을 줄 사람이 있다면 생존율이 더 올라가겠지.
60층대도 공략을 올려 뒀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테고.
[정수리 핥짝]: 하─여으─가안 요즘 것들은 그─으으은성이 없이 쉽게, 쉽게. 엉?
[니머리 탈모]: 요즘 사람 아닌 핥짝좌… 과연 그녀의 나이는…….
[정수리 핥짝]: 누나 해 봐, 누나^^. 콱 씨, 그냥.
[니머리 탈모]: 누… 누… 누룽지!
[정수리 핥짝]: 누룽지처럼 얼굴 납작하게 만들어 줄게 ㅎㅎㅎ.
[쁘띠공듀]: 경) 탈모맨 조만간 누룽지 될 예정 (축
[냥냥펀치]: 탈모맨 맛있어지는 거야?
멤버들도 무난하게 등반 중이다.
슬쩍 커뮤니티 채널을 살폈다.
[65층 돌파]
[상위 채널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이건 조금 있다가 해야 할 거 같다.
“그래! 바로 여기야!”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길잡이가 있으니 편하네. 알아서 길 뚫어 줘, 몬스터 잡아 줘.
그의 말마따나 편지에 그려져 있던 것과 동일하게 생긴 바위가 보인다.
난 바로 권능을 사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위에 불과하다만 권능을 사용하면 또 다르지.
-츠즈즈즈즈
“그렇지.”
송곳 바위의 중앙, 뭔가가 있다.
그곳으로 걸어가 거침없이 발로 걷어찼고.
-콰아아앙!
[입구가 개방됩니다.]
[레지스탕스, 하얀뿔의 66층 지부]
밑으로 향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서 올라오는 누군가.
“뭐, 뭐뭐, 뭔가요! 왜 남의 집 문을 부숴요!”
“문고리가 없어서요. 반갑습니다, 이블아이입니다.”
동그란 안경을 낀 천족 여인.
편지지를 보여 주며 인사를 건넸다.
“아, 쉐핀이 말했던 그 사람이군요. 아무리 그래도 문을!”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은 그녀가 흘낏 내 옆에 선 나무꾼을 바라봤다. 천천히 입이 벌어진다.
“옆에 분은 설마?”
“하얀 나무를 베러 온 가니안이다!”
당당히 자신을 소개하는 녀석.
이름이 가니안이었구나. 통성명도 안 하고 있었네.
“잠깐만…….”
가니안?
그거 내가 가지고 있는 숟가락 주인 아닌가?